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구사일생
* * *
나.
꽤 끈질긴 편이네.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반신은 강물 속에, 상반신은 강가 기슭의 모래판에 걸려 있었다.
그래도 오래 기절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범상치 않은 출혈량. 강물 탓에 지혈되지도 않고 계속 피가 새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게 깨어났더라면 아마 죽지 않았을까.
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사지를 채찍질해 겨우 모래 위를 기어올랐다.
온몸을 흐르는 물로부터 겨우 빼내어, 겨우 모래판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추웠다.
상처가 시리게 아팠다.
시설에서 나온 이래로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야 숨을 제대로 쉬고 있긴 한 건지.
“......하아아.”
나는 메이드복 주머니에서 작은 반짇고리함을 꺼냈다.
왜 그런 게 주머니에 있느냐 물을 것도 없다. 메이드의 소양이지.
작은 바늘에 실을 꿰고, 상처를 천천히 봉합했다.
소독? 감염? 잘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살아남아서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야.
흐르는 강물에 꽤 시달린 탓에 생선살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상처 깊은 곳에서 다시 붉은 물이 차오르려 하고 있었다.
피가 콸콸 흘러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깊이인데도 이리 반응이 늦는 걸 보면, 어떻게 살아있는 걸까 싶을 정도다.
“흉터, 안 남았으면 좋겠는데.”
왼쪽 어깨에서부터 두 가슴 사이를 지나, 복부 오른쪽까지.
커다랗게도 베였다. 물론 그 상처 말고도, 오른쪽 어깨나, 왼쪽 정강이나, 오른쪽 발등이나, 찔린 상처도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우선 큰 상처부터 돌보자. 바늘을 놀릴 힘이 더 남아있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되새기는 색은, 잿빛. 끊어진 것을 다시 이어 매듭을 지으리라.”
적당히 봉합을 끝낸 뒤에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
물론 성녀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기초 중의 기초다.
탈진 직전이니 얼마나 목숨이 더 남아있는지는 몰라도, 마력은 그럭저럭 남아있었다.
피부 위가 적당히 달라붙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다른 자잘한 상처에도 회복 마법을 걸었다.
상처 안쪽은 여전히 상처나고 벌어진 채겠지만, 이걸로 적당히 출혈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잘 안 붙네.......”
뭐어. 제대로 바느질해두지 않은 탓이겠지만.
흉터가 생기건 말건, 이젠 지쳐서 모르겠다.
상처 봉합을 위해서 잠시 끌어내렸었던 원피스의 상의 부분을 다시 올려서 입었다.
그런 뒤에 단추를 채우려고 했지만, 칼에 베인 탓인지 강물에 흘러내려온 탓인지 단추가 몇 개인가 떨어져 있었다.
남은 단추라도 채울까 싶었지만,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반짇고리함에 여분의 단추가 있기도 하지만, 몰라.
이젠 보는 사람이 있건 말건. 알 바야.
“역시, 없네.”
그러다 갑자기 떠올라서, 팔을 들어올렸다.
팔찌가 없었다. 깨지는 걸 눈앞에서 보았지만, 여전히 실감이 안 왔다.
팔찌가 팔목에서 사라졌지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 정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름 납득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낀 채로 팔찌가 부서지면 부작용이 온다던가, 너무 자주 뺐다 꼈다 했다던가.
깊게 생각하긴 싫다. 머리만 아프다.
하지만 단순한 내 머리가 쉽게 이 상황에 대해서 납득해버린 것과는 달리, 내 몸에 남아있는 오랜 습관이나 본능같은 것들은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미칠 듯한 괴리감. 팔찌가 있던 자리만이 홀로 붕 뜬 듯 따로 놀았다.
다른 손으로 팔찌가 빈 팔목을 붙잡았다.
빌어먹게도 가늘다. 힘을 주어 비틀면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팔목을 붙잡은 손을 천천히 끌어내린다.
“빌어, 먹을.......”
그대로 손을 주머니 속의 장도 쪽으로 옮긴다.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쓰던 장검은 강물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잃어버렸다.
이거, 몸이 움직이려나. 어차피 장검이 있었어도 쓰지 못했겠네.
“여기 사람을 찾았습니다!!”
“사람?”
젠장. 한 명이 아니야.
교회가 습격을 받았으니 당연하겠지.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목소리가 흘러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외로 교회의 병사가 아니었다.
찰그락, 찰그락.
이클리시아를 상징하는 초승달, 그리고 늑대 문장이 함께 수놓아진 서코트를 덧입은 체인메일 차림의 병사였다.
거기에 더해 등엔 커다란 사각형의 타워 실드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주제에 두 손으로는 카르카노 소총이나 크라그에르겐센 소총을 닮아 전장이 1.3m에 다다르는 기나긴 볼트액션 소총을 마치 창처럼 꼬나쥔 채였다.
총검의 길이도 50cm는 족히 되지 않을까. 총 달린 창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눈의 즐거움에는 몹시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에드윈이 세실리아를 위해 보낸 병사겠지. 마냥 좋아할 수는 없겠네.
“큰 상처를 입은 여자입니다!”
“여자? 여자라고?”
“이봐. 괜찮아?”
체인메일이 찰그락거리는 소리에 더해, 발소리가 많아진다.
강둑을 내려오는 모양이다.
처음 보고를 올린 병사는 메고 있던 방패를 꺼내더니, 모래바닥에 세게 내려찍어 고정시킨 뒤 거기에 자기 총을 대각선으로 기대게 한 뒤에 내게 허겁지겁 다가왔다.
내 안부를 묻는데다가, 목소리도 굉장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이봐! 대답 좀 해봐! 이게 대체 무슨 상처야.......”
“시끄러워....... 머리 울려요.......”
“엇. 미, 미안하다.”
병사가 투구를 벗어 자기 옆에 내려놓고선 무릎을 꿇어 나와 높이를 맞추었다.
그러더니, 미안하다. 잠시 실례하지라며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내 옷섶을 풀어헤쳤다.
무슨 짓거리야.
상처 벌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이 응급처치는 네가 한 거니?”
“.......”
대답하는 것도 힘들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병사와 같은 옷차림의 다른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가장 중앙에는 사슬갑옷이나 서코트는커녕, 평범한 정장을 입은 중년이 있었다.
병사가 아니라 기사다.
“확실히 여자로군.”
“아, 이건,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 괜찮다, 클라렌스. 저번 주에 마리에게 차였다지 않았나? 본인은 본인의 병사가 조금 굶주렸다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참된 지휘관이다. 실제 행동으로만 옮기지 말아다오.”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비르덴 님.”
“됐다. 이 소녀는 네게 맡기지. 옷이나 다시 단정하게 입히고 의무실로 데려가라.”
의무실?
감옥이나 고문실이 아니라?
물론 내가 살던 현대에서라면 인권이라는 것 덕분에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고 한들 일단 목숨부터 살려놓고 취조하겠지만, 여긴 그런 동네가 아니다.
곧장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겐, 조금 당황스러운 처사였다.
“......무슨, 짓.”
“미안하다. 벌써 응급조치를 끝냈을 줄은 몰랐어. 그, 절대 네 가슴을 보려고 그런 건 절대로 아니다. 의료행위의 일환이었어. 네가 과연 믿어줄 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이상한걸.
죽임 당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용의자로 붙잡혀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쉽게쉽게 넘어가려 하는 거야.
“그, 비르덴 님. 저 여자,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현상수배지의 남자와 머리카락 색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교회로 데려가서 한 번 조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한 병사가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가 현상수배지를 보였다.
햇빛 덕분에 얇은 종이 뒤편으로 수배지에 그려진 내 그림이 비쳤다.
하얀 머리카락의 소년. 사진이 아니라 몽타주라서 나와 그렇게까지 닮진 않았다.
“충고 고맙네만, 머리카락이 비슷하다고 다 용의자가 될 것 같으면 나도 흰머리지 않느냐?”
“하지만, 한낱 여자애가 어떻게 응급처치를 하고.......”
“딱 봐도 어디 메이드로 보이는데, 메이드가 바느질도 하나 못해서야 되겠나. 나의 눈에는 그 천벌 받을 습격자를 목격했다가 그에게 공격받은 불행한 아이로 보이는걸?”
“죄송합니다, 비르덴 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닐세. 설령 틀렸을지언정,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네. 고맙네, 친구.”
그렇습니까아.
팔찌가 없어서 살았네요.
대충 이해했다. 저 기사 아저씨가 말한 대로 연기하기만 하면 되겠네.
떠벌거려줘서 몹시 고마워요. 아하하하.
“어서 데려가게, 클라렌스.”
“예, 비르덴 님.”
클라렌스는 내려놓았던 소총을 등에 메고, 그 소총을 가리듯 타워 실드를 짊어졌다.
그런 뒤에 나를 안아 들었다. 상처가 아팠다.
오래 아프진 않았다. 아픔은 잘 참는 편이다.
빌어먹을 약 때문에.
“괜찮아? 표정이 좋지 않은데.”
“괜찮, 아요.”
“그래. 금방 나을 수 있을거야.”
운이 좋다고 해야할까.
어서 테레제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좋을 텐데. 걱정된단 말이지.
발을 옮길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병사의 진영은 다행히도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한 천막으로 들어섰다.
“의무관님! 계십니까?”
“앙? 뭐야. 습격이라도 당했냐? 누가 죽었어?”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습격당한 민간인을 찾았기에.......”
“비르덴도 참 정이 많단 말이지. 이런 거 주워와서 귀찮은 일만 늘린단 말야.”
클라렌스가 나를 침대에 눕히자, 의무관이 와서 확인한다.
꽤 깔끔한 응급처치네라며 의무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뭔가 가져와서 내 상처에다 부었다.
“히, 히야아아아아아악!??”
“오. 깔끔한 비명소리.”
“무, 무슨 지, 짓거리으아아....... 흐아, 흐아야아악.......”
“근데 보통 이거 한 컵에 기절하곤 하는데, 얘는 좀 끈질긴 아이네.”
“으그으윽....... 으아, 으아앙.........”
꼴사납다고 해도 좋다.
이건 진짜다.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상처 벌어지니까. 그만 좀 자라.”
의무관이 소독약아마 맞을 거다을 한 컵 더 가져와서 발등의 상처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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