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46화 (46/100)

〈 46화 〉 밤의 방문객

* * *

우선 엘자의 포박을 풀고 귀빈실로 옮겼다.

아무래도 꽤 마음고생을 한 탓인지 아무런 말도 없이, 어떠한 저항도 없이 옮겨졌다.

엘자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볼 뿐이었다.

내가 말하면 과연 듣기나 할까.

그래도 일이니까. 나는 엘자의 죽어버린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금방 몸을 씻는 것을 도와줄 메이드가 올 겁니다. 달리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깥에 기사 레오날이 항시 대기하고 있을 터이니 그에게 꼭 말씀해주세요.”

“.......”

“좋은 저녁 되시길.”

“이 더러운 살인자.”

아직 송곳니를 보일 힘 정도는 있다는 걸까.

나는 시선에 무게가 있다면 그야말로 나를 짓눌러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로 노려보는 엘자에게 양 치마 끝을 살짝 집어 들어 보이며 허리를 숙인 뒤, 한 번 싱긋 웃어 보이고서 귀빈실에서 빠져나왔다.

별 감정이 있어서 웃은 건 아니다. 그냥, 있잖아.

일이잖아.

이런 상황에서까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소시오패스다.

바깥으로 나와, 문 바로 옆에서 대기 중인 기사 레오날에게 말했다.

“조금 걱정되네요. 불온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꼭 잘 살펴봐주세요.”

“염려 마십시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꼭 부탁드릴게요.”

자살하던가. 자해를 하던가. 씻는 걸 도우러 들어온 메이드를 인질로 잡는다던가.

탈출하려고 난동을 피운다던가. 기물파손을 한다던가. 방화한다던가.

엘자도 마법 학교의 학생이니 작정하고 문제를 일으키려 든다면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일단 글로리아가 고문할 겸 수명이나 생명력에 영향이 갈 정도로 마나를 빨아먹은 탓에 금방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자신감 넘치는 레오날에게 목례를 한 번 하고 글로리아의 집무실로 향한다.

어느새 글로리아는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허리춤에선 당연하다는 듯 열쇠가 짤랑거리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묘하게 조용하던데. 별 일 없었죠?”

“살인자라는 소리를 들었네요.”

“으음. 듀오토에게 말해서 기사를 한 명 더 차출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여기사 없나요? 그냥 오늘 하루 같은 방을 쓰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어머.”

글로리아가 나를 보았다.

뚫어지게 보았다.

나보고 들어가라는 거지. 하아.

“왜 한숨을 그렇게 쉬고 그래요? 장난이에요, 장난.”

“아뇨, 뭐. 들어가라고 하면 못 들어갈 건 없는데요.”

“저는 코넬리아에게 명령할 처지가 못 돼요. 까놓고 말하자면 당신도 귀빈이잖아요?”

형식상으로는 그렇지, 뭐.

근데 아까 지하실에선 무척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엘자를 방에 데려다 달라고 명령했었지.

“그나저나 여기사라. 있던 것 같기도 한데. 일단 물어나 볼게요. 조언 고마워요.”

“그럼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아니, 귀빈이랬잖아. 그만 돌아갈게요.”

“아이. 조금만 기다려 봐요.”

“피곤한데 그만 잘래요.”

글로리아는 이제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책장로 향했다.

그리고 책 몇 권을 꺼내와 내게 건네었다.

“마력 장벽에 관한 책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주세요.”

“뭐어. 고맙습니다.”

“그리고 타레이아 양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끝내놓는 게 좋겠네요.”

“잠깐만. 잠깐만요. 저는 아가씨가 하자는 대로 할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저 말고 아가씨와 이야기해주세요.”

“그렇게 철벽치지 말고. 책도 받았고.”

“......하아. 한 번 들어보기나 할게요.”

글로리아는 어머니처럼 미소지었다.

“지금이라면 유르덴의 탓으로 돌릴 수 있어요. 아가씨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거예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말투네요.”

“아이들은 다 자라기 전까지는 모든 잘못을 부모님께 돌릴 수 있는 법이잖아요? 제가 여태 몇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세대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아왔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물론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래서 권총을 잡았던 거고.”

지금이라면 묻을 수 있다.

이득인 일에는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 불이익인 일에선 그저 테레제.

이번 일도 유르덴 가문이 저지른 일이지, 테레제는 관련이 없다. 그렇게 말하면 그만이다.

명분이 되어줄 변명거리가 있다면 무엇을 못하리. 그렇기에 나도 방아쇠를 당기려 했던 거고.

“하지만 아가씨가 싫어하시더라고요.”

“코넬리아는 아가씨의 감정보다 아가씨의 안전을 더욱 우선해야 해요. 설령 미움 받더라도.”

“알아요.”

미움받기 싫은 건 사실이다.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진심을 말하자면, 미움받아가면서까지 아가씨의 곁에 있고 싶진 않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꼭 저질러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

다시 친해지는 데 공을 들이기로 결심하고 저지르건, 아니면 작별 직전의 충심으로 저지르건, 망설이지 않을 자신은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타레이아의 아가씨를 처리하는 일에 대해선, 제 소견입니다만, 넓게 보았을 때 아가씨에게 득이 될 것 같진 않네요.”

“복수심은 사람을 매일 가시 장작 위에서 자게하고, 매일 방 천장의 쓸개를 핥게 한답니다.”

“.......”

“다 아는 말을 또 한 것 같아 부끄러우니 더 말하진 않을게요.”

“그만 방으로 돌아갈게요.”

“좋은 저녁 되세요, 웨블리 양. 오늘 밤은 반룡이 좋아하는 맑은 밤이 되겠어요.”

반룡이 진짜 맑은 밤을 좋아하는 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조금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옷장을 열었다.

거의 텅텅 빈 옷장이다만, 구석에 반룡의 뿔이 자라난 베일 달린 모자가 있었다.

미오르티아를 죽일 때 썼던 바로 그 모자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때 입었던 옷도 옷장에 걸려있었다.

“젠장, 글로리아.......”

욕을 뱉으며 입고 있던 메이드복을 벗었다.

그때, 누군가가 똑똑, 하고 문을 두들겼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누구야. 재빨리 손을 잠옷 쪽으로 옮겨서 갈아입고 문으로 가서 물었다.

“누구세요?”

“......나야, 코넬리아.”

“네?”

테레제의 목소리. 개미가 기어가는 듯 낮은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서 문을 열었다.

베개를 품에 안은 잠옷 차림의 테레제가 전신에 8중 수호결계를 건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보더니 떨림이 줄어들었다만, 그거야 뭐, 조금은 기쁘지만.

자기 집인데도 8중 수호결계는 조금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유르덴 저택이 밤에는 좀 어둡고 심각하게 넓은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야밤에 도대체 무슨 용무로.......”

“무서우니까 옆에서 자게 해줘.”

“네?”

네?

“네?”

“싫어?”

“아, 아뇨! 이건 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됐어. 복도 어두우니까 그만 들어갈래.”

“아, 그게. 그. 어서오세요?”

테레제가 막무가내로 문을 지나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말한다.

“엄청 작네.”

“제 방 정도면 큰 편이에요.”

“그런가?”

테레제는 마치 홀린 듯 내 침대로 걸어가더니 마치 쓰러지듯 침대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푹신하진 않을텐데­하고 걱정했지만, 테레제는 기쁜 듯 자기 몸에 내 이불을 휘감고서 침대에서 데굴데굴 뒹굴었다.

신난 얼굴이었다.

“에헤헤. 에헤헤헤. 에헤헤헤헤헤.”

“기뻐 보이니 저도 기쁘긴 한데요. 갑자기 왜......?”

“싫어?”

“아까도 물론 말씀드렸지만, 이건 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 잘못하면 뭇매를 맞고 쫓겨날지도 몰라요.”

“에이. 그럴 리 없어. 걱정 하지 마. 내가 어디 남자의 방에 놀러 온 것도 아니고.”

“......뭐어. 뭐. 음.”

놀러 온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예로부터 이런 저런 매체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파자마 파티? 라는 걸 하면서 우정을 키우는 모양이니까?

그런 건가?

그런 게 이런 시대상에서 가능한 건가?

아니 뭐, 이 동네 엄청 편의주의적인 동네라서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기숙사에서는 같이 잤잖아.”

“같은 방에서 자진 않았잖아요.”

“응? 같은 방 아니야?”

“벽으로 나뉜 방을 같은 방이라고 하진 않아요.”

“하여간에 오늘은 코넬리아랑 같이 잘 거야. 코넬리아도 어서 빨리 들어와.”

테레제가 이불말이 애벌레가 되어선 그렇게 말했다.

말괄량이 아가씨라니까.

설마 내가 오늘 저녁에 움직일 거라 생각하고 먼저 나를 멈추러 온 거라면 조금 무서워질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놀러 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아마 저택에 명확한 적이 있으니까 정말로 혼자 있기 두려워서 찾아온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테레제라고 한들 고작 복도가 어둡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 집에서마저 7중 수호결계를 펼치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으으. 못 이기겠네요. 이불을 가져올게요.”

“푹신한 걸로 부탁해.”

“아니면 아가씨의 방에 들러서 아가씨의 이불을 가져올까요?”

“그것도 나쁘진 않으려나.”

“그럼.......”

“됐어. 오늘은 코넬리아의 이불을 덮을래.”

“네에.”

나는 그만 포기하고 벽장에서 이불을 가져와 테레제의 옆에 펼쳤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기로 했다.

침대가 좁은 탓에 테레제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나를 보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테레제는 실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조금 좁긴 하네.”

“그런가요. 그런데 불 꺼도 괜찮을까요?”

“응. 내가 끌게.”

테레제가 한 번 손짓하자 방의 불이 꺼졌다.

침대는 테레제의 체온 탓에 이미 데워진 뒤였다.

“살아줘서 고마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난 일을 하진 못한 것 같아서 면목이 없네요.”

테레제가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의 깍지를 껴서, 꾸욱 붙잡았다.

나는 순간 놀라 숨을 참았지만,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응.”

“제 방에는 악몽을 쫓는 드림캐쳐 같은 건 없어요. 아가씨께서 갖고 오셨더라도 이렇게 저랑 닿아있으면 효과가 사라질 거예요.”

“괜찮아.”

테레제의 목소리는 이미 졸음에 잠겨 있었다.

테레제도 테레제 나름대로 지쳐있던 걸까.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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