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연이은 위기
* * *
유르덴 가문으로 향하는 마차에서 내려, 가장 가까운 역으로 향했다.
이대로 유르덴 령으로 돌아갔다간 글로리아에게 살해당한다.
나는 지금 평범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칼에 베인 메이드복의 검은 원피스는 수선할 수 없었기에, 윌리엄 쪽에서 입고 가라면서 준 회색 드레스 타입의 원피스에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프릴이 팔랑팔랑한 타입의 그런 옷이다만, 여기선 평범한 축에 속한다.
메이드복 원피스를 수선할 수 없다는 건,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바늘이 들어갈 만한 소재의 옷감이 아니니까.
“......맛있네.”
역에서 마법진 열리는 시간을 기다리며 샌드위치를 샀다.
작은 햄 한 조각과 채 썬 양배추를 끼워넣고, 매운 맛이 엄청 강한 초록빛 머스터드 소스를 잔뜩 뿌린 샌드위치였다.
주말의 마지막 날인 탓인지, 역은 꽤 붐볐다.
그러니, 나 말고도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사람이 간간이 보인다는 소리다.
나중에 테레제의 메이드를 그만두게 되면, 나도 역전분식이나 차려볼까.
어묵을 판다던가, 떡볶이를 판다던가.
공장이 없어서 힘들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벤또 느낌으로 초밥을 파는 것도 나쁘진 않으려나.
쌀은 그럭저럭 유통되고. 꼭꼭 쥐어서 포를 뜬 물고기를 올리기만 하면 그만이잖아.
“생각해보면, 이 동네에 날음식을 먹는 풍습은 없었지.”
폭삭 망할 각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어나 연어는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장어도 안 먹는다.
북유럽의 문어 취급이다.
그런 건 뭐, 차츰 생각해보고.
애초에 과연 우리 테레제 아가씨가 나를 놓아주려 할는지도 잘 모르겠다.
[곧 15시 25분에 노른데아셀 행 마법진이 열릴 예정입니다. 노른데아셀로 가실 승객분들께선 부디 표를 지참하시고 7번 승강장으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갈까.
나는 샌드위치의 마지막 한 입을 우겨넣고,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내다버렸다.
보란 듯 있는 쓰레기통과, 음식 포장하는 데 쓸 수 있을 만큼 양산이 활성화된 종이.
이 세계의 발전 수준에는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었다.
내가 살던 옛 세계의 인류는 화승총이 개발되고 450여년 만에 달에 갔는데, 이 세계의 인류는 첫 총기가 개발된 게 벌써 대충 잡아서 7,000년 전의 이야기라고 한다.
물론 이 세상에 마법이란 것이 있어서 총이 신분제도라는 야수의 심장을 찌르는 죽창이 되지 못한 탓이 크겠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인류제국 드라킬라이나가 국교로 삼은 메흐레니아교 탓이었다.
메흐레니아 교단이 섬기는 판테온의 주신인 메흐렌은 영원불멸의 의인화였다.
그리고 교단은 규정했다.
나아가는 것은 죄. 멈춰있는 것이야말로 영원불멸한 것이라고.
대충 책을 읽으면 메흐렌 신과 제국의 시황제가 함께 제국과 제국의 법을 세웠으니, 그들보다 못한 후대 사람들은 그들이 세운 거나 영원토록 잘 지키는 게 맞다라고 설명되어 있긴 한데.
용케도 세상이 굴러가는구나, 싶다.
제국이 1만 년 넘도록 멸망하지 않고 버텨온 걸 보면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서쪽의 수인들은 아직도 자기네들끼리 치고받느라 부족사회에 머물러있고, 북동쪽의 마족은 인류보다도 더한 신분제에 더해 용사의 견제 탓에 발전이 없고, 남동쪽의 엘프는 엘프가 흔히 그렇듯이 느긋해서 발전이 없다.
인류의 헤게모니를 위협할 적이 마족 하나밖에 없어서 다행이네.
테레제의 행보를 생각하면, 수인이 부족사회에 머물러있는 것도 테레제 같은 죽음의 상인들이 중간에서 적절히 농간을 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윽!?”
엉덩이에 뭔가가 닿았다.
잘못해서 스쳤다던가, 그런 게 아니다. 명백히 손가락에 의지가 실려있었다.
살갗 위를 벌레가 기는 듯한 감촉. 역겹다.
“우히히. 우히히히.”
등 뒤에서 불길한 숨소리가 났다.
가끔 있는 일이다. 어딜 가나, 어느 시대에서나, 사람은 역시 똑같다는 걸까.
물론 치한 하나를 갖고 사람 전체를 일반화시키는 건 부당하다는 걸 알긴 알지만.
곧바로 몸을 돌리며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정수리가 번쩍번쩍하게 텅 빈 것이, 성직자 놈이었다.
“흐, 흐에엑.”
“손목이 부러지고 싶진 않겠지. 처신 잘하라고.”
그리고 다시 놓아준다.
테레제가 곁에 있었거나, 이 남자가 성직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냥 팔목을 부러트렸겠지만.
혹시라도 경비병에게 붙잡혀서 조사당하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히, 히이이익. 처, 천벌이 있을 줄 알아라!”
“하아.......”
성직자가 그렇게 소리치더니 몸을 돌려 도망간다.
주변의 시선이 모였지만, 한 번 노려보니 다시 흩어진다.
기분 나빠.
나도 거의 항상 테레제와 함께 있었었던 터라, 이런 일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어딜 봐도 귀족인 아가씨와 함께 있는 메이드를 건들 사람은 어지간해선 없으니까.
보라색 안감의 망토는 장식이 아니다.
“하필이면 이럴 때.......”
평소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이 한심한 놈이 남자 엉덩이가 뭐가 좋다고 시시덕거리기는’하며 한숨이나 쉬고 말겠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감촉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물론 이유야 알 것 같다. 알 것 같아서 더욱 짜증난다.
그냥 손목 부러트릴걸.
나 말야. 깊이 생각하는 타입 아니었잖아.
윌리엄과 대화를 한 이후로 불쾌함이 떨어질 생각 없이 자꾸 중첩되어 눌러붙는다.
상처도 아프고. 컨디션 최악이네.
“표를 보여주세요.”
표를 건넨다. 어서 테레제를 보고 싶었다.
하다못해 손가락 닿는 곳에 날붙이를 패용하고 싶어하고 바라게 된다.
공간이동은 금방 끝났다.
언제나 느끼지만, 열차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속도다.
이런 게 있어도 발전하지 못하는 세계라니, 슬플 따름이다.
사람을 옮기는 거라면 또 모를까 물자의 대량수송은 불가능해서 열차나 배의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응용하려면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 코넬리아 양!”
대합실로 나왔더니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아는 체를 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래서 모른 체를 해보려 했다.
“누, 누구세요?”
“하하. 장난하는 거지? 내 미모란 쉽게 잊을 만한 게 아닐 텐데.”
“.......”
아니, 뭐.
솔직하게 말해서 쉽게 잊기 힘든 배우 외모가 맞긴 한데.
얼굴이 그쯤 생기면 자존감이 넘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봐줘야하는 걸까, 이건.
아마 오를레베트, 라는 이름의 청년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테레제에게 한 번 찾아와서 적당히 하라며 경고를 했었었지.
FBI나 CIA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 바로 그 청년이다.
“아. 테레제가 그날 내 소개를 안 해줬던 거야? 엄청 미움 받고 있나보네.”
“죄송합니다, 도련님. 테레제 아가씨의 지인이실 줄은.......”
“괜찮아, 괜찮아. 나는 다비드 오를레베트라고 하는 사람이야. 자.”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다비드가 품속에서 경찰 배지 같은 걸 꺼내서 내게 보였다.
와.
이거 글렀다.
저게 경찰 배지인지 뭔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만 망했다는 건 잘 알겠다.
그때엔 황금색 겉감이 휘황찬란한 보라색 안감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망토 없이 평범한 정장차림이라는 게 신경 쓰였다.
하필이면 나를 콕 집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도 무진장 신경 쓰였다.
사복 경찰 같은 느낌이잖아, 이거.
분명히 성녀 습격 사건으로 찾아온 거 맞지, 이거.
으아아아아아아.
“외람되지만, 그. 제게 무슨 일이신가요?”
“사실 테레제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찾아갔었는데, 문을 안 열어주더라고.”
“아.......”
“대충 알아보니 네가 옆에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어라.”
대체 어디서 알아본 걸까.
아니, 조사한 걸까.
역에서 기다렸으니 역무원들을 털었을지도 모르지. 목격자 하나하나 다 털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니 괜히 두려워져서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공권력은 무섭다. 아무래도 무섭다.
“상처 입었니? 거동이 조금.......”
“아, 그게.”
아.
조졌다.
인생 망했다\(^o^)
“그게, 잠시 아가씨가 보레인 거리에 다녀오라고 하셔서, 갔다가. 그. 정체불명의 습격자에게 갑작스레 습격당해서....... 다행히 한 은인분께서 구해주셨습니다만.”
“아아. 듣자하니 세실리아가 습격당했다던데 거기 휘말린 모양이구나.”
웃는 낯이 무섭다.
아, 아냐. 모를 거야.
심증으로 밀어붙이려는 게 틀림없겠지. 여기선 잡아떼자.
아니 알아도 어쩔 건데.
우와아아.
살펴보니까 주변에 수상하게 보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요.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매복까지 끝내놓았다, 이거지?
이쪽 실력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무기도 없이 상처 입은 몸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이봐요. 기사님.”
구원자 왔다.
고개를 돌리니까 윌리엄 왕자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윌리엄 왕자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안 그래도 네가 헛짓거리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이렇게 찾아왔어요. 습격자는 잡혔으니까 어서 물러가시죠.”
“네?”
“붙잡혔다고.”
오를레베트는 당황한 얼굴로 귀에 손을 대었다.
마치 헤드셋이라도 낀 것처럼.
아마 마도구 중에 비슷한 것이 있거나, 마법으로 염화를 발동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저하.”
“네. 우리 비르덴이 맡은 임무 하나만큼은 잘하죠. 알았으면 그 아이는 풀어줘요.”
“하지만, 저하. 혹시 모르니, 조금 조사를”
“그 아이를 보호한 은인이라는 게 바로 나예요. 못 알아듣겠어요?”
“칫.......”
왕자 앞에서 저렇게 혀를 차도 괜찮은 걸까.
오를레베트는 본색을 드러내어 나를 노려보더니, 팔을 흔들며 등을 돌려 사라진다.
수상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서 오를레베트의 뒤를 따른다.
“저 불경한 것. 인사도 안 하고 가는 것 좀 보라니까요.”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죠. 은혜를 이렇게 쌓아올리는데요.”
“하지만, 어떻게 아신 건가요?”
혹시 도청이라도 되고 있을까 싶었다만, 왕자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저 표정 은근히 짜증난다. 여태 몇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도중에 마차에서 내려 역으로 향했다길래 놀라서 쫓아왔어요. 왜 제 호의를 무시했나요?”
“그게.”
“됐어요. 또 시덥지 않은 이유겠죠.”
그렇게 말하더니, 또 얼굴을 내 옆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당신의 행동 탓에 제 부하 하나를 흰 머리로 염색시키고 버렸습니다. 앞으로 조심해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진짜.
되는 게 없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