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141번
* * *
아무래도 부사수가 생겨서 꽤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테레제의 곁에 있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아니.
싫어하느냐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역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말이지.
역시 자유는 나쁘지 않다고 할까.
......생각해보면 자유라고 말할 정도로 변한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됐어. 일이 편해졌으니까 아무래도 좋아.
하여간에 테레제의 호위는 레라에게 잠시 일임해두고, 나는 테레제의 명령을 받아 세실리아를 불러내기 위해 혼자 교실동에 찾아왔다.
그런데 안 보이네. 아가씨께서 지금쯤이면 수업을 듣고 있을 거라고 그러셨는데.
수업 끝나는 걸 10분 넘게 기다린 것 같은데. 시간낭비했네.
“성녀 후보님이요? 아까 어디서 봤는데.”
“아! 저 알아요! 아까 저 계단으로 올라가시더라고요.”
지나다니는 학교 소속 메이드에게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등교하긴 한 것 같네.
그나저나 학교가 좋으니까 수업 뒤처리도 귀여운 메이드 아가씨가 한다니까.
걸레로 칠판을 닦는다던가, 교실의 쓰레기를 치운다던가, 내 전생에선 학생들이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한 것 같은데.
대학에 진학한 다음엔 나이 지긋하신 미화원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했던 것 같고.
“되새기는 색은 잿빛. 헤매는 자에게 이정표를.”
계단을 올라가며 수색 마법을 사용했다.
소나나 레이더 같은 느낌인데, 금방 4층 즈음에서 굉장한 마력 반응이 되돌아왔다.
마치 대마법이라도 쓰고 있는 듯한 반응이지만, 분명히 세실리아겠지.
정말로 뭔가 마법을 쓰고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무식하게 많은 마력량 탓이다.
그 녀석이 진심으로 마법을 쓰고 있을 때, 내가 수색 마법 등의 마법으로 간섭하려 했다가는 어떤 반응이 되돌아오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술식이 파괴되어버릴 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아가씨는 저런 생물병기에게 잘도 간섭할 수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
“에드윈이랑 같이 있는 건가......?”
커다란 마력반응 옆에 작은 마력반응이 2개 정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4층에 도착했다.
마력 반응은 복도 가장 안쪽 으슥한 곳의 교실에서 돌아왔었지. 뭔가 냄새가 나네요.
“......으음.”
내가 4층에 발을 디디자마자 아일린의 고개가 스르르 이쪽으로 돌아왔다.
거기다가, 눈을 감고 있는데도 시선이 느껴진다는 느낌이네.
아니나 다를까, 교실 바깥에선 아일린과 오웨인이 서있었다.
교실 문 바로 옆에서 얌전하게 서 있는 아일린과, 맞은편 창문 쪽에 기대어서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오웨인.
안에는 세실리아와 에드윈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나. 아일린은 감지되지 않으니까.
나도 그렇고 아일린도 그렇고 소리 하나 나지 않았던 탓에, 오웨인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그나저나 뭔가 조금 미묘한 거리감이네. 복도가 좀 멀단 말이지.
“오웨인 경.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까요?”
“음?”
발을 한 발자국 더 옮겼더니, 아일린이 고개를 돌리고서 오웨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웨인은 아일린의 말에 의문을 표하더니 주변을 슬쩍슬쩍 돌아봤다.
그러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제 친구랍니다.”
“......뭐?”
아일린의 말을 들은 오웨인은 네가 왜 저것과 친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이상한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걸어가 오웨인에게 목례했다.
내 목례를 받은 오웨인은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인사를 돌려주지도 않고 내게서 고개를 휙하니 돌렸다.
내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뭐어, 이해는 하지만. 표정 정도는 좀 피는 게 좋지 않을까?
“쯧. 알아서 하시지요.”
“만약 두 분의 이야기가 제가 돌아오는 것보다 일찍 끝난다면, 오웨인 경께서 저희 아가씨를 기숙사까지 에스코트 해주실 거라 믿고 있을게요.”
“이래 뵈도 기사라서요.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괜찮네요.”
“듬직하시네요. 고생하세요. 그리고 저희 아가씨에겐 제가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네, 네. 어련하시겠습니까요.”
아일린은 오웨인에게 목례를 하고 내게 왔다.
뭐, 살벌한 분위기에 딱히 끼고 싶진 않고, 나도 아일린과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긴 하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볼 일이 있어서 온 건데.
“좋은 점심, 코넬리아.”
“좋은 점심. 그런데 난 세실리아를 만나러 온 건데.”
“응. 알아. 그런데 잠시만 어울려줘.”
“나 일하는 중이야.”
“뭐 어때. 어차피 너와 네 아가씨가 정말로 보고 싶은 건 세실리아가 아니라 나잖아? 다 알고 있으니까 일단 따라와.”
말을 마친 아일린이 무척이나 예쁜 미소를 지었다.
감은 눈과 새까만 머리카락. 차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달콤하면서도 편안한 미소였다.
말에 담긴 게 전혀 웃으면서 할 수 있을 만한 말이 아니라서 그렇지.
아일린은 내가 대답을 하건 말건, 칼날이 숨겨진 지팡이로 발치를 톡톡 두들기며 나를 지나쳐 앞서 걷기 시작했다.
별수 없네. 나는 어쩔 수 없이 좋아라고 짧게 대답하고 아일린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이러면 테레제에게 돌아가는 게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만. 음.
레라가 후배로 들어와주어서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손을 빌려줄까? 계단은 조금 힘들어 보여서.”
“에헤헤.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괜찮아.”
아일린은 잘 내려갈 수 있어라고 덧붙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계단을 내려갔다.
뭐어,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층계를 내려가며, 여기저기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즈음에 아일린이 입을 열었다.
“혹시 왕자 윌리엄에 대해 잘 알아?”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까.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좋으려나.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라는 건 잘 알지.”
“아하하. 나는 코넬리아가 정말 좋아. 마침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여자아이에게서 좋아한다는 소리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
아일린은 짧게 대답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어딘가 살짝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톡, 톡, 톡. 지팡이 끝이 땅을 두들기는 소리뿐이다.
“혹시 멀리 가?”
“응.”
“으으. 아가씨에게 외박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오는 게 좋았으려나.”
“나야 환영이야. 그런데 그 아가씨가 과연 네 외박을 허가하려나?”
“글쎄. 하지만 이젠 후배가 들어왔으니까, 어쩌면 허락해줄지도 몰라.”
“후배? 어떠려나. 내가 보기엔 네 아가씨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지만, 뭐. 그래도 그렇게 멀리 가진 않을 거라 고민고민하며 외박 허락을 받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노른데아셀의 교문을 나섰다.
아일린이 향한 곳은 학교 앞의 메흐레니아 교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직과는 그다지 관련되고 싶진 않은데.
테레제가 메흐레니아 교단은 인체 실험이나 실험체나 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구경하는 건 좋지만, 그쪽 아냐. 뒷문으로 들어갈 거야.”
“뒷문이라.”
아일린을 따라 교회의 담장 옆을 걸었다.
담쟁이덩굴이 잔뜩 들러붙은 담장을 지나쳐, 고즈넉한 철창문 앞에서 멈추었다.
아일린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눈이 보이지도 않는데 잘도 열쇠구멍을 찾았다.
그런 뒤엔 토마토나 감자 같은 작물과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을 잔뜩 심은 뒤뜰을 지나고, 열린 뒷문을 열고 교회 내부로 들어섰다.
안쪽은 교회라기보단, 그냥 오래된 양옥집의 내부처럼 보였다.
“여긴 조용하네. 이제 왜 나를 데려왔는지 말해줄 수 있지 않겠어?”
“조금만 더 참을성을 가져봐.”
“저기, 아일린.”
“아일린 언니가 왔어?!”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박살날 기세로 열리고,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우다다다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하얀 머리카락에 빨간 눈동자.
쓸데없이 넘치는 체력. 물론 이건 그냥 아이들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일린 누나다!!”
“신난다! 그런데 오늘은 휴일이 아닌데.”
“내가 꼭 휴일에만 와야 하니?”
“그건 아냐!”
아이들이 달려와 아일린에게 마구 안겼다. 여섯명.
그러다가 몇몇이 뒤늦게나마 나의 존재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몇몇은 내가 신기한지 헤에에하며 뚫어지게 나를 보았고, 다른 몇몇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낯을 가리며 아일린의 치맛자락 뒤에 숨었다.
“누구?”
“누나는 누구야?”
“얘들아. 여기 이 예쁜 아가씨도 너희 누나고 언니란다. 코넬리아라고 해.”
“와! 안녕, 언니! 나는 메이야! 아일린 언니가 지어준 이름이야!”
“나는 폴! 누나는 몇 번이야? 나는 2619번이었어! 아일린 누나를 빼면 2번째로 숫자가 작아!”
“......1725번.”
활기차네.
아직 어린 데다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번호가 크고 작고로 자랑할 수 있는 걸 보면, 아직 제대로 된 실험이 시작되기 전에 구출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아일린이 구했겠지.
“언니언니. 나 책 읽어줘요.”
“어? 어어.”
그러던 중에 한 아이가 아일린의 치맛자락에서 뛰쳐나와 내게 책을 내밀었다.
토끼처럼 생긴 아이였다, 만. 조금 당황해서 바로 말을 못 했다.
다행히 아일린이 다가와서 토끼처럼 생긴 아이의 양 볼을 붙잡고 치즈처럼 죽죽 늘리며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미안해. 오늘은 그냥 얼굴만 보러 온 거야. 금방 돌아가야 해.”
“히잉.”
“이번 주말에 와서 읽어줄게.”
“정말? 정말이죠?!”
“그래. 드라몬드 수사님에게 읽고 싶은 책의 점자책을 빌려두렴. 밤새도록 읽어줄테니.”
아일린이 자상한 목소리로 장난스레 말했다.
책을 어떻게 읽나 했더니, 다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이거 줄 테니까.......”
토끼처럼 생긴 아이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아일린에게 사탕을 주었다.
아일린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무척 자상한 목소리로 약속하긴 했는데.
아직도 남의 과자 빼앗고 다니냐.
“흠흠.”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음음. 코넬리아도 다음에는 내게 공양할 간식을 가져오도록 해.”
“내가 말을 말자.”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할 말이 없네.
그러더니 아일린이 가볼게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울먹이기 시작했지만, 조금 키가 큰 아이들이 다독여주자 오리입이 되어선 울지 않으려 삐죽이려 노력했다.
교회를 나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귀여운 아이들이네.”
“그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기 전에 구해냈어. 이 손으로 저 귀여움을 지켜낸 거지.”
“......대단하네.”
“대단한 일이 아니라면 곤란해. 그렇지 않고서야 네게 구원받은 나는 도저히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옛 이야기 중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남에게 받은 은혜는,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은혜를 베풀어서 갚는 것이라고.
물론 보통 도와줬던 사람이 죽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라 도저히 보은할 방법이 없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오곤 했던 것 같지만.
나는 여태 행방불명이었으니까 대충 맞게 굴러가는 걸까?
애초에 보은을 바라고 구해낸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그래.
씁쓸하다고 할까.
아일린에 비하면 나란 놈은.......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게 다야.”
“......그래.”
“자. 이제 네 이야기를 하자. 나를 네 주인에게 데려가 줘.”
나는 입을 열어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일린의 눈이 멀었다는 것도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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