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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16화 (16/100)

〈 16화 〉 칼끝과 칼끝

* * *

갑작스레 출혈이 난 건에 대해서. 며칠 고심했었다.

우선 돌아와 상처를 확인했지만, 상처는 없었다. 피부 위로 출혈이 난 것뿐이다.

일단 내게 초재생능력은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누가 회복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럼 대체 왜.

고심의 끝에, 나는 테레제에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제가 나온 시설에 한 번 돌아가보고 싶어요.”

“왜? 좋은 기억이 있진 않을 텐데.”

“물론 그렇지만, 어쩐지 그 시설이 제 의문의 상처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요.”

“아아.”

테레제가 내 어깨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테레제는 그 시설의 주인이 아니다. 유르덴 가문으로 넓혀보아도 관련이 없다는 듯했다.

시설 주인은 이클리시아 왕국 궁정의 고위직을 맡으신 누군가라고.

며칠 전에 테레제가 학과장에게 후원 명목으로 돈을 주고 지팡이를 받아왔던 것처럼, 그 시설 역시 유르덴 가문이 후원하고 있는 수많은 시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유르덴 가문에 거둬지기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무렵에 테레제 본인에게 직접 확인받았으니 확실하리라.

“후원하는 걸 그만두긴 했는데......, 견학 정도라면 괜찮으려나.”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어라, 내가 하지 않았었어?”

“금시초문인데요.”

“으음, 너를 받은 뒤에 그 시설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봤었거든. 아버지는 뭔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 눈으로는 그다지 채산성이 없어 보여서 그냥 내 독단으로 후원 끊었어. 고작 암살자를 키우는 것뿐인데 쓸데없이 거창한 표어를 내건 데다가, 사람을 너무 낭비하고 있단 느낌이라서.”

그런 뒤에, 딱히 네가 걸려서 그랬던 건 아냐, 하고 덧붙이신다.

츤데레처럼 괜히 그러셨다. 아마 100% 내가 맘에 걸려서 끊은 게 분명하다.

우헤헤, 사랑받고 있어서 행복하네요.

“그럼 당장 갈까.”

“네? 갑자기요?”

“무엇보다 네 안전이 중요해. 왜냐하면 내 안전이랑 직결되거든. 싫어?”

“아, 아뇨. 저야 아가씨가 제 말씀을 들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 조금 갑작스러워서.”

“그럼 됐어. 가자.”

“학교는요? 청가 신청서라도 작성하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됐어, 됐어. 대충 칸나에에게 말해놓으면 알아서 해줄 거야.”

“아, 아가씨의 친구분.......”

갑작스럽지만, 일사천리였다.

세계 각국의 귀족이 모인 학교 답게, 역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테레제는 곧바로 역무원에게 거금을 내고 공간이동마법진이 기록된 스크롤을 받았다.

그리고 이동. 이클리시아 왕국 수도에 도착한다.

사실 이클리시아가 그리 작진 않은 왕국인 만큼 배차시간표의 간격이 짧았기에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훨씬 싼 값으로 대중이동을 할 수 있었겠지만, 테레제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이젠 잘 안다.

귀족이라서 돈을 물 쓰듯 쓰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밀폐된 곳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아이라는 것뿐임을 아주 잘 안다.

그 다음으로는 역에서 나와 바로 마차를 탔다.

“이상한걸. 연락을 받지 않네.”

공간마법으로 마도구를 꺼낸 테레제가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후원이 끊겼다고 대놓고 물 먹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엘프까지도 금방 전화를 받곤 했으니까.

전화는 아니다만, 뭐.

“곧 타르모나 마을에 도착합니다. 어디까지 모셔드릴까요?”

“벌써 도착했나요? 그만 내려주세요.”

“아이고, 여긴 아직 숲길입니다. 마을까진 아직 남았어요.”

“아뇨, 수고하셨어요.”

“귀족님을 제가 어떻게 걷게 합니까. 말씀만 해주시면 제가 데려다 드리지요.”

테레제는 말없이 마부에게 돈을 주었다.

마부도 더 말하지 않고 마차를 멈추게 했다. 겨우 이해한 모양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뒤에, 가도에서 나와 숲길 사이로 들어간다.

다행히 테레제는 튼튼한 옷을 입고왔다. 벌레에 쏘일 일은 없으리라.

메이드복은, 뭐.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 돌아올 때까지도 팔찌를 차야한다니, 뭔가 좀 그렇긴 한데.

“잠깐만요, 아가씨.”

숲속이긴 해도, 시설이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10분 정도 걸어간 무렵엔 이미 시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시 10분 정도려나.

걸어서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문득 불길함을 느끼고 테레제를 멈추게 했다.

“왜 그래, 코넬리아?”

“어딘가, 분위기가.......”

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이어지지 않는 전화까지.

그렇고 그런 실험을 하던 시설이니만큼 적이 많았겠지. 갑작스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싶었다.

“......서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낫겠어요.”

“그래. 조심하면서 가자. 부탁할게, 코넬리아.”

“맡겨주세요, 아가씨.”

테레제와 함께 발을 옮긴다.

여기서 포기하고 그만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고작 내 심증만으로 여기까지 함께 와준 테레제에게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도 영 아니지 않나 싶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낙엽 사이로 시체가 보였다.

죽은 지 오래되어 차게 식은 시체였다.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테레제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열려있네. 핏자국도 보이고.”

“그러게요.”

쇠창살 대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열려있긴 했지만, 그 이전에 대문의 윗부분이 베여서 쓰러져 있었다.

안쪽으로 쓰러져 있는 걸 보면 탈출이라기보단, 누군가가 침입한 모양이다.

핏자국은 주변 담장에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말라붙은 채다.

그제야 테레제도 드디어 낙엽 아래의 시체를 확인한 듯 쯧, 하고 혀를 찼다.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가씨?”

“안 돼. 여기까지 와서 고작 차게 식은 시체 몇 구에 겁먹어서 돌아가려고?”

“이럴 때는 또 의외로 대범하시네요.......”

“일이 끝난 지 한참 지났잖아. 범인은 진즉 사라졌을걸? 게다가 죽은 사람은 안 무서워.”

다리를 길게 뻗어 잘려 넘어진 대문을 넘는다.

담장 안쪽에는 시체가 훨씬 많았다. 여기까진 전부 경비병의 시체였다.

대문도 깔끔하게 잘려서 안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코넬리아. 나 이런 풍경을 예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어. 언제게?”

“아하하. 잘 감이 오질 않네요.”

“그래?”

대문 안쪽의 복도는 완전히 피칠갑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어딘가 지리가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아마 여기서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아이들이 살던 숙사가 나오고, 다시 한 층 내려가면 여러 실험실과 대련장이 나오겠지.

“네가 탈출했을 때도 이런 풍경이었어. 기억 안 나니?”

“아.”

“고작 칼 한 자루로 온갖 것을 다 베었더라고. 이렇게.”

테레제가 벽 한 면을 가리켰다.

암석질로 만들어졌을 벽이 깔끔하게 베여 안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마치 바깥의 대문이나 철창문이 그랬듯이.

“그랬었나요. 그땐 필사적이라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랬었겠지. 그나저나 이 모습을 보아선 전멸이라고 봐도 괜찮으려나.”

이젠 연구원들의 토막난 시체도 한 가득이었다.

그 토막난 모습을 보니 다시 기억이 조금 더 났다. 그러고보니 저렇게 조각냈던 것 같아.

그럼, 나 같은 실험체가 하나 더 탈출했고, 돌아와서 이런 짓을 한 걸까?

아직 부패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게 출혈이 생겼을 때 일이 벌어졌던 것이 아닐까.

추측이지만.

“생존자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테레제가 먼 곳을 보며 말한다.

저 멀리 복도 끝부분부터, 아이들의 시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아이들로 실험을 하고 있었던 걸까.

시체들을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다가 테레제가 발을 멈췄다.

“더 이상은 의미 없는 것 같아. 돌아가자.”

“네. 그러는 편이 좋겠네요.”

“2층으로 올라가. 아마 거기에 감시관제실이 있었을 거야.”

실은 너를 만나기 전에 녹화된 네 무용을 봤었거든.

테레제가 그다지 속이 좋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녹화된 걸 보는 거랑 실물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네.”

“속은 괜찮으시겠어요?”

“이 정도야, 뭐. 거뜬해....... 단순히 그냥 이건 양이 많으니까......”

그다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풍경을 뒤로하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았다.

2층은 연구원들이 페이퍼 워크를 하던 곳인지, 시체도 적었고 아무래도 풍경이 단정했다.

나는 모르는 풍경이다. 탈출하느라 바빴으니까.

“이쪽이야.”

가장 안쪽의 방에 커다란 마도구가 있었다.

생김새가 어딘가 CCTV실과 비슷한 것이, 아무래도 여기가 감시관제실인 모양이었다.

내가 시설에 있던 시절에는 CCTV 같은 건 못 보았는데.

또 마법 같은 걸로 안 보이게 해뒀나보지. 귀찮은 건 넘기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테레제는 당연하다는 듯 공간을 열어 새로운 마도구를 꺼냈다.

그것을 커다란 관제 마도구에 연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가동시킨다.

“대단하시네요.”

“응. 학교에서 가르쳐주더라고. 평생 쓸 일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금방 쓰네.”

마력이 돌기 시작하는 관제 마도구에서 마도 수정 하나를 뽑아내었다.

그런 뒤에, 마도 수정 위로 작은 마법진을 펼친다.

마법진은 한 번, 두 번 회전하더니, 이내 화면으로 바뀌었다.

“......앗.”

가장 처음에 화면에 들어온 것은, 눈에 붕대를 감고, 거적을 덮은 맹인의 소녀가 마치 우리를 노려보듯이 올려다보는 장면.

CCTV에 대입해서 생각하면, 카메라를 직접 노려보는 느낌일까.

검은 머리카락에, 당당한 발걸음. 나는 그 소녀가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그 장면으로부터 되감기가 시작된다.

소녀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들을 깔끔한 발도술로 베어가르고 또 베어가른다.

눈이 멀었음에도, 마치 보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는 듯한 몸놀림이었다.

되감기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을 만큼, 유려한 몸놀림이다.

“141번.......”

“아는 사이야?”

“네. 제가 탈출할 적에.”

잠깐.

나는 저 거적도 알고 있다. 저 몸집을 알고 있다.

출혈이 날 적에, 나. 주변을 두리번거렸었지. 누군가의 습격인가, 하고.

나를 지나치는 거지의 등. 수상할 정도로 어딘가 불편해보이던 몸가짐.

맹인이라면 불편한 몸가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만, 되감기를 마치고 제대로 재생되기 시작한 화면 속의 141번은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도 더욱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으니 또 이상하다.

“코넬리아?”

“이건 언제쯤 감시기록인가요?”

“아. 그걸 알아봐야겠네. 잠깐만.”

테레제는 손가락을 그어 영상을 지우고 시간을 확인했다.

“이틀 전이네. 그때 부터 계속 작동을 멈추고 있던 모양이야.”

“그럼 그때, 그 녀석도.......”

내게 출혈이 생겼던 건 사흘 전이다.

141번도 나를 스쳐지나가며 뭔가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시설에 대한 것을 기억해내고, 다시 찾아와, 모조리 베어넘겼다.

그럴 싸, 한가?

“그 표정을 보니, 그만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네. 가는 길에 이야기해줄 수 있겠어?”

“예? 네에.”

“그럼 그만 돌아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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