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돌아오는 길
* * *
옛날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게임을 하다 보면, 도적 계열 직업은 보통 은신계열 마법이나 스킬을 사용하곤 했다.
단순히 ctrl키를 눌러 몸을 숨기는 것부터, 아예 투명하게 변해 몸을 감추는 스킬까지.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공세에 나선 순간부터 은신 효과가 확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투명화는 강제로 해제되고, 은신 마크는 금방 발각! 마크로 변한다.
물론 게임에 대해선, 밸런스적인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이 동네도 왜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공세에 나서면 은신 마법이 풀려버렸다.
“곤란하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나는 내가 칼을 뽑아서 직접 뭔가 하기 전에 오를레베트가 죽은 덕분에 은신이 풀리지 않은 채로 간단히 몸을 뺄 수 있었다.
즉, 나는 손 하나 대지 않고 일을 해결한 셈이다.
아니지.
정확히 손을 딱 한 번 대고 일을 해결한 셈이다만, 이건 공격으로 취급되지 않는 건지 하여간 은신이 풀리지는 않았다.
나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뭔가 허무하고 운에 맡긴 감이 없잖아 있어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나.
“당장 그 모자를 벗고 얼굴을 보여라.”
“저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질문은 받지 않겠다. 얼굴을 보이기나 해라!”
독수리 문장 방패를 든 병사들과 근위 기사로 보이는 매력적인 반룡 여성 하나.
머리에 뿔이 자라났고, 꼬리까지 있었다. 꽤 용에 가까운 반룡이었다.
반룡이 많이 사는 도시니까 힘이 있다면 고위직이 될 수도 있기야 있었겠지.
이들이 왜 나의 눈앞에 있는가.
뒷골목에 숨어들어서 은신을 풀고 모자를 벗으려는 그 순간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루루 몰려온 것이었다.
마치 예측.
아니, 예견인가.
“......성녀 후보가 범인이려나.”
타레이아의 아가씨와 친구라고 했었지.
싸우기 싫다고 말하긴 했어도, 뭐.
친구가 소중하다면 귀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방해할 셈이었더라면 아일린이 나를 막았겠지.
“셋을 세겠다! 셋을 세기 전에 얼굴을 보이고 무릎을 꿇지 않으면”
“증원부터 불러야 할 텐데.”
완벽하게 일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완벽하게 끝나기 직전이었던 일을 방해받은 것보다도 말이야.
세실리아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이라서 짜증났다.
그쪽이 그럴 생각이 있었건 없었건 알 바는 전혀 아니고.
“뭐?! 큭, 전원!”
여기사가 명령을 내리는 것보다 더욱 재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고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며 여기사의 시야를 가리듯 손바닥을 펼쳐 내뻗었다.
“명령하는 사람이 선두에 서있으면 안 되지.”
내 속도에 전혀 반응하지 못해 당황한 미녀 기사의 얼굴을 붙잡고, 아레이유를 뽑으며 곧장 배를 깊게 찔렀다. 세 번 정도, 재빠르게.
갑옷을 입고 있긴 했는데, 그냥 힘으로 꿰뚫었다.
조직폭력배 영화에서 사시미로 쑤시는 느낌이라서 조금 그렇긴 하네.
“이거, 놔, 라아......!”
뭐어. 반룡은 사람보다는 조금 튼튼한 편이지.
칼질을 당했는데도 조금 아픈 기색만 보일 뿐, 오히려 자기 얼굴을 붙잡은 내 손목을 붙잡아 떼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배에서 뽑아낸 스틸레토를 곧바로 역수로 잡아 목과 가슴께를 두 번 정도 찍었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내 손목을 붙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간다.
역시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긴 했는데, 그냥 힘으로 내려찍어 박살냈다.
“고작, 이 정도로......!”
“윽?!”
조금 늦게 갑옷 바깥으로 피가 피식, 피식 튀려 하는데도 어디서 힘이 났는지.
아니, 이런 상황이니까 없던 힘이 난 건지.
찌르는 듯한 앞차기로 나를 밀어냈다. 힘이 상당히 실려서, 조금 아팠다.
“노, 놈을 잡.......”
“미오르티아 님! 의무병! 방패병!”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오르티아 님을 지켜라!!”
미오르티아, 라는 이름인가.
비틀거리면서도, 피가 새는 목을 부여잡으면서도 아직 자기 두 다리로 서 있는 게 대단하다 싶었다.
인간이랑 반룡은 종족부터가 다르니까.
“이야아아아아앗!!”
한 병사가 중무장한 인간치고는 꽤 빠른 속도로 달려와 할버드를 횡으로 넓게 휘둘렀다.
병사의 덩치가 큰 덕에 어깨 언저리를 베는 궤도였다.
아레이유를 짧게 휘둘러 튕겨내고, 내던져서 병사의 머리를 꿰었다.
그리고 죽어 무릎을 꿇어버린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장검을 뽑아들고, 주머니에서 선물 하나 꺼내어서 그의 무릎 아래에 던져놓고, 머리에서 아레이유를 뽑아 들었다.
그 사이, 미오르티아가 뒤로 호송되고, 병사의 벽이 생겼다.
......진짜 분하다.
나, 체질 탓에 아레이유를 개방할 수 없다.
테레제가 비싼 돈 주고 사준 귀한 무기인데, 하필 내 손에선 제 능력을 다하지 못한다.
“쏴라, 쏴!”
겨눠지는 총구. 나는 사선을 피해 순식간에 뛰어 들어갔다.
눈먼 탄환 한 두 발 쯤은 그냥 맞아준다. 방탄이니까.
나머지 총탄들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몇이나 되는 사수들이 순식간에 베여 쓰러진다.
방패병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방패와 갑옷 채로 그냥 썰어버렸다. 다만, 나는 문제가 없더라도 검은 얼마 휘두르지 못하고 부러져버렸다.
죽은 병사가 쓰러진 자리에 선물을 하나씩 떨어뜨려주고, 고개를 돌렸다.
병사들의 틈새로, 후열로 후퇴해 간단한 회복 마법을 받고 있던 미오르티아가 부축을 받으며 뒷골목을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쯧.”
어디 가려고.
미안하지만, 여기 목격자들은 다 죽어야만 했다.
예로부터 암살은 두 종류가 있다고 했으니, 목표만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암살하는 것과, 목격자까지 모조리 다 죽여서 조용하게 만드는 것.
옛날에는 조금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만.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잖아.
높게 뛰어, 뒷골목 벽을 내달려 병사들을 지나쳤다.
아주 잠깐이지만, 지면과 수평이 되는 기분은 나름 괜찮네, 싶었다.
해방감?
그리고 미오르티아의 앞을 막으며 착지했다.
미오르티아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무척 화난 모양이다.
“이, 녀석.......”
“놓아줄 순 없어.”
“그렇겠, 지.”
미오르티아가 자신을 부축하던 병사들을 밀쳐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더 비장한 표정으로 허리춤의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미, 미오르티아 님! 저건 위험합니다!”
“나도 안다. 그러니 너희는 가서 증원을 불러라.”
뭐야. 그거.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너희는 도망쳐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의외로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뭔가 기사의 기백이란 게 느껴졌다.
정공법으로 들어가면 시간 조금 걸리겠는걸.
그 사이에 도망간 병사들이 인상착의 같은 걸 퍼뜨리면 곤란하다.
“와라. 암살자. 네게 진정한 기사의 검을 보여주마.”
멋있네.
나도 저런 대사를 하고도 부끄러움 하나 없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제 시간 되었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콰앙, 하고.
아까부터 병사들의 시체 사이에 하나씩 떨어트려주었던 선물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미오르티아의 말을 들어 후퇴하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미오르티아 역시도 깜짝 놀랐다는 듯 뒤를 보았다.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파고들었다.
한 눈 팔면 죽는다.
시설에서 제일 먼저 배웠다라고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한 거 아닌가.
“너, 는.”
이번에는 심장 언저리를 제대로 찔렀다.
찌르고, 조금 더 확실하도록 칼날을 비틀었다.
아레이유가 스틸레토라서 칼날이 면적이 그리 넓은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노린 곳에 칼날이 닿았는지 천천히 맥동이 멈추어 간다.
하여간에, 이 정도면 아무리 반룡이라도 못 산다.
“너는! 너는! 으, 아아아아아아아!!”
아직도 죽지 않은 미오르티아가 분하다는 얼굴로 왼손 주먹을 휘둘렀다.
뺨에 주먹이 꽂히지만, 내 얼굴은 흔들리지도 않았다.
마력도 힘도 전혀 담기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뱉으며 아레이유를 뽑아내었다. 미오르티아가 힘 없이 주르륵 쓰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뭐라고 저주의 말을 뱉으며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고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머리를 몸에서 떼어놓으면 죽겠지.”
나라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잔인해지고 싶진 않았다.
폭탄에 당해 여기저기 널브러진 병사에게서 검을 빌려와, 무릎 꿇은 채 더 이상 미동이 없는 미오르티아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조용히 은신마법을 사용해 몸을 숨겼다.
폭탄 소리 탓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목격되기 전에 몸을 감추었다고 생각한다.
/
“다녀왔습니다.”
“고생했어, 코넬리아. 신문 봤어. 안 다쳤지?”
“네. 전혀 안 다쳤어요.”
“......그래?”
테레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매만졌다.
테레제의 손이 다가오는 순간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싶었지만, 그 손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지하거나 하진 않았다.
“입술이 터졌는데.”
“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하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의 소녀가 자신의 입술에 난 상처를 이상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여전히 나를 보는 기분이 아니다.
“아.”
“이렇게 다 보이는 거짓말을 하려한 건 아닌 것 같고. 몰랐었나보네.”
“......네. 죄송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으려나. 어쩌다 생긴 상처야?”
“저도, 모르겠네요.”
미오르티아가 휘두른 일격.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왜 맞아줬던 걸까.
그 여기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기분이 묘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