〈 54화 〉 착하지 못한 사람
* *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아일린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았으면하고 바라고는 있었지만, 올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론 기색을 다 드러내면서 찾아올 아이가 아니긴 하다.
세실리아 탓에 바쁜 탓이려나.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고마워.”
이름 모를 메이드가 트레이에서 식사를 내려주고 나간다.
시설 밥은 맛있었다.
세 끼니를 꼬박꼬박 넣어주는데, 아침은 빵과 계란, 그리고 우유 정도로 가볍게 주는 반면에, 점심과 저녁은 무척 호화롭게 내주었다.
부드러운 흰 빵 한 바구니, 과일 한 바구니, 수프 또는 콩소메 한 접시, 채소 요리 두 접시, 육고기 요리 한 접시, 어패류 요리 어, 패 각각 한 접시, 음료 한 병.
이것들이 한 번에 들어온다.
맛은 있는데, 다 먹으라고 주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 남길 수밖에 없어서 남기긴 남기는데, 아무래도 죄책감이 생길 정도다.
그렇다고 음식을 줄여달라고 하긴 싫다.
딱히 예의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설에 재정적인 데미지를 주고 싶어서 그렇다.
......나도 안다. 한심할 정도로 작은 복수다.
애초에 음식이 남는다 한들 부엌이나 메이드들이 처리하겠지.
그래도 어디 왕 정도는 되어야지 이렇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르덴 공작령 내부에선 왕이나 다름없는 테레제도 매일매일 매 끼니를 이렇게 휘황찬란하게 차려놓고 먹진 않는다.
물론 이건 유르덴 일가가 무관 집안이라서 그런지 자기들 먹을 음식에는 돈을 잘 쓰지 않는 탓도 있긴 있는데.
“이렇게 호화롭게 먹으면서 우리들에겐 오트밀 밖에 안 줬던 거야?”
생선찜에서 나이프와 포크로 살을 바르다가 문득 옛 실험체 세월의 추억이 떠올랐다.
연구원 연놈들. 물론 내가 손님이니까 조금 더 대접한다 해도, 여기서 찬 하나나 두 개 정도 줄인 만큼은 먹고 있겠지.
아니, 추억은 개뿔이. 갑자기 생각나니까 열 받네.
그땐 설탕도 안 묻은 꽈배기 과자 하나 먹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웠었는데.
“에휴.”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조금 과식일까. 화가 치밀어올라서 그걸 푸느라 평소보다 조금 더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맛은 있었으니까.
오늘 들어온 음료는 브랜디였다.
술 마셔도 되냐고?
물론 생전의 법률과 비교해서 따지자면야, 나. 아직 미성년자지만, 여기선 아니랍니다.
왜냐면 이 세계에선 아직 미성년과 성년을 구별하는 놈이 아무도 없거든.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으니까.
응?
그게 아니라 호위가 술을 마셔도 되냐고? 몰라. 내 알바야?
넣어준 연놈들 잘못이지.
“맛있네. 취할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애초에 육체가 실험으로 강화된 탓인지 취기가 안 올라온다.
정확하게 말하면, 술이 혀를 타고 뱃속에 흘러 들어가 머리에 열이 살짝 오를 듯하면 곧바로 김빠지게 식어버렸다.
재미없게.
그걸 다 생각하고 술을 넣어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또 짜증이 났다.
뭔가 쉽게 욱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이다.
여기 지하거든. 지하 3층이거든. 공기 탁한 느낌에 광원이라고는 인공불빛밖에 없거든?
거기서 나가지도 못하고 이틀 동안 박혀있으면 아무래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달까.
그렇다고 문 바깥을 생각하면 또 기분 더러워지게 시설이 있으니.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응.”
노크소리와 함께, 메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은 음식을 치우러 온 것이겠지.
문이 열리고, 아까 음식을 가져온 메이드와 다른 메이드가 남은 음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럼.”
“아, 잠깐만.”
“......왜 그러시는지요?”
정리를 끝낸 메이드가 나서려 하기에 문득 나도 모르게 부르고 말았다.
스트레스가 쌓이긴 쌓인 모양이네.
“산책 좀 하고 싶은데.”
“손님께선 수인?人이 아니십니다. 산책이라면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말해도 괜찮겠어? 어쩌다 내가 기밀을 훔쳐보기라도 하면 전부 너의 책임이 될 텐데.”
안 그래도 시드니가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했었지.
메이드는 잠시 생각하더니, 사람을 불러오겠다며 말한 뒤에 나가버렸다.
그리고 금세 시드니가 되돌아왔다.
“산책을 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여기 공기가 탁해. 그리고 햇빛 좀 쬐고 싶은데. 이러다가 밖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게 될 것 같은걸.”
“죄송합니다. 저희 연구원들에겐 일상인지라, 깊게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래서. 산책은? 메이드 씨 말대로 혼자 나다녀도 되는 걸까?”
“네. 얼마든지요. 대신 제가 옆에 붙어 있겠습니다.”
그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의 벽에 기대어 놓았던 환도와 책상 위의 권총을 챙겨서 방 바깥으로 나왔다.
베일도 챙겼다.
햇빛을 쬘 때는 잠시 벗을 생각이지만.
“뭔가, 아이들이 늘어난 것 같은데.”
“아, 예.”
복도로 나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직 옷도 배급받지 못한 꾀죄죄한 몰골의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걸어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 때와는 다르다는 것도 일목요연했다.
우선 수인?人의 비율이 굉장히 많았다. 반룡도 상당히 많았고, 전체적으로 인간보다 인간이 아닌 사람의 수가 확연히 많았다.
“서쪽에서 큰 전쟁이 났다더라고요. 모두 불쌍한 전쟁고아들이랍니다.”
“......디오르시온, 쪽이려나.”
“하하. 역시 외부에서 오셨으니 같은 책상물림보다야 세상 물정을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궁금한 게 있어.”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언젠가 이미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폭력으로 대답받을 수밖에 없었던 질문.
“아이들이 불쌍하진 않아?”
“네? 당연히 불쌍하지요. 전쟁으로 부모와 삶의 터전을 전부 잃다니. 가엾은 것들.”
“그거 말고. 저 아이들에게 실험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 말이야.”
“강요, 인가요.”
시드니는 잘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곧바로 화내면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하고 소리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시드니가 내가 있던 시설의 연구원들보다는 조금 더 사람 좋은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모른답니다. 정신적으로 미숙하여 정상적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말한 시드니는 줄을 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에서 불길함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 아이들은 전쟁의 불길 탓에 부모를 잃고, 고향마저 잃었습니다. 이끌어줄 어른을 잃고 말았죠. 저는 주변 선인의 가르침 덕분에 정신적으로 옳게 성장한 어른으로서 그런 나쁜 환경에 아이들을 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설이 좋은 환경이라고?”
“전쟁터보다야 좋은 환경이지 않나요? 저는 전쟁터에 발을 디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모두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네 말은 실험에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해.”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른답니다.”
시드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불쌍하고 가여운 것을 본다는 듯한 눈. 그러면서도 희열에 떨며 흥분하는 듯한 눈.
반하기라도 한 듯. 아니, 그보다 위. 경외감을 품은 듯 붉히고 있는 얼굴.
성공적인 실험체.
그제야 나는 이 빌어먹을 새끼가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건지 알았다.
“저 아이들이 그렇듯, 당신은 아직 잘 모르겠지요. 하지만, 결국 저희의 모든 실험은 선?으로 향합니다. 이 아이들의 희생은 당신과도 같은 초인을 태어나게 합니다. 다시 태어난 당신들은 하나하나가 100의 병사보다도 강력하기에, 전쟁을 빠르게 끝낼 것입니다. 좋은 전쟁은 빨리 끝난 전쟁뿐이지 않겠습니까? 전쟁의 불길이 더 퍼지지 않는다면, 어른들의 이끎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더 생겨나지 않겠지요. 이것이 저희가 선함을 행하는 방식입니다.”
“무슨, 헛소리야? 그럼 이 시설의 아이들을 이끄는 건 포기하겠다는 소리잖아?!”
“역시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이 아이들을 실험으로 이끄는 겁니다. 물론 아이들은 슬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 역시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미숙함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미쳤어. 개소리야. 말 같은 말을 하라고!”
“뭐. 당신도 자라서 제 나이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이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니다.
그리고 말이 통할 것 같지도 않아서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내 전생의 나이와 현생의 나이를 더하면, 모르긴 잘 몰라도 네 나이보단 많을 거다.
그래도 그딴 미친 생각은 안 해.
“할 말이 많아 보이시네요. 그런데 발을 멈춰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분명히 제게 햇빛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지.”
“......입, 닥쳐.”
“뭐. 저는 아이들을 존중하는 편이기에 험한 말을 하더라도 그다지 화내지는 않는답니다.”
“닥치라고.”
시드니가 겨우 입을 다물었다.
나는 착잡한 얼굴로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건물 바깥, 연병장까지 나와서 깊게 숨을 쉬었다.
오늘은 병사들이 없었다. 대신 커다란 트럭에서 아이들이 내려 신체검사를 받고 있었다.
“베일을 벗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한 번만 더 입을 열었다간 턱을 뽑아버릴 거야.”
“이런, 죄송합니다.”
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이겠지.
정신병자 자식.
그런 와중에 신체검사를 받는 아이들 가운데에 눈에 붕대를 감은 아이가 괜히 눈에 들어왔다.
전쟁통에 다친 걸까.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야위고 딱지 가득한 다리가 친구들과 경비병들의 등쌀에 자꾸만 떠밀렸다.
자세히 보니 인간이 아니라 반룡이었다.
작고 짧은 솜털 꼬리가 뻣뻣하게 서서 아이의 두려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뭐냐, 이 아이는. 불량품이잖아?”
“사이에 끼어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가족이 숨겨서 차에 실었다는 모양입니다.”
“아, 진짜 이런 거 제대로 솎아내라니까.”
경비병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더니, 뭔가 무전을 때리는 듯 중얼거렸다.
오래지 않아 얼굴을 팍 구겼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소음기가 달린 바로 그 리볼버.
“어어, 잠깐만요. 아가씨?!”
멀다.
힘껏 내달렸지만 멀었다.
탁, 하고 리볼버 권총이 격발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반룡 소녀가 픽, 하고 주르륵 넘어진다.
늦었어.
발이 멈췄다.
무릎이 꺾일 듯 부들거렸다.
“빌어, 먹을.”
“음? 아. 작은 아씨님이십니까?”
경비병이 아는 체를 했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바로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정중한 말투. 작은 아씨님. 누군지는 알 것 같네.
“저기요. 아가씨. 그렇게 빨리 뛰어가시면 제가 못 쫓”
“이봐, 시드니.”
“네? 으윽?! 으, 프헉!”
......내가 말하면 턱을 뽑아버리겠다고 했잖아.
이거, 테레제에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자, 작은 아씨님?!”
“모두 무기 들어! 긴급 사태다!”
“무슨 상황”
경비병들이 일제히 총을 뽑아들었지만, 어느새 뽑혀나온 칼끝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겠지.
그저 언젠가 사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빌면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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