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13화 (13/100)

〈 13화 〉 휴식

* * *

소문이 돌았다.

시험 감독을 맡았던 조교의 실수로 폭사할 뻔한 성녀 후보가 그날 이후로 보란 듯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문이.

사실 나에게 있어선 성녀 후보인가 뭔가 하는 애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건 아니건, 전혀 알 바가 아니었다만, 그 문장의 앞에 질척질척하게 달라붙는 말들은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악의를 갖고 퍼트리듯이, 성녀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문의 앞에 달라붙어 떨어지려 들질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왜곡되기 시작했다.

“성녀 후보 있잖아. 이름이, 세실리아라고 하던가? 글쎄 걔가 마법제어력 시험을 보려 했는데, 시험 감독 조교가 성녀 후보에게 열등감이라도 가졌는지, 심한 짓을 했대.”

“들었어. 듣자하니 폭사시키려고 했다더라.”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흉흉한 짓거리야.......”

“시험 감독 조교. 유르덴 가문의 영애라는 것 같던데. 분명, 이름이.”

“이름이.”

“테레제.”

“그래, 유르덴의 테레제.”

“그런 이름”

“항상 칼을 찬 메이드를 대동한다던데.”

“봤어. 마치 그림자처럼 쉬지 않고 따라붙는 게, 메이드라기보단 호위무사나 다름없더라.”

“하여간 공작 가문이면 뭐해. 군인 가문 출신들은 전부 촌놈들이나 마찬가지라니까. 칼이나 가죽 군화 따위는 이 고상한 학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보기만 해도 흉흉하다니까.......”

“너희, 주종이 쌍으로 왼팔에 붕대를 감고있던 모습은 봤었어? 꼴사납더라.”

“코넬리아.”

테레제가 내 이름을 불러왔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아가씨.”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너는 내 호위가 맞고. 제국 수도에 비하면야 아이렌킬라이나나 유르덴킬라이나는 촌동네가 맞고. 마법을 배우는 곳에서 검이나 군화는 물론 사치지.”

“무, 물론 제 이미지가 아가씨의 평판과 직결하긴 하지만.”

“그래. 당장 너를 떼어놓고 봐도, 나와 관련된 소문들이 전부 중상이고 모략인데,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냐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네. 네에.”

“그쪽은 네가 신경 써 봐야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맥빠지는 소리 하지 마세요.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 잡아야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테레제가 책을 내려놓고 그렇게 말했다.

언뜻 듣자면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말투였다.

.....우리 아가씨는 성녀 후보 탓에 왕자와 불화가 생긴 그 날부터 줄곧 심기가 좋지 않았었다.

과연 지금의 테레제가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남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이 정도라면 아직 기꺼이 받아줄 수 있었다.

차라리 메이드에게 화풀이를 하고 만다면야 다행이지.

물론 나도 테레제의 상태가 계속해서 더 심각해질 것 같으면 조언을 아끼지 않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투정을 받아줄 셈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총명한 아이니까.

지금은 그저 그만큼 많이 흔들렸다는 뜻이겠지, 싶을 뿐이다.

그나저나 대답해야지.

나는 미간을 좁히고 조용히, 짧게 생각했다.

그리고 웃음기를 담아 대답해주었다.

“......찾아가서 전부 모조리 베어버릴까요?”

“응. 나쁘지 않네. 아무래도 가장 간결한 방법이잖아. 허가할게, 코넬리아.”

“아하하. 방금 문득 생각났는데, 아무래도 제가 일 처리를 하는 동안 아가씨의 곁을 비워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네요.”

“그건 그렇네. 곤란한걸.”

“어떻게 할까요? 기왕 허가받았는데, 계속 실행할까요?”

테레제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입을 삐쭉이고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절대 안 돼. 코넬리아는 설령 메이드 복을 입고 있더라도 언제나 검을 패용하고, 유사시에 움직이기 쉽도록 가죽 전투화를 신은 채로 내 곁에 있어야만 해.”

“역시 총명하셔. 그럼 언제까지 왕자님과 성녀 나부랭이를 피해 다니며 투정만 부리고 계실 순 없다는 것도 알곤 있으시겠네요?”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뭘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죠.”

“코넬리아.......”

테레제가 한숨을 포옥 내뱉었다.

어린애가 벌써부터 이렇게 깊게 한숨쉬고 그러면 곤란한데.

“어떨까. 다시 만나서 무슨 말을 하면 좋아?”

“일단 만나서 오해를 푸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해? 무슨 오해를 말하는 거야?”

“테레제 아가씨는 단지 왕자님을 구하려 했던 것뿐이라는 걸요.”

“코넬리아는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줄 어떻게 알고 ‘오해’라고 단언하는 거야?”

테레제의 말에, 나는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만약 애초부터 왕자 에드윈이 유르덴의 공녀를 버리고, 성녀 후보를 테레제의 대신으로 삼을 셈이었었더라면, 지금의 대화는 결국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테레제는 그저 버려진 것뿐이다.

“그렇지만, 아가씨. 그 심중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난 말이야, 뭐가 되었건 간에 지금으로선 무리라고 생각해.”

“아가씨.”

“조금만 더 자숙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쪽도 저쪽도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이야.”

테레제가 가늘게 웃었다.

그리고 엎어놓았던 책을 다시 들었다.

테레제가 책을 들어 올리려 하는 순간에, 그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한순간 파르르 떨린 것을 나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불행한 사고가 한 번 일어났다면, 두 번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죠.”

“그만 둬, 코넬리아.”

“조금만. 네. 하루라도 좋으니 부디, 제가 쉬는 시간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몇 번이고 말했어. 절대 안 된다고!”

“어차피 방에서 자숙하고 계실 거잖아요. 하루 정도라면 괜찮아요. 하루도 아니에요. 반나절? 금방 쓱싹 처리하고 올게요.”

“위험해. 안 돼.”

“모든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 네. 저는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졌어요. 하물며 실전 경험 따위 단 한 번도 없는 여자애 따위, 위험할 것도 하나 없어요.”

테레제가 말 없이 나를 보았다.

어딘가 굉장히 질린 듯한 얼굴.

아무래도 테레제가 그런 표정으로 나를 봐야 할 만큼, 뭐라뭐라 지껄이는 나 역시 제대로 된 꼴은 아닌 모양이다.

사고가 조금 극단적이라도 이해해주시길.

시설에서 매일같이 투여받았던 약이 조금 많이 극적이었던지라.

“.......”

“아가씨?”

문득 자리에 앉아있던 테레제가 내게 손을 뻗었다.

한때, 성녀 후보의 폭주에 휘말려 불타버렸던 왼손이다.

당시 테레제가 상처입는 탓에 피드백으로 나도 같은 부위에 같은 크기의 상처를 입었었다만, 테레제의 상처는 이미 다 나아서 흉터 하나 없이 깔끔한 반면에, 내 왼팔은 아직도 붕대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다.

테레제가 사용한 것만큼 비싼 걸 쓸 수는 없는 법이니 납득은 한다만.

당시에는 내가 같은 상처를 입은 줄도 모르고 잘만 움직였는데, 의외로 굉장히 큰 상처였다.

치유마법도 제때제때 받고 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붕대를 감고 있어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뭐야.

그나저나 자리에서 일으켜달라는 뜻이려나.

나는 반쯤 본능적으로 그녀를 돕기 위해 자연스레 테레제의 손을 내 오른손으로 받았다.

붕대가 감긴 왼손으로 받을 순 없지 않나.

“......도대체 내게 몇 번이고 안 된다는 말을 하게 하려는 거야.”

“테레제 아가씨. 걱정하실 필요 없다니까요. 제가 금방­”

“그러니까, 이번에는 분명히 네가 나빴던 거야.”

“네?”

몸이 굳는다.

사고만 남겨놓은 채, 기계가 꺼지듯 정지한다.

주르륵, 몸이 힘을 잃고 바닥에 구른다. 푹신한 카펫 덕분에 아프진 않았다.

테레제는 내 손을 붙잡은 채였다.

“네가 내게 닿는 걸 허가하지 않았어.”

“.......”

“숨을 쉬는 걸 허락할게. 아마 그다지 괴롭진 않을 거야.”

이런, 방법이 있었나.

아니, 뭐. 과열된 건 내 잘못이니까, 머리에 냉수마찰 하는 기분으로 딱 적당하긴 한데.

오랫동안 자의로 테레제를 섬기고 있었던 탓에, 최초에 정했던 몇 가지 룰을 까먹고 있었다.

테레제가 상처를 입을 경우, 나도 같은 상처를 입는다.

테레제가 죽을 경우, 나도 죽는다.

그리고, 테레제의 허가 없이 그녀에게 접촉하려할 경우, 나는 정지한다.

상처를 분담하는 건 너무 일상적이라 룰에서부터 잊고 있었고, 나머지 2항은 평소에는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나 마찬가지니 역시 잊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이런 자세로 계속 있는 건 곤란하겠지.”

테레제가 나를 질질 끌었다.

마치 살해당한 뒤에 도축장에 끌려들어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니, 물론 그것보다야 당연히 온건하겠다마는.

얼마 가지 않아 테레제는 지친 듯 멈추고서 나를 침대에 등을 기대게 했다.

아니, 뭐어. 물론 침대 위에 눕히기 위해 나를 들어올려 괜히 진 뺄 필요는 없겠지.

“조금, 이렇게 같이 머리를 식히자.”

그리고 테레제는 내 손을 계속 붙잡은 채로 내 오른쪽에 앉았다.

침대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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