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30화 (30/100)

〈 30화 〉 타레이아 사건

* * *

푸드득.

투명한 올빼미가 테레제의 기숙사에 날아들었다.

창틀을 넘을 때 테레제의 결계에 걸려,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파닥거리며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추는 것이었다.

마법으로 만든 사역마였다. 내가 건드렸다간 그대로 즉사한다.

애초에 생명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니까 죽었다고 말해도 좋은 걸지는 모르겠다만.

테레제는 손짓 한 번으로 결계에서 올빼미를 풀어주고, 자신의 팔목에 오르게 했다.

그리고 올빼미는 테레제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날개로 허공을 한 번 그었다.

그러자 문자가 허공에 새겨진다.

‘이단심문관이 타레이아 령에 도착함.’

“오를레베트는 잘 도착했나봐.”

“......저도 출발할게요.”

“그래. 잘 부탁해.”

나는 테레제가 창문에서 다시 올빼미를 풀어주고 돌아올 때 그녀를 지나쳐 창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창틀을 넘어 뛰어내렸다.

은신마법은 진즉에 사용해놓았고, 충격감쇄마법도 사용해두었다.

2동 922호. 9층 높이지만, 마법과 함께라면 겁먹을 것도 없다.

애초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여기서 곧장 뛰어내려서 도망칠 수 있도록 테레제랑 같이 연습까지 했었다.

착지는 맡길게, 코넬리아­같은 느낌이었지.

“만능이라니깐.”

9층 높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우산과 함께 내려앉는 메리 포핀스만큼이나 깔끔하게 화단에 착지한 나는 아무래도 한 마디 뱉을 수밖에 없었다.

편리하고, 종류조차도 가지각색, 배운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에도 대응가능했다.

심지어 내가 사용하는 마법의 대부분이 기초마법이라는 것까지도 대단하다.

의존하게 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나는 화단의 울타리를 넘어, 여유롭게 역으로 향했다. 뒤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저쪽에서 마법으로 감시하고 있다 해도, 나는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현대였다면 경찰이나 형사나 탐정 같은 사람이 발자국을 살펴보고는 ‘9층에서 곧장 떨어져서 이쪽으로 사라졌군’하고 말할 법도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마법이라는 편리한 문명에 뇌가 절여졌기 때문에, 그런 원시적인 수사법을 잊은 지 오래였다.

“......정리해둘까.”

잠시 발을 돌려 간단한 물 마법을 끼얹어 화단에 남은 내 발자국을 지웠다.

갑작스레 든 생각이긴 한데, 꼼꼼한 편이 좋겠지.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추적해올 수도 있겠기.

마법을 쓰지 못하는 정의감 높은 탐정 같은 사람. 주인공 타입. 있을 법하지 않나.

그리고 역으로 향해, 역 인근에서 은신마법을 해제했다.

당연하지만 미행은 없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도 없다.

한 두 명 정도, 사복을 입은 감시자나 비번이라 쉬러 나온 요원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없었다.

그래도 안심은 금물. 얼굴을 가린 베일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역 내부로 들어섰다.

“대체 마법이란 뭘까.......”

역에서 공간이동 하는 거.

여태 한 번도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만, 듣자하니 아일린은 역을 사용할 수 없다는 듯했다.

그쪽은 아예 마법이 통하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까­하고 생각했지만, 아일린.

시설의 CCTV 닮은 마법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모습이 찍혔었지.

아무 것도 찍혀선 안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역에 대해서는, 뭐. 역의 출력이 나의 역량을 넘어섰지만 아일린의 역량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나는 역을 이용할 수 있지만 아일린은 역을 사용할 수 없는 것도 대강 이해는 간다만.

그래도 간섭이 생겨야 하는 거 아닐까. 나 용케도 겁 없이 역을 이용했네.

그리고 CCTV. 나도 아일린도 다 찍히는데, 적어도 유령처럼 희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안녕하세요, 손님.”

“디오르시온 타레이아 령으로 가는 급속 스크롤을.”

“타레이아 행 스크롤 말씀이신가요? 자, 이거 받아주세요.”

“이건......?”

뭔가, 방명록 같은 느낌의 노트였다.

사람 이름과 거주지가 적힌 노트. 아마 무엇인가의 마법적인 처리도 되어있는 것 같았다.,

“아아, 그게요. 현재 신앙교리성의 요청으로 타레이아 령으로 가는 여행객께서는 여기에 신상정보를 꼭! 적어주셔야만 해요.”

“무슨 일인가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알려드릴 수 없어요. 음. 펜은 거기에 있답니다.”

곤란한 짓거리를 하네.

그냥 가명을 적고 가짜 주소지를 적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지금 CCTV로 감시당하고 있었다.

감시­는 아니지만, 하여간에 지금도 계속 촬영되고 있을 것이다.

나라는 걸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노트에 손을 대는 순간, 노트에 걸린 마법은 파괴되겠지.

단순히 진실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마법이 걸려있을 뿐이라면 문제 될 것도 없다.

툭 건드려서 파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만약 적힌 정보를 실시간으로 다른 곳으로 송신하는 마법이라면?

현재 디오르시온 타레이아 령에서 오를레베트의 부하가 하나하나 확인하는 중이라면?

“왜 그러시나요, 손님?”

저 사람이 손을 대니까 마법이 망가졌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수상한 놈이니까 일단 붙잡자.

내가 손을 대었다간, 필시 그렇게 흘러가겠지.

붙잡겠다고 달려든다 해도 순순히 붙잡힐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뇨, 잠시 생각을 하느라.”

그래. 안 잡히면 그만이잖아?

펜을 잡아 노트에 가명을 적으려 했다.

“앗! 카르메아잖아! 오래간만이네? 무슨 일이야?”

누군가가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보라색 머리카락의 접객원.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여성이긴 했다.

거기에 더해, 정확히는 아는 척의 척을 했다­겠지. 처음 보는 사람에, 처음 보는 얼굴이다.

“야, 민트. 좀 비켜봐.”

“네? 선배님 아시는 분인가요?

“타이밍도 참 나쁘네. 어제 오늘 네 고향에 무슨 일 있는 것 같던데.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나는 보라색 머리카락의 접객원을 한 번 빠르게 훑어보았다.

가슴팍에 당연하다는 듯 달려있는 명찰. 아그네스 다레트.

“응, 아그네스.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어? 진짜 선배님이랑 아는 사람......?”

“야, 얼굴 가린 것 정도로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저 뿔 모양은 분명히 카르메아야.”

“네에. 뭐.”

뿔은 내 베일 캡에 달린 반룡 뿔을 말하는 거다.

마침내 접객원 민트가 별 의심 없이 자리를 바꿔준다.

민트는 자리를 바꾸자마자 새 손님을 받았다.

그런 뒤에야 아그네스는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오딜레아트 령으로 가는 스크롤이에요. 두 영지 사이의 거리가 빠른 말로 1시간도 채 되지 않으니, 우선 오딜레아트로 가서 육로로 갈아타세요.”

“......생각이 짧았어. 고마워.”

“걸리면 저나 그쪽이나 전부 물리적으로 모가지라고요. 그러니까 좀 조심해주세요. 물론 저도 검문 중이라는 걸 말하지 못한 잘못이 있긴 있지만, 눈치로 대충 알아채셨어야죠.”

“대금은 어떻게 될까.”

“글쎄요. 그쪽의 마음을 받아볼까요?”

지갑을 꺼내 금화 몇 장을 꺼내, 스크롤 대금인 은화 사이에 끼워 아그네스에게 건네었다.

아그네스는 금화가 몇 장인지 확인하지 않고 재빠르게 챙긴 뒤, 스크롤을 꺼내주었다.

“힘내, 카르메아!”

“고마워, 아그네스.”

민트의 손님이 떠났기에, 다시 아는 척을 하며 헤어진다.

곧바로 승강장으로 향해 공간이동한다.

변경답게 한산한 역이었다. 감시자는커녕 손님도 하나 없는 역이었다.

역에서 나와서 마부와 마차를 빌린다.

느긋하게 달려 타레이아 령에 도착해, 중심도시 타렌보르트의 성문 앞에서 멈추었다.

여기서도 검문 중이었다.

쪽창이 드르르 열리고, 마부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가씨. 여기서 멈춰도 되겠습니까?”

“무슨 일인가요?”

대충 알지만, 그래도 묻는다.

“아니. 뭐냐. 타레이아 영주님이 무기 밀매를 한다던가 뭐라던가 하는 소문이 돌아서, 중앙의 이단심문관이 찾아와 온 타렌킬라이나를 뒤엎고 있다지 뭡니까. 마차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다 분해할 기세로 검문을 한다고 하니, 아가씨도 여기서 내리셔서 개인 검문을 받는 게 훨씬 빠를 것 같거들랑요.”

“아하. 그럼 여기서 내리도록 할게요.”

“아이고.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마차에서 내려 성문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중으로 해자가 둘러쳐진데다가, 꽤 높은 성문이었다.

언제든지 수성전에 돌입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든 것이겠지.

은신마법을 두르고 그냥 걸어서 돌파했다.

CCTV고 뭐고, 어차피 안 보이면 안 잡힌다.

비싸고 출력 좋은 감시마법이라면 마력을 감지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내겐 안 통하지.

열 화상 감지 마법을 개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건 없다는 것 같으니.

“너는 통행 금지다!”

“아, 아니, 나리!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 아시지 않습니까?”

“시끄럽다!”

물건을 가득 담은 마차가 출입 금지를 먹는다.

마차의 주인으로 보이는 반룡이 경비병에게 울상을 짓고 매달리고 있었다.

마차 주인 말고도 반룡이 굉장히 많았다. 인간이 절반, 반룡이 절반 정도일까.

그나저나 마차를 막는건 영주겠지.

모르는 사람이다만, 괜히 찾아온 오를레베트 탓에 고생하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성문을 지나치자마자, 작은 인파에 뒤섞여 은신을 해제했다.

꽤 큰 도시였다.

유르덴이나 제도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변경에 있는 것 치고는 상당히 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성벽도 높고, 해자도 이중으로 두르고.

모르긴 몰라도, 타레이아 후작. 변경의 군벌들 중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해당하지 않을까.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

갑작스레 막연해져서 한숨을 탁, 하고 내뱉으며 그런 말을 한 순간이었다.

콰앙­하고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느낌 좋네.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폭발이 발생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한 번 더 폭발.

폭발한 마차.

불과 연기를 흩날리고 있는 한 고급 건물. 호텔 같은 걸까.

“어딘가 익숙하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인파를 역행해, 사고 현장으로 곧바로 들어간다.

은신마법, 풀 필요 없었으려나.

“제국은 디오르시온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어라!”

“순수한 용이자 여신이신 엔제리카벨께서 우리 ‘여신의 아이들’에게 말하셨다! 신의 뜻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오만한 제국 이단심문관을 주벌하고, 반룡에 의한 디오르시온 통일과 독립의 주춧돌로 삼으라고!!”

“디오르시온을 다시 위대하게!!”

있다.

신나게 시위하고 있네.

엔제리카벨이란 인류의 주신인 메흐렌 신의 다른 면모, 일 것이다.

반룡들도 메흐렌 신을 주신까지는 아니나, 판테온의 위대한 신들 가운데 일좌로서 숭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메흐렌 신을 부르지 않고 굳이 엔제리카벨 여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반룡은 처음이다.

반룡 뿐만이 아니라, 그냥 처음이다.

마족 같은 경우에는 아예 메흐렌 신을 부정하고, 메흐렌 신의 다른 이름인 네르탈렌시스만을 판테온에 올려서 숭배하고 있으니까 ‘메흐렌 만세’, 하지 않고 ‘네르탈렌시스 만세’나, 심지어 ‘엔제리카벨 만세’라고 외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응? 저, 저것 좀 보십시오, 영도자님!”

“오, 오오!! 놈이 일어선다! 다시 일어선다! 불길 속에서 다시 일어선다!!”

“젠장! 뭘 보고만 있어! 전부 쏴라, 쏴!!”

불타는 마차 속에서 오를레베트가 일어서고 있었다.

반룡들이 총을 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의 전신을 둘러친 마력 장벽은 굳건했고, 깨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테레제. 놀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거칠잖아.”

“안 통합니다!”

“수, 수류탄 가져와!”

누가 막대형 수류탄을 꺼내들지만, 화살에 맞아 쓰러진다.

어느새 여기저기서 몰려온 병사들이 반룡을 제압한다.

오를레베트의 부하가 아니라 도시 경비병일까.

방패에 개나 소나 다 하는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단심문관님!”

“죄송하다고 끝날 일일 줄 알아!? 지금 내 부하가 몇이나­”

은신 마법을 이용해 충분히 다가간 나는 손을 뻗어 오를레베트의 마력 장벽에 손을 대었다.

톡, 하고. 닿지마자 오를레베트의 마력 장벽이 산산이 깨져나갔다.

“뭐, 뭐야.”

“죽어라, 이단심문관!!”

타이밍 좋게, 화살에 맞아 쓰러졌던 반룡이 경비병들에게 깔린 채로 수류탄을 던져왔다.

일순 괴력을 발휘해, 병사들을 모조리 밀쳐낸 모양이었다.

나는 칼집의 아레이유에서 손을 떼고, 재빠르게 뒤로 빠졌다.

쾅, 하고.

오를레베트의 머리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터졌다.

오를레베트도, 오를레베트에게 항의를 받고 있던 경비병도, 걸레짝이 되어 뒹군다.

“끔찍하네.”

머리 없는 불귀의 객이 된 오를레베트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경비병은 방패와 마력 장벽 덕분에 걸레짝이 되어도 살아는 있는 것 같았지만.

“어, 어떻게.......”

“오오! 엔제리카벨 여신의 기적이다!!”

......음.

손 대지 않고 코 풀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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