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세실리아
* * *
“테레제. 잠시 시간 되나?”
갑작스레 찾아온 에드윈이 난데없이 뱉은 말이었다.
적지 않은 인파가 흘러가는 도중인 복도 한가운데였다.
그다지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던 참이었고, 자연스레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테레제의 낯빛이 시시각각 나빠져 간다.
“무슨 일, 이신가요, 에드윈 님.”
“뭐야. 내가 나의 약혼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도 이유가 필요한가?”
“......그건.”
“최근 바빠서 네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그 벌충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혹시 바쁜가?”
“아뇨. 괜찮아요, 에드윈 님.”
“아까부터 자꾸 님, 님 붙이긴. 오래 못 봤다고 삐져버린 거야?”
뻔뻔하긴. 속으로 그렇게 내뱉고 말았다.
손이 자꾸만 칼자루로 가려고 해서, 그걸 참는 게 고역이었다.
그러다가, 테레제는 괜찮을까 싶어서 슬쩍 얼굴을 훔쳐보았다.
“......에드윈.”
“그래. 한층 듣기 좋네.”
더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한 얼굴이었다, 만.
방금 전보다는 조금은 밝아 보이는 듯한 것이, 더욱 걱정스러웠다.
물론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
선천적이건 약 탓이건, 꽤나 감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가씨. 정말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코넬리아.”
“그래, 그래. 너도 오래간만이다, 코넬리아. 알았으면 너도 이제 과보호는 그만 둬라.”
진짜, 짜증나네. 보는 눈만 없었더라면.
젠장. 곤란해. 무슨 일만 일어나면 폭력으로 해결하려드는 이 텅 빈 머리가 곤란해.
나는 눈을 꾹 감고서, 금방이라도 내뱉어버릴 것 같은 단어들을 억지로 억눌렀다.
“코넬리아. 오늘은 휴일이라고 생각하고 쉬어. 나는 에드윈과 조금 이야기를 나눈 뒤에 먼저 기숙사에 돌아가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쉬다 와. 너무 늦게 돌아오진 말고.”
“아가씨?”
“그래, 그래, 코넬리아. 오래 붙잡아두진 않을 테니 가서 찻집이라도 들려보는 건 어떠냐.”
“......알겠습니다.”
저 왕자,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머리가 텅 빈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한심해서 열이 오른다.
아가씨도 조금 저런 건 잊어버렸으면, 싶지만.......
계급 사회라는 건, 그런 편이네.
에드윈과 테레제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손까지 잡았네. 어릴 적부터 저런 사이였으니, 뭐. 익숙하다면 익숙한 풍경이긴 한데.
“뭘 하면 좋을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남겨두고, 휴일이라. 옷도 메이드복밖에 없단 말이지.
물론 앞치마를 벗으면 찻집 정도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거에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오래간만에 마음껏 팔찌를 벗을 수 있는 순간이다만, 이런 옷으론 역시 의미가 없다.
개인적인 공간이 없으니까.
한숨.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저 둘을 미행이나 해볼까.
무슨 꿍꿍이인지 훔쳐듣기나 할 겸 해서.......
“그게, 좋겠다.”
우선 앞치마를 벗어서, 곱게 개어 스커트 주머니에 넣었다.
이 메이드복, 당연하다면 아주 당연하다지만, 상당한 고가의 물건이다.
애벌레로 30년을 살다가 성체로 변태한다는 군함달나방의 마력실을 자아낸 굉장한 옷감으로 만든 옷인데, 방탄이다. 즉 로망이다. 시험해본 적은 없지만.
거기에 더해 주머니에 테레제의 마법이 깃들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바깥에서 보이는 것보다 안쪽이 더 넓은 사양이다. 이것 역시 로망이다.
하여간에 커다란 앞치마다만, 깔끔하게 스커트 주머니에 들어가주었다. 헤드 드레스도 벗어 대충 구겨넣었다.
“이쪽, 이려나.”
그리고 머릿속으로 테레제와 에드윈의 루트를 대충 계산해서, 다른 쪽 계단으로 향한다.
향하면서 대충 배운 은신마법을 사용한다.
“되새기는 색은 잿빛, 그림자가 되어 모습을 감추”
“저기.”
“......리라?”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기도문이 중간에 끊긴다. 모습을 감추기 그야말로 1초 전에 누군가에게 저지당한 셈이다.
고개를 돌려보면, 여러모로 테레제의 불구대천지원수가 된 소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메이드 양. 저는, 저기, 그게. 세실리아 더블린이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성녀 후보가 쭈뼛쭈뼛대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메이드 양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이름을 모르는 듯했다.
뭐, 내 얼굴을 모르는 건 아니리라. 그 현장엔 나도 있었으니까.
“아, 네에. 안녕하세요.”
“마, 만나서 반가워요.”
예의라는 게 있으니 나도 이름을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냥 인사만 받아주었다.
대외적으로도 그쪽이랑 우리 아가씨랑 그리 좋은 사이도 아니잖아.
예의도 모르는 멍청한 메이드라 죄송하네요. 대충 이해해주시길.
“무슨 일이신가요, 더블린 양?”
“저번에는 제가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그 사과를 하려고.......”
“민폐? 사과?”
“그, 그리고 받아주신다면, 감사인사도 하고 싶어서.”
그걸 왜 내게 하는 걸까. 이쪽도 왕자만큼이나 머리가 빈 게 아닐까.
다만, 왕자 때와는 상황이 달라서, 나도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뱉어주었다.
“그걸 왜 제게 말씀하시는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왕자님께서 사과할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신 데다가, 저를 후원하고 있는 메흐레니아 교단에서도 엄한 일 하지 말라고 경고했었기에, 저로서는 도무지 유르덴 공작가의 영애님을 만나 뵐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신가요.”
“그러니 부디 아가씨에게 제 뜻을, 조금 전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희 테레제 아가씨라면 더블린 양의 마음을 이해해주실 거예요. 사과도 감사도 쉽게 받아주시겠죠. 지나간 일 따위 아무래도 좋다며 간단히 넘기실 거예요.”
“그, 그렇다면.”
“하지만, 저는 더블린 양의 말씀을 제 아가씨께 전하지 않을 겁니다.”
“네?”
꾸며낸 듯한 놀란 표정.
이 여자애.
어딘가 기분 나빠. 아까부터 표정을 속이고 있는 것 같아.
거기다가, 누구의 마법이고, 어떤 마법인지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벌써 몇 개나 되는 마법이 내게 쏘아졌다가, 내 체질 탓에 박살이 나서 흩어지고 있었다.
형체가 전혀 없는 마법인 걸 보면, 대충 심하면 저주 마법, 평범하다면 매료 마법이나 감정 마법 같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제대로 효과가 발휘되기도 전에 마구 해체되고 있으니.
심증으로는 이 여자가 술자인 것 같다만.
“직접 전하도록 하세요.”
“하, 하지만. 그. 메이드 양. 저는 신분이 천한데다가, 여러모로 휘둘리고 있는 신세라서, 같은 처지인 메이드 양이 도와주지 않으면, 저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이예요.......”
“단상 위에서는 마음껏 억지를 부렸었죠. 왜 그랬었나요?”
잘 보이고 싶어서.
물론 자신을 성녀 후보로 삼은 메흐레니아 교단에게 자기 쓸모를 입증하려는 노력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마 왕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게 크겠지.
진심으로 사과하려 했더라면.
그러니, 왕자를 포기하고 그 때 보여주었던 말도 안 되는 억지의 1할만 빼내어서 테레제에게 찾아왔더라면, 아마 용서야 별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연모니 사랑이니. 어렵다는 건 알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여자를 긍정해주고 싶진 않았다.
적과 아군에 대한 선긋기는 확실히 하는 게 좋으니까.
지금 이 태도도 어중간하기 그지없어서 짜증만 나니까 그만 이야기를 끊을까.
“그, 그건.”
“솔직히 말하고 싶은 건 많습니다만, 여기서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해봐야 아가씨를 험담하는 말만 늘어날 것 같아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 합니다.”
“......정말로 사과하고 싶으시다면, 자기 의지로 제 아가씨에게 찾아가주세요. 이만.”
굉장히 실망한 듯한 표정이다.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표정관리 확실하네.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몰려든 학생이 몇몇인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기서 계속 말해 봐야, 무슨 말이건 간에 결국 테레제의 평판만 나빠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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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세실리아가 떠나간 메이드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난처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걸 보면, 특징은 일치하는데.......”
세실리아는 전생의 기억이라는 것이 있었다. 본래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악역영애 테레제에게 강제 마법폭주를 당하고 병원 신세를 지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etc
깊게 되짚어보니, 여기는 소설 속, 혹은 오토메 게임 속 세계였습니다, 라는. 소상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사람들이라면 대충 알 법한 그런 느낌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일린은 맹인이었었잖아.”
그녀가 기억하는 테레제의 메이드는 ‘아일린’이라는 이름의 소녀로, 눈이 멀어 있었다.
분명, 시설에서 훈련하다가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던가.
시각을 잃었지만, 마력감지로 볼 건 다 보는 데다가,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테레제의 뒤를 캐려던 주인공에게 몇 번이고 데드 엔딩을 선사하는 인물이었다.
마치 광신도처럼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제 목숨은 물론, 황녀의 목숨이라고 할지언정 마땅히 바쳐보이겠습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등, 명목상으론 최종 보스지만 별다른 전투도 없이 싱겁게 퇴장해버리는 테레제 대신 최종보스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었었다.
하지만, 지금 테레제의 메이드는 맹인이 아니다. 일러스트와 닮은 얼굴도 아니다.
어딘가 굉장히 일치하지 않아.
“뭐가 잘못된 걸까.......”
세실리아가 혀를 찼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가능성에 도달했다.
테레제의 메이드가 듣도 보도 못한 인물로 바뀌었다면, 아일린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압도적인 무력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몰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