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맛있는 식사
* * *
“다녀왔습니다.”
바깥은 아직 밝았다.
30분만 더 지나면 땅거미가 내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밝았다.
하지만 테레제의 기숙사는 어두컴컴했다.
커튼을 치고, 불도 켜지 않았다. 머나먼 옛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이 불을 켜면서 ‘너희가 무슨 어둠의 자식들이냐’하고 말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왔어?”
이불 속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낮잠을 자고 있던 모양이다.
“불 켜도 괜찮을까요?”
“으응.......”
테레제에게 허락을 받은 마력등에 마력을 넣어 불을 켰다.
주종관계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다지 남에게 말해도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테레제는 어두운 곳에 있다가 인공적인 불빛 때문에 갑작스럽게 사방이 밝아지게 되면 놀란다.
이것도 성장한 덕분에 놀라는 선에서 멈추는 거지, 좀 더 어릴 적에는 발작했었으니까.
“식사는 꼬박꼬박 잘 하신 모양이네요.”
“미안해. 조금 더럽지?”
“아뇨. 이런 걸 처리하는 건 제 일이었으니까요.”
테이블에는 먹고 남은 음식 포장지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로 가서 정리한다.
상한 걸 먹었다가 배탈이 나진 않으려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아마 괜찮겠지.
여긴 노른데아셀.
한낱 요리사마저도 간단하게나마 보존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제국 최고의 시설이다.
배탈을 걱정하기보단 먹은 게 부실하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게 먼저겠지.
물어볼 수는 없지만.
“윌리엄에게 들었어. 다쳤다면서?”
“아, 아뇨. 그냥 긁힌 상처에요.”
“혹시 드래곤에게 긁혔니?”
“아하하.”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묻는 테레제에게 마른 웃음으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테레제는 이불로 몸을 감싸고서 자기 다리를 안았다.
그리고 머리를 살풋 기울이고서 옅은 미소로 말했다.
“하마터면 너를 잃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오더라.”
“영광이에요.”
“그래서 아침부터 울다가 지쳐서 자고 있었어.”
“죄송해요, 아가씨.”
“죄송할 필요 없어. 실은 나 말이야, 네가 돌아온 게 너무 기뻐서 당장이라도 이 이불 속에서 뛰쳐나가 품에 한가득 너를 안아보고 싶지만 참는 중이거든.”
“으음. 저는 괜찮은데요.”
“아냐. 혹시라도 너를 안았는데 감촉이 안 느껴지면 어떻게 해.”
더 말할 것도 없다만, 테레제는 엄청난 겁쟁이다.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할 따름이다.
“이게 꿈이라면 어떻게 해?”
“꿈 아니에요.”
“그렇지만 지금 코넬리아, 팔찌 안 끼고 있잖아.”
아.
그래서 그랬구나.
꿈이라고 생각해서 묘하게 차분했던 걸지도 모른다.
“꿈 아니라니까요.”
다가가서 테레제를 안았다. 무서워하고 있는 주제에 피하진 않았다.
테레제가 작긴 하지만, 나도 꽤나 작은 편이라서 품에 꽉 찼다.
“코넬, 리, 아아아.......”
“앗, 아가씨. 울면 안 돼요. 눈물 자국 남아”
“흐아아아아아앙!”
테레제가 내게 파묻혀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뭐. 기껏 해봐야 겨우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정도 나이니까.
나는 테레제의 등을 열심히 토닥토닥해줬다. 먹힐 지는 모르겠다만.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뭐.
테레제가 진정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땅거미가 지고, 석양이 타오르다가, 순식간에 밤이 내려왔다만, 테레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석양이 빨갈 무렵에는 이미 울음을 그치고, 창문 바깥이 새까맣게 변했을 무렵엔 이미 훌쩍거리는 것도 멈췄다만, 역시 떨어지지 않았다.
잠든 걸까 싶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배고파.”
오랜 침묵 끝에 테레제가 마침내 내뱉은 한 마디였다.
테레제는 천천히 떨어지더니, 새빨간 얼굴로 웃었다.
귀엽다. 왜 이런 애가 싫다는 건지, 에드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라면 매일매일 붙어있을 자신이 있는데.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긴 하지만.
“그러면 제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받아올게요. 그런 얼굴로 외출하긴 힘드시겠죠?”
“괜찮아. 아직 먹을 게 남아있어.”
테레제가 손을 뻗자, 다 치워놔서 텅 비어있던 테이블 위에 음식이 차려졌다.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던 간단한 마법도 손짓 한 번에 해제되어 흩어졌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온갖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이라는 건 내가 아니라 테레제가 아닐까 싶었다.
성녀의 마법에 간섭했었던 때처럼, 테레제는 웬만한 마법은 죄다 간섭해서 해체할 수 있었다.
요리사 아저씨가 열심히 걸어준 보존마법이다.
비록 간단하지만, 그래도 보통 상황이라면 해제를 위한 기도문을 읊는 게 정상이다.
굳이 간섭해서 해체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뭐가 남았더라. 스테이크?”
“네. 그런 것 같아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네요.”
서당 개가 3년이면 풍월을 읊는 것처럼, 마법학교의 요리사도 점점 마법 숙련도가 높아지는 법이지.
처음 요리사랑 만났을 때엔 하루도 가지 못하고 깨지곤 했는데.
테레제의 다음 손짓으로 식기가 테이블에 생겨나고, 나는 빠릿빠릿하게 세팅을 끝냈다.
스프도 없고, 빵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바로 고기를 써는 셈이지만, 이런 상황에선 뭔가를 더 바라는 게 사치겠지.
“맛있겠다.”
세팅이 끝나자, 어느새 침대에서 빠져나온 테레제가 자리에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직 새빨간 눈이다.
“맛있게 드세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테레제가 앉고, 나도 그 옆에 앉는다.
메이드가 주인과 같이 밥을 먹는 건 어떨까 싶지만, 테레제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니 괘념치 말기를.
물론 식당에서 먹을 때에는 따로 먹는다만.
“팔찌는 어떻게 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가씨라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으음.”
테레제는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고심하는 듯한 분위기다.
“혹시 월경을 시작했다던가?”
“네? 아, 아뇨.”
“으으으음.”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성인은 오래 끼면 안 된다면서, 듀오토가 그랬었다.
하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아직 그런 게 온 적은 없다.
물론 내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왔어도 한참 전에 왔어야만 했다만.......
만약 처음부터 여자아이였을 경우의 이야기긴 하다.
“으음. 혹시 싸우다가 팔찌가 파손되었다던가.”
“앗.”
“혹시 그랬어?”
“아, 네. 습격자와 싸우다가 팔찌가 망가졌었어요.”
“그럼 그게 원인일지도 모르겠어. 확신은 없지만.”
나중에 한 번 글로리아에게 물어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해.
테레제가 그렇게 덧붙이며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확실히, 글로리아는 뭐든지 알 법한 인상이긴 하다.
“으음. 그럼 이제 이렇게 말해줘야 하나? ‘여자아이가 된 걸 축하해.’라고.”
“그건, 으음. 으으으음.”
“어쩌면 다시 돌아갈 방법이 있을 지도 몰라. 조사하지 않았으니 아직은 모르잖아?”
테레제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어쩐지 더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최대한 티내지 않도록 노력하긴 했는데, 어떠려나.
차라리 이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숨기지 말고 다른 방면으로 바꿔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숨겨지지도 않을 거 같은데.
“사과할 게 있었어요.”
“날 걱정하게 만든 거?”
“그것도 물론 죄송하지만요.”
“그걸 먼저 사과해.”
“죄송합니다.......”
게슴츠레 뜬 테레제의 눈이 몹시 무서워서 바로 사죄했다.
물론 그것부터 사과했었어야 하는 게 맞다.
펑펑 우는 거 받아줬으니까 풀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내 잘못 맞다.
“그럼 또 뭐가 죄송할까.”
“저 때문에 윌리엄 왕자에게 빚을 지게 되셨잖아요.”
“그거? 으음. 괜찮아. 코넬리아가 더 소중한걸.”
“아가씨.......”
“걔도 참. 어째서 그렇게나 왕이 되려는 걸까.”
아무래도 윌리엄은 에드윈을 몰아내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에드윈의 약혼녀에게 한 배를 탔다며 협박을 걸다니.
“그 아이에 대해선 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적절히 처리할게.”
“감사합니다, 아가씨.”
“응. 마음껏 감사해도 좋아.”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를레베트를 만났다면서?”
“아, 네에.”
“윌리엄이 아니었더라면 끌려가서 조사받았겠네. 다행이야.”
“조사, 라고 말하니까 조금 무섭네요.”
“그래, 조사. 물이 담긴 양동이에 네 얼굴을 넣는다던가, 새빨갛게 달군 인두를 네 허벅지에 살포시 놓는다던가, 네 손톱을 살짝 뽑는다던가, 네 몸에 전기를 흐르게 한다던가.”
“......그걸 보통 조사라고 하나요?”
“네 증언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니까.”
마법이 상용화된 세계니까 거짓말을 하면 잡아내는 마법이라던가 그런 게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만,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란 아무래도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진짜 한심할 정도로 똑같다.
그리고 테레제가 하는 말을 듣자 하니, 아무래도 오를레베트라는 녀석은 정말로 물증은커녕 제대로 된 심증조차 없이 나를, 아니. 테레제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성녀가 공격받았으니 테레제가 의심스럽다. 테레제 곁에 내가 없으니 의심스럽다.
의심스러우니 어떻게든 찾아서 거짓 증언이건 뭐건 토해내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런 주제에 정답을 찾아오긴 제대로 찾아왔다는 게 기분 나쁘다.
“역시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건 윌리엄이 아니라 오를레베트겠네.”
“처리라고 말하면 역시 듣기 무섭네요.”
“역시 그런가? 아무렴 왕족도 있으니까.”
테레제는 싸늘하게 웃더니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라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코넬리아.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옛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깔끔하니 좋네요. 저도 어서 나아야겠는걸요?”
“뭐, 괜찮아. 이번에는 한 번 보고 있으련.”
테레제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사실 오를레베트를 처리하는 건 간단해. 비록 단 한 번도 세어 보진 않았지만, 이 세상에 그 멋쟁이 기사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어도 우리 손가락 개수보단 많을 거야.”
“업보란 역시 슬프네요.”
“나도 슬퍼.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 옛날부터 수명이 조금 짧더라고.”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가서 조사하는 사람이 착할 리가 없잖아요.”
“어머. 코넬리아. 그거 자칫 새어나갔다간 불경죄로 잡혀갈 수도 있어.”
망토가 황금색이잖니. 테레제가 덧붙였다.
아무래도 그 오를레베트라는 친구는 굉장히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평범한 경찰이 아닐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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