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불길 속
* * *
“으우, 으으으.......”
정신이 들었다. 오래 기절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서 오래 기절해 있었다간 이미 죽었을 테니까.
실제로도 죽기 직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정신을 차렸냐면, 배에 꽂힌 철골이 열기에 뜨거워지고 있었으니까.
“아으윽, 으아아악.......”
일단 콘크리트 부위를 붙잡고, 아픔 탓에 잔해와 파편 속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힘으로 박힌 철골을 뽑아내었다.
이젠 출혈이고 자시고, 활활 잘 타는 불바다 속에서 이런 걸 박힌 채로 계속 내버려 두었다간 내장 안쪽이 찜처럼 변해버릴 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아, 하아....... 되새기, 는 색은 잿빛.”
뽑아낸 철골을 대충 내던지고 대충 회복마법을 사용한 뒤 숨을 골랐다.
그러다가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길 속에, 칼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레제는 무사한걸까.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직도 움직이나? 하하하!”
“크윽......!!”
“젠장!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그만 놀고 이거 해제하는 거나 도와달라고!”
네 반룡이 낄낄 웃으면서 탈진한 만신창이의 게일을 에워싸고 일방적으로 두들기고 있었고, 세 반룡이 테레제의 결계 앞에서 각자 자기 마법진을 펼치고서 해제 작업에 바빴다.
또 반룡이야.
나는 이를 갈고 떨어트렸던 검을 붙잡았다.
이렇게나 역 내부에 열기가 가득한데, 이 새까만 환도는 여전히 차가움을 유지했다.
“잠깐, 무슨 소리가”
늦었어.
거리를 단숨에 좁히고, 테레제의 마법을 해제하고 있던 반룡 하나를 곧바로 꿰었다.
이어서 적의 가슴을 꿰뚫은 칼을 뽑아내지 않고 그대로 옆으로 그어서 갈라버리며 바로 옆에 있던 다른 반룡의 목까지 단숨에 쳐 날려버렸다.
“결계를 펼치고 있었는데......?!”
“나도 알아.”
놀랄 시간이 어디 있어. 대책을 찾아야지.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마지막까지 당황한 표정이던 마지막 마법사 반룡은 끝까지 놀란 기색을 지우지 못한 채 쓰러졌다.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배의 상처를 살폈다.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허벅지를 타고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피 탓에 옷감이 무척 축축하게 젖어 들어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 코넬리아...야?”
“네, 아가씨. 아가씨의 코넬리아에요.”
“몸은”
“이 년이 지금 뭐 하는 거냐!!”
아가씨와의 대화는 조금 뒤로 미루는 편이 좋겠네.
그리고 그래, 너희. 눈치채는 게 늦긴 했지만.
그 불쌍한 녀석은 이제 그만 놓아주고 나랑 노는 게 좋을걸.
덩치 큰 반룡이 뚜두둑 뚜두둑 목을 풀었다. 들고 있던 커다란 도끼를 땅에 질질 끌어 카칵 카가각 소리를 내면서 실실 웃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세 명이 거의 동시에 썰려나갔는데도 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네.
“죽을 줄 알았더니, 그런 몸으로 잘도 움직이는 구나. 이 아저씨가 좀 편하게 해주랴?”
“너희, 뭐 하는 놈들이야.”
“너희 유르덴 놈들이 더 잘 알 텐데?”
그러더니 도끼를 수평으로 휙 휘둘렀다.
바람 갈라지는 소리. 나의 바로 등 뒤에는 테레제가 주저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네.
피하지 못하게 하면 힘으로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봐.
부상자니까.
“뭣.......”
검을 짧게 휘둘러서, 도끼날을 정면에서 튕겨내었다.
놀란 표정의 반룡 전사. 놀라기는.
몸을 숙이며 환도를 짧게 뻗어 중앙이 텅 빈 반룡의 무릎을 찔렀다.
고통에 놀란 반룡이 비틀거리며 자세가 흐트러뜨리자마자 목을 그었다.
내쪽으로 쓰러지려는 걸 걷어차서 다른 쪽으로 넘어지게 했다.
그냥 살짝 옆으로 밀기만 할 걸 그랬다. 뱃속이 너무 아프다.
“하아, 하아. 거창한 계획을 짠 주제에 행동대원들은 같잖기 그지없네.”
“골라노토스를 단번에 쓰러트렸다고? 대체, 뭐야?”
“됐고, 너희 나머지 전부 동시에 덤벼.”
“넘어가지 마라.”
위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천장 근처의 스테인드글라스 쪽이었는데, 깨진 유리창 창틈으로 바깥이라도 내다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손에 쌍안망원경을 들고 있었다.
빵모자에 멋들어진 코트를 입은 남자였는데, 잘 몰라도 저 녀석이 머리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 명씩 한 명씩 덤벼들어서 괴롭게 해라. 저 출혈량으로는 오래 못 간다.”
속 편한 소리 하기는.
남은 건 셋. 내가 먼저 움직이면 어떻게 할 셈인데.
“아니면 인질도 좋겠지.”
뛰어들기 위해서 칼자루를 굳게 잡은 순간이었다.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던 한 놈이 지쳐있던 게일을 걷어차 단번에 쓰러트리고, 무릎을 꿇은 게일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멈춰. 움직이면 이 녀석이 죽는다.”
“잘했다, 기르타노르.”
인질.
비겁하게.
어떻게 해야 좋지.
녀석도 기사니까 죽을 각오가 이미 다 되어있는 게 아닐까.
저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먼저 뛰어들어서 다 죽여버리면.
타다당, 하고 머리 위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스텝을 살짝 밟아 사선에서 몸을 피했다.
남는 탄은 검을 휘둘러서 튕겨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이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래. 우리 식이지. 그런데 피해서야 되겠나? 움직이지 말게. 이번에 자네가 움직이면 저 사내의 팔꿈치 아래를 받아가도록 하겠다.”
천장 근처의 반룡이 돌격소총을 이쪽에 겨눈 채 헛소리를 마구 뱉었다.
하나하나 진짜 졸렬하네.
하지만, 이대로 방법이 없다면 게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거의 초면이나 다름 없는 남자보다는, 테레제가 훨씬 소중하니까.
그리고 내 목숨도.
“......나야말로 제안 하나 할게. 똑똑히 들어.”
“호. 제안이라. 들어나 보지.”
“지금 항복하면 고문 정도로 끝내겠어.”
“고작 메이드 따위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자, 방아쇠 당긴다. 가만히 있어라.”
“저는, 괜찮..습니다.......”
아, 빌어먹을.
코트 반룡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당. 이번에도 사선을 피하며 총탄을 튕겨내었다.
코트 반룡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더니 인질을 잡고 있는 기르타노르인가 뭔가 하는 반룡에게 명령을 내렸다.
“팔꿈치 아래를 잘라라.”
“그래. 가만히 있으라고.”
기르타노르가 목에 대고 있던 칼을 떼어, 게일의 팔꿈치에다가 내려 찍으려 했다.
목에서 칼을 떼면 곤란하지. 죽이지 못한다는 소리잖아.
나는 땅에 떨어져있던 도끼를 걷어차 기르타노르에게 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면으로 내달렸다.
“이, 이 자식?!”
“흐랴아아앗!!!”
기르타노르가 놀라서 자기 칼을 빼지 못하고 게일의 팔꿈치에 칼을 내려 꽂았다.
낮은 비명소리. 미안하게 되었어.
날아든 도끼는 옆에 있던 두 반룡이 튕겨내었지만, 나는 이미 그들을 간격에 들인 뒤였다.
칼을 전력으로 휘둘러서 기르타노르를 베어갈랐다.
그리고 나머지 두 반룡도 베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일어나, 게일!”
“끄으윽, 웨블리, 양.”
잘린 팔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게일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켰다.
죽지만 않으면 괜찮아. 마법이 있으니까.
하지만 게일은 내 얼굴을 보더니, 남은 팔로 나를 밀쳐냈다.
뭐야.
단순한 힘으로 밀어낸 거라면 나도 결코 지지 않을 테지만, 나는 게일이 나를 밀쳐낼 거라고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어딘가 필사적이었기에, 사람이 평범하게 낼 수 없을 괴력을 내고 있었다.
나는 배에 상처도 입었고, 밀려나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짓, 이야. 아.”
“아가씨를.”
등 뒤로 소리 없이 수류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조용히. 소리가 있었더라도 불길 타닥이는 소리에 묻혔으리라.
코트의 반룡. 녀석은 수류탄을 던진 자세 그대로, 놀랐다는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예상 외의 괴력에 그대로 땅을 데굴데굴 굴렀고, 나를 밀친 게일은 수류탄을 하나 남은 팔로 붙잡아서, 그걸 자기 품에 꼭 안아 든 채 바닥에 몸을 던졌다.
큰 소리가 나진 않았다.
바닥에 제 몸을 딱 붙인 게일이 소리 없이 한 번 들썩, 하고, 움직일 뿐이었다.
“이런, 개”
“어이쿠.”
나는 이를 갈아내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을 수직으로 내달리건, 크게 도약을 하건, 어떻게 하던 간에 저 개자식의 목을 잘라내려 발판을 찾아 주변 기물을 보았다.
그런데 눈이 핑그르르 돌았다. 빌어먹을. 이럴 때. 왜.
“개자식아!! 당장 내려 와!!”
칼을 지팡이처럼 땅에 내려찍고, 버티고 서서 외쳤다.
하지만, 코트의 반룡은 대답하지 않고 깨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넘어 도망쳐버릴 뿐이었다.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두 다리에 힘을 주려 해도 파르르르 미력하게 떨릴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꾸르릉, 쿠르르릉, 하고, 불이 붙어있었던 여기저기에서 붕괴의 조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결국 다리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고 말았다.
잔해에 깔리면 죽겠지. 멀쩡하면 또 모르겠지만, 이런 몸 상태니까.
테레제는 괜찮으려나.
돌아다보니, 어느새 기절한 모양이다.
이 정도의 굉음에, 불길에, 눈앞에서 아군이 사망했다.
멘탈이 굉장히 연약한 테레제치고는 오래 버텨줬다고 생각한다.
결계가 하나도 안 깨져 있는 거 보면, 설령 이 역이 와르르 무너져 매몰되어도 구출될 때까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할 것 같긴 한데.
게일은.
당연하지만,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다.
“미안하다.”
말이 무섭게, 땅을 타고 번진 화염이 게일의 발목 옷깃에 붙었다.
시체라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검에 힘을 주었다.
겨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에, 콰르릉, 하고 천정이 무너졌다.
쏟아진 잔해가 게일의 남은 흔적마저도 지워버린다.
그리고 겨우 몇 초가 지났을까, 한쪽 벽이 무너지고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듀오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불길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아가씨! 무사하십니까!!”
“젠장. 너무 늦었잖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