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주벌
* * *
“성녀 후보님 말이지.”
성녀 후보의 행적에 대해선 굉장히 금방 잡아낼 수 있었다.
시험장에서 발생했던 사고 덕분에 마력을 제어하는 법을 깨달은 성녀 후보는 그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하려는 생각인지, 제도??의 거리를 순회하며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상이군인, 독거노인, 고아 등, 사회의 보살핌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회복마법을 사용해 준다는 소문이,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들려왔다.
그야말로 성녀나 보일 법한 행적이다.
“봐봐, 이 팔을. 3년도 더 이전에 오크가 잘라갔던 팔이 이렇게 깔끔하게 나았다니까?”
잃어버린 사지의 재생에는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질병이나 상처는 망가진 부위만 떼어내고 고치면 그만이지만, 잃어버린 신체는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성직자가 사지재생의 마법을 사용하려면, 비싼 마석을 사용하거나, 성직자가 무리해서 자기 수명을 메흐렌 신께 바치고 마력으로 등가교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조차도 평범한 신부 정도로는 힘들다는 모양이지만.
“정말 만 번을 감사해도 부족해.”
성녀 후보 세실리아는 노른데아셀 학원은 물론, 이 세계 통틀어서도 따라갈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많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사지재생 쯤이야 간단하겠지.
그래도 한계가 있는지, 하루에 서른 명 정도밖에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 같지만.
다만, 그녀의 행동이 회복마법을 팔아 수입을 올리고 있던 메흐레니아 교회에게 타격이 되진 않을까 싶긴 했지만.
내 알 바도 아니고.
어차피 세실리아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대다수 평생 일하고, 평생 교회에 얼굴을 내밀어도 그저 하루의 기도나 하러 교회에 올 뿐이지, 평생 일해 모은 거금을 선뜻 맡기고 신의 은총을 구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에겐 성녀님의 축복이다며 작은 은혜를 베풀고 이미지 관리하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제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셔서요. 얼굴이라도 어떻게 뵐 수 없을까 싶었어요.”
“그러냐? 뭐. 잘 되길 바란다.”
여러 사람들의 말을 종합한 결과, 세실리아는 오늘 보레인 거리에 갔다는 것 같다.
선전활동이니만큼 나름 패턴을 갖고 순회를 돈다는데, 세실리아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그녀를 따라다니던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이미 회복마법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상이군인이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가서 기다리는 등, 세실리아를 일주일 이상 따라다녔다고 자랑스레 말할 정도였다.
그럼 맞겠지.
나는 망설임 없이 학원 거리에서 떠나 보레인 거리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서 깊은 자동인형의 거리는 항상 고즈넉하고 정적인 모습을 탈피해, 사람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가 왜 평소엔 조용한 거리인 건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음.
테레제의 사업 탓에 몇 번 찾아온 적이 있으니까, 라고 대답해주겠다.
“어제 꽤 막막했던 것에 비하면, 쉽게 찾았네.”
마침 세실리아는 온몸에서 빛을 발하며 나병에 걸린 여인을 치료하고 있었다.
망가지고 썩어 문드러진 부위가 많은 탓인지, 굉장히도 마력을 많이 쓰고 있었다.
단 1초만에 사용된 마력만 해도 일반인이라면 1년은 족히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치료가 끝나고, 세실리아가 일어선다.
일어서려다 비틀거린다. 바로 옆에 있던 사제들이 그녀를 부축하고, 사람들을 해산시킨다.
사람들은 아쉬운 듯 성녀를 바라보다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교회로 가나.......”
마침 보레인 거리에는 제국의 시작과 함께 세워진 기계장치의 교회가 있었다.
태엽과 황동으로 만들어진, 스팀펑크스러우면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과 그것을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인형이 설치되어 있다는 듯했다.
나는 적당히 모습을 감추고 세실리아의 뒤를 쫓았다.
적당히 겁줄 방법을 생각하면서.
물론 뭐든지 폭력으로 해결한다던가 그러는 건 좋지 않지만, 제일 간단한 방법이긴 하다.
/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세실리아는 보레인 교회의 거대한 목욕탕에 홀로 몸을 담근 채 그렇게 생각했다.
어린 부제가 시중을 들어주겠다곤 했지만 거절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
얌전히 몸을 담그고 있으면, 천장에 달린 황동관에서 쉬이이하고 뜨거운 증기가 피어오르는 소리가 자꾸 들려왔지만, 그마저도 계속 듣고 있자니 어째 힐링되는 것 같았다.
“기왕이라면 유르덴 집안과는 적대하고 싶지 않은데.......”
세실리아는 상황을 깨우친 이후, 줄곧 그 생각을 해왔다.
본래 원작의 주인공 세실리아는 지금의 그녀와는 달리, 성녀로서 정의감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 탓에 여러 가지 뒤가 구린 일을 하던 악역영애 테레제의 뒤를 캤고, 결국 여러 엔딩에서 테레제와 유르덴 가문을 축출하는 데 성공하며, 성녀가 되어 공략대상과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건 게임의 이야기고, 무엇보다도 ‘엔딩’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다.
엔딩에 도달하기까지, 플레이어는 선택지에 따라 몇 번이고 세실리아를 죽이게 된다.
테레제에게 명령받은 아일린의 칼날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무리 지금 테레제의 곁에 있는 게 원작의 아일린이 아니라지만.
무서워.
이미 테레제에게 한 번 폭사할 뻔했다.
만약 기억을 되찾기 전의 세실리아가 에드윈의 호감을 쌓아놓지 않았더라면, 그때 시점에서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첫 번째 데드 엔딩.
함께 개방되는 CG의 이름은 ‘모두, 내 억지를 받아줘’.
세실리아는 감은 눈꺼풀 뒤에 아른아른 떠오르는 새까만 소사체 CG의 모습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왜 하필 전생해도 료나계에 가까운 게임에 전생하냐고.
......그래도 테레제와 연관되려 하지만 않는다면 평안히 살 수 있을 거야.
후보라지만, 거의 성녀 확정이고.
내 목숨이 더 중요해.
그러니 에드윈은 이제 그만 테레제와 함께 잘 살아주었으면 했다.
그래서 약혼자와 얼굴이라도 보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몇 번 제안하긴 했었는데.
한 번 보고 오더니, 그걸로 끝.
살려줘서 고맙긴 한데 호감도가 너무 쌓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덜컹.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 세실리아는 화들짝 놀라 등 뒤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들어와!?”
“서, 성녀 후보님!! 도망치악!?”
“......뭐?”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온 피투성이의 부제가 쓰러진다.
물기 때문에 미끄러진 것이 아니었다.
잘려나간 다리. 그의 뒤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아직 한참 어린 소년은 울면서 세실리아에게 다가간다.
“서, 성녀 후보님. 흐윽. 세, 세실리아 님.......”
“다, 당신 누구야!!”
세실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습격자에게 삿대질한다.
울부짖는 부제가 없었더라면 비명을 지르며 꼴사납게 뒤로 넘어져 욕탕에 엎어졌을 것이다.
그 아이 덕분에 최대한 용기를 짜낼 수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습격받는 이벤트 같은 건 없었는데.
세실리아가 머릿속을 굴린다. 없다. 확실하다.
왼팔로 겨우 가린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무서워. 무서워. 대체 뭐야.
“.......”
정체불명의 습격자는 말없이 부제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걷어차 기절시켰다.
검은색이 섞인 새하얀 머리카락. 새파란 눈동자.
아직 소년이다.
그가 입은 새까만 정장은 소년의 몸에 딱 맞는 사이즈였지만, 소년에겐 아직 어울리지 않아서 어딘가 크게 느껴졌다.
그가 손에 쥔 칼은 메흐레니아 성기사가 흔히 패용하는 칼이었으며, 그가 정장 위에 망토처럼 걸친 코트 역시도 성기사의 망토였다.
빼앗은 걸까? 메흐레니아 교단 내부의 적으로 위장하려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메흐레니아 교단 내부의 적일지도 몰라.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한 것 같아 보이면서도, 얼굴을 당당히 내보이고 있어서 쉽게 구별하기 힘들었다.
“대답해! 당신 누구냐고!!”
소년은 말없이 욕탕으로 내려왔다.
옷이 젖건 말건 관심도 없다는 듯 내려와 세실리아와 눈을 맞추었다.
세실리아는 그가 한 걸음 내려올 때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알몸이 보이고 자시고, 칼 든 미친놈이 다가오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리고 결국 벽에 막혀, 세실리아가 미끄러진다.
욕탕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세실리아를 놓치지 않고, 소년이 재빨리 다가가 세실리아의 배를 발로 지그시 짓눌렀다.
영겁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소년이 세실리아를 물에서 끌어낸다.
알몸이라 붙잡을 것도 없어서, 황금색 머리카락을 붙잡아 끌어내었다.
“콜록, 콜록. 쿨럭. 으, 흐윽.......”
“네 위치를 자각하도록.”
죽일, 생각은 아니네.
“나, 나도, 잘 알고 있다고! 누군 이런 꼴이 되고 싶어서”
소년이 투정이라도 해보려던 세실리아의 머리를 당긴다.
세실리아가 머리카락이 뜯기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그 머리가 욕탕 벽에 처박힌다.
주르륵. 세실리아가 쓰러진다.
/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뒷골목에 숨어서 팔찌를 꼈다.
옷도 메이드복의 원피스로 최대한 재빨리 갈아입고, 정장을 불태웠다.
그리고 중간에 성기사에게서 빌린 검과 코트를 대충 던져놓는다. 처음 돌입할 때 썼고 다시 회수한 값싼 검을 대신 패용한다.
아무쪼록 신속하게. 목격자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 한 순간을 위해서 낮 내내 지형도 파악하고, 여관에 돌아가서 물자 챙겨오고, 여러 준비를 다 해놨으니까.
“......너무 심했나.”
이미 깊은 밤이지만, 사방에 불이 올라서 침입자를 찾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성별이 다르고 자시고 수상하기만 하면 바로 붙잡히겠는걸.
어서 돌아가자. 여관에 돌아갈 것도 없고, 테레제에게 바로
톡, 톡, 톡.
뭔가, 지팡이를 짚는 듯한 소리.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목격자가 있었나 싶어
“심한 일이라는 걸 알면, 하지 마셨어야죠.”
골목 입구에는 눈에 붕대를 감고, 소매가 긴 허름한 옷을 입은 소녀가 지팡이를 짚고있었다.
그 많은 약을 투여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빛바랜 적 없는 까만 머리카락이 차가운 밤바람에 천천히 천천히 흔들린다.
왜, 여기에.
“성녀님은 좋은 분이세요. 왜 괴롭히신 건가요?”
“141번......?”
내 말에, 잠깐 소녀가 멈춘다.
그러나 다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게 걸어온다.
“어머나. 그 시설 출신이신가요? 세상도 참 좁다니까요. 아니면 그리도 많이 팔린 건지.”
“자, 잠깐 기다려. 나야. 17”
141번이 순식간에 간격을 지우고 덤벼들어왔다.
나는 칼날이 지팡이로부터 뽑혀나오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그저 본능만으로 검을 들었다.
141번의 창포검 칼날이 내 코앞에서 끼긱대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나는 아, 죽을 뻔했구나, 하고 겨우 인지할 뿐이었다.
“나라고, 나! 1725번!”
“저, 정말요?”
“그, 그래! 나라니”
신속.
1725번의 칼날이 맞붙던 자리로부터 스르르 떨어져 나가더니, 곧바로 그 한 순간, 그 찰나에 뱀처럼 움직여서 나를 베었다.
메이드복이 아무렇지도 않게 베이고 피가 치솟았다.
방탄복은 검을 막지 못한다던가.
물론 그게 아니라, 그냥 141번이 답도 없이 강한 것이겠지만.
어쩌면 단번에 두동강이 나지 않은 게 메이드복 덕분일지도 모른다.
“하윽?!”
“그런데 비명소리는 여자아이의 비명소리네요.”
아차.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서, 팔찌를 벗으려 했다.
하지만, 미간 앞까지 다가온 칼끝에 놀라, 그 팔로 칼끝을 막았다.
카득. 팔찌에 맞은 칼날이 빗겨나가고, 팔찌가 깨져나간다.
“어.......”
모습이 돌아오지 않아. 시야가 바뀌지 않았으니까, 알아.
대체, 왜.
고심할 새는 없다. 찔러들어왔던 칼끝이 형을 바꾸어, 다시 베어들어온다.
다행히, 계속 보다 보니 이젠 어느 정도 보였다.
나는 어렵사리 141번의 칼날을 튕겨내었다.
하지만, 튕겨난 칼날은 바로 그 순간에 다시 짓찔러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무식하게 빨라.
정면 승부로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이 아이에겐 마법도 안 통해.
그러니 변수를 만들 방법이 없다.
“윽?!”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또 베인다.
다행히 이번에는 깊은 상처가 아니었다, 만.
처음에 당한 상처가 너무 깊었다.
원피스의 스커트가 피 때문에 무거워졌을 정도라고 말하면 이해할까 모르겠다.
그리고 연달아 실수.
141번도 이제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급소를 피해 세 곳을 찔렸다.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너, 시설에서 배운 게 하나도 안 남아있잖아.......”
“그쪽이야말로. 그런데 저. 보통 일격에 죽이는데. 좀 치시나봐요?”
뭐, 그러니까 메흐레니아 교회를 대놓고 습격하겠죠. 141번이 덧붙인다.
좀 자만한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
그거야 인정하는 바다.
“눈. 이젠 보이나보네.”
“아뇨. 안 보이는데요?”
“......실례했어. 이제 날 어쩔 셈이야?”
“교회의 병사들이 여길 수색하러 찾아오면 넘길 거예요.”
“그래?”
그건 곤란하다. 테레제에게도, 나에게도.
여전히 눈이 보이지 않는다, 라. 다 보이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나는 한숨을 뱉고, 기도 없이 발동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을 사용했다.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골목 여기저기 튄 피를 매개로 삼아서 발동했다.
“어라. 아직 여력이”
“이런 식으로 만나긴 싫었어.”
사방에서 불이 피어오른다. 핏자국이 발화한 셈이다.
시력은 없을 테니, 청각이건 마력감지건 뭐건 쓰겠지. 감지가 되는진 모르겠는데.
그걸 가리기에 너무나 충분한 커다란 불길이 확 피어올랐다.
“제게 이런 불이 통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141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불길 속에 서있었다.
다시 일어난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도 불에 타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141번은 감각에 영향을 받았는지, 경계태세로 돌아갈 뿐, 나를 추적하진 않았다.
칼끝을 141번에게 겨누고 있던 나는, 지금이 틈이라 여기고 곧장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
“어라.”
아일린이 망연한 듯 중얼거렸다.
불을 피우고, 그 틈새를 찔러들어올 줄 알았던 상대는 등을 돌리고 곧장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뒤늦게 쫓기 시작했지만, 결국 한 발 늦어버렸다.
암살자는 거리를 관통하는 수로로 뛰어들었다.
깊은 상처일 텐데.
“......왜 나는 저 아이가 반격해올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일린이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간만에 1725번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걸까.
죽고 싶어서 대련 중에 딴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안전을 내다 버리는 싸움법.
그래, 그 아이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물어뜯으려 들었어.
탈출할 때도 그랬었고, 그 머나먼 옛 적의 대련 때에도.
그런 칼이라면, 나도 적당히 흘리면 될 걸, 괜히 호승심이 생겨서 정면에서 맞붙었다가 칼을 부러트렸고, 결국 그 아이의 어깨에 상처를 내고 말았었지.
“역시, 그럴 리가 없잖아.”
성별도 다른 데다가, 더 덤벼들지 않고 도망쳤다.
비슷하지만 다른 누군가다.
“이봐! 거기 너!!”
“네?”
세찬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던 아일린에게 병사 무리가 몰려왔다.
그들은 아일린의 얼굴에 횃불을 들이대더니, 곧바로 쯧, 하고 혀를 찼다.
“여자야. 장님이고.”
“장님이 왜 야밤에 돌아다녀? 뒤숭숭하니까 당장 집에 들어가!”
“저기, 왜 그러시나요?”
“바로 옆에 불이 났잖아! 그것도 몰라!?”
골목에선 뛰쳐나온 마을 사람들이 진화 작업에 한창이었다.
아일린은 아뇨, 그래서 나와있는 거예요, 하고 말한 뒤 다시 물었다.
“제 성별이 왜......?”
“어떤 놈이 교회를 습격했어. 성녀 후보님도 다치셨고.”
“......놈? 남자인가요?”
“그래! 프라비의 비늘을 다 씹어먹을. 그 놈이 감히 성녀 후보님께 몹쓸 짓만 하지 않았기를 빌어야 할 판이야.”
공범이 있었나?
아일린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발자국은 하나였는데.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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