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연락
* * *
“대체 어딜 갔던 거야.”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테레제가 부루퉁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교실에서 나온 이래 계속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물론 에드윈 탓이긴 하지만.
“아일린이 이야기를 할 거면 세실리아보다 자신과 하는 게 빠를 거라고 해서.”
“그래서, 응? 뭐야. 걔랑 둘이서 놀러 갔다 왔단 소리야 뭐야?”
“아, 아뇨. 그건 아니고.”
“변명이 있어? 어디 말해봐.”
잔뜩 삐진 얼굴이다.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으으.
그, 그래도 말이라도 한 번 해볼까.......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뭔가 봐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그걸 보러.”
“놀러 갔다 온 거 맞네.”
“하, 하지만 따라오지 않으면 이쪽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기세여서.”
“코넬리아! 내가 걔 데리고 오랬어? 세실리아랬잖아, 세실리아!”
“그게”
“시끄러! 시끄러시끄러! 코넬리아는 내 말도 안 듣고 제멋대로 놀러 갔다 온 거야!!”
“......죄송합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테레제가 오리 주둥이를 한 채 우는 소리를 냈다.
턱을 쭈우욱 당긴 채 시선만을 올려서 치켜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물까지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압력을 주는 표정이라기보다는 그냥 귀엽네.
볼에 바람을 잔뜩 넣어서 빵빵해진 모습을 보니까 마구 볼을 꼬집어서 늘려주고 싶었다.
엄청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겠지.
“지금 딴 생각 하고 있지?”
“아, 아뇨. 설마.”
“......이제 됐어.”
테레제는 눈 아래 주름을 파르르 떨다가 고개를 홱하니 돌렸다.
이거 불에 부채질한 건 아닐까 모르겠네.
하여간에 테레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소파로 가서, 뛰어들 듯 몸을 던져 소파에 앉았다.
저거 무척 푹신한 소파다. 테레제의 마음을 풀어주었으면 좋으려나.
“그래서, 아일린이 네게 뭘 보여줬는데?”
“시설에서 구해낸 아이들이었어요. 메흐레니아 교회에서 보호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시설에서 구한 아이? 교회? 재밌네.”
테레제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아일린의 행위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이어 덧붙였다.
“그 아이들은 메흐레니아 교단의 개로 길러지겠지.”
“......교회의 개?”
“성기사, 검은 근위대, 이단심문관, 그리고 마녀 사냥꾼. 즉, 청소부.”
옆에서 듣고만 있던 레라가 우리의 회화에 끼어들어 내 의문에 대답했다.
여우귀와 꼬리가 뻣뻣하게 선 데다가, 그것들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도 기분이 상한다는 표정이었다.
“아가씨께서 굳이 입에 담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메흐렌을 믿는 녀석들이란 400년이란 세월이 지났거늘 여전히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모양이니.”
“뭐, 좋아하진 않네. 그래도 말이지, 으음. 나도 일단은 메흐레니아 교도니까.......”
“읏. 죄송합니다.”
“뭐어, 괜찮아. 화내는 것도 이해해. 메흐레니아 교단은 400년은커녕, 일만 년이 넘어가도록 한결같이 인간 아닌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으니까.”
레라가 고개를 숙였다.
물론 교단을 싫어하고 신앙심이 그렇게 깊지도 않은 테레제는 크게 언짢은 기색 없이 레라의 실언을 용서했다.
“확실히, 신도와 메흐렌 신앙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신의 이름을 훔쳐내어서 멋대로 휘두르는 도둑들에게 있겠지요. ‘나는 구주 메흐렌의 이름으로 두들겨져 단조 되었나니, 나에게는 일체 죄 없도다.’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마녀 사냥꾼들의 격언이네.”
“......네. 조금 인연이 있어서.”
“그런가. 그렇네.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이야기도 나중에 해주렴. 꼭 듣고싶어.”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아가씨께서는 레라를 조금 더 알고 싶은 것뿐이야. 나도 레라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선배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여튼 간에.”
테레제가 입을 열었다.
“교단은 쓸만한 패를 공짜로 손에 넣게 된 셈이야. 심지어 비인도적이기 그지없던 윌리엄과는 달리, 교단은 구원자라는 명분까지도 가졌어. 아이들은 자라, 기쁘게 교회를 위해 휘둘러지려 하겠지.”
“하지만, 아일린이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우리 코넬리아가 그 아이를 상당히 믿고 있는 모양이네.”
“그게, 으음. 으으음. 네.”
“그으래애?”
나는 쭈뼛쭈뼛 다른 쪽을 보며 테레제의 시선을 피했다.
으으.
내가 물론 잘못하긴 했는데.
뭔가 우리 아가씨, 사람 갈구는 실력이 늘지 않았나 싶은 기분이.
“뭐, 됐어. 그쪽은 신경 안 쓸래. 그나저나”
똑똑.
테레제가 입을 열려던 참에 창문 바깥에서 무엇인가가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력으로 이루어진 까마귀였다.
......아니. 까마귀처럼 생긴 운디네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와 테레제의 표정이 동시에 구겨졌다.
상황을 잘 모르는 레라만이 저게 대체 뭐지, 하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내가 말리기도 전에 창문을 열어서 까마귀를 자기 손가락 위에 올렸다.
“읏?!”
까마귀가 순식간에 펼쳐져 말미잘을 닮은 촉수 괴물로 변모하더니, 레라의 손을 휘감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레라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운디네의 촉수를 붙잡고 망설임 없이 땅에 내던진 뒤에 힘껏 짓밟았다. 마구 짓밟았다.
운디네는 꿈틀거리지도 못하게 되어 축 늘어졌다.
“잘했어, 레라.”
“아가씨, 이 벌레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십니까?”
“잘 알지. 여기로 데려오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네.”
레라가 축 늘어진 운디네를 잡아들고 테레제 앞으로 데려왔다.
테레제는 그 불쌍한 운디네에 대고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윌리엄 왕자님. 오늘은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아오신 건지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환영이 격하잖아요, 테레제.”
운디네가 아름다운 여자의 미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말투는 분명 윌리엄의 말투였다.
어느 해적 만화에 나오는 달팽이처럼 윌리엄의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게 틀림없겠지.
“하지만, 그쪽이 먼저 제 메이드에게 무례를 범하셨는걸요.”
“무례라니요. 아름다운 아가씨의 손등에 키스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여전히 뻔뻔하기는.”
보통 촉수로 핥는 걸 키스라고 하진 않는다.
테레제도 역겨웠는지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새 메이드도 그렇고, 코넬리아도 그렇고,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들만 찾아 구해오셨는지.”
“......쯧.”
윌리엄은 내 정체를 안다.
굳이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들먹이는 걸 보면 날 멕이는 게 틀림없다.
기분 나쁜 녀석.
“됐고, 유르덴 양. 오늘 학교에서 무척 재미난 일이 있었다던데. 알고 계시나요?”
“어머. 소문이 정말 빠르네요.”
“하하. 정말로 우리 형도 순진하다니까요. 어제 제가 형에게 엘자랑 사귀게 된 걸 자랑하면서 ‘일단 임신이라도 시켜버리면 아무리 성녀라도 결혼할 수밖에 없잖아’라고 한 마디 말했더니, 그걸 하루 만에 실행에 옮길 줄이야.”
너구나.
네가 에드윈을 절벽에서 밀어버렸구나.
“우리 형은 대체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걸까요? 뭐 성녀 후보가 꼬리치길래 그거에 넘어가서 오랜 약혼녀를 소홀히 하다가 쪽팔리게 먼저 혼약 파기를 당하기라도 했나요? 어쩔 수 없이 꼬리치던 성녀 후보에게 전부 투자하자고 들러붙었더니 성녀 후보가 갑자기 철벽을 치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자신은 연애전선이 망해버렸는데 멍청한 동생이 어느새 완전히 함락당한 성녀 후보의 친구를 애인이랍시고 데리고 와 그 앞에서 찐득한 애정 행각을 보여주기라도 했나요? 또 그게 아니라면 자기 나름대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따라주지 않아서 마음이 상하기라도 했나요? 그런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급해선.”
“......하아.”
“우리 형 엄청 멍청하다. 그죠?”
테레제가 운디네를 날카로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테레제도 나름대로 복잡한 심정이겠지.
“뭐, 됐어요. 우리 형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 일 이야기나 할까요?”
“듣고 있어요.”
“공장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하나 풀었습니다.”
“공장.......”
“이런, 아하하. 나답지 않게 말실수했네. 시설이라고 정정할게요.”
나도 모르게 뭐라고 중얼거린 모양이다.
윌리엄의 운디네는 기분 나쁜 형상으로 변해 이어서 말했다.
“하여간에 시설의 정보를 하나 풀었습니다. 141번이 찾아오겠죠. 그 여자를 죽이세요.”
“제게 명령하지 마세요, 왕자.”
테레제가 운디네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 저 왕자 맞는데요.”
“저는 유르덴킬라이나의 딸입니다. 이클리시아의 아들, 그쪽과 저는 거의 동등한 입장이라는 걸 부디 이해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실례. 당신네 아버지가 우리 왕국에서 한낱 신하로 일하고 있어서 착각했네요.”
“이해했다면, 다시 말하세요.”
윌리엄의 운디네는 잠시 얼어붙은 듯 굳었다.
표면이 덜덜 떨리는 걸 보면 화가 난 걸지도 모른다만, 알바냐.
맘에 안 드는 자식 하나나 둘 따위 열받아서 죽건 말건.
“......좋습니다. 협력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우방국의 협력 정도야 물론 받아들이지요.”
“기뻐라. 협력을 받을 수 있어서. 시설의 위치는 금방 보내드리죠.”
말을 끝낸 운디네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