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8화 (8/100)

〈 8화 〉 코넬리아는 미소짓는다

* * *

나와 테레제는 역의 마법진에서 나왔다.

드워프와의 거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법진이 깔린 플랫폼에서 빠져나와, 대합실에 도착한다.

꽤 사람이 있었다. 현대의 역과 비교하자면 꽤 한적하다지만, 그래도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북적인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한쪽 구석의 매표소에서는 두 가지 표를 팔았다.

하나는 내가 아는 현대의 것과 별다를 것 없는 쪽지 형태의 표였는데, 이동 형식 역시 내가 아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즉, 플랫폼마다 시간표대로 광역공간이동진이 열리니, 표를 가진 사람들은 그때그때 입장해서 대기하는 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쪽지 같은 표가 아니라, 스크롤이었다. 정식 시간표 사이의 비는 시간대에 홀로 마법진을 기동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테레제는 이것을 사용했다. 물론 비싸다.

그리고 매표소 반대편에는 작은 가판대가 있었다.

물론 식당도 있었다. 꽤나 시끌벅적한 식당이었다. 그것도 금방 지나쳤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려나.”

식당을 지나치던 아가씨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바깥에는 마차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이제 그것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가씨의 말에 나는, 별 이유도 없이 뒤를 딱 한 번, 돌아보았다.

후드를 쓴 모험가들이 식당 주인에게 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식당 주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뜨려고만 했다.

그리고 뭔가, 그들 중 한 모험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질척질척한 시선. 좋지 않아.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알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후드를 쓴 것들. 2층에 하나. 매표소 근처에 하나.

“잠깐만요.”

문을 나서기 직전에, 나는 테레제의 손을 붙잡았다.

무례한 행동이라고 한 마디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테레제의 팔을 끌어당겨, 내 몸에 딱 붙도록 했다.

그런 뒤에, 바깥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마부에게 보이지 않도록, 지나치던 한 커다란 여행객의 덩치에 몸을 숨기고 움직였다.

굉장히 큰 덩치라 아이 둘 정도는 간단히 숨겨졌다. 적어도 저쪽에선 보이지 않았으리라.

모험가려나.

그리고 마부에게서부터 사각지대가 되었을 즈음에, 여행객의 덩치를 앞질렀다.

이젠 그가 우리의 뒤를 잘 가려주도록, 발걸음의 속도를 조절한다.

“코넬리아?”

“쉿.”

아니나 다를까, 금세 식당에서 소란을 일으킨 두 모험가가 역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두리번두리번. 아무리 봐도 수상한 모양새지.

덩치가 다른 길로 나아갈 즈음엔, 우리 둘 모두 다른 인파 속에 파묻힌 뒤였다.

찾으려면 꽤 걸리지 않으려나.

약간의 틈이 생겼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확신도 없다. 어디서 어디까지 마수가 뻗쳐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안전의 안전을 기해야만 했다.

“상황은 대충 알겠어.”

“아가씨?”

“이쪽으로 따라와.”

이번에는 역전되어 테레제가 나의 손을 끌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인력거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테레제는 곧바로 한 반인반룡에게 손을 흔들었다. 온 전신에 문신이 새겨진 그는, 테레제의 손짓을 보더니 흔쾌히 인력거를 끌고 우리 앞까지 곧바로 달려와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로 모실까요?”

“성관?? 앞 까지. 아마 빨리 달려야 할 거야.”

“그게 또 제 특기가 아니겠습니까.”

인력거에 올라타자, 반룡의 전신에 새겨진 문신에서 푸른색 마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올라타자마자 재빨리 접혀있던 인력거의 덮개를 끌어내어 덮었다.

비 올 때에나 쓸 법하게 생겼는데, 위는 물론, 옆과 뒤가 모두 막혀 있었다. 얼굴을 숨기기엔 그만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조금 덜컹거릴 겁니다. 벨트를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반룡은 그렇게 말하더니,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보다 빠른 것 같은데.

그 사이, 덮개에 난 작은 틈새로, 두리번거리던 후드를 쓴 괴한들의 얼굴이 지나쳐 간다.

“잘했어, 코넬리아.”

“네? 아, 아녜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인걸요.”

“그래. 너도 익숙해져야지. 의외로 연에 한 두 번 정도, 자주 있는 일이니까.”

그 순간, 등 뒤에서 폭발이 일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는 테레제 대신에 고개를 돌려, 덮개에 난 틈새로 뒤를 보았다.

성대한 연기와 함께, 방금 타지 않고 두고 온 마차가 불길에 휘감겨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부는 죽었을까. 내가 그 모습에 정신이 팔려있자, 테레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를 놓쳤으니까, 겁을 줄 생각으로 저러는 거야.”

“으, 으윽.......”

“바보, 같네.”

우습다는 듯 말했지만, 테레제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결코 인력거에 불어드는 맞바람 때문이 아니다. 물론 루체르덴 산맥의 찬 공기 탓도 아니다.

나는 새하얗게 질린 테레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저 입술을 살짝 깨물고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가씨.”

입이, 아주 가볍게 열렸다.

업보다. 테레제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테레제는 그저 자신이 행한 대로 돌려받을 뿐이다.

테레제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말한 주제에, 나는, 아직 부끄럽게도 여전히 테레제와 유르덴 가문이 태연히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왜, 코넬리아?”

창백한 얼굴. 떨리는 목소리.

핏기가 가신 얼굴을 겨우 들어서 나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그런 아가씨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글로리아에게서 배운 대로.

그래도 아마, 그다지 보기 좋은 표정은 아니겠지.

“저들은 군인인가요?”

나도 알고 있어.

이게 자기합리화라는 걸.

어쩌면 이 ‘잘못’으로부터 내 발로 도망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일 지도 몰라.

“대답해주세요, 아가씨.”

“나는, 모르겠어.”

“도망치지 말아주세요, 아가씨.”

나는 결정하지 못해. 꼴사납다고 욕해도 좋아.

한낱 고용인이라서 어떻게 할지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가씨처럼 무서워서 그런 거니까.

“저 사람들은 폭탄 테러를 했어요. 아가씨는 다행히 멀쩡하지만, 어쩌면 저기에 휘말려 다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다시 한 번 물을게요. 저 사람들은 유르덴의, 아가씨의 적인가요?”

“......맞아.”

테레제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천천히 인력거가 멈춘다. 어느새 성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시가지의 폭음이 여기까지 들렸는지, 많은 고용인들이 문 앞까지 나와있는 상태였다.

나는 인력거에서 먼저 내려, 테레제를 에스코트했다.

그리고 곧바로 말할 수 있었다.

조금은 상쾌한 얼굴일지도 모른다. 물론 똑같이 역겹겠지만.

“저는 시내에 다녀올게요. 두고 온 것이 생각났어요.”

“코넬리아?”

이제 나에겐, 악당의 무리에 들어갈 명분이 생겨버렸다.

악당들과 한 패거리에서 마음껏 나쁜 짓거리를 저질러도, 스스로에겐 ‘나는 나쁘지 않아’라고, 거짓말하며 자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동시에 ‘나는 착한 아이야’라고도 말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딴 거, 애초에 무슨 쓸모야.

아마 하늘에 계신 이 세계의 열셋 신님들도 내가 착한 아이가 되길 바라셨다면, 결코 이상한 실험 시설 따위로 보내지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녁 시간 전까지는 다녀올게요.”

“가, 가지 마, 코넬리아.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저택은 안전해요, 아가씨.”

“시, 싫어! 싫어어!! 내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잖­!!”

쾅. 다시 한 번 폭음. 시내 쪽이었다.

뭔가 더 준비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히익­하며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 쭈그려앉은 아가씨를 뒤로 하고, 나는 곧장 인력거에 다시 올라탔다.

“돌아가요.”

“대금 못 받았는뎁쇼.”

“반드시 챙겨줄 테니까 어서 가요!!”

“예이.”

인력거가 다시 움직인다.

주저앉은 아가씨는 글로리아가 달려와서 대신 부축해 주었다.

글로리아의 눈이 무지막지하게 매서웠지만, 일단 무시한다.

순식간에 배경이 휙휙 흘러간다.

시가지의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뭇거뭇한 연기가 곳곳이 올라가고 있었다.

여러 곳에서 폭발이 일었거나, 불이 번지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나는 곧바로 인력거에서 내렸다.

경비병과 시가지 사람들이 함께 불을 진화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두 번째 폭발은 역에서 발생한 것 같네.”

애초에 역을 폭파할 셈이었더라면, 테레제와 내가 내린 순간에 폭파시켰으면 되었을 것이다.

왜 굳이 놓친 다음에야 테러를 감행했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 알 것 같긴 했다.

테레제가 마차를 타고 가다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좋다­고 여겼겠지.

누군가, 폭탄의 스위치를 쥐고 있던 사람이 망설였던 모양이다.

“쯧.”

빌어먹을.

어중간하게 굴기는.

“이봐, 꼬맹아! 어딜 가려는 거야!?”

길을 막는 경비병을 지나쳐, 연기가 치솟는 역 내부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많이도 쓰러져 있었다.

대부분이 질식사.

하지만, 식당 주인은 두 눈이 뽑힌 채 식당의 벽에 시계 대신 걸려 있었고, 매표소의 어여쁜 아가씨들도 역시 발가벗겨진 채 참혹한 꼴이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뜯어먹힌 구석까지 보였다.

아무래도 스위치를 쥐었을 행동대장과 아랫것들의 성향이 많이 다른 모양이다.

나는 대합실의 참혹한 풍경을 슬쩍 훑어보고는, 곧장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력 반응이 느껴졌다.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겠는데.

“......왜 못하게 하는 겁니까! 아직 불은 거셉니다! 좀 더 본보기를 보여주자고요!”

목소리가 들렸다.

“안일하게 굴지 말라! 우리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온 것이지, 고작 인간 여자 몇을 강간하다 죽이고 그 시체로 장난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대의는 개뿔. 그딴 거 따지니까 녀석들이 우리를 얕잡아 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닥쳐라! 네 한심한 말을 더 들어줄 시간이 없구나. 명령이다! 당장 마법진 위에 올라라!”

확실히, 안일하네.

매표소 아가씨들을 죽이고 표만 강탈해서 도망치려 했다면, 이미 진즉에 도망쳤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 병사들은 더 추적할 수도 없었겠지.

나는 검을 뽑아들었다.

“왜 알아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시끄럽다, 이놈!”

사자 수인이었다.

마법진에 올라 열을 내고 있는 건 하얀 갈기의 늙은 남성이었다.

그를 따라 마법진에 오른 것이 한 명. 그리고 세 명이 바깥에서 뻗대고 있었다.

물론, 누구 하나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벽 뒤에 숨어서 듣다가, 곧장 내달렸다.

뽑아든 검으로 단번에 마법진 위에 서있던 두 명을 베어 넘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온갖 고뇌를 했던 것과는 다르게, 손은 너무나도 쉽게 움직여 주었다.

아마, 시설에서 뭔가 많이 당한 탓이다.

“스, 스승님!?”

“누구냐!”

스승에게 뻗대고 있던 선두의 사자 수인은 조금 상황 판단이 빨랐다.

쓸데 없는 말을 하기보다는 손을 움직여 내게 화염마법을 쏘아내었다.

기세 좋은 불길이었다.

폭탄과는 별개로, 역의 입구에 불을 피운 건 이 녀석이 아닐까.

물론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

“응?!”

기세가 대단하던 불길은 내게 다가오면서 점차 힘을 잃더니, 내게 닿기도 전에 스르르르 제 멋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검을 휘둘러 그를 양단했다.

그런 다음, 아직도 이제 겨우 무기를 꺼내 들 만큼 당황하고 있던 사자 수인 둘도 곧바로 베어 갈랐다.

끝.

......시설에서 배운 것들이 모조리 다 쓸모 없을 정도로 허무한 싸움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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