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6화 (6/100)

〈 6화 〉 이클리시아의 왕자 에드윈

* * *

이클리시아의 첫째 왕자. 왕위계승권 1위.

에드윈. 에드윈 데 오르 이클리시아.

테레제와 닮은 황금색 머리카락에, 에메랄드를 닮은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어린 소년이었다.

테레제와 한날한시에 태어났으며, 양가 어른들은 그것을 운명으로 여겨 태어나기 이전부터 두 소년소녀의 약혼을 맺어두었다고 한다.

별 일 생기지 않는다면, 둘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혈족친족을 제외한다면, 아마 가장 가까워야할 사이어야만 할 터다.

“......흥.”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테레제의 맞은편.

에드윈은 테레제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나를 매우 불만스러운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잘못하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에드윈이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테레제는 말이야.”

퉁명스러운 목소리.

말을 막 시작했는데도 불만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응? 왜 그래?”

“나랑 만날 때마저도 시종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더라.”

높으신 신분의 어린애답게, 어딘가 슬쩍 보고 있자면 독점욕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해맑은 얼굴로 에드윈의 말머리에 대답했던 테레제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더니 아주 놀랍게도 안색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렸다.

먹구름이 잔뜩 꼈다. 어린애들이 그렇듯이, 감정변화가 풍부했다.

풍부하다 못해 너무 풍부했지만.

“그, 그치만. 아직 혼자는 무서운걸.”

“으. 우린 벌써 11살이야. 곧 학교에 가게 될 거라고. 혼자가 될 줄도 알아야지.”

“우, 우우우.”

혀짤배기의 말투.

표정마저도 금세 발갛게 변해,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이제야 그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일까. 아니. 조금은 더 여린 어린아이의 모습이려나.

“그런 말을 하는 에드윈은 싫어.......”

“앗. 테, 테레제. 그게.”

테레제는 한 마디를 남기고 자기 두 손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에드윈은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일어나긴 했는데, 당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있잖아. 그게. 테레제에게 겁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고. 그게에.”

테레제에게 다가온 에드윈이 말을 더듬으며 뭔가 말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서로의 키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의 갈 곳 잃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본다.

마치 내게 ‘네가 어떻게 좀 해 봐봐!’라고 외치는 듯한 눈이었다.

나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잠시 둘만 이야기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귀엣말을 속삭였다.

신분차이가 아득하니, 본래라면 허락받지 않고선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아직 애들인데다가 주변엔 보는 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레제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었다.

“으으. 테레제. 내가 서재에 가서 같이 읽을 책을 가져올게. 용감한 용사님의 책을 읽다보면 무서운 건 금방 다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울보처럼 그러고 있지 마! 알겠지!?”

대답도 듣지 않고 방에서 뛰쳐나간다.

그나저나, 그 사이에 자리를 피할 변명을 만들 수 있을 줄이야.

조금은 총명하다고 해줘야할까. 보통 어린애라면 말도 없이 도망칠 텐데.

“아가씨. 괜찮으세요?”

“까꿍.”

테레제가 얼굴을 가렸던 손을 치우며 되도 않는 재롱을 부렸다.

빨갛게 변한 눈두덩이에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울기는 울었단 뜻이다.

“......역시, 힘들어. 몇 시간이나 지났지?”

“7시간 정도 지났네요. 저녁식사를 하고 가신다고 했었으니, 앞으로 3시간 정도일까요.”

점심 먹기 직전에 와서 점심을 함께 하고.

산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계속 이렇게 있다가, 저녁 먹고 간다는 듯하다.

“에드윈은 좋아하는데, 너무 달라붙어와.”

“아하하.”

아직 어리잖아요, 라고 말하진 못했다.

나를 포함해서 셋 모두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어린애들이니.

“어머니는 배려한답시고 고용인들을 전부 물렸고. 으으. 그런 거 필요 없는데. 나는 평소처럼 바쁘게 다니는 고용인들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갑갑해. 셋뿐이라니, 너무 갑갑해.”

“오히려 나은 거 아닌가요? 사람이 많으면, 간자가 숨어있을 확률도 높아지잖아요.”

“그러지 않을 걸 알긴 아는데, 만약 에드윈이 코넬리아 네게 나가 있으라고 명령하고, 내게 엄한 짓을 하려고 든다면, 어떻게 해?”

“제가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아요.”

“고마워. 그래서 걱정하고 싶진 않은데, 걱정이 되는걸! 무섭단 말이야.”

제대로 결혼은 할 수 있으려나아.

뭐어, 나아질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혹시라도 낫지 않았다간.

첫날밤마저도 좌우를 대동시키려 들거나 하진 않겠지?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해도, 기껏 해봐야 8년 안에 일어날 일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몸이 안 좋으시면, 제가­”

“됐어. 나는 도망치지 않아. 그리고 어차피 듀오토는 빠져야하니까, 어차피 익숙해져야만 해.”

여태까지 테레제의 전속호위였던 듀오토는 곧 이클리시아 궁정으로 향하게 된다는 듯했다.

테레제의 두 살 어린 남매이자, 유르덴 가문의 적장자인 테오도어 유르덴을 따라 이클리시아 왕국 궁정으로 간다는 듯했다.

듣자하니, 후계자 교육이라던가 뭐라던가.

그곳 궁정에 유르덴 공작가의 가주이자, 남매의 아버지인 디트리히 유르덴이 재상직을 맡고 있으니, 그에게 가서 앞으로 영지를 다스리기 위한 실무를 배운다던가 뭐라던가.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듀오토도 레오날도, 결국 전부 유르덴 가문의 기사.

반면, 나는 테레제의 기사. 이 가문에서 유일하게 테레제가 이클리시아 땅으로 시집을 떠날 때마저 같이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

글로리아가 말하길, 그런 거래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말해봐.”

“어차피 이어지실 운명인데, 조금 대담하게 나가도 괜찮은 게 아닌지.......”

“싫어! 그런 말을 하는 코넬리아도 싫어!!”

뭐어, 무기 밀매를 하고 표정을 휙휙 바꾸고 말투도 마음대로 교정할 수 있다고는 해도.

아직 테레제는 어린애였지.

영지의 미래라던가, 깊은 생각을 하는 듯해도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렇듯 감정파에 유치한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정말 이런 점 하나 없이 완전무결하기만 한 아가씨였었더라면 오히려 무서웠을 테니 차라리 나은 듯하지만,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장단을 맞춰주기 힘들다?

아직 어린애니까, 뭐.

“테레제에게 무슨 짓이야!!”

에.

맹렬한 외침.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새 책을 가져온 왕자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와서, 엄청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난데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눈에 다 보인다. 느려빠졌다.

아직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이겠지. 학교 가면서 시작하려나.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하며, 나는 주먹을 받아들였다. 고개가 휙 돌아갔다.

“윽.”

꽤 아프네.

기초마력량이 많으면, 평범한 행동거지에도 본능적으로 마력이 담긴다던가.

그런 말을 글로리아가 했었지.

그리고 뭐, 왕족이라면 오랜 세월 다재다능한 사람들과 블렌딩을 거쳐 왔을 테니.

“테레제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죄송합니다, 왕자님.”

“무슨 짓을 했냐니까!”

다시 한 번 따귀가 휘둘러진다.

아프네. 불합리한 만큼 더 아파.

“주제넘게 아가씨에게 조언을 드리려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낱 하녀 따위가!”

다시 짝.

같은 데만 세 번 때렸다. 이번에는 진짜 아팠다.

입술이 터진 듯, 피가 났다.

어린애 고사리 손이고 자시고, 마력이 담기면 새 깃털조차 둔기다.

“죄송합니다.”

“네 죄를 알면, 당장 여기서 나가!”

......거짓말 같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 명령에는 따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무, 뭐야, 그 눈은. 나가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제 일은 아가씨의 곁을 지키는 것이라서.”

“이게, 진짜!!”

다시 휘둘러진다.

에이 씨. 좀 아프면 어때.

두들겨 맞고 끝내자. 때리다 보면 제풀에 지쳐서 헉헉대며 돌아가겠지.

“그만해, 에드윈.”

에드윈의 손이 멈췄다. 테레제의 목소리였다.

테레제는 아랫입술을 지르물고 있었다.

“코넬리아는 잘못 없어.”

“하지만, 방금 네가.......”

“내가 과민반응 한 거야. 그러니까 코넬리아는 아무런 잘못 없어.”

“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는 더 할 말 없어. 하지만.”

왕자는 방금 전까지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던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이봐요. 입술에 피가 맺혔다고요. 할 말이 있겠지?

보통 지체 높으시고 생각이 어린 귀족 자제분들께서 할 수 있을 리 없지만­

“그게, 코넬리아? 미안했어. 나는, 그게.”

하네.

했네?

왜?

나는 뭔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여러 불평들을 뱃속으로 밀어 넣고, 여태 그러했듯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터진 입술이 어떻게 보일 진 모르겠지만, 스커트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한다.

한 번 균열이 생기고 나니까, 이 아가씨 인사에 부지불식간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에게도 뭔가 화가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만 다시 뱃속에 밀어 넣는다.

뭔가. 열 받네.

“성은에 감사합니다.”

신분제라는 거 진짜 귀찮지 않아?

맞은 건 나인데, 왜 감사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코넬리아는 나가있어.”

“예?”

“뭐? 정말 괜찮겠어?”

“바,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가씨?”

“나가 있으라고 말했어.”

확실하게 의지가 담긴 눈동자다.

저런 눈으로 내린 명령이라면, 어겨선 안 된다.

나는 어, 어어, 하고 당황스러워하다가, 방에서 나왔다.

이제 테레제를 걱정해야할지.

아니면, 테레제의 성장에 축복을 해야 할지.

벽에 기대어 한숨을 흘릴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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