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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12화 (12/100)

〈 12화 〉 터닝 포인트

* * *

입학하고 3년이 지났다.

이야. 여자아이는 한 번 자라기 시작하니까 순식간에 자라더라.

열넷. 본래부터 귀티가 나던 테레제는 이제 변명의 여지 없는 아가씨였다.

물론 온전하게 피어나려면 아직 몇 년 정도 더 남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 아침에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아니 뭐, 여태까지야 그냥 어린애였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볼 때나, 씻는 걸 돕다가 알몸을 본다던가 하는 일이 있었더라도 그냥 늦둥이 동생을 대하는 느낌으로 대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젠 그러기가 좀 힘들었다.

지금이야 조금 부담스럽다 뿐이지만, 정말로 이제 1~2년만 더 지나면 ‘힘들다’가 ‘곤란하다’로 바뀌게 되겠지.

“하아.......”

게다가 여동생은 나랑 얼굴이 같은 이성의 동생이잖아.

뭐가 올 리가 없다니까.

하지만 테레제는 아니지. 절세의 미소녀인걸. 날이가면 갈수록 아름다워져가는걸.

웨스트마크 효과였나 베스터마르크 효과였었나.

아니면 패배하는 소꿉친구 클리셰라는 이름이었었나.

하여간에 유소년기에 같이 자란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성적인 흥미를 잃는다는 가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연구자들은 그 가설에 대한 실험을 설계할 적에 기억을 갖고 전생한 탓에 정신연령이 육체의 실 연령보다 더 많은 이상한 별의 메이드를 위해 특별실험군을 준비한다는 노력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말하는 김에, 방학이라 본가에 돌아갈 때를 제외하면 3년째 줄곧 테레제와 숙식을 같이하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제가 아가씨보다 더 연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키가 다 자랐다. 물론 팔찌를 끼고 있는 기준으로.

벗으면 계속 성장도중인 것 같긴 한데, 확인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 하여간에.

원래 얼굴이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팔찌를 끼고 있는 기준으로 다시 돌아가면, 귀족 가문의 맛나고 기름지고 비싼 음식을 잔뜩 섭취하며 자란 덕분에, 굉장히 봐줄만한 모습이 되었다.

살찐 거 아니냐고?

운동과 훈련, 그리고 마력 운용으로 칼로리를 다 소모하고 있는 덕에 군살은 전혀 없다.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을 들어간 그야말로 나이스 바디. 우하하하, 팡파레.

......전혀 기쁘지가 않다.

내 몸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이런 외모의 여성이 길을 걷고 있다면 곧바로 달려가서 사랑을 고백할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나’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뭐어, 기쁘지 않다고 해서 싫은 것까진 아니다.

아무렴 못난 것보다야 눈 호강이라도 할 수 있는 몸이 낫지.......

“유렌지아 포드벨. C­랭크입니다.”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날.

노른데아셀에선 신입생들의 마력제어학 수업 기말고사가 한창이었다.

“유렌지아 포드벨. C­랭크입니다. 수고하셨어요, 포드벨 양. 퇴장해주세요.”

테레제가 교수의 말을 따라 읊고, 신입생에게 신속히 움직이기를 주문한다.

테레제는 교수의 바로 옆자리서 마치 조교처럼 학생들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작년에 무슨 사고가 있어서, 조금 어리더라도 유능한 테레제가 시험 보조를 맡게 되었다고.

우리 아가씨 자랑스럽다.

“그, 그럴 리가요! 제가 겨우 C­랭크라니!”

“이건 제어력을 보는 시험입니다. 화려한 걸 자랑하려거든 파괴마법 수업에서나 해주세요.”

원만한 졸업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자, 졸업장에 기재될 ‘마력 제어력’ 항목의 랭크를 결정짓는 시험이었다.

자연스레 시험장엔 신입생들 사이사이에 더 좋은 성적을 위해 몇 번이고 재수하는 선배들이 상당히 끼어있었고, 새 인재를 낚아채려 시험을 참관 중인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신입생들의 시험 치고는 긴장감이 몹시도 팽팽한 편이었다.

“그런, 헨델 교수님. 다시 한 번 하게 해주세요! 이번에는 더 잘 할 수 있어요!”

“내년을 기대하겠습니다, 포드벨 양. 자, 다음 학생 올라와주세요.”

“으, 으윽!!”

“뭐하시나요, 포드벨 양. 다음 학생이 기다린답니다.”

거기다가, 신입생들 사이에선 나름 잘나간다며 자신만만해하던 우등생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시험결과에 산산이 깨져나가고 있으니, 분위기가 자꾸만 우중충해질 수밖에.

그리고 그 긴장감은 한 학생이 시험장의 마법진 위에 올라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을 때 가장 팽팽해졌다.

“응용기적학과의 세실리아 더블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실리아 더블린. 그녀의 이름에 대해선 나도 알고 있었다.

메흐레니아 교단의 성녀 후보라던가.

작년에 고등부로 편입했는데, 어떤 작위도 갖지 않은 평범한 평민이라서 학원의 여러 고용인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며 몹시 떠들썩했던 걸, 아직 기억한다.

듣자 하니, 마력 보유량이 인간으로선 유래가 드문 SSS랭크라던가.

용사나 마왕조차 보통 SS에서 그친다던데, 용사와 마왕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나는 그냥 굉장한 인재구나­싶을 뿐이지만.

“저 사람이.......”

“작년에는 시험장을 깡그리 불태웠었다던데.......”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걸까? 피신해야하는 거 아냐?”

그게.

마력제어력 시험에 낙제했다는 듯했다.

그것도 그냥 낙제가 아니라, 제어에 실패한 마력이 성대하게 폭발했다고.

앞서 말한, ‘작년에 일어난 사고’가 바로 이거다.

그래서, 뭐, 그런 시한폭탄 같은 위험인물에 대해선 조금 더 잘 알아놔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얼굴까지도 자세히 기억해두고 있던 것뿐이다.

“여러분.”

헨델 주임교수의 작은 한 마디에 시험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세실리아가 무대에 올라온 순간부터 이어지던 수군거림이 점차 커지더니, 결국 교수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교수는 한 마디로 좌중을 정리한 뒤에 역시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더블린 양. 작년에도 여기 왔었죠?”

“네, 교수님.”

“많이 연습했나요?”

“네.”

“좋습니다. 보여주세요.”

“헨델 교수님!!”

한 학생이 외쳤다.

목소리에선 벌써 불만이 느껴졌고, 얼굴은 볼 것도 없이 불안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작년에 큰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선배님의 시험은 미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과를 불문하고, 모든 신입생은 필수로 ‘마나 실드 생성 및 제어’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네? 예, 예에.”

“그럼 알아서 몸을 지키세요.”

신입생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새싹 같은 아이들은 모두가 그런 표정이었다.

반면 선배들은 한숨을 한 번 쉴 뿐, 알아서 마나 실드를 생성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뒤에야 신입생들은 어리둥절 마나 실드를 펼쳤다.

모든 학생이 준비를 끝마치기까진 시간이 조금 걸렸다.

“보아하니 준비들 된 것 같군요. 더블린 양. 시작하세요.”

“시작하겠습니다.”

내려쬐는 빛은 찬란한 황금색.

찬란한 황금의 광채를 한데 묶어내나니, 큰 신 메흐렌의 영광을 여기에.

세실리아가 눈을 감고, 팔을 뻗어 기도문을 외웠다.

마력을 모아 구체를 만들 뿐인 단순한 시험이니, 결코 한 구절 이상의 긴 기도문이 필요하진 않았다. 웬만해선 기도 없이도 가능하다. 나 역시도.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더 나은 성적을 위해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도문을 읊어서 마법의 제어를 보조하곤 했다.

설령 불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기도와 기도를 이어 존귀한 구원을 엮어냅니다. 소망과 소망을 받들어, 윽!”

세실리아가 움찔거리자, 그녀로부터 새어나온 마력이 파동이 되어 그녀의 발밑을 휩쓸었다.

그녀는 무영창으로도 발동 가능한 아주 간단한 마법을 보조하기 위해 긴 기도문을 외우면서도 힘겨워하는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이래서야 몇 줄이나 되는 기도문을 읊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진장의 마력 탓인지, 기초적인 마력 제어부터가 전혀 되지 않고 있질 않나.

그렇게 판단한 헨델 교수는 세실리아에게 명령했다.

“거기까지. 그만두세요. 더블린 양.”

“죄송해요, 교수님. 전 할 수 있어요. 제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신 분들이 계신단 말이에요. 그분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절대 낙제할 수 없어.......”

“더블린 양!”

“소망과 소망을 받들어, 순수한, 희망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세실리아가 뻗은 손끝에 생성된 거대한 마력의 구체가 점차 작아진다.

낙제하지 않을 최저 요구사항은 지름 1m 크기의 완벽한 형태를 갖춘 구체를 만들 것. 다행히 낙제는 면한 모양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세실리아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서.

“메흐렌, 님의 사랑이 우리의, 하윽!?”

틀렸어. 너무 무리했어.

구체가 점차 줄어들다가, 지름이 20cm 정도 더 줄어든 시점에서 다시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세실리아는 더 이상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게 되었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어를 포기하지 않고 손만큼은 마력의 구체를 향해 계속 들고 있었는데, 정신력은 대단하다고 칭찬해야할지,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다며 질책을 해야 할지.

테레제가 기록을 멈추고 교수의 얼굴을 보았다.

교수는 테레제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초를 치는 것 같긴 하지만, 안전제일이야.

“새겨지는 색은 잿빛. 무단 침입을 시작합니다.”

“우욱, 우우욱.......”

테레제가 왼팔을 뻗어 세실리아의 마법에 간섭을 시작했다.

테레제는 세실리아의 반대였다. 마력 보유량은 평범하거나 평범보다 살짝 부족한 편이었지만, 마력 제어력만큼은 이 학원 제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교수진을 통틀어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작년의 사고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 일개 학생인 테레제가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얌전히 있으세요, 더블린 양.”

굉장히 비대해져버린 마력의 구체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지만, 적절히 보조하고 천천히 해체하면 누구 하나 부상입지 않고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세실리아가 며칠 몸살로 앓을 만큼 지쳐버릴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는 테레제의 대각선 옆 뒤편에서 대기하다 말고, 언제든지 테레제의 방패막이 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세실!!”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보이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바깥에서 창문 너머로 시험을 참관하고 계시던 에드윈 전하였다.

왕족들이 흔히 그렇듯,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서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입에 담은 이름이 테레제의 이름이 아니라, 세실리아의 것, 그것도 애칭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테레제가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에드윈이 누구 간병을 다니고 있다고.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하니, 그 이야기를 들은 게 아무래도 작년 이맘때쯤인 것 같았다.

“괜찮나, 세실?! 큭! 무리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에, 에드?! 왜 여기에?!”

“헨델 교수님! 세실리아가 위험합니다! 지금 마법을 해체해야만 합니다!”

우리 아가씨가 지금 전심전력으로 노력하고 있잖아.

그나저나 성녀 후보님은 우리 주인님의 약혼자와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는 사이였었구나.

사이좋아 보이네.

우리 아가씨에게 좋은 느낌은 결코 아니지만.

“안 돼. 이번엔 잘할 수 있었단 말이에요.......”

“세실. 괜찮아. 다시 한 번 연습하면 되잖아?”

“이런 모습, 에드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곤란하네.

세실리아의 격한 감정에 맞춰, 그녀의 마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날뛰기 시작한다.

간섭하고 있던 테레제에게도 도저히 무시하지 못할 피드백이 흘러올 만큼.

“으윽!”

“아가씨!?”

“괘, 괜찮아, 코넬리아. 하지만 조용히 해줘. 실수할 것 같으니까.......”

테레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피드백 한 번에 제어에 사용하던 왼팔이 마력에 타버렸다.

나로서는 테레제가 그만두었으면 했지만, 테레제가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말한 이상, 내게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

“괜찮아, 세실. 진정해. 아직 기회는 남아있어.”

“에드,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너를 향해 성녀에 어울리지 않다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나만큼은 세실의 노력을 알고 있어. 오늘은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뿐이야. 그러니까, 침착하자.”

이대로 세실리아의 폭주가 잦아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에드윈이 자꾸 뭐라고 세실리아에게 말을 거는데, 문득 그 탓에 감정이 자꾸만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테레제의 간섭 제어가 더 힘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에, 말을 나누면서도 에드윈과 세실리아 사이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저 왕자가 테레제를 믿어주는 건지, 아니면 세실리아를 믿는 건지, 나는 판별할 수 없었다.

하긴 내 생각도 심증일 뿐이지,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까.......

“코넬리아. 내 억지를, 조금. 들어줄 수 있겠어?”

“네?”

불길한데.

보통 이런 말을 하면, 들어주고 싶지 않다.

들어주기 싫은 말을 하니까.

“우선 듣고, 생각해볼게요.”

“가서, 에드윈 전하를 지켜.”

“그럴 순 없어요, 아가씨.”

“지금, 곤란하니...까, 반론은, 듣고 싶지...않아. 당장, 움직여!”

“윽.......”

힘겨워하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파들파들 떨리던 테레제의 손끝이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마도 간섭 술식이, 조금 변모하고 있었다.

그 술식에 대해 읽어낸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냥 제가 저 마력 응축원을 잘라낼게요! 저라면 할 수 있어요!”

“안 돼!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널 위험하게 할 순 없어! 그러니 명령이야, 코넬리아!”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달려나가 에드윈 전하를 손을 붙잡고 강제로 끌어내었다.

“누구냐! 코넬리아!? 이, 이거 놔라!!”

“안 돼요! 위험해요, 에드윈 전하!”

이름을 기억해줘서 고맙지만, 네 탓이야.

네가 세실리아의 폭주 사정권 내로 더 다가가려 하지만 않았더라면.

테레제는 그 몸이 으스러지건 말건, 어떻게든 세실리아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거야.

“다시금 새겨지는 색은 잿빛. 시계태엽을 반대로 돌리면 망가지리라.”

“아아아......”

에드윈이 떨어지자, 테레제가 세실리아의 마법에 간섭해 강제로 그녀의 마법을 자괴시킨다.

마법이 파괴되자, 지나치리만큼 과도하게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주인의 제어를 끝끝내 완전히 잃고서 미친 듯 날뛰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해, 마력의 구체가 세실리아의 코앞에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다만, 화력이 최대한 압축되도록. 폭발이 사방으로 퍼져 애꿎은 사람을 상처입히지 않도록.

오직 세실리아 본인만을 불사르도록.

테레제는 그렇게 되도록 세실리아의 마법에 간섭했다.

잔인하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이게 옳다고 여겼다.

“안 돼, 세실!”

“왕자님이야말로 안 돼요!”

눈부신 섬광.

그리고 삐이이. 이명.

나는 그 와중에도 세실리아에게 뛰쳐나가려는 에드윈을 막느라 고생이었다.

“이거 놔, 코넬리아!!”

“꺅!?”

또 뺨을 맞았다.

그건 괜찮은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위력이라 놀랐다.

바닥에 구르는 아픔을 느끼면서, 뒤늦게 나는 내가 꼴사나운 소리를 내었다는 것을 알았다.

“세실! 세실!”

“에드, 저........”

“다, 다행이야.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이제 더 말하지 마, 세실. 다시 채색하는 색은 초록, 신체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리라.”

에드윈이 불길 사이로 뛰어들어 잔뜩 화상을 입은 세실리아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

나는 쓰러진 자리에서 몸을 돌려 테레제의 모습을 보았다.

테레제가 벽에 기댄 채, 불타버린 자기 왼팔을 부여잡고서 고통을 참고 있었다.

“아가씨!”

“잘, 했어, 코넬리아. 그리고 미안해. 코넬리아 지금 입에서 피 나고 있어.”

“고작 찢어진 거예요. 이딴 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저보다 아가씨가!”

사방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갑작스러운 침묵이 찾아왔다.

무릎을 꿇고 세실리아를 안아든 에드윈의 눈이 테레제를 원망스레 노려보고 있었다.

테레제는 피투성이가 된 왼팔을 등 뒤로 감추며 전하의 말을 기다리듯 입을 다물었다.

왜.

왜 우리 테레제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테레제가 아니었다면, 지금 너나 이 교실의 학생들까지도 전부 다 저 성녀 후보라는 것이랑 같이 새까맣게 타서 바닥을 구르고 있을 거라고.

“테레제. 왜 그랬지?”

“세실리아는 스스로의 마력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야. 네 안전을 우선시한 것뿐이야.”

“아니! 세실리아는 스스로의 마력을 제어해냈을 거다!”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

테레제는 움찔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어 다시 고했다.

“저는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뿐입니다.”

존댓말.

세게 쥔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객관적? 객관적이라고? 그럼 미래의 왕비가 될 네게 다시 한 번 묻겠다. 너는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는 백성을, ‘나를 지키기 위해’라는 변명으로 망설임 하나 없이 폭파시켰다! 이 잔혹한 짓거리가, 객관적으로 옹호될 수 있는 옳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저는.......”

“거기에 더해, 너는 내가 자기 한 몸 지킬 역량조차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냐? 어이가 없군. 차라리 저기 겁에 질린 신입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 그랬느냐, 테레제!”

“거기까지.”

교수님의 목소리였다.

그 역시도 신입생들을 지키는 광역 장벽을 펼치느라 지친 모양인지 쉰 목소리였다.

“다음 학생 올라오도록 하세요. 테레제는 보건실에 가보도록.”

테레제가 얌전히 교수님과 전하께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등을 돌려 재빨리 퇴장했다.

나는 뒤늦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등 뒤로, 에드윈의 꾸지람이나 질책을 넘어서서 원망마저 섞인 시선이 자꾸만 느껴졌다.

그것이 나에게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아니, 물론 직접 끌어낸 사람이니 조금은 향했겠지만,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끔따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가씨.”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테레제가 울먹인다.

내가 옆에 있다면, 남들 앞에서도 울지 않으려 노력하던 아이였다.

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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