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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10화 (10/100)

〈 10화 〉 켄타우로스

* * *

오늘은 입학식 전의 마지막 거래였다.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흠. 아주 괜찮다.”

상자에 가득 찬 도약지뢰를 하나하나 살펴보던 켄타우로스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죽음을 품은, 달콤한 열매.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심어지겠지.

나는 짧은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저걸 밟고 죽은 희생자나, 운이 좋아 밟고도 불발로 끝난 행운아에 대한 이야기가 간간이 뉴스에 나왔던 것을 기억했다.

“그런데, 대금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나는 불길함이 느껴져서, 천천히 손을 칼자루로 옮겼다.

출발하기 전에, 테레제는 켄타우로스들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에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거래처이니 심하게 긴장할 것이 없다고 말했었다.

덧붙여서, 오랫동안 거래해왔기에 서로의 사정도 잘 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대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었잖아요?”

“그렇다. 기억한다. 인간계에서는 질 좋은 마석을 구하기 힘들다지?”

가장 쉽게 마석을 구하는 방법은 광산에서 캐는 것이다.

물론, 광산에서 캘 수 있는 것들은 물론 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마도구 보급에는 더 유리할지 모르지만, 크게 인정받는 마석은 아니다.

가장 질이 좋은 광산마석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B급.

“우리 전사들은 전쟁을 대비한다. 마수 사냥하다 다치는 것 원치 않는다.”

“외상을 하시겠다면, 거래는 중단이에요.”

“외상? 아니다.”

고등급의 마석은 역시 위험한 고등급 마수에게서 채취된다.

그리고 인간 제국에선 사람이 접근하기조차 힘든 험지가 아니고서야, 위험한 고등급의 마수란 대부분 구제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북방의 사냥꾼이나 제국 각지의 모험가, 그리고 국경 인접 도시에서 꽤 공급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수가 판치는 수인들의 땅보다는 산출량이 적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거래에는 그대가 이것으로 메꿔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르륵. 드르륵.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텐트 내부로 들어선다.

바퀴가 달린 커다란 케이지였다.

그리고 케이지 내부에는 족쇄와 목걸이를 찬 여우 수인과 개 수인들이 가득했다.

언뜻 세어도 스무 명을 넘겼다.

“노예다. 여섯 케이지가 더 있다. 그리고 일곱 케이지 모두 그대에게 넘긴다. 합당한 가격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그쪽이 남는 장사다.”

“오직 무기만을 사고팝니다. 노예는 거래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국은 노예를 인정하고 있다.

제국 아래의 수도 없이 많은 각 왕국들도 역시 영지 상황과 통치자의 성향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역시 대부분이 노예를 잘 부려먹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예 상인이 명예로운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알고 계실 텐데요.”

“안다. 오래 거래해온 체면을 보아달라. 우리는 사활을 건 전투를 앞에 두었다.”

“그리고 수송비를 생각해주세요. 저는 생명체를 옮기진 못해요. 설령 저 많은 노예들을 전부 유르덴킬라이나까지 옮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후에 저는 입이 무거운 노예상을 다시 찾아야 해요. 이 수고로움의 값은 쳐주시지 않을 생각인가요?”

“그렇기에 무려 일곱 케이지나 되는 노예다. 100명도 넘는다. 그들로 하여금 땅을 경작하게 한다면, 그 열 배의 사람들이 배불리 한 해를 넘길 수 있다.”

“곤란하네요. 저는 사람이 많기에 오히려 거래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다다익선이다. 그리고. 나는 예의를 보였다.”

거래를 주선하던 켄타우로스의 시선이 순간 바뀌었다.

“안 된다 안 된다 말하지만 말고 그대도 예의를 보여라!”

테레제가 대답하기 전에,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들어 그에게 겨누었다.

주변에서도 뒤늦게 일어난 켄타우로스들이 창을 들이밀며 겨누어 왔다.

“아가씨는 고함소리를 싫어하십니다.”

“으윽.......”

테레제는 떨지 않는다.

반면 맞은편의 켄타우로스는 미간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진 칼끝에, 식은땀을 흘렸다.

과하게 당황한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마나 실드를 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었을 텐데, 전혀 작동하지 않고 그대로 뚫렸으니.

“듀오토가 없다고 쉽게 보였나요?”

“그, 그런.”

“숙부님이 있을 적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테레제가 옅게 웃었다.

“거래를 파기하겠습니다.”

“기다려라! 우리는 오랫동안 거래해왔다. 이렇게 쉽게 버릴 수 없을 텐데!”

“서로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은 당신들 말고도 많아요.”

“윽! 기, 기다려라! 이건 어떠한가.”

“어느 것이건 간에.......”

그가 테레제의 말을 자르며, 급히 품속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그것의 밀봉을 찢고 테이블에 툭툭 떨어트린다.

하얀 분말.

마약인가.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막았다.

“하아.”

테레제의 눈앞에 모노클 형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석을 감정할 때 쓰는 마법. 테레제는 하얀 분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일일이 핥아볼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이다.

“혹시나 하여 다시 확인하겠습니다만, 비룡의 등뼈를 통째 갈아낸 가루와 오베이다꽃의 줄기 진액을 섞어 굳힌 뒤 불에 건조하여 다시 빻은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맞다. 우리 말로 ‘가란베다’라고 한다. 전쟁할 때, 출격을 앞둔 전사들이 이빨에 바른다. 네 숙부도 가끔 즐겼었다.”

“얼마나 있나요?”

켄타우로스가 턱짓하자, 다른 병사 켄타우로스가 모두 창을 내렸다.

나도 칼날을 내렸다.

그리고 케이지가 나가고, 트롤리 웨건이 들어 온다.

가란베다를 굳힌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이다.

블록 15장. 나는 저 마약의 가격이 얼마나 될지 감도 잡지 못했다.

아니. 실은 말이지.

애초에 바깥출입이 적어서 현실적인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곤란하네요.”

테레제는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톡, 톡, 톡, 톡, 검지 손가락으로 자꾸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러다가 마법으로 공간을 열어,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마석이 박힌 상자 같은 물건. 틈 같은 건 보이지 않는 직사각형의 정육면체였다.

테레제가 그것에다 마력을 담자, 좌우에서 파츠 두 개가 분리되었다.

테레제는 그것을 마치 전화기의 송신기와 수신기처럼 하나씩 들어, 귀와 입에 대었다.

“Ti’Therese Zerta. Ti Reube’Biiena Centorrtz ‘Grranbeda’. Hytiana?”

엘프어?다.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켄타우로스들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테레제는 몇 마디를 더 나누더니, 전화기를 다시 상자에 돌려놓았다.

상자는 물론 금방 다시 공간 마법에 의해 사라졌다.

“좋아요. 거래할게요. 세계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라. 수송비를 생각해보면 겨우 본전 치는 느낌이지만, 뭐.”

테레제가 손을 뻗자, 마약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승을 빌어요.”

테레제가 빠져나간다. 나도 그녀의 뒤에 조용히 따라붙는다.

마침 케이지를 옮기는 켄타우로스들이 옆을 지나간다. 시선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물론 옮겨지고 있는 노예들만큼이나 불쾌한 시선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분명 테레제의 무기 탓에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다.

이를 갈며, 증오스러운 눈으로 테레제를 쳐다본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다.

“저 노예들이 어디로 가는 지 궁금하지 않아?”

“네?”

“아마 저 노예들을 모조리 구덩이에 몰아넣고 죽이려 할 거야. 경작이니 뭐니 했지만, 당장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저것들까지 먹일 여력은 없을 테니까.”

“......그렇군요.”

“그것도 모자라서, 사람을 죽이는 데에 총알조차 아깝다며 생매장을 하려 들겠지. 빠져나오는 것들은 창으로 찔러서 다시 구덩이에 밀어 넣으면서 말이야.”

테레제는 굴러가는 케이지에서 꽤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멈춰있던 발을 다시 움직이면서 한 마디를 뱉었다.

“잔인하다니까, 정말.”

그렇게 말하는 테레제에겐 그다지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증오도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 표정이 어딘가 어색해보여서, 문득 한 마디를 뱉고 말았다.

그레나르데에서, 테레제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인간이 아니잖아요.”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진심이 단 1%도 담겨있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제국의 법학적인 면, 학술적인 면, 어언학적인 면에서, 저들은 분명 인간이 아니긴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단정지으면 편하리라는 것을,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사람이잖아.”

“아가씨.”

“나도 공감할 줄 알아.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물론 슬퍼.”

테레제가 공간을 열었다.

작은 균열. 테레제의 작은 손바닥 위에 떨어진 것은 황동빛 납탄 하나였다.

테레제는 그것을 검지와 엄지 사이에서 굴리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일어나야 할 일은 어차피 마땅히 일어나기 마련이야. 대화수단이 총이었는가, 칼이나 창이었는가, 그것뿐이지. 물론 순수한 언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는 죽을 테고.”

테레제가 총알을 말아쥐었다.

작은 손바닥에 겨우 감추어진 그것은, 다시 손바닥을 폈을 때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어차피 나로서는 막을 수도 없어. 그러니, 차라리 일어날 일이라면 기쁘게 끼어­.”

“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가씨.”

“나쁜 짓을 하는 데 마음이 좋을 리 없다는 건 나도 알아. 변명이라도 하게 해 줘.”

자조로 가득한 얼굴.

테레제는 다시 균열을 열어 마약 벽돌을 꺼냈다.

“이것의 일부는 병원으로 가게 될 거야. 마취제로도 쓸 수 있거든.”

“다행이네요.”

“그리고 대부분은 엘프에게 팔 생각이야. 너는 마약굴에서 마약에 쩔어 사는 엘프들이 얼마나 많은 지 감도 잡지 못할 걸.”

테레제는 지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육체적으로 지쳤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입학식 전에........ 내일 곧바로 다녀오자.”

“네, 아가씨.”

“귀찮게 되었어, 정말.”

“저기, 아가씨.”

문득, 나는 생각난 것이 있어 테레제를 불렀다.

테레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았다.

“왜?”

“오늘 같은 일이 또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거래하러 올 때에는 팔찌를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으음. 일리있네.”

오.

어쩌면.

하긴 여자애 둘 보다야 그래도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낫지 않을까!

애초에 이 팔찌를 하는 것도 학교 때문이지, 거래 때문은 아니니까.

“싫어. 내가 어색해. 그러니까 웬만해선 빼지 마.”

“네에.......”

어색한 게 원인이라면 어쩔 수 없지.......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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