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구멍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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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의 군벌들.
사람들은 디오르시온 땅의 영주들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디오르시온은 본래 인류의 땅이 아니었다.
세습에서 밀려난 귀공자, 고향을 떠나온 범죄자, 자기 땅을 가질 수 있으리라 여기고서 기회를 찾아온 소작농 등, 이런저런 이유로 중앙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손으로 개척된 땅이었으며,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개척되고 있었다.
더 나아지겠다는 악바리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 거친 친구들.
수 천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곳곳에 붙박여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 드는 반룡들과 드잡이질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
누가 때때로 밟아주지 않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증식하는 마물들은 또 어떤가.
그렇기에, 디오르시온 땅의 영주들은 대부분이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아서 황제의 봉신??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한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나름의 영주로서 섬김을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군벌.
변경의 군벌들이라고, 사람들은 경시하는 마음을 한껏 담아 그렇게 불렀다.
“최고의 고객들이지.”
디오르시온 영주들에 대한 테레제의 평가였다.
그들은 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면서도, 주님께 기도를 올리면서도, 여전히 힘을 숭상했다.
성직자가 주님을 대행하여 내리는 한 번의 축복보다도 총구에서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포연과 나쁜 놈의 머리통에 난 구멍을 더욱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저 변경의 단골들에게 물건을 팔러 간 적이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유는 간단해. 내가 갈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야.”
“필요, 인가요.”
“나는 말하자면 나쁜 일 전문이야. 같은 제국의 신민에게 호신용품을 파는 건 착한 일이니까, 내가 할 일이 아니라 가문의 주인이자 이클리시아의 재상이신 아버지가 이클리시아의 이름을 대행해서 할 일이지. 그리고 장차 내 동생이 가문을 잇게 되면 맡게 될 일이기도 하고.”
“아아.......”
“엘자가 알 지는 모르지만, 타레이아 가문도 이클리시아의 무기로 위장한 유르덴산 무기 덕을 꽤 봤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뒤, 테레제는 씩하고 웃었다.
나와 테레제는 지금 제국수도공항에 와있었다.
제국수도공항은 굉장히 커다란 나무 위에 지어져 있었다.
산 만큼이나 거대한, 흔히 세계수라고 말하는 그런 사이즈였다.
날개가 달린 비행선들이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정박한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서 나의 이 동네 세계관을 다시 한 번 깨부숴주고 있었다.
판타지는 판타지인데, 적응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큰일이야, 코넬리아. 돌아가야겠어.”
“네?!”
웃음을 띠우고 있던 테레제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굉장히 놀랐다는 표정으로. 상당히 다급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너무 과장되지 않게 그런 테레제에게 어울려주었다.
“돌아가자. 그치들에겐 다음에 연락하도록 하고, 우선 돌아가는 게 좋겠어.
“아가씨. 타레이아 측에서도 어렵게 접선해왔을 텐”
내 말을 끊듯이, 테레제가 작은 결계 마법을 펼쳤다.
테레제가 바깥에 나설때엔 당연하다는 듯이 반드시 펼치곤 하는 결계인데, 수호는 물론이요, 방음, 마력간섭방해 등, 여러 효과를 가진 결계였다.
그걸 뒤늦게 펼친 셈이다.
“데요.”
“돌아가자.”
“죄송합니다, 아가씨.”
연극은 여기까지.
엘자 타레이아가 접선해온 건 사실물론 단순한 파티 초대일 뿐이지만이고, 유르덴 가문이 이클리시아 왕가의 이름을 빌어 아주 합법적인 방법으로 변경의 군벌들에게 무기를 판 것도 사실이다.
테레제가 나쁜 일 전문이라고 자백한 것 역시도 구체적인 건 하나도 입에 담은 적이 없지만, 듣고 있는 놈들은 아마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어때, 코넬리아. 낚싯줄을 문 것 같아?”
“상당히 바빠 보이긴 하네요.”
슬쩍슬쩍 눈동자를 굴려보니 공항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수상한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여기저기 이런저런 연락을 하느라 허둥지둥이었다.
저 친구들도 나름 숨느라고 숨은 것 같고, 나름대로 이단심문관이니 경찰 같은 걸 하고있는 걸 보면 엘리트 같기도 한데, 어째서나 내 눈에는 이렇게 쉽게 보이는 걸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은신 마법이건 기척 감소 마법이건 뭐건 쓰고 있을 테니까, 그딴 거 통하지 않는 내겐 너무나 쉽게 보이는 것뿐이다.
“그래. 다행이다.”
“하지만, 아가씨. 오를레베트 본인이 타레이아 령에 조사하러 향하지 않으면 결국 의미 없는 일이 되는 게 아닐까요?”
“가지 않을 수가 없을걸? 변경의 군벌이니 뭐니 해도, 후작음. 아니지. 이 경우에는 ‘아무리 후작이라 해도 변경의 군벌이야’라고 반대로 말하는 편이 나으려나.”
물론 오를레베트는 타레이아 령에 흘러들어간 무기를 전수조사하고 싶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지금 상황이 ‘타레이아 령이 불법적인 뭔가를 하기 위해서 테레제와 접선하려다, 테레제의 방첩 실수 탓에 실패한 상황’이라 보일 테니까.
대어를 물었다며 멍청하게 그냥 달려가면 그야말로 최고의 상황.
물론 작위적으로 보였다고 해도, 저들은 마냥 덮고 넘길 수도 없다. 확인은 해야할 것 아닌가.
여기까진 당연한 일이다만, 이어진 테레제의 말은.
그렇지 않아도 자기네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변경의 군벌을 조사에 협력하게 하려면 좋건 싫건 부하들로 하여금 테레제를 감시하도록 하고, 오를레베트 본인은 디오르시온으로 가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 제도 드라킬라이나에서 대화 녹음 같은 걸 들이 밀면서 테레제를 조사하려 해도 ‘나쁜 일이 뭔데요’라며 잡아떼면 그만이고, 엘자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원하는 대답 하나 내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내가 보기엔 오를레베트가 ‘이건 테레제가 내 눈을 잠시 피할 틈을 만들기 위해서 벌인 헛짓거리다’하고 단언하고 꿈쩍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가씨를 믿도록 합시다. 넴.
“저는 일이 잘 풀린다 싶으면 괜히 불길하더라고요.”
“역시 코넬리아야. 마음이 맞잖아. 사실 나도 일이 쉽게 쉽게 해결되면 불안하더라고.”
“아가씨는 항상 불안해하시잖아요.”
“거짓 하나 담기지 않은 사실이라서 농담으로 던진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네.”
“아하하. 애교로 생각해주세요.”
테레제가 볼을 부풀렸다.
귀엽다.
“뭘 그렇게 헤실대는 거야.......”
“크, 크흠. 죄송합니다. 너무 풀어져버렸네요.”
“코넬리아는 적시 적소에 항상 잘해주니까 조금 정도는 괜찮아. 조금 정도는.”
그래, 조금 정도는.
세 번.
삐진 걸까. 아.
얼굴에서 미소가 안 지워진다. 어떡하지.
“아, 정말. 코넬리아, 너”
아가씨께서 뭔가 한 마디 하시려다가 멈추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작게 삐죽이고, 눈가가 살짝살짝 떨렸지만, 결국 아휴하고 길게 한숨을 내뱉으셨다.
“됐어. 이번 주는 코넬리아도 엄청 바쁠 테니까 뭐든 용서해줄게. 맘대로 해.”
“......아.”
휙휙 내 쪽으로 팔을 휘저으면서 그런 말씀을 너무나 쉽게 내뱉으셨다.
뭔가, 한 순간에 식어버렸다.
아니, 굉장히 사랑스러운 건 사실인데. 그. 사실이긴 한데.
“아가씨.”
“응?”
“그 말,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겐 절대 하시면 안 돼요.”
“어? 어어?”
정신 차려보니 아가씨의 두 손을 내 두 손으로 모아서 감싸쥐고선 그런 말을 뱉고 있었다.
나도 내 몸의 갑작스런 박력에 놀랄 정도였으니, 아가씨는 어련했을까.
“아, 안 해. 뭐야, 갑자기.”
“뭐든 용서한다던가, 뭐든 맘대로 하라던가.”
“절대로 안 할게. 말실수했어. 다시 생각해보니까 네 말대로 위험한 말이긴 하네.”
“제게는 해도 괜찮아요.”
“뭔가 방향성이 이상한 것 같은데에. 코넬리아 지금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 맞지?”
“다른 사람에겐 절대 해선 안 돼요!!”
당연히 테레제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고 말고.
아가씨 캐릭터에게 저런 대사는 여기사 캐릭터의 큿, 죽여라와 똑같은 정도라고 생각한다.
방향성과 방식은 둘째 치고 함락당하기 직전에 하는 대사라는 건 똑같잖아.
하여간에.
다른 사람에겐 안 했으면 좋겠네.
“그럼 나도 하나 코넬리아에게 받고 싶은 약속이 있어.”
“네? 저는 아가씨의 명령이라면”
“명령이 아니라, 약속이야.”
테레제의 얼굴이 조금 진지한 낯빛을 띄었다.
나도 테레제에게 맞춰 표정을 지우고 테레제의 말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다치지 마.”
그건.
싫다.
약속하기 싫다.
테레제는 테레제 자신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남을 상처입히겠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테레제의 솔직한 이기심이었고, 나는 그것에 반했다.
그렇게 나는 테레제가 겨누는 칼끝을 향해 내질러지는 한 자루 칼날이 되기로 정했었다.
테레제의 뜻대로, 테레제의 적을 베어 가를 뿐이다.
잘못된 짓거리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스스로에게 자기위안을 주기 위해, 나의 의문, 나의 양심, 나의 이기심, 나의 약함 전부 테레제에게 맡겼다.
내 아픔은 테레제의 아픔이어야 한다.
테레제가 자신의 아픔을 내게 맡긴 것처럼, 나도 나의 죄책감을 테레제에게 맡겼으니까.
하지만, 테레제가 그것까지 회피하려 한다면.
나는.
“......노력할게요.”
“약속, 해주는 거야?”
“아이, 아가씨. 저도 아픈 건 싫어해요.”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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