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파티 준비
* * *
수업이 마쳤는데도 테레제가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테레제에게 한해서는 수업 중 수면이 길어진 탓에 수업이 끝난 줄도 모른다던가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교수가 잠시 불렀다던가, 그런 게 아닐까.
오래 기다려할까? 나는 바깥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려 했다.
이 수업은 교실을 들여다보았다간 교수가 감히 메이드 따위가하고 혼내니까 볼 수도 없고.
“가자.”
“일찍 나오셨네요?”
“응? 아아.”
내가 하려는 말을 대충 알아들었는지, 테레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손에 들고 있던 걸 내게 맡겼다.
새하얀 봉투. 금색 치장. 멋드러진 인장으로 찍은 붉은 봉랍.
웬 편지일까. 봉랍인은 자기가 조금 잘 나간다 싶은 가문이라면 개나 소나 다 쓰는 독수리의 인장이었다.
“열어서 읽어줘.”
“네. 그런데, 누가 보낸 편지인가요?”
“엘자 타레이아. 디오르시온 주 출신의 후작가 아가씨야.”
“아하....”
최근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탓에, 디오르시온이라면 그다지 좋지 않은 느낌밖에 안 든다.
그래도 테레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인 걸 보면 아무래도 괜찮을까.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어 봉랍을 뜯었다.
타레이아 가문에서 작은 파티를 열고자 하니, 부디 참가하여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적힌 편지였다.
무도회. 파티. 사교계라고 하는 그거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초대가 굉장히 뜸했었다.
애초에 유르덴 가문의 경직된 무관 분위기 탓에 그다지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에드윈 왕자와의 불화까지 겹치니 불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에드윈은 그래도 왕자라고 여기저기 잘 불러준 것 같다만.
“조금 갑작스럽네요.”
“그래?”
테레제는 그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이 엘자라는 아이가 테레제에게 편지를 건네면서 이미 한 번 사전설명을 다 했기 때문이 아닐까나 싶었지만서도.
“그 아이, 세실리아의 친구야.”
“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긴 있었다.
세실리아, 평소에도 에드윈을 포함해서 남성 하나에서 둘, 심할 때는 네 명까지 끼고 다니긴 하지만, 그 무리 사이에도 웬만해선 여성이 하나나 둘 정도가 끼어 있었다.
그럼 그 두 명 중 한 명이 엘자라는 뜻이겠지.
“그 사고 이전부터 세실리아와 친구였다는 것 같더라고. 듣자 하니 취미가 맞는 친구라던가.”
“그런데 왜 아가씨를.......”
“나도 잘 모르겠어. 세실리아가 부탁한 게 아닐까 싶네.”
“으음.”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겠지.
우리가 서디오르시온에 집적거려서 그런 게 아닐까 어림짐작했었다만, 정말 어림짐작이었을 뿐인 모양이었다.
“내가 참석하는 게 좋을까?”
“......아하하. 미묘, 하네요.”
“그 아이도 참 귀찮게 굴기는.”
초대장 아래에는 ‘S,T.i.’라 적힌 글귀가 은은하게 마력을 흩뿌리고 있었다.
‘Scline Grea’Iia’라는 엘프어로, 대충 ‘좋은 날을 기대합니다’이라는 뜻이었다.
마력을 담아 그대로 읽으면 참석하겠다는 의미가 파티 개최자에게 전해진다.
참석하기 싫다면 ‘Herhrn Kiiane’Iia.’
즉, ‘비가 올 것 같네요.’라고 마력을 담아 읽으면 된다.
‘R.S.V.P.’과 비슷한 역할을 하려나.
“줘 봐봐.”
“아, 여기 있어요.”
“Scline Grea’Iia.”
“앗......?”
받자마자 곧바로 대답했다.
순간 내가 착각했나 싶었지만, 확실히 출석하겠다고 말한 게 맞았다.
“마침 잘 되었어. 예쁜 옷을 준비해야겠네.”
마침 잘 되었다니.
무슨 의미일까.
테레제는 아무래도 이 파티에서 다른 걸 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뭘 노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 지금 바로 갈까.”
“네? 아. 네에. 외출 준비를 도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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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어울리네.”
옷가게에 갔더니, 테레제는 갑자기 내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새까만 양복부터, 교복을 닮은 원피스나 팔랑팔랑한 드레스는 물론, 새까만 상복까지 하여간 자꾸 입혔다.
인형놀이의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만, 파티에 가는 건 테레제인데 왜 내 옷을 고르는 건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입고 있는 건 짙은 회색 블라우스에, 새까만 하이웨스트 스커트.
그리고 코르셋과 코르셋에서 이어져 어깨에 매는 멜빵. 그리고 역시 검고 긴 사이하이삭스.
“스커트 길이. 조금 줄일까?”
“아, 아가씨?”
“코넬리아는 다리가 예쁘단 말이야. 조금 더 드러내는 게 좋아.”
“예쁘다니, 그게, 으. 완벽하신 아가씨께서 그런 말을 하시면 전 부끄럽기만 한데요.”
되돌아갈 수 없어져서 기쁜 건 전혀 아니었다만, 그래도 어차피 될 거면 귀여운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대는 소를 겸한다고, 못난 것보단 예쁘고 귀여운 게 훨씬 낫지 않나.
그리고 지금 정도의 조형이면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테레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꽤 보고 있으면 흐뭇해질 정도는 되니까.
꽤 나르시스트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만, 내 얼굴이라는 느낌이 적으니 어떨는지.
“완벽은 무슨. 알베트. 스커트 길이 조금 줄일 수 있을까?”
“물론이지요, 아가씨. 무릎이 보일 듯 말 듯한 높이면 괜찮겠습니까?”
“역시 알베트. 잘 알아주네.”
“제 기쁨입니다. 그럼 그 옷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테레제가 내 얼굴을 보았다. 의사를 묻는 듯한 느낌이다, 만.
솔직히 여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혼자 잘 골랐으면서, 이제 와서, 싶다.
“아가씨가 좋으시다면, 저도 괜찮아요.”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네가 보기엔 어때? 저기 거울 있어.”
“귀엽네요.”
다시 말하지만, 남 보기에 나르시스트 같은 느낌이라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느낌 다르니까.
캐릭터 아바타 꾸미는 느낌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솔직히 귀엽다고 말하지 못할 거야 없다.
다만 직접 입어야 하는 입장으로 생각하면, 음.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옷 구조상으로 불편한 건 어쩔 수 없고, 짧은 스커트는 신경 쓰이고.
“뭘까. 이 진심이 들어간 듯 들어가지 않은 듯한 목소리는.”
“아가씨. 옷은 날개라는 말이 있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코넬리아 양은 날개가 달린 자신의 모습에 조금 놀라서 당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이런 걸로 당황하면 조금 걱정되네.”
“물론 익숙해질 겁니다. 저 알베트가 정장점의 역사를 걸고 보증하지요.”
“그래. 그럼 그런 걸로 하고. 이 옷으로 할게.”
자, 확정. 끝.
옷 때문에 신경 쓰고 할 짬밥은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네. 메이드 복에 너무 익숙해져있던 게 패인이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갑작스럽네. 왜 내 옷인 걸까?
나를 파티에 참석시킬 생각이 아니기를 빌 뿐이다.
한낱 하녀 따위가 이런 옷 입고 귀족 아가씨들 사이에서 술 홀짝이고 있다간 위에 구멍 난다.
“레이디께서 참석하시는 파티의 성격이 어떻게 됩니까?”
“그게”
“그렇네. 뒤처리일까.”
“......뒤처리?”
테레제의 입에서 뭔가 느낌이 영 흉흉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렇군요. 레이디에게 파트너는 있으신지요?”
“있어. 황금색 망토가 퍽 어울리는 친구들이야. 그런데 예의가 없는 편이라서 황금망토 대신 그냥 간편한 사복을 입고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황금색 망토의 불한당이라. 옷감은 평소에 선호하시던 것으로 준비하면 되겠군요.”
황금색 망토.
나는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단 한 명밖에 모른다.
뒤처리라면, 테레제는 서디오르시온의 반룡들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테레제가 선호하는 옷감이라면 분명 방탄 방검이 되는 그 옷감이겠지.
“얼굴을 감출 필요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귀여운 베일 캡을 준비해줘. 반룡인 척 할 수 있게 뿔이 달려있으면 좋으려나.”
“알겠습니다. 파티는 언제 시작하는지요?”
“이번 주 주말. 좀 급하겠지만,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레이디께서 이번 옷을 차후에도 또 입으실 일이 있겠습니까?”
이 동네, 값비싼 옷은 자라기도 한다.
자란다고 하면 조금 어감이 이상하지만, 처음에 옷을 재단할 때 옷감에 마법을 걸어서 체형의 변화에 옷을 맞추는 게 가능했다.
성장기에 돌입한 내가 수 년 째 같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나중에도 입을 옷이라면 지금 마법을 걸어두겠다는 뜻이다만, 정체를 감추어야만 한다면 또 입을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물론, 낭비는 하지 않는 게 좋겠지.
“내가 코넬리아에게 주는 선물인걸. 금액에는 신경 쓰지 말고, 가능한 옵션 전부 다 집어넣어. 최대한 좋은 옷으로 만들어줘.”
“알겠습니다, 아가씨.”
“가, 감사합니다.”
“아냐. 나야말로 이런 것밖에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다면 레이디를 위해 여길 한 번 방문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알베트가 끼어들어 테레제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테레제는 그것을 받더니, 슬쩍 살펴보고는 아하고 표정이 굳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는데, 대체 뭘 본걸까.
“당장 가자, 코넬리아. 옷 갈아입어.”
“네? 네에.”
“옷은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유르덴 저택으로 보내드립니까?”
“아니. 기숙사로 보내줘. 주소는”
그 사이, 나는 급하게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어딜 보아도 마음이 급한 듯한 테레제의 손에 이끌려 알베트의 숨겨진 의상실에서 나왔다.
어딜 가는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테레제가 굉장히 들뜬 표정이라서 물어보기가 조금 그랬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도착했다.
역시 알베트도 가까운 곳이라서 추천해준 것이겠지, 싶었다.
“레니키안 큐리오리테 4호점? 골동품점, 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응응. 나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네 무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더라고.”
명색이 무기상인데, 하며 덧붙인다.
그런데 왜 골동품점에 온 걸까. 보통 대장간에 가는 거 아닐까.
신경 써주어서 감사하긴 하지만, 무기라면 평소 단골인 드워프네 동네에 가서 사도 되는 게 아닐까.
여러 가지 궁금점과 할 말이 있었다만, 조용히 한다.
굳이 말해서 흥을 깰 이유가 없으니까.
“안녕하세요. 어떤 상품을 보러 오셨나요?”
들어서자, 접객원이 미소와 함께 용건을 물었다.
테레제는 아무 말 없이 접객원에게 알베트에게서 받은 명함을 건네었다.
접객원은 그걸 보더니, 옆의 다른 접객원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몇 마디 대화하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돌아왔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상점이 흔히 그렇듯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골동품이 쌓인 벽 한 면을 툭 밀자, 문처럼 드르륵 열렸다.
......알베트 때와 똑같았다.
비밀 아지트, 좋지. 안쪽에는 금고나 한약상처럼 서랍이 많은 작은 방과 사람이 하나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디트리히 유드가른이라고 합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알베트가 아레이유라는 스틸레토를 추천하더라고.”
“이런. 굉장히 귀한 물건을 찾으시는군요.”
디트리히는 과장스레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랍장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을 열어, 서랍 째로 내렸다.
서랍 안쪽에는 흠 없이 새까만 스틸레토 한 자루가 하얗고 부드러운 천에 감싸여 있었다.
“생각보단 평범하게 생겼네.”
“하하. 전설의 무기란 보통 그런 법이지요.”
“전설의 무기? 그런 말은 알베트에게서 못 들었는데.”
“알베트 녀석도 참. 가장 중요한 걸 말하지 않았군요. 이 아레이유는 수 천 년 전, 영웅 군터 클라우디우스가 아르덴킬라이나에 강림한 고룡 드라케아스의 목숨을 끊는 데에 사용했었다던 바로 그 대검입니다.”
보십시오, 라며 디트리히가 아레이유를 꺼내어 마력을 담았다.
화르륵. 아레이유의 칼날을 타고 불길이 타오르더니, 타오르는 검의 형태로 굳어간다.
조금 라이트 세이버 같은 느낌일까. 멋있다.
솔직히 갖고 싶긴 한데, 그 전설이란 게 수상했다. 아무리 봐도 사기 같았다.
대검이라고 그랬는데, 디트리히가 들고 있는 건 아무리 보아도 장검 정도였다.
“하하. 그러실 줄 알고 일부러 본 요리는 뒤로 미루었지요. ‘노래하여라, 아레이유.’”
불길이 꺼지고, 얼음이 아레이유를 타고 얼어붙는다.
이번에는 확실히 대검의 형태라고 할 만했다.
뭔가.
뭔가 굉장히 멋있다.
“살게.”
“엣. 아, 아가씨.”
“네가 그런 눈을 하고 있는데 다른 걸 볼 필요가 뭐가 있겠어.”
앗.
아앗.
정말로 여신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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