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증원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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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났다.
인기척이라기보다는 묘기척이라고 해야할까.
얼룩 고양이가 소리 없이 성큼성큼 걸어와 폴짝 뛰어올라 내 침대 위에 올라왔다.
어디에서나 보일 법한 쥐 잡는 고양이다.
이름이 분명, 에드먼드라고 했던가. 이클리시아 왕의 이름이랑 똑같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보여도 전담 메이드가 하나 있을 정도로 온 저택의 사랑을 받는 귀하신 몸이었다.
나도 물론 싫어하진 않았다.
바쁘게 복도를 오가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빵 굽고 있을 때가 많은데, 식빵자세로 사람이라도 되는 양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귀엽고 하찮아서 시선이 빼앗기곤 했다.
근데 왜 여기 있지.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방의 문을 확인했다. 닫혀 있었다.
들어올 구석이 없었다.
침대에 올라온 에드먼드는 침대 구석에 앉아서 자기 앞발의 털을 핥고 있었다.
하필 구석이라서 불편해 보였다. 조금 더 올라오면 좋을 테지만, 고양이가 어디 사람 무릎에 잘 앉던가.
“길 잃었냐?”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아예 듣지도 못한 양 자세도 표정도 변하지 않고 다른 앞발을 핥기 시작했다.
판타지니까 고양이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역시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할 줄 아는데 나를 개무시하는 것이던가.
왜. 고전 중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도 체셔 고양이도 잘만 말하잖아.
“갇힌 건가?”
에드먼드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침대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뛰어내렸다.
아무래도 누가 들어올 때 같이 몰래 들어왔다가, 그대로 갇힌 모양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닫힌 문을 살짝 열었다. 복도의 찬 바람이 꽤 시원했다.
환기 좀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네.
“안 나가?”
에드먼드는 볕이 잘 드는 창문 옆 작은 탁자에 누운 상태였다.
갇혔다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한숨을 뱉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 빨리 갈아입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할퀼 지도.
“상당히 착한 놈이네.”
에드먼드는 반항 없이 내 품에 안겼다.
정확히는 깁스 위에 앉았다고 해야할까. 다른 손으로 에드먼드가 떨어지지 않게 잘 붙잡고서 복도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냥 복도 바깥에다 내려놓으려다가, 곧바로 다시 방으로 뛰쳐들어가지 않을까 싶어 조금 먼 곳까지 데리고 왔다.
“앗, 에드먼드!”
“아.”
아무래도 에드먼드의 전담 메이드가 탈출한 에드먼드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에드먼드는 메이드의 목소리가 그리 기쁘진 않은지, 화들짝 놀라더니 내 품에서 벌떡 일어나 높게 도약해 탈출했다.
메이드의 반대편으로.
내가 잠시 당황한 사이에, 메이드는 내 얼굴을 슬쩍 보고 작게 고개를 한 번 숙이더니 나를 지나쳐 치마폭을 붙잡고서 고양이를 쫓아 복도를 가버렸다.
잠깐 재활 운동이라도 할 겸 에드먼드를 붙잡아줄까 싶기도 했지만,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저것도 저 아가씨 일 아니겠어.
“코넬리아인가. 마침 잘 되었군.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나?”
마침 누가 나 찾아온 거 같기도 하고.
뛰어가는 메이드로부터 고개를 돌리니, 계단을 올라오는 듀오토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스커트 양 끝단을 붙잡아 살짝 들어올리며 허리를 살짝 숙여 듀오토에게 인사했다.
그러고 고개를 들었더니, 듀오토가 눈 밑살을 파르르 떨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무려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왜?
“그쪽이나 이쪽이나 다 실수했어, 웨블리 양.”
“아. 그거 때문이구나.”
“네겐 ‘그거’ 정도의 의미밖에 없던 모양이군. 평소대로라서 기특할 지경이다.”
듀오토는 한심한 기색을 지우지 못한 채 내게 이어 말했다.
“별일 없으면 조금 따라와라.”
“가긴 가겠는데, 이런 몸으로는 아무것도 못 도와주는데요.”
“괜찮다. 아무것도 시킬 생각 없으니까.”
“지금 꼴로는 갑자기 걷어차도 반격 못해요. 방어자세도 못 잡아요.”
“맘에 담고 있었나?”
첫날 이야기다.
문 열고 나왔더니 이 녀석, 갑자기 날 걷어찼었지.
교육이니 뭐니 그러면서.
“아뇨? 근데 몸은 기억하네요.”
“그럼 그걸로 충분해. 따라와라.”
“네.......”
뭔가 귀찮은 일이 될 것만 같은데.
불길한 기분을 가득 안은 채 듀오토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한 층, 두 층, 지하실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철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섰다. 평소에는 와이너리로 쓰이고 있었을 터다.
“대답해! 누가 보낸 거냐!!”
뭐야.
듀오토를 따라서 와이너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실에는 들어온 적이 없어서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만.
“대답해!!”
“어푸푸. 어푸푸푸.”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청년 기사 하나가 반룡의 얼굴을 욕조 같은 것에 쳐박고 있었다.
그 반룡 말고도 둘 정도가 탈진해서 철창 안쪽에 늘어져 있었다.
둘은 확실하게 아는 녀석이었다.
저번에 제레미에게 총 맞고 낙마한 녀석 둘이었는데, 아무래도 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대답해!! 타레이아 가문이냐!!”
“죽여, 라.......”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기사가 다시 반룡의 얼굴을 물에 쳐박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저 데려온 건가요?”
“문제 있나?”
“아뇨, 문제는 없는데요.”
“저 둘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겠지.”
“아, 네. 물론.”
“나머지 네가 모를 한 놈은 다른 무기상을 기습했다가 붙잡힌 녀석이다. 우리 쪽 포로 하나와 교환하자고 해서 바꿔왔지.”
꽤 전방위로 무차별적인 습격을 감행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쪽 무기상의 대리인은 지금 생사를 오가고 있다더군. 호위도 상당히 죽었고, 수송 중이던 물자도 이놈들이 죄다 폭탄을 붙여 처분한 탓에 상당한 손해를 본 모양이야.”
“그런가요.”
“우리를 제외하고 확인된 습격사건만 세어도 세 건이다. 상황은 다 비슷해. 우리만 제외하고.”
“그으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으신 건데요?”
“심지어 우리 쪽은 호위의 숫자도 둘 뿐이었지.”
“제가 좀 대단하긴 했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듀오토가 또 고개를 숙였다.
감사를 받는 게 그렇게 싫은 건 아니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가, 그거랑 비슷하게 역시 상황이 급변하면 신경쓰이지.
나는 뭔가 평소대로 한 느낌인데 말이야.
“제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런가. 그럼 이제 내가 할 말을 듣고도 너무 괘념치 말도록 해라.”
“네?”
“네가 한 명 이상의 몫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네 모습을 봐라. 아가씨는 지켰지만, 결국 너는 걸레짝이 되었지.”
시비 거는 건가.
이 말을 한 번 하려고 열심히 했다고 추켜세운 건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군. 마음에 안 드나?”
“용건이 뭔데요.”
“나와 공작님은 아가씨에게 호위를 더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목숨 바쳐서 아가씨를 구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입장에선 솔직히 너도 의심스러웠거든.”
그래서 이틀 전에 나를 집무실에 불러서 시험했던 거려나.
그럼 아가씨는 나를 변호하려고 숨어있었던 거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해 못 할 건 없다. 처음에는 조금 삐질 뻔 하긴 했지만, 내가 아가씨였다면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근본 모를 나 같은 걸 여기까지 데려올 리가 없었겠지 싶어서.
“그런데 아가씨는 필사적으로 반대하셨다. 자신에겐 너로 충분하다면서.”
“황송하네요.”
“이젠 나도 너를 믿겠다.”
“조금 덜 황송한데요. 스승 제자 사이 아닌가요? 조금 더 일찍 믿어줘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깊은 사이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가 다 놀랍군.”
듀오토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로 원치 않는다는 듯 속에서 뱉어내듯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나는 너를 믿겠다. 그러니 내가 믿는 네게 미안한 부탁을 하나 하겠다. 아가씨를 설득해서 호위를 더 들이게 해라.”
“뭐어. 알겠어요.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는 것 같고.”
“네 실력, 네 충성, 그 어느 것을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냐. 그저.”
“알겠다니까요.”
듀오토는 말을 이으면서도 정말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기사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야 아가씨의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절대 안 돼.”
지하실에서 나와 곧바로 테레제에게 호위를 늘리자는 소리를 했더니 그런 소리를 들었다.
반대가 격렬하네.
그러니까 유르덴 공작도 굳이 나까지 불러서 ‘네가 그렇게 믿는 녀석의 본질을 보아주겠다’ 따위의 짓거리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안 걸렸지만서도.
“......하지만 네가 직접 그런 말을 하니까 나로선 별 수 없잖아.”
그런 말을 하는 테레제는 내 왼팔의 깁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쯧, 하고 크게 혀를 찼다.
아가씨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제스쳐라고 생각해요.
“저기, 코넬리아. 누가 부추겼어?”
“듀오토요.”
“너 진짜 듀오토를 싫어하는구나. 웬만해선 비밀이에요라며 넘겼을 텐데.”
테레제는 ‘손 쓰는 게 빠르네’라던가 중얼거리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이어서 내게 물었다.
“코넬리아는 누가 네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슬프지 않아?”
“대체하실 건가요? 그래도 그게 아가씨의 뜻이라면”
“으으으. 시끄러! 그냥 코넬리아가 둘로 나뉘면 안 돼? 플라나리아처럼!”
“그런 마법도 있나요?”
“없어. 아니, 있어도 네겐 안 통할 거야.......”
테레제는 눈을 꾹 감았다.
그러다가 진짜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네가 듀오토에게 가서 기사를 딱 한 명만 받겠다고 말해. 나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테니.”
유르덴 공작은 오늘 아침에 떠났다.
테레제를 보러 집에 하루 달려왔다가 부랴부랴 떠난 셈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듀오토에게 가서 전할게요.”
“아, 맞아. 그리고 혹시 듀오토의 태도에 변화가 있지 않았어?”
“변화.... 있었어요. 제가 인사하니까 목례로 받아주더라고요.”
“그래그래, 웨블리 양. 그게 신분제의 맛이란다. 학교로 돌아가면 이제 메이드들도 무례하게 굴진 않을 거야.”
뒤에서는 여전히 씹겠지만. 테레제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런 말투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상황 파악 못하고 여전히 무례하게 굴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렴. 그래도 괜찮으니까.”
“아하하.”
마른 웃음 뿐.
그나저나 호위라. 잘 맞는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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