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오래된 상처
* * *
간만에 학원을 나왔다.
멀리 나가지는 않는다. 학원 바깥의 거리가 목적지였다.
테레제가 입학한 이래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학원 거리에 외출하곤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테레제도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평범한 이유로 주에 두세 번 정도 평범하게 자주 외출해주었으면 했다만.
평범을 세 번이나 연발한 만큼, 이번 외출 역시 그다지 평범한 외출은 아니었다.
“이야. 이번 후원금도 이렇게나 많이.”
단안경을 쓴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테레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청년을 시켜 책상 위의 슈트케이스를 챙기게 했다.
금화로 가득찬 슈트케이스다.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유르덴 양.”
“아뇨. 저희 유르덴 가문이야말로 제국의 전쟁 마법사 양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쁠 뿐입니다.”
“제국의 귀족들이 모두 유르덴 가문처럼 군무??에 밝았더라면, 이 늙은이도 제국의 미래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요. 그저 아쉽습니다.”
“아뇨. 군무를 담당한 이들이 있다면, 어느 한 쪽에는 반드시 치수를 담당하는 이들이 있어야 하는 법이랍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야 다른 문제가 생길 거예요.”
“하하. 가문을 떼어놓더라도, 역시 유르덴 양은 총명하십니다.”
노신사가 껄껄 웃었다.
그의 이름은 빈델트 오르가논.
모이라이아 대학원 실용마법대학 파괴마법학과의 학과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굳이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인지, 그의 정장 가슴팍에는 파괴마법학과를 상징하는 번개와 불길 형상의 황금 흉장이 아주 당당하게도 달려 있었다.
“아, 그렇지. 유르덴 양은 진학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아무래도 약혼이 예정된 여성인지라, 제가 선택하긴 힘들 것 같네요.”
“유르덴 양 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진 않습니다만, 그렇습니까.......”
“네. 정말 아쉽네요.”
테레제는 찻잔을 기울였다.
찻잔에 가려졌지만, 안색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약혼자와 트러블이 생긴 이래 아직도 왕자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만 돌아가야겠네요.”
“허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볼바트!”
“예, 교수님.”
한 청년이 나무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총기상자가 연상되는 나무 상자였다.
담긴 것을 생각하면 그것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움직일 때마다 안쪽에서 나뭇가지 같은 것이 부딪치면서 탁, 탁 하는 소리를 냈다.
오늘도 가득 담겨있는 모양이다.
청년이 그것을 내려놓자, 테레제는 손짓 한 번으로 상자를 지워버렸다.
“오래 교직에 있던 몸이라 자부하지만, 숙련된 술자의 공간마법은 볼 때마다 새롭지요.”
“파괴마법의 화려함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만.......”
“하하하! 그건 그렇군요! 역시 파괴마법에서 화려함을 뺄 순 없지요!”
“그럼, 다음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부탁해주십시오, 유르덴 양.”
테레제가 고개를 숙인다.
나도 테레제의 뒤에서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에 테레제를 따라 건물을 나선다.
“교수님. 저걸 가져가서 어디 쓴답니까?”
“시끄럽다, 볼바트.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질 시간이 있으면 책이나 한 줄 더 읽거라.”
문이 닫히기 전에 그런 소리가 들렸다.
테레제가 금화를 후원하고 받은 것은 지팡이 더미였다.
파이어볼이나, 라이트닝볼트 같은 간단하면서도 위력적인 파괴마법이 담겨있을 지팡이들이다.
물론 상자에 쓰레기처럼 더미로 쌓여있는 시점에서 그렇게 좋은 물건들은 아니다.
만약 정말로 제대로 된 지팡이가 상자에 쌓여있었다고 한다면, 금화 한 가방 따위로 받아갈 수 있을 리가 없기도 하고.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으음, 글쎄.”
그럼 무엇이냐.
지팡이 작성 수업에서 발생한 실패작과 기준미달작품들을 회수한 것이랍니다.
졸업요건으로도 학점과 지팡이 그리고 논문을 요구하니까, 학생들은 열심히 산과 들에 가서 쓸 만한 나뭇가지를 꺾어와서 습작을 만들곤 한다는데, 그걸 착실히 회수하면 이렇게 한 달에 상자 하나 정도는 나온다는 모양이다.
게다가 실패작과 기준미달작품이라지만, 마력은 확실히 담겨있다.
한 번이나 두 번 사용한 뒤에는 손 안에서 폭발하는 결함품이라고 해도, 그걸로도 사람 하나 죽이기에는 충분하다.
거기다가 이 세상에선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하는 일반인이라도 대부분의 가정용 마도구들처럼 시동키를 읊으면 마법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하. 마치 총 같네.
수업시간에 교수가 ‘파이어볼이 담긴 지팡이를 작성하세요. 시동키의 요건은 피어오르는 불의 나비입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선했다.
“미네트에게 들었는데, 여기 근처에 맛있는 파스타 집이 있다는 모양이야.”
놀랍게도 테레제는 자기 의향을 똑똑히 밝혔다.
물론 예전에도 이건 어떨까, 하고 말한 적이야 있었지만, 어느 음식점으로 가자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나저나, 소문이 자자한 파스타 집이라. 역시 거길 말하는 거겠지.
“그럼 그 음식점으로 갈까요?”
“근데 곤란한 건 내가 그 음식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지. 분명히.......”
“‘할머니의 커틀러스’인가요?”
“어머. 어떻게 알았어? 확실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그게, 학교 식당의 요리사분께 들었던 것 같아요. 국물 파스타가 유행이라던가.”
“응. 맞아. 미네트도 은근히 매콤한 국물이 맛있다고 했었던 것 같아.”
국물 파스타라면 봉골레 파스타 같은 걸까?
그런데 음식점의 이름을 알았어도 문제네. 어디려나. 지리를 잘 모르니까.......
경비병에게 물어보면 금방 가르쳐줄 것도 같지만, 아가씨를 데리고선 뭔가 조금 그렇지.
“어서 가자.”
“잠깐만요, 아가씨. 제가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어디인지 모르잖아요.”
“괜찮아. 미네트가 그랬어. 냄새가 좋은데다가 사람이 몰려있으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거라고.”
“으음, 옛날 선인들께서도 술향기가 좋으면 골목이 아무리 깊은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긴 했었지만요.......”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렇게 당당하게 말한 테레제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테레제의 뒤꽁무니에 곧바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이 동네, 거대한 학교 앞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골목이 복잡하거든.
“아가씨. 제가 가서 경비병에게 물어볼게요.”
“경비병? 아. 그런 방법도 있구나.”
테레제는 잠시 고민하듯 얼굴을 찡그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최종수단으로 남겨놓고, 조금 걷자.”
“네? 아, 아뇨. 아가씨가 괜찮다면야 더 할 말은 없긴 없는데요.”
“들어봐, 코넬리아. 나, 이 학원에 온 지 오래도 되었는데, 아직도 학원 앞 지리도 모른다는 건 조금 그렇다 싶긴 해.”
“그으건, 요. 아마 제가 태업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코넬리아는 나랑 일심동체잖아. 내 태업이 네 태업이지 않겠어?”
“아하하하하.......”
솔직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니 테레제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사이 여러 음식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먹거리 골목이라는 느낌일까. 학교 앞의 골목다운 풍경이다.
사람도 많아졌다.
“그냥 아무데서나 먹을까.”
많이 배고프신 모양이다.
차를 마실 때 다과를 꽤 많이 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창 성장기라고 할까.
아니면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긴장되는 걸지도 모른다.
잠깐만.
“할머니의 커틀러스, 찾은 것 같아요.”
“응?”
“저기, 같은데요?”
손을 뻗어 가리킨다.
오랫동안 맡지 못한 진한 간장 냄새에 바로 촉이 왔다.
사람들이 바깥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면서 포크로 통통한 국수를 먹고 있었다.
파스타 아니잖아.
우동이나 가락국수라고 부르곤 하는 그거다.
일단 이 세계에서 가장 닮은 건
“뭐야. 국물 파스타라더니 마르펜조냐잖아. 색깔이 맑긴 한데.”
테레제가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엘프의 면 요리다.
어릴 적부터 세계 여기저기를 자주 돌아다니던 테레제에겐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이다.
하지만, 마르펜조냐는 면발 굵은 짬뽕에 가깝지, 우동이라고는 하긴 힘들다고 할까.
“신기하긴 하네. 한 번 먹어보자, 코넬리아.”
“네, 아가씨.”
커틀러스를 든 우스꽝스러운 해적 할머니가 그려진 푯말을 지나친다.
그리고
“읏!?”
“코넬리아?”
순간, 오른쪽 어깨가 지독하게 아파왔다.
마치 칼에 베이기라도 한 것처럼, 날카롭게.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어깨를 가리고 몸을 움츠려버리고 말 정도로 매서운 고통이었다.
나는 찌푸린 얼굴로 테레제부터 확인했다. 아마 사나운 얼굴이었겠지.
“괜찮아, 코넬, 리아?”
“아가씨는 괜찮으세요?!”
“나는 멀쩡해!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다행이다. 누가 테레제를 기습한 건 아냐.
나는 오른쪽 어깨를 감싸쥔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지나치는 인파 속에선 이상한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 거적을 덮어쓴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신체가 불편한 거지일 뿐이었다.
“전, 괜찮, 아요. 아마도.”
“괜찮다니. 안색이 창백하잖아!”
손가락이 축축했다.
메이드복 바깥으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언젠가 입었던 상처를 기억해내고 얼굴을 찌푸렸다.
“......옛 흉터가 터진 모양이네요.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옛 흉터가 터지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코넬리아. 일단 돌아가자.”
“괜찮아요, 아가씨. 피는 멎은 것 같으니까.”
“코넬리아! 네 안전이 바로 내 안전이야! 이런 상황에서 뭘 하겠다는 거야!?”
“그럼, 음식이라도 포장해가요. 그 정도는, 괜찮으니까.”
“으, 으으으! 정말!!”
정말, 뭐였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