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루체르덴 산맥의 드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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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덴 령의 북쪽에는 커다란 산맥이 하나 있었다.
유르덴 령 어디에서나 가리는 것이 없다면 곧바로 머리에 하얗게 만년설이 내려앉은 산맥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높고 커다란 산맥이 마치 병풍처럼 유르덴 령의 북쪽을 가득 둘러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 산맥을 일컬어 루체르덴이라 불렀다.
솔직하게 말해, 절경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잠에 깨기 위해 창문을 열면, 가슴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산맥의 모습이 시린 새벽 바람과 함께 곧바로 눈에 가득히 들어오는 것이다.
잠이 안 깰려야 깨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서고의 책은 저 산맥조차 낮다고 말한다지만. 으음.
서술되어 있기를, 루체르덴의 모체에 해당하는 노르덴킬라이나 북벽에선 평균적인 해발고도가 루체르덴 산맥 최고봉의 두 배 정도라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에베레스트도 별 거 아닌 거 아냐?
“춥진 않지?”
“네? 아. 네에.”
테레제에게 먼저 걱정받았다.
내가 먼저 물어보았어야만 하는데.
테레제와 나는, 지금 그 루체르덴 달력 풍경의 중턱에 해당하는 어딘가에 와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
사실, 엄청 오래간만에 듣는 소리에 조금은 들떴던 참이다.
등산? 공간이동진을 타고 단번에 날아왔다.
고산병? 마력이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나는 무적이다.
마력은 신이고.
......그런데 사실, 이 세계에는 해그 리튜아라는 이름의 마법의 여신이 있대요.
은유인지, 아니면 직화법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세계의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서 ‘모든 마법의 의인화’라고도 불렀다.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이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선 정말로 마력이 신인 거 아냐?
“가자. 조금 걸어야 해.”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업어드릴까요?”
눈앞에 깊은 협곡이 보였다.
그리고 협곡 사이에 난 커다란 성문과, 높다란 석벽도.
걸으면 3분에서 5분 정도 걸리려나. 그렇게 멀진 않았지만, 높은 산의 바람은 차가웠다.
“괜찮아, 이 정도는.”
그러면 더 권유하지 않을게요.
테레제는 자기가 한 번 하기로 마음먹은 일에 누가 간섭하려드는 걸 매우 싫어했다.
사실 하얀 털옷으로 완전무장한 테레제가 눈 위를 자박자박 나아가는 게 너무 귀여웠다.
토끼 같아.
“거기서 뭐 해? 어서 따라와.”
“앗. 네.”
“이번에는 바로 옆에 딱 붙어있도록 해. 늑대는 재빠르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는 왜 왔느냐.
드워프를 만나러 왔답니다.
공간이동진이란 보통 도시 내부에 자리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아주 성벽 바깥에 있는 이유도 드워프가 타 종족과 교류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문지기가 없네요. 성벽 위에도 병사가 보이지 않아요.”
“바로 열어줄 거야.”
과연, 테레제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꺼운 석문이 자연스레 끼이익, 하고 열렸다.
테레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양쪽으로 열린 커다란 성문 사이로 들어섰다.
다행히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테레제의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문 안쪽은 상당히 따뜻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성벽과 성문이 커다랐던 것치고는 너무 좁고 아무것도 없었다.
겨우 대저택 하나 정도 크기일까.
“안녕, 하십니까.”
끼긱거리며 우리를 맞이하는 이 기계 하나를 제외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판타지틱한 태엽 기계였다.
인간처럼 사지를 갖고 있었고, 꽤나 인간 흉내를 내긴 했지만, C3PO 같은 모양새다.
“테레제 님?”
“이쪽은 나의 전속 고용인.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알겠, 습니다. 따라와, 주세요.”
기계가 뒤뚱거리며 앞서나간다.
그리고 협곡의 바위벽 틈새에서 황동색 레버를 찾아, 내렸다.
“어, 어어.”
“처음에는 놀랄 거야. 말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네.”
크르릉. 갈라지는 소리.
그리고 내가 좁다고 생각했던 대저택 하나 정도의 공간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지나쳤던 성벽과 성문이 위로 올라간다.
아니야. 우리가 아래로, 내려간다.
비록 작고 좁다고 생각했지만, 대저택 하나 정도의 공간이다. 그게 통째로 움직인다.
전생에도 이딴 건 없었다. 게임이나 영화에서나 봤지.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안전합니다.”
그르르르. 계속해서 내려간다.
체감상으로, 생전의 엘리베이터 10층 정도의 높이를 내려온 것 같았다.
그제야 공간앞으로는 그냥 엘리베이터라고 하자이 천천히 멈춘다.
그리고 자연적인 형태인 석벽이 좌우로 갈라지고, 빛으로 가득 찬 거대동굴이 눈에 들어온다.
“위를보시면, 드워프 공학의 최고봉이자, 드워프의 자랑명물인 인공태양이 있습니다.”
“우와아.”
“방문객의 시야에서좌측은 장인의 거리. 우측은 집정의거리입니다. 방문을환영합니다.”
“가자, 코넬리아. 언제까지 넋이 나가 있을 거야?”
“죄, 죄송합니다. 조금 들떠버렸네요. 거리가 엄청 멋있어서.......”
“으음.”
테레제가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이 되어 묻는다.
“그러고 보니, 코넬리아는 몇 살이야?”
“몰라요.”
“생일은?”
“기억나지 않아요.”
“으음. 응. 그래. 그냥 그렇게 들떠있는 모습이 조금 또래 같다 싶어서.”
저도 가끔 그렇게 느낀답니다.
제 정신연령과 비교해서, 말이에요.
오히려 내 정신연령보다도 더 성숙한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으니, 원.
물론 그런 걸 말하진 않는다.
“생일은. 으음. 내가 나중에 정해줄게.”
“감사합니다.”
“혹시 선호하는 숫자가 있니?”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숫자가 좋아요.”
“어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장인 거리로 빠지려는 사이,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땅딸막한 드워프다. 키는 우리와 비슷할 듯 말 듯 한데, 수염은 무릎까지 내려왔다.
그는 쿵쾅쿵쾅 걸어와 우리 앞에 섰다.
“오래간만이에요, 브라운.”
“오래간만? 웃기고 있어. 저번 달에도 왔잖나!”
“한 달이면 오래간만이 아닌가요?”
“그만 좀 와. 바빠 죽겠는데.......”
퉁명스럽게 그리 말한 드워프는 ‘따라와!’라고 크게 외치더니, 다시 쿵쾅쿵쾅 걷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걸을수록, 주변에 보이는 드워프들이 점점 많아진다.
외지인이라고는 나와 테레제뿐이었다. 드워프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영 껄끄러웠다.
그게.
이런 곳에 올 때 정도는 팔찌를 끼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지만.
‘이목에 집중되는 법도 배워야지요. 언제까지 익숙한 시선 속에서 만족할 셈이세요?’
글로리아의 말이었다.
그래. 이번 여행에 대해 듣고서 글로리아에게 물어봤다가 퇴짜를 맞았다, 왜.
“들어와. 조금 더울 거다.”
“코넬리아.”
테레제 아가씨가 하얀 털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그 겉옷들을 하나하나 다 받았다. 털모자, 목도리, 털코트.
덥다고 했으니 내가 쪄죽는 게 아닐까 싶지만.
쾌적한 옷차림이 된 테레제가 허공에 손을 그었다.
그 행동만으로, 내 손에 들려 있던 옷가지들이 모두 다 한 순간에 사라진다.
공간마법. 엄청나게 편리해보였다. 가능하다면 진짜 갖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유르덴 가문에만 내려오는 비전??이에요. 거기다가 아가씨는 몇 대에 한 번 나올 만큼 대단한 재능을 가졌고요.’
물론 이에 대해서도 글로리아에게 물어봤었다.
그리고 단번에 일축당했다. 아까워라.
그래도 오랫동안 수련하면, 지팡이 하나 숨길만한 공간 정도는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야 했었다.
실제로 글로리아도 지팡이를 소환했었고.
하지만, 무려 엘프가 ‘오랫동안’이라고 말한 것이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감도 안 온다.......
“코넬리아는 안 벗어요?”
“그, 죄송합니다. 지금 벗을게요.”
“오늘의 코넬리아는 조금 들뜬 모양이네요. 간만의 외출이라서 그런 거려나.”
“으으으. 죄송합니다.......”
내 옷도 단번에 사라진다.
그리고 문을 열자, 커다란 공장이 나타났다.
기계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무기를 뽑아내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내가 살던 현대와 비교하자면, 하나의 기계팔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정을 담당했다.
내가 아는 공장이란 프레임만 만드는 기계, 나사를 박아 조립하는 기계 등, 이렇게 공정마다 따로 배치되어 분업을 이루기 마련이었는데, 이곳의 공장에서는 기계팔이 마치 숙련된 장인 대장장이처럼 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생산속도는 늦다. 하지만, 이런 공장이 이 세계에 얼마나 더 있을까.
“네가 두 배나 더 뽑아내라고 해서, 기계가 몇 대나 맛이 갔는지 아냐?!”
“제가 드릴 마석으로 새 기계를 사거나 만들면 되잖아요.”
“뭐, 그렇긴 한데.”
기다렸다는 듯이 드워프들이 몇 개나 되는 상자들을 수레에 싣고 질질 끌고 나왔다.
저번에 짐승들의 나라에서 넘겼던 바로 그 상자들과 똑같은 재질, 똑같은 크기의 상자였다.
테레제는 공간을 열어,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B급 마석 22알이에요.”
“이봐. 두 알 더 주시지.”
“기계가 두 대 고장나셨나 보네요. 으음. 좋아요. 투자하는 셈 치고.”
다시 공간이 열리고, B급 마석이 네 알.
천천히, 테레제의 손 위에 떨어진다.
“여기 있어요. 이걸로 됐죠?”
“뭐. 음. 그래. 거래는 됐어. 차라도 마시겠나?”
“아뇨. 또 주문 넣을 거예요.”
“무어? 바깥 세상에 전쟁이라도 났느냐?!”
“과연 이 세상에 전쟁이 멈춘 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겠어요?”
테레제가 싸늘하게 웃었다.
드워프는 질린 듯 카악, 하고 끌어모은 가래를 땅에다 뱉었다.
그리고 손을 툭 툭 털더니, 테레제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사악하게 웃으며 말한다.
“일자리가 많다는 건 언제나 옳은 일이지. 이번엔 또 얼마나 원하냐?”
“글쎄요. 이번 달에 해주신 만큼 해주세요.”
“야, 잠깐만. 기계가 고장이 났다니까?”
“팁도 드렸잖아요. 그걸로 새 거 들여서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야!! 기계가!! 마석만 넣으면!! 고쳐지는 줄 알아!!?”
“그거 팔아서 새 거 사라니까요! 굳이 고장난 걸 고쳐서 이상한 이윤 남기려고!!”
언뜻 보면 투정 부리는 것 같은데, 의외로 제대로 된 소리다.
다만 드워프가 기본적으로 울림통이 커서 그런가 언성이 높았는데, 그걸 따라가려다 보니 시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했다.
아가씨 답진 않지만, 뭐어.
“가자, 코넬리아. 교섭 끝났어.”
“야! 잠깐! 야, 꼬맹이! 어디가! 못 만든다고!!”
“몰라요. 알아서 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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