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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18화 (18/100)

〈 18화 〉 아직 겁쟁이

* * *

세실리아와 헤어진 나는 곧바로 추적마법을 사용했다.

곧바로 가까운 교실동에서 반응이 왔다.

멀리 가진 않았다만, 텅 빈 교실에 단 둘뿐인 모양이었다.

약혼자 사이라지만, 어떠려나. 나는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으으. 별일 없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는데.......”

물론 두 분 다 굉장히 귀하신 몸인데다가 양쪽 모두 그 자각이 있으니, 비록 약혼자 사이라고 해도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는 터치하려 하거나 터치를 허용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것만큼은 확신을 넘어서서 확정이다.

설령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학교는 아니지.

누가 보면 어쩌려고. 마도구로 녹화했다간 대참사다. 귀족이란 명예와 체면에 살고 죽는걸.

그래. 잘 알고 있다만, 역시 탐탁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냥 그 자식이 싫어.

할 수만 있다면, 베어 죽여서라도 테레제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

“.......”

방금 문득 든 생각인데.

뭔가 지금 나, 딸 가진 아버지 같지 않아?

딸아이가 데려온 남자친구의 머리통에 샷건을 쏴버리고 싶어하는, 대충 그런 이미지 있잖아.

물론 제 쪽이 아가씨보다 육체연령도 정신연령도 모두 연상이 맞습니다만.

“하아.”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벌써 교실동 4층에 도착했다.

가장 안쪽의 교실에 두 소년소녀가 있다. 나는 둘을 방해하지 않도록, 아까 쓰지 못했던 은신 마법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사용했다.

글로리아로부터 수박 겉 핱기로 배운 가장 기초적인 은신 마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체질 탓에 마력 탐지나 마력 추적 같은 마법에 걸리지 않으니, 가장 기초적인 은신 마법이라고 해도 꽤 은신성이 보장된다고 할까.

그런 느낌.

평소에는 결코 아가씨를 훔쳐보거나 하진 않아.

이번에는 그러니까. 그.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있다더군.”

“응.”

“역시, 너도 알고 있었구나.”

창문을 통해 슬쩍슬쩍 훔쳐 본다.

어딘가 말투도 그렇고, 표정­은 잘모르겠지만, 그래도 다행히 조금은 편한 분위기처럼 보였다.

편한, 분위기인가? 에드윈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응. 알고 있었어.”

“솔직..., 하게 말해주는구나.”

“그게 이클리시아와 유르덴킬라이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대화 내용이 어딘가 이상한데.

사적인 대화라기보단 공적인 대화라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사적인 장소에서도 평범하게 공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그럼 그 시설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숫자가 3천 명이 넘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시설에, 3천 명이 넘는다, 라.

내가 있었던 시설 이야기려나.

확실히 그 시설은 유르덴 영지가 아니라, 이클리시아 왕국의 직할령에 속하는 토지에 지어져 있었다. 시설 소유자도 궁정의 높으신 분이었고.

에드윈이 알아도 이상할 건 없다. 마침 궤멸했었으니 조사가 들어갔을 지도 모르지.

“알고 있었어.”

“정말이지 너는.......”

테레제가 너무 솔직하게 말하자, 에드윈이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젊은 소년의 표정이 사시나무처럼 떨리었다.

손등과 팔뚝에 푸른 핏발이 서고, 깍지를 낀 양손의 손가락이 부들거린다.

아무리 봐도 좋지 않은 분위기다.

이거, 들어가야 할까.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잖아.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그딴 짓거리를 하고선, 어떻게 감히 이클리시아를 위한 일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아이들에게서 동의서를 받았다고 들었어.”

“그딴 서면 상의 헛소리 따위!”

테레제가 말한 동의서라면, 뭐.

적긴 적었던 것 같다.

시설의 모든 실험체에겐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계약 마법이 걸려있었는데, 이 계약 마법이란 것은 양측 모두의 동의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제 어딘가에서 분명 동의하긴 했으리라.

계약 내용도 모른 채로.

덤으로 말하자면, 이 계약마법이란 이상체질이 된 지금의 나에게 마법을 걸 수 있는 유이한 방법 중 하나였다.

나머지 방법 하나는 글로리아가 나를 체벌할 때 사용했던 것처럼, 내 체질을 개무시할 정도의 위력으로 마법을 때려 넣는 것이다.

이쪽은 그다지 별 의미는 없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에드윈이 거의 노려보다시피하는 눈초리로 테레제의 시선에 자기 시선을 맞추었다.

굉장히 위험한 표정. 나도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에드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길 후원한 건 네 의지가 아니었지?”

“설마. 그 시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엔, 나. 겨우 여덟 살 정도였었어.”

“듣던 중에, 겨우 다행인지, 아니면, ...빌어먹을.”

“코넬리아도 그 시설 출신이야. 코넬리아를 받은 뒤에는 아버지께 말해서 후원을 그만두자고 말했었고.”

소년의 얼굴에서 한 순간 힘이 풀렸다.

손에 들어가고 있던 힘은 어느새 빠진 뒤였다.

그리고 의아하다는 듯 테레제를 본다.

“......테레제, 네가?”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아니, 조금 의외라서.”

어라.

조금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네요.

저 에드윈이라는 친구, 생각 외로 자기 잘못한 것에 대해선 쉽게쉽게 사과하는 편이고.

멍청이라서 문제지만, 왕족치고는 조금 착한 친구가 아닐까 싶네.

“네가 조금은 사람다워 보이네.”

에드윈이 지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테레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윈에게 향한다.

그리고 그가 앉은 의자 앞에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추고서, 에드윈의 두 손을 자기 두 손으로 덮듯이 붙잡았다.

이 각도에선 테레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별 일 아냐. 그 시설에 대해, 세실을, 크흠. 세실리아를 통해 메흐레니아 교단의 압박이 들어왔었거든. 철저히 조사하라고. 그런데 조사서에 유르덴이 나오니까, 그게. 조금 격해져서.”

“그랬구나. 그래도 괜찮아. 에드윈은 국왕님이 될 거잖아? 나는 이해할 수 있어.”

“아냐. 그리고, ...요즘 여러모로 미안했어.”

분위기는 좋지만, 뭔가.

뭔가 나는 배알이 뒤틀릴 것만 같았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할 줄 아는 착한 청년.

크게 제대로 사과한 것도 아닌 것 같긴 한데, 테레제라면 받아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게 나쁘다니까아아아

이래서야 알콜 중독자 가장이 술에 취하기만 하면 아내를 폭행하고, 술이 깬 뒤에는 늘상 사과하고, 이런 것과 다른 게 뭐가 있어.

스톡홀름 증후군을 유발시키는 것이나 다름 없잖아.

별로 테레제의 앞날에 좋을 것 같진 않은데.

덤으로 내 인생의 앞날에도.

“응. 거기 음식점 맛있었어.”

“그래? 다음에 오웨인을 데리고 한 번 가볼까?”

......그 이후로는 평범한 회화가 오갔다.

테레제와 에드윈이 나름 사이가 좋은 듯한 모습으로 교실에서 나올 쯤에, 나는 다시 모습을 감추고서 먼저 기숙사로 향했다.

알리바이를 만드는 편이 좋을까 싶어서, 중간에 식당에 들려 얼굴을 비추고 간식을 받아왔다.

간식 만드는 법을 배워왔다고 말하니, 테레제도 별 말 없이 넘어가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에드윈은 다시 테레제에게 찾아오는 일이 없었고, 에드윈은 당연하다는 듯 다시 세실리아와 행동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의 저녁.

창문을 통해, 하늘에 떠오른 별빛을 올려다보던 테레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코넬리아.”

“네, 아가씨.”

“나는 오늘부터 휴일이 끝날 때까지 이 방에서 나가지 않을 거야.”

“.....아가씨?”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갑작스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테레제가 별빛들로부터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찬란한 테레제의 황금빛 눈동자는 어느새 새까만 밤하늘 탓에 짙게 물들어 있었다.

“세실리아가 유르덴 가문의 뒤를 캐고 있다는 것 같아.”

“당돌하네요.”

“응. 깜찍하지.”

농담을 던지면서도, 테레제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혹여나 질투심이 아로새겨져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히 살펴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질투심이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텅 빈 얼굴이었다.

“죽여.”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테레제가 망연히 나를 본다.

마주하기 힘들다.

“지금 성녀 후보를 죽였다간, 분명 아가씨가 의심받게 될 거예요.”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이번에는 내 머리가 식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아가씨답지 않아요.”

“나 답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네. 이건 평소처럼 나름대로 고심하고 낸 결론이야.”

테레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조금 표정이 풀어지자, 나는 겨우 테레제가 겁에 질려있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 조금 협박이라도 하고 오지 않을래? 모습을 감추는 건 특기잖아.”

“아, 하하.......”

걸렸나?

“먹을 건 챙겨놨어. 마법으로.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따를 수밖에 없겠네요. 겁주고 오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코넬리아.”

나는 테레제의 앞에 허리를 숙이고, 메이드복 스커트의 양 끝단을 들어올려 보였다.

그런 뒤에 곧바로 흰 앞치마와 헤드 드레스를 벗었다. 새까만 원피스 차림에 검을 패용하고, 군홧발로 테레제의 기숙사를 나섰다.

주어진 시간은 나흘.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남성복을 파는 옷가게의 위치에 대해선 기억해두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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