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지하실의 아가씨
* * *
“코넬리아!!”
씻고 바람 마법으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자니 큰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듀오토였다. 열쇠가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다만.
듀오토는 아직 아래 속옷만 입은 내 모습을 보더니, 미간을 크게 찌푸렸다.
서로 말없이 1초 정도. 조금 당황한 듯한 듀오토를 대신해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 부끄러워하는 편이 좋았을까요?”
“됐다, 빌어먹을!”
얼마 전에 파티장에서 글로리아가 성희롱을 저지르면서 했던 말이 기억났기에 농담스레 그리 물어보았다만, 듀오토는 오히려 성을 내며 열린 문을 닫아버렸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화를 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냐?
애초에 네 잘못이잖아. 노크를 하라고, 노크를.
문명인이잖아.
나는 궁시렁 궁시렁 속으로 듀오토를 씹으며 머리카락을 마저 말렸다.
그리고 깔끔하게 옷을 갖추어 입고, 가지런한 몸가짐으로 문을 열었다.
듀오토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엿보기범.”
“약점 하나 잡았다고 신났군.”
“변태.”
“이딴 녀석을 진지하게 걱정했던 내가 멍청이지.”
“네? 걱정해요? 저를? 왜요?”
“쯧. 됐다. 글로리아가 찾고 있으니까 지하실로 가 봐라.”
듀오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열쇠 꾸러미를 주었다.
본래 글로리아가 관리하던 열쇠 꾸러미다. 잠시 빌린 걸지도.
그나저나 이 자식. 이런 캐릭터 아니었었는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 자기 할 말 끝내더니 등 돌리고 떠나가는 듀오토를 불러세웠다.
“저기, 듀오토 경.”
“뭐냐, 또.”
“죄송합니다.”
“......뭐가.”
“제가 부족한 탓에, 말튼베리 경께서.......”
듀오토는 등을 돌리지도 않고 내게 대답했다.
“왜 네가 사죄하지.”
“제가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입 다물어라. 그 녀석은 자기가 죽을 자리를 스스로 구한 것뿐이다.”
듀오토가 나의 말을 끊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리고는 소리 없이 몸을 돌려 나를 다시 마주했다.
“......녀석의 유언은?”
“아가씨를, 이라고.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요.”
“고맙다.”
내게 한 감사인지, 아니면 죽은 게일에게 한 감사인지, 알 방도는 없었다.
나는 뭐 잘한 게 없으니 게일에게 한 감사이리라.
그렇게 듀오토는 착잡한 얼굴로 나를 내려보더니, 글로리아에게나 가봐라라며 쓴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정말로 가버렸다.
복도에 홀로 남겨진 나는 무력감을 떨쳐내려 잠시 그 자리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저택 전체를 울린 뒤에야 속으로 빌어먹을, 하고 욕지기를 내뱉으며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또 지하실이야.......”
한산한 복도를 지나 지하실로 내려갔다.
문이 잠겨 있었다. 그냥 열쇠로 잠근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만든 쇠사슬이 걸려있었다.
글로리아라면 열쇠가 있으니 그냥 잠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마법으로 잠갔다는 건
손가락으로 사슬을 톡 쳐서 마법을 분쇄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10초 정도 기다린 뒤에 문을 열었다.
나는 누구처럼 문이 열려있다고 해서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가진 않는다.
“어서 와요, 코넬리아.”
와이너리 안쪽은 저번에는 없던 천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어서 내부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글로리아가 저번처럼 새까만 옷을 입은 채로 천을 걷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흘이면 충분하죠?”
“저 아니었으면 죽었어요.”
“음.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코넬리아를 믿었다고요. 그런데 듀오토는 자기 제자를 믿지 못하는 모양새더라고요.”
벌써 만난 모양이네요. 글로리아가 내가 든 열쇠 꾸러미를 보며 말했다.
나는 그런 글로리아에게 굳이 대답하지 않고 들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넘겼다.
글로리아는 열쇠 꾸러미를 받더니, 본래 하던 대로 허리춤에 차지 않고 테레제가 쓰는 것과 같은 공간마법으로 지워버렸다.
아마 평소 입고 있는 옷과 다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열쇠 꾸러미는 말하자면, 신뢰의 증표 같은 거예요. 유르덴 공작은 저를 믿으셨기에 그 증표로서 이 열쇠 꾸러미를 주셨죠. 저라면 결코 주인님의 방에 침입해서 귀금속이나 옷가지 같은 걸 훔치지 않을 거라고 믿으시는 거죠.”
“알고 있어요.”
“듀오토가 제게 말하더라고요. 자칫 코넬리아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 셈이냐고. 그래서 저는 대답했죠. 절대 안 죽는다고. 그래도 떼를 쓰더라고요. 물론 태도와 말투야 자기 나름대로 꽤 진중했지만, 제가 보기에 대체 그 누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그래도 저는 당신을 신뢰하는 만큼이나 듀오토를 신뢰했기에 열쇠를 줬어요. 가서 직접 열어보라고.”
“노크도 안 하고 문을 열어버리던데요. 제가 그렇게 걱정되었을까요?”
“네? 노크? 혹시 듀오토가 코넬리아의 알몸이라도 보았나요? 마침 비누 냄새도 나고.”
촉이 너무 좋잖아.
순간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답이 늦어졌다.
그것은 긍정의 표현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어머.”
“뭐 어때요. 저쪽도 제 본 모습을 알고 있는데.”
“으으음? 정말로 그게 다?”
“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지긋이 하도록 하고, 일단 이거 봐요.”
글로리아는 장막을 걷었다.
나는 그 안쪽에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 는.”
쉰 목소리로 나를 알아본다.
“엘자 타레이아? 잠깐만요, 글로리아! 이 여자는”
“네. 맞아요. 타레이아 가문의 아가씨에요. 아는 사이였나봐요?”
아는 사이는 아니고, 이름만 아는 사이지만.
하여간에, 내 눈앞에 엘자 타레이아가 있었다. 나무 의자에 속박당해 있었다.
납치해온 건가? 왜. 어떻게?
“제가 왕년에는 코넬리아처럼 놀았었거든요. 몇백 년 전이더라? 하여간에.”
“이래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안 되죠. 그러니까 몰래 납치해왔거든요.”
무섭네.
“어떻게 할까요?”
“그걸 왜 제게 묻나요?”
“지금까지는, 음. 이러고 있었거든요.”
글로리아가 엘자가 앉은 의자 뒤로 향했다.
엘자가 소스라치듯 놀라서 덜덜 떨기 시작하고, 글로리아는 그런 엘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그 여린 어깨를 살포시 붙잡았다.
달그락거리던 의자가 멈추고 글로리아는 싱긋 웃었다. 엘자는 그만, 그만, 하면서 겁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빌었다.
“먹어치우는 색은 검정.”
“자, 잠깐. 다 말했, 잖아. 전부 말했잖아. 왜 안 풀어주는”
“다만 살점과 피를 뜯어먹지 않고, 그 혼을 집어삼키리.”
“아, 으아아아아아악!!”
글로리아가 엘자에게서 마력을 빨아들인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잠시 이어지고, 글로리아는 혓바닥을 달싹이며 엘자에게서 손을 떼었다.
엘자는 녹초가 되어 늘어졌다. 간헐적인 경련만이 가끔 이어질 뿐이었다.
“어때요? 적이라고 해도 여자아이니까 몸에는 상처를 안 주려고 노력했거든요. 봐요. 팔목도 발목도 그냥 끈으로 묶은 게 아니라 마법으로 묶어놓은 거라서 상처 하나 안 났잖아요?”
“익숙하신가 보네요.”
“실은, 네. 그래요.”
“숨기고 있던 건 다 실토하게 만든 모양이고.”
“사실은 별 대단한 것도 없었어요. 혹시 코넬리아는 미오르티아라는 반룡에 대해서 아나요?”
기억한다.
나는 내가 목을 잘라 죽인 여기사 반룡에 대해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로리아는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여기 엘자 아가씨가 아주 어릴 적에 주운 아이인데, 엄청나게 소중하고, 엄청나게 사랑하는 친구였대요. 그뿐만 아니라 타레이아 령에선 반룡과 인간 사이의 가교로써 이름이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는 거 있죠.”
“흐윽, 구해, 줘. 미오르, 티, 아아.......”
“이렇게 정신줄이 오락가락할 때엔 아버지보다 먼저 찾을 정도로.”
“제 적이었고, 아가씨의 적이었어요.”
“아니, 잠깐. 코넬리아를 책망하려는 게 아니에요. 설마 제가 왜 그걸 죽여서 일을 키웠느냐고 코넬리아에게 따지기라도 할 것 같아요?”
벌써부터 고도의 돌려 까기가 아닌가 싶지만.
물론 정말로 따질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리라.
“이 엘자 아가씨께서 테레제 아가씨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셨다면 아마 이런 꼴이 되었겠죠. 코넬리아는 어떻게 생각해요?”
“결코 그렇게 두지 않는 게 제 일이에요.”
다만, 개인적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시대에서는 그게 당연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뭐 슬프지만, 엘자 아가씨는 이렇게 납치당했으니. 산 채로 어디 야산에 묻히던가, 드럼통에 시멘트와 함께 담겨서 어디 깊은 호수 바닥 관광을 가던가, 아니면 아예 노예 인장을 새겨서 팔아버릴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유르덴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고민했다.
엘자 타레이아는 성녀 후보 세실리아의 친구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세실리아가 테레제를 두려워하는 만큼이나 세실리아를 위험시하고 있었다.
세실리아가 엘자에게 언질을 주지만 않았어도, 엘자가 유르덴을 직접적인 목표로 삼아 움직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는 이야기를 감안하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야 들지만, 결국 엘자를 움직이게 만든 가장 큰 지렛대는 분명 세실리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엘자를 처리했다간, 세실리아와 적대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글로리아가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다 해도, 그 여자는 꼬리를 붙잡을 것이다.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테레제 아가씨께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호수 관광이 좋겠네요. 코넬리아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저희 유르덴킬라이나엔 루체르덴 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흘러 만들어진 아름다운 호수가 상당히 많답니다.”
세실리아의 위험성을 생각해서라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설령 내가 먼저 미오르티아를 죽여 엘자를 자극했다 할지언정.
이 여자는 테레제를 공격했다. 적이 되기로 했고, 게일을 죽였다.
풀어준다 한들, 변하지는 않으리라.
“코넬리아. 마침 아가씨께서 코넬리아에게 내리신 선물이 있어요.”
글로리아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루거 P08 권총을 닮은 권총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어, 망설임 없이 장전해 엘자의 머리에 겨누었다.
“......읏.”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누가 뒤에서 달려와 등에서부터 나를 안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키. 테레제.
“코넬리아. 총구 내려.”
“아가씨. 하지만, 이 방법이 제일 간편해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효율을 추구하면 사람이 망가져.”
나는 고개를 돌려 글로리아를 보았다.
글로리아는 눈을 감고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나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저번처럼 짜고 치는 장난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몸이 나았으면 나부터 보러 왔어야지. 걱정했단 말이야!”
“죄송해요, 아가씨. 면목이 없어서.”
“내가 말했었잖아!! 나는 널 버릴 일이 없다니까.......”
“죄송해요.”
테레제의 손이 뻗어와, 내 손을 붙잡아 내렸다.
“글로리아도 권총 구하면 나한테 가져오라니까 왜 내 말은 무시하고 코넬리아에게 바로 주고 그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아가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