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말튼베리 경
* * *
“안녕하십니까!”
젊은 기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짧은 황금색 머리카락. 새까만 양복 정장을 입은 젊은 청년이었다.
스물둘에서 넷 정도 되었을까. 나는 이 친구를 알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반룡을 세수시켜주며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고 외치던 바로 그 녀석이다.
“오늘부터 테레제 아가씨의 호위를 맡게 된, 게일 말튼베리입니다!”
“잘 부탁해요.”
“감사합니다!!”
좀 시끄러운 친구가 왔네.
기사라 하면 대부분 우락부락한 근육질이지만, 이 게일이라는 친구는 큰 목청에 비해 꽤 마른 타입이었다.
어깨, 허리, 소매 기장이 전부 다 딱 맞는데다가, 다리가 쭉쭉 뻗어서 양복 핏이 어울리는 게 뭔가 부럽다.
으음.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 뭔가 전세에는 양복이 잘 안 어울렸던 모양이다.
아직 자라는 도중이라서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생에라도 저렇게 양복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아.
여자건 남자건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 정장 핏만 쭉쭉 잘 빠졌으면 좋겠다.
진짜 상관 없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간에.
외형만 보면 까놓고 말해 기생오라비나 거의 다름없는 듀오토만큼은 아니었지만, 여기 게일도 기사치고는 상당히 마른 타입이었다.
아무래도 자주 얼굴 보게 될 것 같아서 나도 일단 인사를 했다.
“말튼베리 경.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두 분 모두 제가 확실히 지켜 보이겠습니다!”
역시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나까지 지킬 필요는 없는데, 대답으로 모자라서 기대받아 굉장히 기쁜지 주먹으로 제 가슴을 퉁, 하고 한 번 두들길 정도였다.
새까만 정장에 색이 맞는 새까만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게 굉장히 멋있었다.
사람이 멋있다는 게 아니라, 정장이랑 가죽장갑 말이야.
머리에 바코드 달린 빡빡이 아저씨 볼 때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그래도 나는 ‘뭔가 사람 좋아 보이고,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을지도’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테레제는 어딘가 굉장히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진지하게 상품 환불을 고민하는 표정이라고 할까.
“아가씨.”
“알아. 나도 알아.”
테레제는 눈을 감고 고개를 한 번 털 듯이 젓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젠 그래도 나름 납득한 듯한 표정이었다.
“네겐 조금 갑작스럽겠지만, 나와 코넬리아는 오늘 쇼핑 갈 생각이었어. 너도 따라와.”
“예, 아가씨.”
“그리고 나 아래에 코넬리아고, 코넬리아 아래에 너야. 기억해. 얘 그냥 메이드 아니니까.”
“저는 기사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숙녀분들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윽.”
“하아. 그래.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알았으면 됐어. 코넬리아도 얼굴 풀고.”
마차로 향했다. 역으로 갈 예정이었다.
테레제는 제국의 동방국경 바깥 좀 먼 곳에 있는 엘프 촌락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 탓에, 이번에는 무기를 사러 가는 거면 루체르덴 산맥에 있는 드워프네 동네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엘프제 무기라.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뭔가 발에 걸리는 게 전부 천 년씩 만 년씩 된 무기일 것 같아 무섭다.
어딘가 오싹오싹하다. 그 정도 버틴 무기라면 엄청 튼튼하겠지.
“말튼베리라면 백작 가문 도련님이겠네.”
“도련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익숙지 않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말튼베리의 사남입니다.”
“그것만 들어도 기사가 되겠구나 싶은 성장 배경이네.”
“아. 하지만, 저는 그.”
여태 쉽게쉽게 대답하는 것과는 달리 말을 좀 먹었다.
뭘까. 슬쩍 보면 부끄럽다는 얼굴이었다.
“듀오토 경을 존경했기에.”
“풉!?”
“어머. 실례야, 웨블리 양.”
“죄송합니다, 말튼베리 경. 그게, 그, 정말 죄송합니다!”
전혀 본의가 아니었다. 반사적 행동이었다.
그래도, 어쨌건 간에 남의 존경심을 밟아버린 행동이니까.
거기다가 얘도 기사잖아. 엄청나게 열받았을 거야. 아니 근데 그 녀석을 존경한다니.
존경할 구석이 뭐가 있는데?
“그, 괜찮습니다, 웨블리 양. 이미 듀오토 경께서도 웨블리 양께서 그런 반응을 보이실 거라고 말씀하셨었거든요.”
“그러, 엏다면 다행이지만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겐 사저 되시는 분이니 자꾸 사과하시면 곤란합니다.”
사저?
듀오토 이 자식,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내가 스승 취급해주니까 진짜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같은 소리나 했었으면서.
물론 듀오토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얘 혼자서 사형 취급해주는 걸지도 모른다만.
게일 이 친구가 듀오토를 존경한다고 그랬으니 뭐.
근데 그 자식은 왜 존경하냐고.
“코넬리아. 듀오토가 왜 유르덴 가문에 들어오게 되었는 줄 알아?”
“아뇨.”
“내가 정말 조그마할 적에, 토너먼트 경기가 있었거든. 주스트 경기 한 번 하고, 다음엔 멜레 경기 하는거. 근데 지금의 우리보다 겨우 한두 살 정도 나이가 많았을 어린 듀오토가 주스트 경기에서 커다란 기사들을 전부 다 박살내고 우승을 해버린 거야.”
주스트는 마상창시합이고, 멜레는 기사들끼리 2팀으로 나뉘어서 모의전을 하는 시합이다.
당연하지만, 여기서 두각을 보이면 귀족 가문에 등용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주스트고 멜레고 전생과 별다를 건 없지만, 이 동네는 전생과는 달리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아무래도 굉장히 화려하고, 굉장히 재밌을 거다.
한 번도 시합 관전하러 간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읽은 책 중에는 기사들이 지룡을 타고 주스트를 하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소설책 아니었나고? 역사책이다.
“강하긴 하니까요.”
“근데 기사들이 자기보다 조그마한 어린애한테 지니까 화가 났는지, 그 다음에 이어진 멜레 경기에서 상대편 기사들이 집단으로 덤벼들었거든.”
거기까지 말한 테레제가 게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게일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외쳤다.
“저도 그때 거기에 있었습니다. 슬슬 집에서 나가야 하나하고 고민하던 참이었지요. 그런데 듀오토 경이 혼자서 죄다 썰어버리고 상대 지휘관까지도 단독으로 잡아내시지 뭡니까. 저는 아직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기사가 되겠다며 무턱대고 집을 나와 꽤 오랜 세월 편력기사라기보단 거의 모험가 같은 생활을 했었지요. 유르덴 가문에 종사하며 듀오토 경에게 검을 전수 받은 건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와. 근데 듀오토는 왜 저한테 그 이야기를 안 해줬을까요?”
“그건 아마 듀오토가 부끄러운 과거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럴 걸.”
“예?”
테레제의 말에 게일이 물음표를 띄웠다.
부끄러운 과거라. 나름 저 친구에게 우상일 텐데.
“코넬리아가 오기 며칠 전에 그랬었어. 그때는 뭇매를 놓으려 드니까 열이 올라서 자제하지 않고 너무 검을 휘둘렀다고. 그냥 박살내는 것도 모자라서 저쪽 지휘관까지 잡아버린 건 이쪽 지휘관의 명예에 먹칠하는 짓거리였다고 회상하더라.”
“아. 그, 그랬군요....... 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무용에 눈이 멀어서.”
아.
듀오토 이 기생오라비 녀석. 꼬시다.
네 추종자가 이렇게 하나 가시는
“또 듀오토 경에게 하나를 배웠군요. 저는 아직 갈 길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닌가보네.
그러는 사이 마차가 멈췄다.
게일이 재빨리 내려 테레제의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나는 그러는 사이에 재빨리 내렸다. 게일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알 바냐.
굳이 남자 손을 잡을 이유가 없잖아.
천천히 느긋하게 역으로 들어간다.
누가 추격해오는 것도 아니고, 녹화되면 안 된다던가 그런 게 없으니까 이번에는 딱히 급할 필요가 없다. 그냥 태평하게 움직였다.
그런 사이에 게일은 재빨리 잔걸음으로 달려가서 주문서를 구매해왔다.
으음.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바로 승강장으로 향한다.
“엘프의 마을이라. 엘프는 자주 만났지만, 엘프의 마을에 가는 건 처음입니다. 웨블리 양께선 엘프의 마을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말을 트려는 건지 걸어가는 도중에 게일이 말을 걸어왔다.
엘프 자주 만나고 자시고 유르덴 저택 하우스키퍼가 바로 엘프잖아.
그나저나 내가 엘프의 마을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었더라.
“여기랑 별 차이 없어요.”
“그렇습니까?”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은 법 아니겠어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맞아, 맞아. 별 차이 없어.”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테레제까지 원호해주었다.
고맙다고 해야할까. 역시 테레제도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다.
승강장에서 스크롤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고, 엘프의 촌락에 도착했다.
“이건.......”
눈을 뜬 게일이 엘프 마을을 마주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프의 역은 승강장에서부터 바깥이 보였다. 나도 처음에 저런 얼굴을 지었던 걸까.
바깥이 보였다기보단, 그냥 바깥이었다.
엘프의 마법기술은 인간의 역처럼 거대한 구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더라.
“여기가, 렐 피아나.......”
이름은 잘 기억하고 있네, 싶었지만.
생각해보니까 표를 사온 사람이 게일이었다.
하여간에 그는 세계수가 가득가득 자라난 모습에 압도된 표정이었다.
물론 제국 공항에 사용되는 한 그루 세계수만큼이나 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양으로 제압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세계수들 사이사이에 새하얀 대리석 다리가 걸려있었고, 대리석 구조물이 세계수 껍질 위로 잔뜩 건설되어 있어서 마치 빌딩이나 공중 플랫폼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엘프를 태운 작은 비행정, 비룡이나 그리폰 같은 것들이 속속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지,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에 설치된 입구 같은 게 상당히 많아서 언뜻 아름다운 일러스트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실용성은 갖다 버린, 그런 느낌 있잖아.
“제국 공항과 같은 느낌이군요. 확실히 별 차이가 없는 걸지도.”
“그냥 장난 친 거니까, 놀라도 괜찮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