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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53화 (53/100)

〈 53화 〉 시설

* * *

윌리엄이 보내준 좌표로 향했다.

작은 도시의 시설이었다. 크지 않은 도시일 뿐, 시설 앞의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많았다.

너무 대놓고 시설을 설치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바깥사람들에겐 고아원으로 위장하고 있는 듯했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렴~.”

시설에 들어간 아이들이 도무지 시설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일이 없는 것 같다거나, 쓸데없이 매일매일 굴뚝에서 연기가 많이도 피어오른다던가, 연기의 악취가 굉장히 심하다던가, 하는 흉흉한 소문이 많이 퍼져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큰 문제 없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설로 향하기 전에 적당히 노상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고 도시의 근황에 대해 물어봤네요.

요리사 아주머니가 자기 사견을 덧붙이시길, 노예 시장과 연이 있는 게 아닐까, 라더라.

꽤 근접했네. 노예는 굴뚝의 많은 연기나 연기의 악취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사람을 태우는 연기겠지.

실험에 견디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말이야.

도시를 걸었다.

이런 동네라면 비쩍 마르고 땟국이 줄줄 흐르는 불쌍한 빈민가 아이들의 무리가 뒷골목이건 큰 골목이건 어디든지 굴러다닐 만한데, 그 어디에서도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값싸게 팔아넘겼다던가.

더해서 납치당했다던가.

불쌍하게도.

그런 풍경을 눈에 담으며 조금 걷다 보니, 금방 시설 앞에 도착했다.

나는 어땠더라.

기억나진 않는다.

저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을 보고 있으면 뭔가 기억날 것도 같은데.

“누구냐.”

입구 옆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설의 굴뚝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경비병이 나를 막아섰다.

사슬 갑옷에 푸른 서코트. 그리고 투구를 쓰고, 커다란 사각 방패를 팔에 차고 있었다,

유리질의 광석 재질의 방패라 반투명하게 건너편이 보인다는 게 전생의 경찰 방패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허리춤의 홀스터에는 소음기가 부착된 리볼버 권총.

나강 M1895 리볼버 같은 것도 있으니까, 소음기 달린 리볼버가 그리 이상한 건 아니지만.

미묘하네.

“뭘 흘긋흘긋 쳐다보는 거냐. 질문에나 대답해라.”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병사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병사는 그걸 받더니, 바이저를 올리고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종이를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마다 표정이 바뀌더니, 마지막 줄에선 당황과 놀람이 가득한 표정이 되어선 정중하게 말을 더듬으며 변명했다.

이제 와서 사족이지만, 지금 나는 테레제가 무기를 팔러 갈 적에 그녀를 수행하기 위해 맞춰 입은 검은 수녀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고 있었다.

아까 뭐 먹을 때엔 베일만 살짝 올리고서 먹었지­

“죄, 죄송합니다. 연락을 받긴 받았지만, 설마 이렇게 젊은 분이 오시리라고는.”

“이봐, 무슨 일이야? 메흐레니아 놈이잖아?”

“아, 아뇨. 소장님이 말한 손님입니다.”

다른 경비병이 와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쪽은 리볼버 권총 대신에 산탄총을 등에 메고 있었다.

무기도 갑옷도 금속의 은빛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깔끔하게 칠했기에, 굉장히 세련되었다.

조금 높은 녀석일까.

“이런 꼬맹이가?”

“예? 예에. 여기 편지가 있습니다.”

“음. 확실하군. 근데 왜 메흐레니아 수도복을 입고 있는 거냐?”

“......꼬맹이라 미안하게 되었어. 그나저나 대충 알았으면 그만 거기서 비켜주시지?”

말투가 좀 험하게 흘러나왔다.

어린 게 맞긴 맞으니 꼬맹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다만, 으음.

원하지 않는 일을 떠맡게 된 탓인지, 아니면 기분 나쁜 시설로 되돌아오게 된 탓인지, 어쩐지 짜증이 팍 치밀어올라서.

으음.

“좋아. 지나가라. 그리고 거기 너.”

“예, 대장님.”

“이 작은 아씨님을 소장님께 안내해.”

한 병사가 방패를 자기 등에 메고 다가왔다.

이쪽도 한 덩치 하는 친구였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나는 병사를 따라서 높고 두꺼운 장벽을 지나쳐 천천히 시설 내부로 향했다.

연병장에선 경비병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고, 구석에는 장갑차, 하프트랙, 병력수송장갑차 등, 커다란 기갑 차량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주 군부대 뺨치는 모습이다.

오히려 이 세계의 평범한 군대의 모습과 비교하자면, 굉장히 현대적인 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니, 현대라고 해야 하나. 내 입장에서나 현대지?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저런 기갑병력도 마법 한 번에 쓸려나갈 수 있으니까.

하여간에.

“이쪽입니다. 그리고 내부에선 이걸 꼭 착용해주십시오.”

경비병이 목에 거는 이름표를 건네주었기에 대충 착용했다.

그리고 연병장을 지나쳐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이쪽도 군인이나 거의 다를 것 없는 경비병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실상 백의를 입은 연구원들이 섞여있는 것을 제외하면 그냥 군부대라고 봐도 다를 게 없다는 느낌.

아일린의 급습을 걱정해서 병력이 충원되었을 것을 생각해도 사람이 꽤 많지 않나 싶었다.

내가 굳이 필요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건물 안을 제법 걸어, 날개에 해당하는 부속 건물에 도착했을 무렵에 안내하는 것을 도와주던 경비병이 발을 멈추었다.

“A동. 즉, 이 건물 지하 3층에 소장실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주십시오.”

“안내해줘서 고마워. 음.”

이름표를 슬쩍 보았다. 토마스, 라는 이름이었다.

“토마스 씨.”

“그럼, 저는 다시 근무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얌전히 계단을 찾아 지하로 내려갔다.

이렇게 큰 시설이면 승강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싶지만.

뭐어, 그냥 눈에 바로 보였으니까.

“엇. 누구? 아. 손님.......”

제일 먼저 얼굴을 마주친 연구원이 깜짝 놀랐다가 이름표를 보고 멈추었다.

이제 와서 드레스코드가 잘못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실은 저쪽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소장실에 노크.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쯧.”

소장실 의자에 앉은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혀를 차고 말았다.

아는 얼굴.

그다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윌리엄 왕자님께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절 아시나요?”

양호실의 선생이었다. 하긴 시체를 보지 못했으니까.

아일린에겐 상냥하게 굴면서 나에게는 말도 걸지 않던 그 녀석이다.

그 대접에는 문제가 없다만, 아일린에게 시설의 아이들을 볼모로 잡아 실험에 응하도록 협박 비슷한 걸 했던 녀석이기도 했다.

내가 베일을 쓴 탓인지, 성별이 바뀐 탓인지.

윌리엄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면서도 그다지 세세한 것까지 듣진 못한 모양인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나야 귀찮지 않고 좋지......만.

손이 칼자루에 가려는 것을 참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뇨. 착각했습니다.”

“뭐. 네. 방을 드리지요. 이틀에서 사흘 정도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틀에서 사흘이라.

새삼 들으니 상당히 기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예.”

“그게 전부입니다. 그럼 나가주세요. 조금 바빠서.”

예전과 똑같이 쌀쌀맞은 말투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래도 종을 울려 부하를 부르긴 했다.

“부르셨습니까, 소장님!”

“시드니. 이 친구를 손님 방으로 보내줘.”

“예, 소장님!!”

열정이 넘쳐 보이는 연구원이었는데, 꽤 근육질이라서 연구원이라기보다는 군인처럼 보였다.

이런 데서 일하는 연구원만 아니라면 정말로 좋을 것 같은데.

“따라오십시오, 손님!”

얌전히 그를 따라가서 방의 열쇠를 받았다.

따라가는 사이에, 실험을 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유리벽 안쪽, 옛날 아일린처럼 양팔에 모두 수액을 꽂고 약물을 주입받고 있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클립보드에 뭔가 기록하고 있는 연구원들.

내가 대체 어쩌다 이런 곳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

“이 방을 쓰시면 되겠습니다. 식사는 시간이 되면 가져다드릴 것이며, 방 안쪽에 몸을 씻을 수 있는 욕탕이 있으니 그곳을 사용해주십시오. 그러니 면목 없습니다만, 부디 출입을 최대한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됐어요. 이해했습니다. 기밀이다 이거죠, 뭐.”

“엇.......”

베일을 벗자마자 시드니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심지어 대놓고 빤히 바라보았다.

쯧.

어차피 여기쯤 오면 괜찮겠지 싶었다만, 괜히 관심을 끌어버린 모양이었다.

“뭔가요.”

“아, 아뇨. 죄송합니다. 꽤 생각지 못한 얼굴이라서.”

“이 시설의 실험체들과 비슷한 얼굴인데, 라던가?”

“아, 아뇨. 설마. 그게 아니라. 그.”

“됐어요. 전부 이해하니까 그만 나가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시드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숙이던가, 말던가, 나는 환도와 루거 P08을 닮은 권총을 풀어서 책상에 내려놓았다.

고개를 든 시드니는 우물쭈물하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말씀해주세요!’라고 크게 고함을 지르듯 소리 치고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얼굴이 새빨간 걸 보니까 생각이 다 읽혀서 화가 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닌 것 같다고?

알 바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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