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어느 날 아침
* * *
테레제의 아침을 준비하기위해 평소대로 식당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길가에 여러 메이드들이 모여 있었다.
뭐 신기한 거라도 있는 걸까. 귀여운 짬타이거라던가?
나는 연관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안, 미안. 실수로 물을 쏟아버렸지 뭐야.”
“어머머. 눈이 보였다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언니도 짓궂으세요. 피한다니, 그건 저 아이가 혼자 걷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진 걸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저 애에게 물이 쏟아진 걸 말하는 건가요?”
“둘 다지 뭐겠어.”
눈이 안 보인대.
메이드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누가 저 중심에 있을 지는 대충 감이 왔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작정하고 괴롭혀도 보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럼, 어떻게 할까.
발을 멈추고 잠시 고민했다만, 아무래도 못본 체 할 순 없었다.
동기고, 적이고 자시고, 내 인생을 시작하게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그리고, ...아직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만두는 게 좋을 걸.”
최대한 말투를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게 아까웠다.
내 목소리를 들은 메이드들의 시선이 데구르르 내게로 굴러온다.
“......뭐야 이 년은?”
“그, 그으. 언니. 유르덴 가문의 메이드에요.”
“아. 칼을 차고 군화를 신는다는 그 메이드?”
아마 이 무리의 머리로 보이는, 가장 중심에 있던 메이드가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여자아이치고는 키가 굉장히 크고 몸매가 상당히 육감적인 메이드였다.
메이드답지 않게 짙은 화장을 하거나 살색이 많이 드러나는 메이드복을 입는 등, 여기저기 멋 부린 기색이 가득했는데, 응대 담당의 팔러메이드라고 해도 과할 정도였다.
정부가 메이드 코스프레를 한 느낌. 그냥 프렌치 메이드 같은 느낌이다.
아마 모시는 도련님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그런 아이가 아닐까.
오네쇼타물을 찍으려고 혈안인 아이들이 가끔 있더라고. 가장 쉬운 신분상승의 기회잖아?
“야. 안 꺼져?”
“같은 하녀 신세면서 누가 못났다 누가 잘났다 하는 거, 좀 한심하지 않아?”
“와. 너 좀 웃기다. 그럼 너는 뭔데? 우리가 뭘 하건 웬 오지랖이야?”
“물론 유르덴의 아가씨를 모시는 하녀지. 그리고 나의 아가씨께선 약자가 괴롭힘 받는 걸 보고도 그냥 두고 지나가실 성격이 아니시거든. 나는 아가씨의 뜻을 따를 뿐이야.”
“......이게.”
“그러는 너는 아무래도 매일 밤 주인님을 타느라 자기 신분을 망각한 모양이네.”
“무, 뭐?! 감히 이 년이!”
휘둘러지는 팔을 붙잡는다.
느려느려. 나를 때리고 싶으면 왕자님의 따귀 정도는 가져오라는 거야.
“이게 누구 팔을 잡는 거야!!”
도발에도 성공했고, 대충 겁만 주면 도망치려 할 줄 알았더니, 조금은 깡이 센 모양이었다.
곧바로 다른 팔을 뻗어왔다. 휘두르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 쪽으로 곧바로.
기왕이면 폭력 없이 해결하고 싶었는데.
나는 붙잡은 메이드의 팔목에 조금 힘을 주었다.
멍 정도는 생길 거다.
“짙은 치자꽃 향기.”
프렌치 메이드 양의 손이 내 눈앞에서 멈춘다.
나도 힘을 넣기 직전에 멈추었다.
주저앉아있던 아일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한 탓이었다.
“무척 비싼 향수를 쓰시네요.”
“어?”
“옷감이 흔들리는 소리가 적네요. 짧은 치마려나. 그에 비해 머리카락은 굉장히 길어요. 높은 굽에, 큰 보폭. 생기 있고 자신감 있는 성격이에요. 아마 21살?”
몇 마디 툭툭 내던진 아일린은 얼빠진 채 자신을 바라보던 메이드 무리 중에서 한 아이에게 곧바로 향했다.
그 아이는 아일린에게서 빼앗았는지, 지팡이를 안고 있었다.
분명 눈이 보이지 않을 아일린이 정면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깜짝 놀라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제야 아일린은 발을 멈추고 지팡이 주세요, 하고 말했다.
놀란 메이드가 묘한 박력에 눌려 자기도 모르게 지팡이를 돌려주고 만다.
지팡이를 돌려받은 아일린은 다시 몸을 돌린다. 프렌치 메이드 양에게 정면으로.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어, 어떻게.......”
“그게 중요한가요?”
“으윽!”
“그리고, 음. 주인님과 사이가 좋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메이드라면 조금 더 깔끔하게 다녀야 하지 않을까요? 치자 향기 사이로 밤꽃 냄새가 나거든요. 으으음. 오늘 아침이려나. 아마 주인님이 깨어나기 전에”
“다, 닥쳐! 조용히 해!”
프렌치 메이드 양이 손으로 자기 입가와 깊은 가슴골을 가렸다.
그런데 왜 저길 가리는 걸까.
“그럴게요, 뭐. 저는 누구랑 달라서 그만둬주세요. 라고 말하면 그만두는 편이거든요.”
“진짜 짜증나......, 뭐야 대체......!”
프렌치 메이드 양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계속 붉어지고 있던 얼굴이 완전히 토마토처럼 물들어선 빽 소리질렀다. 가자, 라고.
무리를 짓고 있던 메이드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도 그냥 갈까, 싶었다만 한 메이드가 계속 짓밟고 있던 헤드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주워서, 먼지와 흙을 탁탁 털고, 아일린에게 다가갔다.
“......이거 좀 치워주지 않을래?”
어느새 코앞에 칼끝이 들이밀어져 있었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고, 쳐내려고 해도 얼마든지 쳐낼 수 있었다.
다만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여긴 학교야. 흉흉한 걸 겨누지 말았으면 하는데.”
“왜 저를 도왔나요?”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만.
아일린이 감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일린이 어떠한 방식으로 주변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건 잘 알겠는데, 없는 시각으로 시선을 맞춰오는 건 역시 조금 신기하다 싶었다.
“옛날에는 조금 더 말투가 편했던 것 같은데.”
“......옛 정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거야?”
“그러려나.”
아일린의 눈썹이 살풋 일그러진다.
그러더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칼날을 지팡이 속으로 되돌렸다.
“자신을 죽이려던 상대에게 잘도 말을 걸어오네. 머리 이상하다는 말, 들은 적 없어?”
“남의 과자를 빼앗아 먹는 아이에게 들을 말은 아닌걸.”
“......뭐?”
아일린이 한 발자국 다가온다.
막지 않는다. 다가오는 작은 손도 막지 않았다.
손이 내 얼굴에 닿았다. 새까만 어둠 속을 더듬는 기분이 아닐까.
약물 탓에 잔뜩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린의 손바닥에는 깊은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미안. 몰라. 네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겠어.”
손이 떨어져간다.
가슴의 절반이 떨어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눈이 망가진 게 이렇게 아쉬운 건 처음이야.”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서 손등이 아파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일린의 헤드드레스가 망가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억지로 그런 말을 뱉었다.
아일린은 내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스커트를 털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용케도 흙이나 먼지를 잘 털었다.
도와줄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더러운 건 다 털어낸 뒤였다.
젖은 건 금방 마르겠지. 말리는 걸 도와줄 수는 없다. 마법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아일린이 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헤드드레스를 달라는 소리일까. 나는 엉망진창이 된 헤드드레스를 아일린에게 건네었다.
“너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
“역시 그렇지....... 뭐?”
아일린이 헤드드레스를 적당히 정돈해 머리에 썼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진흙물이 든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나는 누가 필사적으로 믿어달라고 외치는데, 그걸 무시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그, 그럼.......”
“앞으로 쭉 지켜볼게요. 코넬리아 양.”
아일린이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141번을 그 시설에서 끌어낸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여태 후회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으, 으응.”
아일린이 지팡이 끝으로 길 앞을 톡톡 두들기며, 천천히 멀어져 간다.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풍겨나온 은은한 먹의 냄새만이 옛 자리에 남아 머물렀다.
은은한 소나무의 향기. 불태워지며 모진 고난을 겪었으나 여전하게도 송화의 향내를 꼿꼿이 풍기는 것이, 눈을 잃고도 아름답게 잘 자라준 아일린에게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세상을 화선지 삼아 그 칼끝을 그어내려도, 결코 번지지 않는 것이리라.
“다녀왔습니다.”
불이 꺼져있어서 조용히 말하고 방에 들어왔다.
음식이 담긴 트레이도 조용히 끌고 왔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
“앗.”
일어나 있었던 모양이다.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침대 위에서 몇 개나 되는 결계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악몽을 꾸진 않았는지, 울고 있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요즘은 이런 식으로 내게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긴 하지만, 아무래도 역시 어려운 아가씨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죄송해요. 금방 아침 준비할게요.”
“메뉴가 뭐야?”
“스크램블 에그에 베이컨. 그리고 버섯 스프네요.”
“으음. 커피도 준비해줘.”
“넴.”
저번처럼 빠르게 내릴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내리도록 하자.
요리를 하나하나 테이블에 내려놓고 있자니, 테레제가 자기 손으로 설치한 결계를 자기 손으로 깨고, 마치 고치에서 빠져나오는 애벌레처럼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잠옷 차림으로 터덜터덜 걸어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나는 음식의 세팅을 끝내고 테레제의 등 뒤로 가서, 반쯤 흘러내린 상의를 제대로 입혔다.
테레제는 입술을 삐죽이며 단추를 채웠다.
아마 자다가 멋대로 풀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답답하다는 듯하니까.
“코넬리아. 나 자는 사이에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날이 좋았거든요.”
“그래?”
테레제의 등 뒤에서 곧바로 커튼으로 다가가, 활짝 열었다.
확실히 좋은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