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단절
* * *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예정되어 있던 파티는 취소되었다.
본가에서 이단심문관이 살해당하고, 요직에 앉아있던 사람도 살해당했다.
또한 타레이아 가문은 중앙에서 어떤 간섭이 들어오기 전에, 타레이아를 따르는 여러 변경의 군벌 가문을 모아 먼저 디오르시온 반룡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디오르시온 반룡국에서는 이번 타레이아 사건에 대해서 드라킬라이나 제국령 동디오르시온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멋대로 벌인 헛짓거리이며, 디오르시온 반룡국은 이 사건에 대해 전혀 관련이 없다는 성명문을 내었지만, 당연하게도 통할 리가 없었다.
전쟁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호황이네.”
테레제가 본가에서 날아온 편지를 책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바로 불태우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읽어선 속뜻을 알아챌 수 없는 종류의 편지인 모양이었다.
“오래간만에 그레나르데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레나르데, 말인가요?”
곰 수인들의 나라.
하지만, 현 디오르시온 사태와는 그다지 연이 없는 머나먼 나라였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디오르시온 반룡국보다 조금 더 서쪽에 있는 군소 수인족들이 이 틈이다 싶어서 반룡국 땅의 파이를 먹어보려고 약탈을 시작하겠지. 어쩌면 그런 약탈자들 탓에 자칫 반룡국이 무너질지도 몰라.”
안 그래도 반룡국은 안쪽이 많이 썩어있으니까.
테레제가 그렇게 덧붙인다.
그레나르데에게 무기를 지원하면, 그레나르데는 강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신 주변의 군소 수인족을 몰아내고 조금 더 많은 땅을 가지려 할 것이다.
특히 반룡국에 조공을 바치며 보호를 받던 여러 부족의 땅을.
그러면, 밀려난 수인족들은 훈족에게 쫓겨 유럽을 초토화시킨 게르만처럼 그레나르데를 피해 다 썩어서 박살나고 있는 동쪽 디오르시온 반룡국으로 흘러 들어가겠지.
꼬박꼬박 조공도 다 바쳤는데 구하러 와주지 않았으니, 그 몫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도 무리를 이끌고 반룡국을 갉아먹으려 들 것이다..
물론 그레나르데의 곰 수인들은 훈족 같은 유목민족이 아니라 엄연한 정주민족이며 이미 많은 땅을 가진 터줏대감이기 때문에, 훈족의 침공만큼이나 큰 민족 대이동을 촉발하진 못할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하지만, 반룡국이 무너지는 건 곤란해. 정권 교체가 되건 말건, 결코 무너져선 안 돼.”
“그러면 그레나르데에 무기를 팔아선 안 되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 그레나르데에도 팔고, 반룡국에다가도 팔 거야. 그레나르데의 침공에 밀려나 반룡국을 침공할 여러 수인족 부족들에게도 무기를 팔 거고. 그러는 사이에 이클리시아는 합법적으로 변방의 군벌들에게 무기를 팔겠지.”
“......그렇, 네요. 바빠지겠어요.”
“이제부턴 반룡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우리 상품에 가장 비싼 값을 치러주는 진영이 우리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는 거야. 친구들끼리 싸우는 건 슬프지만, 어쩌겠어. 응원해줘야지.”
“생산량이 따라갈 수 있으려나요.”
테레제가 놀란 듯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놀렸다.
“코넬리아도 많이 물들었네.”
“......사람들이 말하길, 종자는 주인을 닮는 법이라더라고요.”
“나도 그 말 꽤 많이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말, 보통 나쁜 상황에서 많이 하더라.
종자가 뭘 잘못하면, 주인이 그 따위니까 종자가 잘못하는 것 아니겠어하고.
하지만, 테레제는 그다지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 생산량 화제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중앙의 도시들은 국경 바깥 외적의 침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해. 오랜 세월 창고에 박혀있던 무기들을 더 좋은 걸로 바꿔주겠다고 말하고 헐값으로 받아오면 그만이야.”
“그다지 양이 많진 않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 하려고만 들면 엘프의 무기, 마족의 무기, 전부 다 사고팔 수 있어. 수요는 공급을 부르고, 수요의 상승은 시장 가격의 상승을 불러와. 공급자, 즉 내게 돈이 들어온다는 소리고, 하여튼간에 돈은 답을 알고 있어.”
“그런가요.”
“그런 거야.”
이렇게까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라면 내가 더 할 말은 없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테레제에 비하면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가씨를 믿어요.”
“응. 코넬리아는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
꿈과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할 나이에 ‘돈은 답을 알고 있다’ 같은 소리를 하는 게 상당히 신경쓰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하면 새삼스럽다 싶을 뿐이다.
테레제는 아주 먼 옛날부터 그런 아이였으니까.
그 때였다.
노크 소리. 손님이 올 예정은 없었을 터였다.
나는 손님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문으로 다가갔다.
“테레제! 나다. 지금 방에 있느냐!!”
에드윈 왕자였다.
나는 시선을 살짝 돌려 테레제를 보았다.
테레제도 에드윈의 방문이 갑작스러운지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가지런히 다듬고 고개를 끄덕여 에드윈을 들이도록 내게 명령했다.
“테레제! 테레제!”
“좋은 점심입니다, 에드윈 왕자님.”
두들기는 문을 살짝 열어 얼굴을 내민다.
에드윈 혼자였다.
왕자놈, 화난 듯한 표정이다.
“윽. 코넬리아. 테레제는 있겠지!?”
대체 뭣 때문에 이리 급한 건지 모르겠지만, 영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귀찮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다.
“자, 잠깐 기다려, 에드!”
“왕자님! 너무 경솔한 행동은......!”
“너희들은 시끄럽다! 그리고 당장 대답해라, 코넬리아! 테레제는 안에 있느냐!”
“네. 무슨 일이신지.”
“있다면 됐다. 비켜라. 테레제와 할 말이 있으니까.”
뒤따라서 에드윈의 호위기사인 오웨인과 내연녀인 세실리아가 나타났다.
뭔가 에드윈을 말리려고 하는 것 같지만, 에드윈은 막무가내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테레제의 얼굴을 보았다.
세실리아의 목소리를 들은 탓인지, 표정이 실시간으로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
나는 말 없이 살짝 열려 있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문 옆으로 비켜서서, 에드윈이 들어올 때까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에드윈은 거의 뛰어들 듯이 테레제의 기숙사에 들어왔다.
숙인 머리를 다시 올리려고 했지만, 오웨인과 세실리아가 거의 동시에 따라 들어온 탓에 조금 더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웨인과 세실리아까지 들어왔기에 그만 고개를 올릴까 싶었더니, 새빨간 머리칼이 인상적인 소녀 하나까지도 소리조차 내지 않고 따라 들어왔다.
엘자 타레이아.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이야, 에드윈.”
“그래, 오래간만이다, 테레제!”
목소리가 높았다. 따지는 듯한 말투였다.
테레제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에드윈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테레제는 예전부터 에드윈의 큰 목소리를 싫어했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줄곧 변함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윈을 연모했다.
줄곧, 변함없이.
“타레이아 참사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테지?!”
“일단 앉지 않을래, 라고 묻고 싶긴 하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닌 것 같네.”
테레제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엘자 양께서 파티가 취소되었다고 편지를 보내주셨기에, 어떠한 사건인지는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테레제는 엘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엘자는 테레제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이었다.
화가 난 것은 에드윈으로 보였지만, 엘자는 그보다도 더욱 고요한 분노를 품은 듯했다.
에드윈은 소녀 둘의 인사를 슬쩍 바라보더니, 조금 식은 표정으로 테레제에게 이어 말했다.
“나는 오를레베트가 유르덴 가문과 타레이아 가문 간의 유착을 파헤치다 암살당했다고 본다.”
“정식으로 발표되기로는, 반룡국 광신자들의 불운한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라던데.”
“그런 발표, 누가 믿을까 보냐? 타레이아 가문은 지금 사건을 반룡국에 선전포고하는 것으로 묻어버릴 생각이야. 수사가 제대로 되었을 것 같아?”
“왕자님. 그런 말투는 엘자 양에게 실례가 아닐까?”
“아뇨, 유르덴 양. 괜찮아요. 저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고, 가능하다면 제 가문이 잃어버린 정의를 똑바로 세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렇다면야.”
“그래서, 테레제. 단 한 번 묻겠다.”
에드윈이 테레제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 서있는 테레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현 상황이 어지간히도 아니꼬운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던 오웨인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 자식 지금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냐, 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엘자도 마냥 굳히고만 있던 표정에 놀람을 살짝 담았다. 별로 티는 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에드윈이 마치 신하가 주군에게 묻듯이 입을 열었다.
말투는 그렇지 않았지만
“유르덴이 아닌 나의 여인으로서, 너는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느냐?”
“이, 이러지 마, 에드윈!”
“네가 대답해주기 전까지 일어날 생각 없다. 당장 대답해다오.”
테레제가 당황한 듯 에드윈을 일으키려 들었지만, 전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테레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뱉었다.
“없어.”
“그럼 좋다. 그것이 거짓말이건 아니건 상관없어. 나는 너를 믿겠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에드윈.......”
“유르덴 공작가의 영애가 아니라, 나의 약혼녀 테레제를 믿겠다.”
그러더니, 에드윈은 품속에서 작은 함을 하나 꺼냈다.
마치 혼인 서약에 쓰일 반지가 담겨있을 것처럼 생긴, 작은 함을.
“에, 에드윈. 잠깐, 잠깐만......!”
“테레제.”
“기다려! 기다리라니깐!”
“나는 유르덴을 무너트릴 생각이다.”
“......뭐?”
“유르덴은 너무 악행을 많이 저질렀어. 인간의 목숨을 금화로 환산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저질러도 용납된다고 여기고 있어. 생체실험에, 무기밀매. 내가 꿈꾸고 바라는 미래의 이클리시아에, 그런 비인도적인 사상에 뿌리내릴 자리는 없어!”
테레제가 에드윈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세실리아를 보았다.
텅 빈 눈으로, 세실리아를 보았다.
세실리아는 사색으로 입술을 즈려물고서 테레제의 시선을 회피했다.
전혀 본의가 아니었다는 듯, 말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미안하다 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네게 부탁하겠어. 유르덴을 버리고 내게 와줘. 그래! 내겐 너밖에 없어.”
“그래?”
테레제는 여전히 세실리아를 노려보는 채였다.
에드윈도 겨우 테레제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 시선의 끝을 보았다.
테레제가 세실리아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씁, 하고 한 번 혀를 차고는 말했다.
“괜찮아. 세실은 친구일 뿐이니까.”
“......잘도 말하네.”
“자, 잠깐. 테레제. 네가 화내는 것도 이해는 해. 하지만, 이건 사적인 감정을 끼워 넣을 만한 사안이 아니야. 이클리시아 만민을 위해서.......”
“내 자리는?”
“뭐?”
“네 가슴 속에 내 자리가 있긴 해? 아니면 에드윈 네가 꿈꾸는 그 이클리시아. 그 망상을 네 가슴속에 부여한 바로 그 사람에게 바로 내 자리의 여부에 대해 물어보는 게 나을까?”
“자, 잠깐만요. 저는 결코”
“입 다물어.”
테레제가 마력을 발산했다.
총량은 적지만, 어마어마하게 정제된 마력이었다.
오웨인, 세실리아, 엘자, 모두 테레제의 중압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보고 배운다던가. 글로리아가 메이드들을 훈육할 때 쓰는 방식 그대로였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바라지 않았으나, 테레제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그 순간에 곧바로 에드윈의 옆으로 재빨리 이동해, 팔을 뻗어서 테레제의 중압을 중간에 잘랐다.
“아가씨. 과했어요.”
“......그래.”
테레제는 순순히 마력을 거두었다.
에드윈은 적을 보는 표정으로 테레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테레제는 이젠 오히려 그 표정이 더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역시 너도 유르덴 가문의 일원이라 이거지.”
“반면 저는 왕자님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질렸어. 테레제가 중얼거렸다.
에드윈은 그 한 마디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주세요. 이젠 더 미련도 없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