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노른데아셀 학원
* * *
학교.
아아, 학교.
싱그러운 학생들의 풋내가 만발하는 곳!
“......죄송합니다.”
“뭐? 뭐어!? 너, 너는 오르데냐 가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느냐!?”
머리를 푸우우욱 숙인다.
김빠진다아.
아. 곧바로 이런 말을 꺼내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뭐. 내 탓이 아니라, 학생들의 풋내가 만발하는 탓인걸.
어리고 신분 높으신 분들 앞에서, 이 비루한 몸이 어쩌겠습니까?
기라면 기고, 사과하라면 사과해야지.
“한낱 메이드 따위가!!”
짝. 고개가 휙 돌아간다.
물론 아프지 않아요. 전혀 아프지 않아요.
왕자님의 싸다구도 별로 안 아팠다고. 후작가의 주먹 정도야 가볍지.
소개가 늦었지만, 여기는 노른데아셀 고등학원.
정식 명칭은 ‘드라킬라이니아 황립학원 노른데아셀.’
뭐어, 보다시피 고등학원이라는 말이 우습지도 않다.
고등학원이라지만, 애초에 ‘모이라이아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곳이다.
어린애들뿐이다. 대충 전생과 비교하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까지려나.
모이라이아 대학원은 이름만 대학원이지 전세의 노예굴, 엇흠. 실례.
대학원과는 달리 고등학교와 대학을 섞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곧 오르데냐 후작가를 이을 몸이다! 그런 내가 사과를 깎아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미천한 것이, 뭐라고!? 죄송합니다!? 어이가 없군!”
오르데냐 후작가의 어린 소년이 손에 사과를 쥐고서, 그 손의 검지로 나를 마구 삿대질하며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쯤되면 오히려 안쓰럽다 싶다. 친구들 다 보는 앞에서 이게 뭐람.
조금 더 나이 먹으면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닐걸.
아.
저 사과의 내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애초에 사과도 아니다.
엄지손가락 만한 것이, 돌사과라고 부르는 그거다.
아마 자기 친구들과 함께 학교 정원의 나무에서 딴 것 같은데, 껍질째로 먹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얌전히 대기하던 메이드인 나를 붙잡고 껍질을 깎아달라 명령하는 것이다.
다른 메이드랑 다르게 자기 또래라 말 걸기도 쉬웠겠지, 뭐.
“다시금 죄송하지만, 저는 테레제 아가씨의 메이드이기에.”
아우, 잘도 술술 뱉는다 싶다.
말하면서도 혓바닥이 솔직히 간질간질하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메이드라고 자기소개하는 건 아무래도 쉽게 혀에 달라붙지가 않았다.
하와와, 일어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팔찌를 벗으면 소년인 저.
그게 바로 누구일까요? 바로 저 코넬리아랍니다.
......젠장. 빌어먹을.
“뭐? 누구?”
아니 뭐. 모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제국은 넓고, 이 학교는 제국 수도에 위치한 최대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길을 가다 발에 치이는 돌멩이보다도 귀족이 많은 곳이다.
단순히 왕족만 센다 해도 여기 노른데아셀과 상급기관인 모이라이아 대학원에서만 세자릿수가 재학 중이라는데 더 말할 것이 있으랴.
뭐어, 애초에 테레제가 가문에 대해선 최대한 언급하지 말라고 말한 것도 있고.
“흥. 뭐, 어느 정도 되는 가문인가보지. 하여간에, 주인의 이름을 팔려는 것 같은데, 오히려 네가 나를 잘 접대하지 못하면 네 주인의 이름에 폐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게 아주 우습다! 네 주인이 어떤 꼴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구나!!”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나는 허리춤의 단검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곧바로 붙잡혔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테레제가 돌아와 있었다.
“아가씨!”
“하! 이 메이드의 주인이 바로 너...냐...? 어어.......”
“왜 그래? 어항 바깥에서 말라 죽어가는 금붕어처럼 뻐끔뻐끔거리고.”
테레제는 교복 위에 왼쪽 어깨만을 감싸는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안감의 색은 보라색. 공작 가문을 의미하는 것.
그것보다 높은 것은 황가의 황금색, 대공위의 검은색, 그리고 왕가의 붉은색 정도다.
후작위, 혹은 변경백위의 청색으로는 아무래도 기세가 눌리겠지.
“방금 전까지는 분명 기세좋게 말했잖아. 혹시 아픈 곳이라도 생겼니?”
“그, 그게.”
“말을 못하겠다면야, 제대로 말하는 법부터 배우고 학교에 오는 건 어떨까?”
그것만으로도 이미 기세가 눌렸는데, 테레제의 말투가 몹시도 싸늘하고 공격적이었다.
뭐.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아가씨. 듣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너를 모욕했어. 너의 주인인 나를 모욕했어. 그런데 그냥 넘어가라고?”
“네.”
오히려 나 때문에 너무 흥분하는 것도 보기에 좋진 않다.
방금 전까지 칼을 뽑으려고 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마안.
이것도 저것도 전부 실험 때문이야. 뭔가 안 풀리면 칼자루에 손이 가버리니, 원.
아, 그래도 바로 뽑을 생각은 아니었답니다.
믿어줘. 칼자루에 손을 올리고 있으면 조금 안심이 되고 사고가 넓어질 뿐이야.
설마 이런 데서 누구를 해치려고 했겠어?
......아마도.
“그래. 네 말이 맞아.”
“감사합니다, 아가씨. 그리고.......”
오르데냐 가문의 소년 쪽으로 슬쩍슬쩍 눈치를 보낸다.
역시 총명하신 우리 테레제 아가씨는 내 사인을 단번에 읽으셨다.
그리고 한숨을 쉬셨다. 보기에 좋지 않다니깐.......
“하아. 그래. 나도 너무 심한 말을 했지? 사과할게.”
“아, 아아아아닙니다. 저야말로.”
“사과를 받아줘서 고마워, 유날리드. 내년 이클리시아 신년파티에는 꼭 참석해서 내게 아는 척을 해주길 바래.”
“윽.”
“가자, 코넬리아.”
아무래도 같은 아이렌킬라이나 땅의 귀족 가문인 모양이다. 적어도 가까운 가문이겠지.
이클리시아 왕국의 신년파티에 다른 주?의 귀족이 초대될 리가 없으니까.
각자 자기네 주의 중심지에 놀러가기 바쁠 텐데.
그런데도 테레제 아가씨를 몰라?
곤란하네, 저 아이. 말하는 걸 듣자하니 아무래도 장남인 것 같은데.
아. 아닌가.
테레제가 조숙한거지, 쟤가 어린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에.
나도 말야!
전생의 14살 무렵에는!
중2병에 걸려서 우산 갖고 허공에다가 칼싸움을 하며!
온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외쳐, 만ㅎ
“코넬리아.”
“네, 아가씨.”
“맞은 데는 괜찮아?”
“저 엄청 튼튼해요, 아가씨.”
“미안해.”
테레제와 잠시 떨어져 있었던 이유는 공간마법 때문이었다.
개학하기 전에 신체검사 비슷한 느낌으로 마법에 대한 소질 같은 걸 검사하기 마련이라는데, 이미 입학하기도 전에 소질과 재능이 폭발한 테레제는 여러모로 옆 대학원 교수들에게 점찍힌 모양이었다.
그래서 교수들에게 반쯤 끌려갔었는데, 뭔가. 그.
꼰대? 같은 느낌의 교수가 하나 있어서?
그런데 그 꼰대가 엄청난 실력자라서?
내 내력을 단 한 눈에 알아보는 탓에?
......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여장남자가 랩실에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니. 그게 대체 뭐야. 마치 한 번 들여보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은.”
“그, 그게. 그런 말을 제 앞에서 또 입에 담으시면 제가 가슴이 아픈데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테레제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여장남자라니, 참. 코넬리아. 넌 그냥 여자애잖아.”
“아이, 참. 저도. 그게, ......그랬었죠.”
아마 테레제가 한 말이 아니었더라면, 내상에 피를 뱉었을 것이다.
테레제였기에 버텼지.
아, 미소. 미소. 조금 깨지지 않았을까 걱정되네.
“다음은 기숙사야. 어서 가자.”
“네, 아가씨.”
“공작 가문의 영애와 합숙할 메이드가 실은 여장남자라니. 정말 끔찍하잖아.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아, 아하하.”
슬프다.
내가 어지간해선 눈물이 잘 안 나오는 사람인데, 눈물이 나오려 그러네.
기숙사는 멀지 않았다.
여기쯤 오니 기숙사 바깥 구석에 바쁘게 움직이는 메이드들이 꽤나 보였다.
이불을 넌다던가, 우편을 대신 받고 있다던가.
사실 집사라면 또 모를까, 애초에 메이드가 주인 따라 교육동까지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특이하다면 특이한 셈이지. 엣헴
속은 집사라고 생각하면 별로 특이하지도 않잖아!
......제 살 깎아먹기는 그만 할까.
“꽤나 작네.”
“기숙사이니까요. 저는 이 정도도 꽤 크다고 생각해요.”
“흐음. 그런가?”
사실 어마어마하게 크다. 기숙사 한 동이 유르덴 가문의 저택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그런 기숙사가 총 세 동이나 있었다. 돈을 얼마나 부었는지 가늠조차 안 된다.
과연 모이라이아와 함께 제국 최고최대의 교육기관이라고 말할 만했다.
“몇 동 몇 호였지?”
“2동 922호에요. 최상층이려나.”
열쇠는 내가 맡고 있었다.
허리춤에서 꺼내 테레제에게 보여준다. 조금 글로리아의 느낌이 났으려나..
“어서 가자.”
“네.”
“아, 맞아.”
테레제는 계속 덮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나는 나아가 그것을 받으려 했지만, 테레제는 그럴 새도 없이 공간마법으로 망토를 지웠다.
흐으음.
“네게 어울리는 색깔의 망토인데. 왜 숨기지?”
그 순간,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었다.
노른데아셀의 고학년이던가 아니면 모이라이아의 학생으로 보였는데, 그는 테레제의 것과 똑같은 보라색 안감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물론 더 신경 쓰이는 건 붉은 안감과 대비되는 황금색 겉감.
나는 오래 고심하지 않고 고개를 곧바로 숙였다. 고개를 숙이고 생각해도 좋으니.
학생 사이에 무슨 신분제냐 싶지만, 이런 점은 편해서 좋았다.
“안녕하세요, 오를레베트 님.”
“옛날처럼 오빠라고 불러도 좋아.”
뭣.
“안녕하십니까, 나이트 오를레베트.”
“너무하네.”
“이래 보여도 약혼자가 있는 몸이라서요.”
다행히.
다행인가?
뭐어, 아무래도 테레제는 그다지 이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낌새였다.
그나저나 기사라. 황제의 황금색을 겉감으로 썼으면, 황실 근위기사라는 뜻이려나.
“왜 오셨나요?”
“뭐. 별건 아니고, 변경 디오르시온에서 총을 든 반룡들이 우리 서방국경수비대를 습격했다가 잡혔거든.”
“어머. 맨손으로도 사람 정도는 찢을 줄 아는 반룡들이 뭣하러 총을?”
변경 디오르시온에, 반룡이라.
아하하. 위가 쓰리네. 테레제는 능글맞게 넘겼지만.
“그러게. 나도 참 궁금하다. 그치?”
“정말 의문스럽네요.”
“그래. 모른다니 뭐. 어쩔 수 없고.”
뭐지. 나지막한 경고?
혹시 경찰 같은 건가.
FBI?
소년은 몸을 돌려 떠나가려다가, 고개만 슬쩍 돌렸다.
그리고는 테레제에게 눈을 맞추고서 싸늘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적당히 하라고 전해. 제국 병사를 한 번만 더 건들면 용서치 않겠다고.”
“네. 그럴게요.”
테레제가 처음으로 싱긋 웃으며 그에게 대답한다.
암묵적인 묵인, 혹은 내통자. 어느 쪽이건 간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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