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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9화 (9/100)

〈 9화 〉 테레제는 눈물을 닦는다

* * *

돌아왔다.

저녁 시간 전이지만, 거뭇거뭇 땅거미가 앉으려 하고 있었다.

대문 앞에서 한 체임버 메이드 겸 견습 팔러메이드가 랜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리리아네트.

나보다 겨우 한 살에서 두 살 정도 연상으로 보이는 초록 머리 소녀는 나를 보더니, 화색을 띠고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코넬리아 아가씨.”

“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아가씨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아니.

아니아니아니.

진심을 담아서, 애초에 아가씨라고 불리고 싶지도 않다. 내용물은 여자가 아니니까.

물론 정정을 부탁할 수도 없다. 일반 메이드인 리리아네트는 그 사실을 모르니까.

사실, 내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짐을 제게 주세요. 들어드릴게요.”

“그, 그러지 말아주세요, 리리아네트 씨. 아가씨라니.”

리리아네트가 손을 뻗어, 내 검을 받으려 했다.

나는 재빨리 피하며, 손을 내두르며 말했다.

그제야 나름 진지한 표정이던 리리아네트가 웃으며 낯빛을 장난스럽게 바꾸었다.

“어때, 코넬리아. 조금 팔러메이드다웠으려나?”

“네? 아. 네에.”

“좋았어.”

리리아네트는 양주먹을 꾹 말아쥐며 신난 표정을 지었다.

귀엽네.

나보다 조금 연상이라고 해 봐야 아직 어린애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저학년 정도려나.

글로리아가 장래성을 내다보고 주인마님께 팔러메이드로 키우는 것이 어떨까 조언하여, 차츰 손님 접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지만, 아직은 외모가 꽃봉오리 같은 무렵이다.

물론, 다시 말하면 역시 한낱 고용인에 불과한 나를 마중하기에도 적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리리아네트 씨는 좋은 팔러메이드가 될 거예요.”

“응!”

그게 정말로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스스로가 좋아하고 기대하고 있으니, 칭찬하는 건 나쁘지 않으리라.

“아, 맞아. 잠깐만.”

“왜 그러세요?”

실실거리던 리리아네트가 갑자기 나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다시 얼굴색을 자연스럽게 꾸미고, 큼큼 헛기침을 하여서 처음 나를 맞이했을 때처럼 음색을 갈고 닦았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리리아네트가 2살은 더 성숙하게 보였다.

괜찮네.

기억해둘까.

“하우스 키퍼 부인께서 부르셨어요. 저택에 도착하면 다른 곳에 들리는 일 없이 곧장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알려줘서 고마워요, 리리아네트 씨.”

“제 기쁨입닏.”

리리아네트가 스커트 양 끝을 살짝 들어 예의 바른 인사를 하려다, 말을 먹었다.

리리아네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한다. 하얀 얼굴이라 더욱 돋보였다.

살짝 숙인 허리가 다시 올라오질 않는다.

스커트 양 끝을 잡은 손가락도 떨어지질 않는다.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됐어. 어, 어서 올라가.”

나는 리리아네트의 말을 착하게 듣기로 했다.

재빨리 그녀와 대문을 지나치고, 중앙화원도 어서어서 지나쳤다.

그러는 동안, 하급 탐지마법을 사용했다.

나의 시야에, 열화상 같은 화면이 겹쳐진다. 마력을 감지하는 마법이다.

글로리아는 내게 여러 가지 하급 마법을 가르치며, 앞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 결코 알리는 일이 없을 테니 호출되면 알아서 잘 찾아오라고 말했었다.

글로리아는 자기 집무실에 있었다. 앉은 자세. 장부를 작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난 거 같은데에.......”

나는 마법을 지우며 중얼거렸다.

사람은 호흡하듯이 자연스럽게 마력을 흘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낭비되는 마력은 사람의 감정에 따라 쉽사리 모습을 바꾼다.

예를 들어, 화가 났다면 마치 불길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며 하늘로 향하고, 냉정하다면 적은 움직임으로 바닥을 향해 흘러내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방금 전엔 어마어마하게 불타고 있었다.

종족부터 엘프라서 기본적으로 가진 마력량이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는데, 그게 마치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하는 불기둥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듣게 되려나.

문득, 아가씨의 방 쪽도 봐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이쪽은 무섭다기보단 두려웠다.

나는 한숨을 쉬고, 건물을 돌아 좌측 현관으로 향했다.

한낱 고용인들은 정문 현관을 사용해선 안 될 일이다. 군대 훈련소 같다.

“몇 년만 지나면, 말로만 듣던 전설의 군필여고생이 되는 거려나.”

엄밀히 말하면, 등교를 해도 재학생 신분으로 등교할 순 없을 테니 여고생은 아니지만.

애초에 고등학교라는 개념이 따로 있으려나.

중등부 고등부라는 개념이라도 제대로 있다면 놀랄 일이다.

스스로에게 농담을 툭툭 던지며 글로리아의 집무실 앞에 섰다.

나는 문을 똑똑 노크했다.

“코넬리아입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문이 저절로 열렸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문턱을 넘어섰다.

그리고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글로리아의 목소리가 똑바로 들릴 자리까지 걸어간다.

“내려찍는 색깔은 묵색. 나쁜 아이는 무릎을 꿇는다.”

글로리아는 장부를 작성하던 자세 그대로 기도를 읊었다.

중압마법. 무지막지한 마력을 가감없이 때려넣어, 힘으로 굴복시킨다.

나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마법을 지우는 체질따위, 진짜 힘에는 통하지 않는다.

처음 무릎을 꿇게 되었을 때, 뭐라고 그랬더라.

작은 저택 하나는 통째로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 위력으로 사용했다고 그랬던가.

“높게 팔 들어요.”

나는 얌전히 두 팔을 들어올렸다.

작은 저택조차도 납작하게 만들 중압마법이라지만, 내 몸과 닿자마자 온몸에 모래자루를 달아놓은 정도의 위력으로 약화되었다. 이 저택이 삐걱거릴 일도 없다.

그러니 두 팔을 들지 못할 건 없었다.

물론. 계속 들고 있으려면 팔에 쥐가 나고 몹시 아프겠지.

“아가씨는 울다 지쳐서 잠드셨어요.”

“죄송합니다.”

“뭘 잘못했나요?”

“아가씨를 혼자 두었습니다.”

“물론 이 저택은 안전해요. 제가 있는 이상 삿된 것 하나 들이지 않아요.”

글로리아가 펜을 놓았다.

그리고 안경도 벗었다. 안경 체인이 달린, 예쁜 안경이다.

나를 노려본다. 역시 화가 났어.

그리고 다음 순간, 압력이 가중된다.

만약 내가 대비하지 않고 있었더라면, 높게 들고 있던 두 팔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가씨의 마음속에서 태어나는 삿된 것들은, 제가 어떻게 하기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압력이 천천히 가신다. 마법을 푼 모양이다.

글로리아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가서, 아가씨를 깨워주시겠어요? 곧 저녁 식사를 하셔야 할 테니까요.”

“네.”

의외로 크게 혼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글로리아에게 인사를 남기고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여서 아가씨의 방으로 향한다.

똑똑, 노크.

반응은 없다. 문고리를 돌리니 잠겨있었다.

이래서 오래 혼내지 않은 거려나. 나는 다시 부지런히 움직여서 내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 저택에 아가씨 방의 열쇠를 가진 사람은 네 명이다.

첫째는 물론 주인마님, 즉. 유르덴 공작부인 아델하이드 루이즈.

그리고 글로리아와, 테레제 본인. 그리고 나.

굉장한 신뢰의 증거다.

이럴 걸 예상하고, 처음부터 열쇠를 챙겨왔어야 했는데.

“어머. 좋은 저녁이야.”

“앗! 좋은 저녁입니다, 유르덴 공작부인님.”

고개를 돌리니, 테레제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테레제 만만치 않은 황금색 머리카락. 유전이겠지.

그녀는 꽤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품이 넉넉해서 그다지 몸매를 부각하지 않는 스타일의 드레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옷감 위로 커다란 융기가 똑똑히 드러나고 있었다.

굉장하네. 테레제의 성장가능성이 눈에 선히 들어오는 듯했다.

“그게, 코넬리아였었지?”

“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황송하다는 얼굴을 할 필요 없어. 너는 테레제의 고용인이지, 유르덴의 고용인이 아니니까.”

유르덴 공작부인과는 얼굴 마주할 일이 별로 없었다.

대화를 나눌 일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아직까지도 초상화를 제외하면 얼굴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공작 본인에 비하면 몇 번 목격하긴 했었지만.

공작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나쳤다.

그리고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열쇠 구멍에 꽂았다.

찰칵.

“메이드 아이들에게서 테레제가 방에 틀어박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코넬리아 너도 우리 아이가 제멋대로라 곤란한 일이 많지?”

“네?”

원인이. 나인데.

나는 당황하여 곧바로 공작부인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 안색을 살피더니, 다 알았다는 표정이 되어 미소지었다.

“아이들은 원래 싸우면서 자라기 마련이야.”

“네? 그, 그게에.”

“꼭 화해하렴?”

철컥. 열쇠가 돌아가고, 문이 열린다.

뭔가 오해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걸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아니, 딱히 해명해야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공작부인은 열쇠를 다시 품에 넣고, 몸을 돌렸다.

“오늘은 네게 맡길게. 그러니 앞으로도 테레제를 잘 부탁해.”

“감사합니다.”

공작부인은 나타났을 때처럼 다시 소리 없이 떠나갔다.

나는 공작부인에게 인사를 보내고, 테레제의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 봐도 무척 커다란 방이다. 나는 방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는 거대한 침대로 다가갔다.

“아가씨. 저녁 시간이에요.”

“우웅.”

“테레제 아가씨.”

깨울 때는 불을 켜는 게 제일이라고들 하지만.

테레제에겐 엄금이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아지면 발작을 했다.

사족이다만, 전등만큼이나 편리한 마도구가 이 세계에도 있다. 물론 비싸다.

“아가씨.”

“코넬리아, 미워.”

“주무시는 척 그만하시고 일어나 주세요.”

“코넬리아가 정말 싫어.”

“아가씨.”

“코넬리아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테레제의 입에서 아버지들이 딸에게 듣고 상처받는다는 단어 1위가 흘러나왔다.

물론 테레제가 내 딸은 아니지만, 끄응, 하고 신음소리가 새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아가씨.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해요.”

“코넬리아가 정말 싫어.”

“한 단계 내려간 건가요?”

“코넬리아가 세상에서 제일 미워.”

이건 다시 두 단계 올라간 거 같은데.

“앞으로 멋대로 행동하지 않을게요.”

“.......”

테레제가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옷은 외출복인 채였다.

테레제의 황금빛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와, 나를 담는다.

잠기운이 다 가시지는 않았다. 눈물자국도 남아있다.

“응.”

“죄송해요, 아가씨.”

“나도 미안해.”

“아가씨가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코넬리아. 내게 조금만 더 마음가짐을 굳힐 시간을 주지 않겠어?”

테레제가 자조 가득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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