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복종
* * *
그레나르데에 다녀오고 다시 며칠이 지났다.
나는 한동안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상태였다.
감히 나는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았다고 말해도 좋다.
나는, 듀오토와 글로리아에게 탐욕스럽게 매달렸었다.
그 날의 풍경이, 학살의 현장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나의 기능을 확장하는 것,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아, 라고.
체념해버렸다고 말해도 좋다. 애초에 한낱 이름 없던 실험체 1호다.
요령 좋게 살아가는 편이 낫지 않아?
어차피 너도 거기서 탈출해 보겠다면서 몇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였었잖아. 물론 교관은 죽여 마땅할 놈이지만, 널 막아서던 같은 실험체 아이들은?
그리고, 똑똑.
노크소리.
“코넬리아?”
테레제의 목소리.
나는 후다닥 달려가 문을 열었다.
멘탈적으로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결코 티를 내어서는 안 된다.
이미 몸에 배일만큼 배였다. 요 며칠간에 이르러선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정도다.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좋은 밤이네요.”
“응. 좋은 밤. 쉬는 시간이지?”
아가씨는 잠옷차림이었다. 물론 어린애의 펑퍼짐한 잠옷이다.
그런 아가씨의 뒤에는 아니나 다를까 한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듀오토는 아니었다. 다만 그가 입던 것과 동일한 제복을 입고, 같은 견장을 달고 있었다.
테레제는 저택 내부에서조차 혼자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다.
항상 믿을 수 있는 누군가를 대동해야만 했다.
“네. 쉬는 시간이에요.”
“팔찌, 차고 있네.”
“앗. 아, 그게. 네에.”
벗을 이유가 없었기에 차고 있었다.
제대로 된 남성복이나 주고 이런 이야기를 하시던가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 심통일 뿐이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 방금 전까지 그랬다시피, 머릿속이 복잡해서 팔찌를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을 뿐이다.
“요즘, 괜찮아?”
“네. 괜찮아요. 순조롭게 배우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아가씨의 옆자리를 제가 정식으로 맡게 될 수 있을 정도에요.”
“그거, 다행이다.”
테레제가 배시시 웃었다. 순진하고, 무구한 웃음.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나는 어떤 때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납치되면 곧장 구하러 달려올 거야?”
“물론이죠. 누구 하나 목숨을 붙여놓지 않을게요.”
“갑작스러운 테러리스트의 테러에 내가 탄 장갑차가 전복되면?”
“그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제가 먼저 가서 모조리 죽여 버릴게요.”
“지금 당장 이 저택에 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저택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아가씨만큼은 구해낼게요. 설령 듀오토나 글로리아가 눈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 모든 게 나 때문에 발생했다 해도?”
멈춘다.
“......상관없어요.”
“대답이, 늦어.”
“아가씨는 반드시 구해요.”
“그래.”
테레제의 웃음기가 자조의 것으로 바뀌어간다.
나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묻는다.
“제가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응. 마음껏 해도 괜찮아.”
해맑은 미소.
“아가씨는,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원해서 하고 계시는 건가요?”
“응. 내 의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단언한다.
“아가씨는, 지금 하고 계신 일에 후회는 없나요.”
“응. 나는 결코 나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
다시 단언한다.
“아가씨는, 어째서 그렇게 태연하실 수 있는 건가요?”
“여러 번 보았으니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거 아냐......!”
이제 내 말투는 질책에 가까웠다.
실례되는 일? 아무래도 좋다.
이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하면, 나는 여기서 계속 일할 자신이 없다.
처음부터 노려왔던 대로, 이 성을 나간다. 그뿐이다.
“코넬리아는 ‘앞으로 그런 데는 가지 말아요.’라고 말하진 않네.”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들어주실 건가요?”
“아마 들어주지 않을 거야.”
“왜 무기를 사고파는 건가요. 명분상의 이유 말고, 진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걸, 제발.”
“코넬리아는 내게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내가 죽음을 사고팔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한끝, 차이다.
물론 학살을 보고 있으면, 그 한없이 불합리한 부조리를 보고 있으면, 내가 그 시설에서 고통 받았던 때가 기억나서 가슴이 아팠다.
그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다시 칼끝을 넘어서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와 별 관련도 없는 타인의 고통에 큰 관심이 생길 리가 없다.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건 간에, 살아남은 나는 나의 행복을 추구할 뿐이다.
그러니 테레제에게 그럴 이유가 있다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야하고 자위할 수 있다면, 앞으로 일어날 부조리에 간섭할 생각도 없고, 참상에서 눈을 돌릴 뿐이다.
“코넬리아는 나쁜 아이네.”
빌어먹을. 그 지옥에서 겨우 살아 나왔다고.
악인이라도 매도 받는다 한들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그냥 좋게좋게 살아가고 싶다고.
“네. 저는 나쁜 아이에요. 그러니까 제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주세요.”
“그렇게 망가진 눈을 하면서까지 빌지 마. 너는 나의 애완동물이 아니라, 기사니까.”
“저, 그렇게 꼴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나요?”
테레제가 손을 뻗는다. 손끝이 머리에 닿는다.
그리고 ‘코넬리아’가 정지한다.
심장, 폐, 혈액, 손끝 마디마디의 혈관, 전부가 멈춘다.
그렇게 되면, 고통뿐이다. 친애의 의미를 담은 쓰다듬음에,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고통을 참아낸다.
다행히 테레제의 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진다.
나는 주르륵 무너져, 테레제의 발밑에 주저앉아 헐떡인다.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테레제를 올려다보자, 아가씨는 입술을 살짝 지르물고 있었다.
“강아지 같네.”
“실망, 이신가요.”
“응. 그래도 싫진 않아.”
테레제는 눈을 감았다가, 금방 다시 떴다.
납득할 만한 이유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방금 내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거 아냐, 라고 물었었지?”
“네.”
“맞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었어.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고작 업보 따위가 두려워 밤 산책도 나가지 못하고 있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갖기도 전에, 테레제는 하지만, 하고 나의 말문을 막았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이 있기 마련이야. 그리고 나는,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는,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무로부터 도망칠 생각도 없고, 개인적인 기호 탓에 잘 할 수 있는 일에 대고 싫은 일을 왜 굳이 해야 하냐며 투정부릴 생각도 없어. 후회? 있을 리 없지.”
“하, 하지만.”
“그래, 맞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여태까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결과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테레제가 무릎을 꿇고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이 가득한 사랑스러운 얼굴이지만, 나는 웃으며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코넬리아는 좀 더 내게 직접적으로 이득인 일이기를 바라는 거지?”
“.......”
“그래. 어떨까. 돈을 벌어서, 쿠데타라도 일으켜볼까? 이클리시아 왕조 같은 거, 별로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아가씨.”
뒤의 기사가 테레제를 제지했다.
하지만, 테레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 소박한 소망이 좋겠지.”
“네.......”
“드레스가 사고 싶네. 이클리시아의 왕자와 결혼할 때 입을, 무지 사치스러운 걸로.”
낯선 이들의 죽음과, 사치스러운 드레스.
테레제는 아이처럼 이어서 말한다.
“그걸 사고 나면 남는 돈으로 성벽을 쳐야겠어. 펠마인 마을이 마물에게 시달린다고 하니까, 거기에 성벽을 치면 좋겠네. 모험가 양성이 부진해서 일어난 일인 듯하니, 모험가 길드에도 후원을 해줄까.”
“아, 가씨.”
“풍작이 들면 무기 팔아 번 돈으로 농민들에게서 농작물을 구입해 창고에 쟁여놓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지. 그럼 흉작에 시혜를 내릴 때도 부담이 덜할 거야.”
현실의 이야기다.
유르덴킬라이나 땅의 풍요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이클리시아 전역의 사람들이 행복할 순 없어. 어린 나라도 알아. 하지만, 유르덴킬라이나의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다면, 유르덴 령의 사람들이 행복해할까요? 누군가의 불행을 팔아 산 행복인데.”
“아니. 아마 비싼 드레스나 샀다고 욕이나 하겠지.”
“그게 다 무슨 쓸모에요, 그럼.”
“드레스 사고 남는 돈으로 한다니까 그러네.”
핑계다.
계산할 것도 없다. 드레스 따위 헐값이나 다름없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말했었지.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젠장.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쥐었다.
졌다. 오히려 잘 모를 복종심마저 생길 것 같았다.
뛰쳐나가는 것보다, 아가씨의 곁에 있는 게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할지도 몰라, 라고.
여기서 뛰쳐나간다한들, 언젠가는 아가씨를 막지 못했다며 가슴 아파하겠지.
도망친 나에겐 그럴 이유가 하등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가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도 따라서 일어선다.
“유르덴의 업보가 지옥 끝까지 따라온다 해도, 아가씨만큼은 지킬 거예요.”
“에헤헤. 다행이다.”
“대신, 하나만 지켜주세요.”
“응. 뭔데?”
“아가씨의 품속에 들어온 것들만큼은, 버리지 말아주세요.”
테레제의 표정이 곤란하다는 듯 변해간다.
우물쭈물 말을 못하다가 천천히, 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해. 아무리 그래도 목숨보다 우선인 건 없거든. 어쩌면 내 목숨 때문에 너희를 버려야할 순간이 올 지도 몰라. 사지로 향하라던가. 그래서 약속을 해주진 못하겠어.”
“한 마디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응. 레오날. 뭔데?”
옆에 있던 기사가 끼어들었다.
그는 테레제의 옆에 부복하더니, 고개를 깊게 숙이고서 낮게 외쳤다.
“그 순간이 온다면, 저희는 그저 저희가 버려지는 순간을 구한 것뿐입니다. 결코 아가씨께서 저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저희가 버려지기를 택하는 것뿐입니다. 부디 괘념치 마시지요. 이미 제 어린 주인께서 먼저 저희를 버리실 일이 없음을, 저희 기사들 전원이 알고 있습니다.”
“아, 아으으. 그게, 응. 고마워. 하지만 코넬리아는 다를지도 모르잖아. 그치?”
테레제의 고개가 내게 돌아온다.
내 행동이 어떠했을 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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