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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36화 (36/100)

〈 36화 〉 드라이브 바이 슈팅

* * *

“다음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소! 안녕히 가시오! 안녕히 가시오!”

비델레이트의 배웅을 뒤로, 나와 테레제는 다시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번에 운전석에 탄 사람은 아우로라가 아니었다. 제레미라는 이름의, 대흉근이 우락부락하여 빳빳한 정복으로도 튀어나온 근육 덩어리를 전혀 감출 수 없는 청년 장교였다.

“아마 비델레이트와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을거야.”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차량이 출발하자, 테레제가 입을 열었다.

“꽤 괜찮은 거래 아니었나요?”

“맞아. 꽤 만족스러운 편이야.”

“그런데 왜.......”

“아마 오래 못 가서 죽을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래 살지 못할 상이긴 했다.

“비델레이트는 지금 헤르게모니아 땅에서 제일가는 힘을 가진 남자야. 지금이라면 거병해서 반대하는 여러 약소 귀족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헤르게모스 공국을 통째로 먹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거병하기는커녕 방탕하게 보내며 창고의 무기를 돈으로 바꿔먹고 있지. 군부 내부의 야심을 가진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은 죄로 암살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야.”

“안 그래도 부대에 젊은 장교들이 많은 것 같긴 하네요.”

“하물며 눈빛이 살아있는 장교들은 쫓아내서 이렇게 운전대를 붙잡게 하고 있어.”

아까 운전대를 붙잡았던 아우로라나, 지금 운전대를 붙잡은 제레미나.

그리고 거래가 체결된 이후 비델레이트를 대신하여서 찌푸린 얼굴로 영수증을 작성해준 이름 모를 장교까지 셋.

사실상 세 장교의 얼굴밖에 보지 못한 셈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까지 비델레이트의 밑에 있기에는 셋 다 혈기가 넘쳐 보이는 면면들이긴 했다.

드르륵, 갑작스럽게 운전석과 승객석 사이의 쪽창문이 열렸다.

제레미가 찌푸린 얼굴로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의 말을 듣진 못했을 것이다. 테레제는 차에 타자마자 반쯤 본능적으로 결계를 펼쳤으니.

“무슨 일이신가요?”

“죄송합니다. 지금 어딘가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요. 일단 손님들도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편이 좋겠다고 알리는 편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분위기? 마음가짐? 그게 무슨.”

퉁, 퉁, 퉁.

갑자기 차체 여기저기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제레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열린 쪽창문 바깥으로, 거미줄이 주욱주욱 쳐진 앞창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창문 열거나 하면 안 됩니다!! 창밖으로 머리 내밀면 죽습니다!”

“뭐, 뭐야.”

테레제가 움츠러드렀다.

퉁, 퉁, 퉁, 퉁. 다시 한 번 더 무엇인가가 차체를 두들겼다.

마치 우박이 부딪치는 소리 같지만, 조금 더 무겁고 날카로운 것.

차가 달리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묻히긴 했지만, 두 번째엔 확실하게 들렸다.

총탄이 쏘아지는 소리였고, 총에 맞는 소리였다.

그러는 사이에, 승객석의 창문에도 불청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쪽이 아니라, 테레제 쪽의 창문이었다.

바깥은 한 줄 도로가 길게 그어져있을 뿐인 초원.

그 초원 위를 미친 듯 질주하는 태엽기계 말.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반룡.

“반룡......?”

문득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만.

하여간에 얼굴 절반이 붉은 비늘로 뒤덮인 그는 두꺼운 두 허벅지만으로 스팀펑크스러운 말이 내달리는 걸 제어하면서, 입으로는 파이프를 문 채로, 두 근육질 팔과 오른쪽 어깨로는 매우 안정적으로 총을 이쪽에 겨누고 있었다.

그냥 총도 아니었다. MG42를 연상하게 만드는 새까맣고 세련된 모습의 경기관총.

태엽기계 말에 탄 채로 기나긴 탄띠를 목에 휘감아 마치 머플러처럼 휘날리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기왕 할 거면 육시럴 카우보이모자까지 깔끔하게 쓰지 그랬느냐고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총구가 첫 불길을 내뿜는다.

“젠장, 아가씨!!”

테레제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만, 나로서는 굉장히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테레제를 내쪽으로 끌어당겨서 자리를 바꾼 뒤, 테레제에게서 떨어진다.

내가 붙어있었다간 테레제가 자기 자신을 지킬 결계를 펼칠 수 없다.

나?

내 옷은 방탄이다. 근성으로 버티자.

테레제 옷도 방탄은 방탄이지만, 내가 맞으면 나만 무진장 아프고 말지만, 테레제가 맞았다간 나도 아프고 테레제도 아프고 두 배로 아프다.

콰드드득. 십수 밀리미터 철판 바깥에서 소리가 미친 듯이 내달린다.

유리창엔 순식간에 바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글자글한 금이 생겼고, 문 안쪽으로는 1초가 무섭다고 움푹 파인 형태가 떠올랐다.

썩어도 군용 차량이라는 건지, 다행히 어느 정도 방탄 성능은 있는 모양이었다.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지만.

“제레미! 이 빌어먹을 차 멈춰!!”

“미쳤어!? 지금 멈췄다간 벌집이 될 뿐입니다!!”

“젠장, 멈추라면 좀 멈춰!”

쿵.

그 순간, 차 위에 누군가가 올라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었더니, 선루프가 보였다. 좋네.

“코, 코넬리아.”

선루프를 열어달라고 하려다가, 그냥 부수고 나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었더니 옆에서 십수 겹의 수호결계로 자기 몸을 두른 테레제가 나를 불렀다.

나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나를 붙잡진 못했다.

만약 붙잡았다간 결계 다 박살 났을 테니까.

“코넬리아. 안 돼.”

위험할 테니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이젠 꽤 친해진 덕분인지, 내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역시 7할 정도는 혼자 남겨질 스스로에 대한 불안함, 두려움이었다.

내 옆에 있어줘.

“다녀올게요.”

주먹으로 냅다 선루프를 후려쳤다. 쨍그랑, 하고 단번에 유리가 깨졌다.

......에이.

이건 방탄이 아니겠지.

선루프 유리가 다른 차 창문이랑 같은 유리라면, 내 주먹이 총보다 더 세단 소리가 되는데.

문이 깨지자, 바람 갈라지는 소리와 총알 날아드는 소리가 무척이나 살벌했다.

그 사이에 말발굽이 땅을 두들기는 소리가 끼어드는데, 그만두었으면 싶다.

선루프를 붙잡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방금 전에 차 천장에 올라탔었던 누군가가 제레미의 정수리를 노리고서 운전석 천장에 창을 내려찍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보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

승객석 쪽 천장에는 뭔가 시한 폭탄 같은 것까지 부착되어 있었다.

“이 뭐.......”

“닥쳐! 땅이나 굴러!”

시한폭탄을 붙잡아 뜯어내고, 곧바로 창 든 반룡에게 거리를 좁혀서 배를 걷어찼다.

창을 든 반룡은 내 움직임에 반응조차 못하고 걷어차여 지상으로 추락했다.

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르니, 멀리 높게 그냥 던져서 버렸다.

“오. 좀 싸울 줄 아는 년인가?”

기관총을 난사하고 있던 붉은 비늘의 반룡이 내 얼굴을 보더니 붉게 달아오른 총을 잠시 자기 무릎에 내려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몹시 안정적으로 파이프를 쓰으읍 하고 깊게 빨았다.

총 저거 안 뜨거울까.

비늘이 빨간 거 보면 레드 드래곤의 피가 섞인 거 같으니 괜찮을 거 같긴 한데.

그나저나 저 새끼 어떻게 처리하면 좋지.

폭탄 저 녀석에게 던질 걸 그랬나.

그 붉은 비늘을 제외하고도 반룡이 셋 정도 있었다.

붉은 비늘보다는 못한 녀석들인지 차의 속도를 겨우 따라오고만 있을 뿐이었지만.

“근데 우리는 싸울 줄 아는 년이랑은 안 싸우거든.”

붉은 비늘이 기관총을 들더니, 내게 겨누었다.

그리고 낄낄 웃더니, 총구를 내려서 차의 바퀴를 겨누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세상에 아주 잘 돌아왔어, 이 갈보년아.”

드르르르르륵.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앞바퀴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고, 차 앞면이 땅을 긁는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천장에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뛰어내리던가, 차 천장에 벌레처럼 딱 붙어서 버티고 있던가.

후자는 위험해. 차가 땅을 굴렀다간 아무리 나라도 죽는다.

“윽?!”

차 천장에서 뛰어내린 그 순간에 뒤따라오던 반룡들 중 한 놈이 올가미를 던졌다.

돌겠네. 진짜 가지가지하네.

게임처럼 하늘에서 이단점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발목이 걸려서 주욱 끌려가 땅에 마구마구 갈렸다. 아프다.

더럽게 아프다. 머리카락 다 뽑힐 거 같다.

재빠르게 올가미를 잘라내긴 잘라냈지만, 대체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누워있을 수는 없고, 곧바로 일어났다.

일어날 수 있는 내 몸이 신기하다. 어디 부러졌을 수는 있겠는데.

“아, 빌어먹을.......”

“대단하구먼. 자네 우리 반룡보다 더 튼튼한 거 아닌가?”

“그러는 너흰, 마법 안 쓰냐......?”

“허허. 왜 써야하지? 이렇게 좋은 걸 자네들이 팔아주었잖아?”

그것도 그렇네.

나는 고개를 돌려 테레제가 탄 차를 보았다.

빙글빙글 돌다 뭐 돌에 걸리기라도 했는지, 결국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구른 모양이었다.

문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고, 테레제가 선루프를 통해 튕겨나왔다거나 하는 참사는 없었다.

설령 튕겨나왔더라도 나보다 멀쩡했겠지만, 하여간에.

“유언 있으면 들어주지.”

“같잖은 소리 하네. 누가 죽는다고.”

“그럼 다른 거 묻지. 우리 기사님은 유언 같은 거 남기시지 않았나?”

“기사라니.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데.”

그런데 왜 내가 죽였다는 걸 아는 걸까.

......사실 모를 거다.

물증보다도 더욱 강한 심증만이 있을 뿐.

그러니까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게 더 바람직한 의문이겠다 싶었다.

세실리아가 또 천기누설한 걸까 싶으면서도,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린 덕분이 아니라, 그냥 직감적으로.

“아니야? 허허. 우리 아가씨가 헤르게모스 공국에 간 무기상을 죽이라 그랬었거든.”

“사람 잘못 찾았어.”

“무슨 소리야? 누구건 간에 죽이라고 했었어. 십중팔구 이번 사태랑 관련된 놈일 테고, 설령 아니라고 한들 무기상 좀 죽는 게 어때서?”

붉은 비늘이 기관총을 이쪽으로 겨누었다.

다른 반룡들도 내가 피할 틈새를 지우며 총을 겨눠왔다.

“그러니 좀 죽어라. 제대로 된 복수건, 눈 먼 복수건, 그래야 우리 마음이 풀리지 않겠냐.”

드르륵. 전기톱에 시동을 거는 듯한 소리.

불길과 함께, 총탄이 날아들었다.

피할 틈은 없다. 총탄이 면을 제압하는 꼴이다.

그러니 맞으면서 달려들었다. 얼굴만 대충 가리고.

등 뒤에서 오는 것도 어떻게 버티면서­

“코넬리아!!”

테레제가 차 밖으로 나와 있었다.

위험해, 라고 생각했더니, 쿠웅, 하고 등 뒤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를 났다.

그리고 총탄이 갑작스레 애꿎은 강철을 두들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테레제가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바로 뒤쪽이겠지.

아무래도 보레가 99년형 245mm 박격포, 보레오가 카르칸.

그걸 벽으로써 소환한 모양이었다. 비싼 물건인데.

“대단하구만!”

“크, 윽!?”

하지만,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쫄 필요는 전혀 없지.

총에 덜 맞더라도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정면으로 달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총구가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대각을 그리며 내달린다.

다만 방패로 삼았던 왼팔이 이미 흐느적대고 있었다.아무래도 좀 크게 부러진 모양이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붉은 비늘은 결국 기관총을 버리고 기계태엽 말의 고삐를 붙잡았다.

기계태엽 말이 두 앞다리를 높게 들어올렸다. 짓밟을 생각이네.

기계태엽 말의 발굽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빠르게 옆으로 돌아, 높게 뛰어올라서 붉은 비늘을 몸으로 덮쳤다.

그리고 낙마한 붉은 비늘이 뭔가 저지르기 전에 아레이유를 붉은 비늘의 뒷목에 내려찍었다.

“......풀지 못한 마음은 저승 가서 풀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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