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번데기
* * *
“일어났나요?”
눈을 뜨니, 글로리아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로리아라면 결코 못난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적엔 숨이 턱 하고 막혀왔을 수준이다.
다만, 이쪽은 테레제와는 달리 속에 든 게 제대로 된 게 아니라서.
게다가 저번에는 테레제가 앉아 계셨었던 기분이 든단 말이지.
비교하면 얼굴만 예쁜 글로리아보다 아가씨가 더 귀엽고 사랑스럽고 좋다.
“어라....... 뭐야, 이게.”
“다 죽어가던 주제에 회복력이 좋은 편이네요. 벌써 움직일 수도 있고.”
인공호흡마스크 같은 게 얼굴에 붙어있어서 떼어냈더니 그게 맞았다.진짜 중상이었나보네.
하긴 배에 바람구멍이 난 채로 그렇게 움직였는데 안 죽은 게 용하지.
조금 우리우리한 걸 버티며 몸을 일으켜서 등을 침대 머리판에 기대어 앉았다.
아프긴 했는데, 버틸만 했다. 그리고 움직이면 안 될 정도였으면 글로리아가 제지했겠지.
“하아, 하아....... 그나저나. 평소랑 느낌이, 조금. 다르시네요.”
숨을 몰아쉬고 있었더니 글로리아가 옅게 미소 지었다.
평소와 같은 새까만 색의 옷이긴 했는데, 그보다도 조금 달랐다.
장례식장에나 입고 갈 법한 상복.
“간만에 일하러 갈 예정이거든요. 30년 만인가, 20년 만인가.”
“일? 평소에도 하시잖아요.”
“그러게요.”
간다니, 출장인가?
다만 글로리아는 실없는 소리를 하더니 탁자에 올려놓은 두꺼운 책 몇 권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네에.”
회복 마법과 관련된 책 세 권이었다.
굉장히 두껍고 굉장히 오래되어 보였다. 슬쩍 훑어보았더니 회복 마법에 관해 여러 가지 많이 적혀있었다.
안 그래도 상급 회복마법을 배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 책 읽으면서 3일 안에 알아서 나으세요.”
“네?”
“그리고 갑작스레 그런 자세로 앉았다간 상처 터질 거예요.”
“아, 아니, 잠깐. 미쳤.”
악, 외마디 비명.
당황한 나머지 소리가 높아지려는 순간 배에서 격통이 달렸다.
천천히 배에서 축축한 게 느껴졌다.
이거, 농담 아니겠지. 나는 식겁해서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다시 눕혔다.
이불을 걷고, 상처를 보았다. 스테이플러로 철심을 대충 박아놓았을 뿐이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봉합? 그딴 거 안 했다. 이거 상처 부위 괴사하는 거 아니야?
“그 책들 읽으면 다 나을 수 있어요.”
“잠깐. 지, 진심인가요?”
“정신력도 좋아 보이고, 신체 내구력도 굉장히 뛰어나고. 안 죽을 걸요? 이게 다 코넬리아를 믿으니까 내리는 시련이에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나를 믿느니 뭐니. 다 죽어가던 사람인데.
“아니, 전혀 안 고마워요. 아무리 그래도 고통을 참아가면서 독서를 하라니”
“못 할 거 같으면 죽던가요.”
“저기. 우리 조금만 더 문명인처럼 대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제가 당신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혓바닥 자꾸 늘려 봐야 저는 마음 바꿀 생각 없으니까, 그만 나가볼게요.”
글로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할 말을 잃은 나를 뒤로 하고,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결국 불쌍한 내가 뱉을 수 있었던 말은 욕설이었다.
“저, 정신 나갔”
“진정 배울 생각이 있었더라면 도서관에서라도 책을 빌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말을 남기고 글로리아가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노른데아셀 학교 이야기 하는 걸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 순간 터무니 없는 말이라 여겨 열이 올랐지만, 금방 참을 수 있었다.
그런 다음에 찾아온 건 스스로에 대한 미움.
한낱 메이드에겐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따위의 변명은 그야말로 변명일 뿐이다.
하다못해 테레제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었다.
실제로도 테레제가 공부해두라면서 대신 빌려준 역사책 같은 건 잘만 읽었으니까.
“확실히, 안일했던 걸지도.”
칼로 죄다 베어가를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자부심?
오만이다.
하다못해서 아일린 같은 궤적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철컥, 하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그래도 먹을 건 줘야지 버티지 않을까요.
나는 고통을 참으며 책을 펼쳤다. 과연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어쨌거나 머리가 나빠서 죽는 건 사양이야.......”
/
코넬리아가 깨어나기 하루 전.
테레제는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을 물렸다.
그리고 침대에서 나와, 가장 먼저 코넬리아를 먼저 찾아갔다.
심하게 상처 입은 소녀. 이번에는 얼굴에 인공호흡기까지 붙이고 있었다.
배에 구멍이 난 채로 무리하게 움직여서 다발성 장기부전이 왔다는 듯했다.
그리고 게일은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까지.
테레제는 코넬리아의 방에서 오래 있지 않고 금방 나와, 말없이 유르덴 가문의 하우스 키퍼를 찾았었다.
저번에 이런 일이 있었을 적엔, 방에 숨어서 덜덜 떨 뿐이었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숨지 않고 나왔다. 나와서 조용히 화내고 있었다.
글로리아는 제 주인의 딸의 부탁에 곤란한 듯한 얼굴을 지었다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를 도와주는 건 이번 한 번만이라면서.
/
“되새기는 색은 잿빛.”
기도를.
나라는 신체를, 껍데기를 하나의 신전으로 삼는다.
신전의 회랑에는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으며, 그 색은 잿빛이라.
“이어서 다시금 새겨내는 색은 잿빛. 오래된 신 메흐렌의 광휘가 여기 있나니, 빛무리를 모아 실을, 섬광을 모아 바늘을.”
에러에 에러가 이어진다.
애초에 정석이 아니다. 그냥 내 식으로 어레인지 한 셈이지.
본디 메흐렌 신에게 올리는 기도라면, 신전의 형태는 나의 것이 아니라, 메흐렌 신의 모습을 신전으로서 삼아 빌려야 했다.
책이 그렇게 하라더라.
하지만, 나는 성직자가 아니다. 메흐렌 신의 모습 따위 알지도 못한다.
전생 때도 기도를 거듭하다 보면 주님이 오셔서 모습을 보이시고 음성을 내리신다던가. 그런 종교적인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대충 그런 느낌이겠지. 잘 모른다마는.
하여간에 본래 그의 상징색은 황금. 그의 광휘를 빌리기에, 나의 색은 너무나도 칙칙하다.
나와 같은 색을 지닌 테레제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회복마법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한들 여태 하급 치유 마법이나마 억지로 잘 써왔던 노하우가 몸에 배여 있었다.
물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으나, 이틀 동안 대충 이해했어.
“찬란한 영광을 엮어내어 병든 자, 상처 입은 자, 광란한 자를 감싸리라.”
마력으로 짜낸 베일을 상처에 덮는 이미지를 그려낸다.
정확히는 나 자신을 신전으로 삼고 있었기에, 그 신전의 무너진 자리에 드리우는 느낌
“후우.......”
짧게 한 숨.
눈을 뜨고 상처를 보았다.
이틀 동안 다섯 번. 조금씩 나아가면서 조정에 조정을 거듭하여, 드디어 완쾌했다.
다만 흉터가 작게 생겼다. 맹장수술 정도 크기의 흉터려나.
내가 메흐렌을 따르는 성직자라면 좀 더 빠르고 깔끔하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신앙심도 뭣도 없는데 이 정도 흉터 크기로 나은 거면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상급 마법을 쓰긴 썼는데, 까놓고 효능이 겨우 중급 마법 정도라 그냥 횟수로 때려 눕힌 감이 없잖아 있기도 했다.
어쨌거나 다섯 번을 내 몸에 걸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나다우니까 됐지, 뭐.”
사실 메흐레니아 교단의 마법 말고도 엘프 쪽에서 개발한 초록색 느낌 나는 회복 마법도 책에 실려있었다지만, 이쪽은 전혀 발동조차 안 되더라.
재와 초록색. 느낌적으로도 벌써 정반대 성향이긴 해.
“아.”
곧바로 뛰쳐나가서 글로리아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발을 멈추었다.
사흘간 씻지도 못한 데다가,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있어서 냄새가 꽤 심했다.
여태 씻는 건 생각도 못할 만큼 여유가 없었으니까.
“이런 꼴로는 못 나가겠네.”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샤워실로 향했다.
근세 언저리로 보이는 배경 시대인 주제에, 방 한 구석에 당연하다는 듯 화장실이 딸린 작은 샤워실이 있을 만큼 수도시설이 정비된 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특권층이 사는 유르덴 저택인데다가, 내가 한낱 사용인이 아닌 것도 있지만.
“에휴.”
옷을 대충 집어던지고 샤워부스로 바로 걸어갔다.
거울은 잘 보려하지 않는 편이었다. 굳이 얼굴 안 봐도 씻는 건 다 할 수 있으니까.
얼굴을 보고 그러면 갑작스레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 들곤 하니까.
그런 위화감,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
그런데 오늘 따라, 어째서인지 언뜻 거울이 시야에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발이 멈췄다.
“라.”
시야에 거울 속의 풍경이 밟혔던 탓이겠지.
거울 속에는 아직은 꽤나 어린 소녀가 새하얀 나신으로 옷가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놀란 얼굴. 당황한 표정.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소녀는 내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나겠지.
약물 투여 탓에 빛을 잃어버린 하얀색 머리카락.
역시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고 핏빛을 그대로 투과시키고 있는 붉은 눈동자.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운 색이지만, 옅게 미소를 짓고 있자면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다.
아무래도 운동을 열심히 한 탓인지, 작은 신체는 벌써부터 젖살을 잃고 온연한 여성의 라인을 그려내고 있었다
발목, 종아리, 허벅지, 골반, 허리. 아래에서부터 올려다보면, 힘있게 곧게 뻗어오른 선은 아직 가늘었지만 군살 하나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
결코 커다랗기 때문이 아니었다. 현재진행형으로 성장 중인, 오히려 이제 겨우 자라기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인 그 작은 꽃봉오리의 선명하고 명확한 존재감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씻으려고 위에서 내려볼 때엔 그다지 별 느낌 안 들었었는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꽤나 핏기가 붙었잖아.”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현실감을 잃고 붕 뜬 기분이다.
이게 싫어서 거울을 안 보려 한 거라고.
그래도 예전에는 조금 더 창백한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나아져서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으, 으윽.”
갑작스레 배가 아파왔다. 철골에 구멍이 뚫렸던 쪽이 아니다. 그쪽은 다 나았다.
아랫배의 내장을 누가 꾹 붙잡은 기분.
뭔가의 신호인지, 알 것도 같았다.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거울을 후려쳤다. 와장창하고, 어색한 모습이 힘 없이 깨어져나가 사라진다.
“아직은, 아냐. 아니라고.”
손목의 고통이 피어오르고, 뱃속의 통증이 사라져간다.
쥔 주먹으로 벽을 한 번 더 두들겼다. 피가 흘렀다.
그래, 아직은 내어주지 못하지.
설령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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