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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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온 리테니가른은 서디오르시온 반룡국의 상국이었다,
에가른이라는 이름의 고룡을 머나먼 조상으로 둔 그는 431년 전에 발발한 민란을 진압하고 구국의 영웅이 된 이래로 줄곧 서디오르시온 반룡국의 실권을 잡고 있었다.
197년 전에 선왕이 붕어하고 여왕 미네드라카 2세가 139세라는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그는 자신을 따르는 간신의 무리를 시켜 여왕의 눈을 가렸으며, 미네드라카 2세가 250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르던 해엔 여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스스로 상국의 자리에 오르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그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우선, 그가 군세를 이끌고 진압한 민란에 대해서 알아야 해.”
테레제가 그렇게 말했다.
서디오르시온은 대대로 리테니칼카르트 왕조의 군주가 통치해왔다.
고대에는 나름대로 꽤 강력했던 나라였던 것 같지만, 용사라는 칼날을 앞세운 인류유일제국 드라킬라이나의 맹습에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가 왕국의 절반을 제국에 떼어주고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 같다.
그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나고, 고대의 전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젊은 반룡들이 사악한 인류의 제국으로부터 동디오르시온을 수복하자며 들고 일어났었다는 듯했다.
‘리테니칼카르트 왕조는 제국에게 너무 순종적이니 갈아엎자!’고 외쳤다는 듯하다.
“두 가지 설이 있더라. 고향이 동디오르시온인 유력자 반룡들이 선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설. 그리고 단순히 리테니칼카르트 왕조를 엎고 싶었던 누군가가 동디오르시온을 명분으로 삼아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설.”
“잠깐만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반룡의 수명은 어떻게 되나요?”
“선조 드래곤의 피를 얼마나 물려받았느냐에 따라 다르다더라. 1세대 반룡이라면 늙지도 않고 죽임당하지 않는 한 죽지도 않지만, 평균적으로는 1,000년에, 정말 피가 옅은 경우에도 300년 정도는 너끈히 사는 것 같더라고.”
무척 오래 사네.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일어난 반란은 당시 대장군이었던 미드라온에게 정벌된다.
“그럼 여기서 코넬리아에게 질문.”
“질문, 말인가요?”
“두 설 중에서 어느 설이 더 마음에 들어?”
“......으음.”
역시 동디오르시온은 명분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반룡들이 엄청 오래 산다고 하니까, 쉽게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고향에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더 이해되어서, 그게 마음에 드네요.”
“그래?”
테레제는 의외라는 듯이 그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니었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뭐어. 마음에 걸릴 정도는 된다고 할까.
“사실 이젠 그것도 별로 안 중요해.”
“네?”
나보고 알아야 한다면서요.
이 말괄량이 아가씨야.
“중요한 건 미드라온은 반란군을 진압했지만 권력의 달콤함에 굴복해 간신의 무리가 되었다는 거야. 반면 진압되었으나 살아남은 반란군의 후예는 이제 불타는 복수심을 ‘애국’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되었지.”
“아이러니하네요.”
“그래. 하지만, 더 아이러니한 게 뭔 줄 알아?”
테레제가 웃는다.그리고 우리가 탄 허름한 마차가 덜컹거리며 멈추었다.
타이밍 나쁘게도.
차창이 열린다. 꽤 훌륭하지만 많이 상한 갑옷을 입은 병사가 우리를 보았다.
나와 테레제는 똑같이 새까만 수도복을 입고 있었다.
하얀 깃이 들어간 베일과 새까만 원피스. 흔히 말하는 수녀복이라는 그거다.
여기에 더해서 미사보를 닮은 레이스 보자기로 얼굴까지도 덮어 숨겼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 한 뼘의 맨살도, 단 한 올의 머리카락도 내보이지 않은 상황이다.
어찌 보면 이게 더 수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만.
“이보시오. 얼굴에 그거 벗고, 통행증 주시오.”
“.......”
나는 말 없이 준비한 서류를 병사에게 내밀었다.
물론 얼굴을 가린 레이스 보자기를 벗지도 않았다.
미사포를 닮긴 했지만, 미사포보다 조금 더 올이 촘촘해서 안쪽이 정말로 안 보인다.
당장 테레제의 얼굴을 봐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마법이라도 썼는지 안쪽에서 바깥을 보는 건 아주 잘 보이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흠.......”
서류가 넘어가는 도중에 무엇인가가 떨어져 땡그랑, 하는 소리를 내었다.
병사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웠다.
마치 방금 주조한 듯 번쩍거리고, 톱니가 전혀 깎이지 않은 대금화일 것이다.
병사는 흘긋흘긋 좌우를 한 번 보더니, 금화를 품에 넣고 서류를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통과.”
“네? 오벤 상병님. 누굽니까?”
“순례자다. 주님의 종이 가시는 길을 막을 셈이냐?”
병사는 그렇게 자기 부하에게 말하며 차창을 직접 닫아주기까지 했다.
성문이 천천히 열리고, 드넓은 황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황야가 제국령 동디오르시온과 서디오르시온 반룡국을 가르는 국경이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더 아이러니한 일에 대해서요.”
“아, 그래. 맞아.”
테레제는 국경선에 도착하자마자 갑갑하다는 듯 베일과 레이스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흥이 깨졌다는 듯이.
“그 복수심으로 가득 찬 새 애국자들은 미드라온의 목을 자르기엔 자기네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제국의 힘을 빌리려 했어.”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기네요.”
“아쉬운 점은, 제국이 그 애국자들에게 힘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는 거야. 서디오르시온은 이대로 있는 게 우리에게 있어 제일이거든.”
서디오르시온 반룡국은, 말하자면 방파제였다.
반룡국의 서쪽엔 수인족의 나라가 수도 없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직접 국경을 맞대고 관리하려면 귀찮아질 뿐이니, 서디오르시온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빌려주지 않으니 제국의 국경을 침범한 건가요?”
“물론 화풀이도 하고 싶었겠지. 약탈도 꽤 재밌었을 테고.”
오를레베트가 일전에 찾아왔던 이유도, 반룡들이 총기를 들고 국경을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단, 제국을 귀찮게 할 생각이 더 큰 거야. 견디고 견디다 못해 화가 난 제국이 군대를 이끌고 서디오르시온을 아예 한 번 쓸어버리도록.”
“그거 괜찮은 걸까요?”
“몰라. 어제 한 번 생각해봤는데 꽤 괜찮게 들리지 않아?”
“글쎄요. 어떠려나.”
대답을 하긴 했는데, 어디서부터 테레제가 지어낸 말이고, 어디서부터 진실인지 모르겠다.
잠시 대화가 끊긴다. 낡은 마차는 터덜터덜 잘만 갔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갔으려나. 마부석과 이어진 쪽창이 열렸다.
“아가씨. 거의 다 왔습니다.”
“그래.”
테레제는 툴툴대면서 벗어던졌던 베일과 레이스를 다시 썼다.
창밖에는 몽골인의 게르를 닮은 천막이 잔뜩 쳐진 군문이 하나 보였다.
경비병의 앞에서 마차가 멈춰서고, 나와 테레제는 마차에서 내려 입구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 경비병은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물론 평소라면 역에서 곧장 공간이동으로 날아왔겠지만, 오를레베트가 제국 바깥으로 나가는 공간이동 기록을 여기저기 감시하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경비병은 나와 테레제를 중앙의 큰 천막으로 안내해주었다.
“대장군님! 전쟁의 총희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하라!”
“어서 드시지요.”
전쟁의 총희.
언제부터인가 테레제는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이름을 숨겨야만 할 때가 많으니, 별명이 생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다만,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인이 앞에 있으니 높여서 전쟁의 총희라 부른다만, 까놓고 말해서 전쟁의 암캐나 다름없는 이름이지 않나.
이러하지 않느냐, 하고 감히 테레제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자칫 나의 개인적인 생각만으로 테레제를 모욕하는 짓거리가 될 수도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테레제 본인이 그리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뻐하지도 않았지만
‘내게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
처음 그 별명을 들었던 날, 테레제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었다.
슬퍼하지도 않고, 자조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그저 조용하게.
천막을 연다.
반룡 전사들이 좌우로 늘어섰고, 중앙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네요, 대장군님.”
“오래간만이오! 나야말로 우리 승리의 여신이 그리워 밤잠을 못 이루었지!”
“여신이라니. 수도복을 입은 소녀에게 할 말이 아니랍니다.”
“하하하. 실수했군.”
테레제는 더 말하지 않고 상자를 소환했다.
평소 팔아오던 총기가 담긴 상자가 아니라, 노른데아셀의 교수에게서 받아온 지팡이가 가득 담겨있는 상자였다.
반룡 전사들이 다가가 상자를 확인해보고는 미간을 찌푸린다.
“대장군! 이건 총이 아니라 나뭇가지이외다!”
“나뭇가지?”
“나뭇가지가 아니라 지팡이랍니다.”
한 반룡이 격분한 듯 상자를 엎었다.
안에 가득 들어있던 나뭇가지가 우르르 쏟아진다.
“오랫동안 우리 요청을 개무시하더니, 이딴 걸 팔겠다고 찾아온 건가!?”
그 반룡이 소리치며 칼을 뽑아들었다.
머리 끓는 점 굉장히 낮네. 나도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상처 탓에 만전은 아니다만, 귀환 마도구를 사용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검을 뽑자 사방의 반룡들이 우루루 검을 뽑아들었다.
뭔가 천막의 어두운 분위기 탓일까. 천막 중앙의 테이블 탓일까.
옛날 옛적에 조직폭력배 영화에서 본 듯한, 동시에 회칼을 뽑는 풍경이 오버랩되었다.
“이거, 좀 볼품없어 보여도 그렇게 나쁜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작작하라! 당장 목을 쳐주겠다!”
“너야말로 작작하라!”
대장군이 소리치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격노하던 반룡이 얼굴을 구기고 그 자리에 멈췄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들려주실 수 있겠나?”
“이거 그다지 나쁜 물건이 아니라니까요.......”
테레제는 한숨을 쉬며 서류 하나를 대장군의 앞에 소환했다.
저 지팡이는 본래 수인족에게 가야 할 물건이었기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교적 나쁜 물건이 맞긴 맞다.
비교적.
하여간에 대장군은 서류를 주워들더니, 읽기 시작했다.
“......흠.”
“불평이 있다면 그 이단심문관에게 해주세요.”
이단심문관?
오를레베트 그거 이단심문관이었어?
“그대도 곤란했겠어. 이해하겠다.”
“대장군!! 한낱 상인 따위가 저희 대 반룡국을 기만하게 놔두실 겁니까!!”
“너는 우리의 적이 역적 미드라온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아군을 늘리지 못할망정 적을 늘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적을 늘리는 건 어떠신가요?”
테레제가 입을 열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나도 놀라서 테레제를 보았다가, 문득 마차에서 테레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속히 대답하라.”
명령이다.
하지만 테레제는 싱긋 웃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어 말한다.
“저는 제국의 신민이기에 이단심문관이 두려우나, 대장군께선 그럴 이유가 없지 않으십니까?”
“내 칼을 빌릴 셈이냐?”
“뱀 같은 년이로다!”
“저걸 즉시 참하여 제국으로 보내십시오, 장군! 저것의 목이라면 제국의 원조를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여봐라! 칼돈!!”
전사들 가운데 하나가 목소리를 높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곧바로 칼을 휘둘러, 그 누군가의 검을 막아냈다.
나보다 훨씬 큰 덩치였지만, 오히려 내게 힘으로 밀렸다.
주변에서 칼부림이 일었지만, 테레제는 태연한 모습으로 이어 말한다.
아니.
태연하지 않다.
오직 나에게만큼은 테레제가 작게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혀를 떨진 않았다. 정말 대단한 아이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반룡이 제국의 귀중한 이단심문관을 죽였다는 것이겠지요.”
“윽!? 저, 저저저!!”
“그렇게 되면 제국의 분노는 황무지의 반란군 따위가 아니라, 왕국의 백성을 잘 이끌지 못한 왕국의 머리로 향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검을 거둬라.”
“대장군!!”
“그리고 전쟁의 총희여! 이 나뭇가지에 대한 대금은 치르지 않겠다! 당장 떠나라!”
테레제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폭약 한 더미를 지팡이 상자 위에 재차 소환한 뒤, 천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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