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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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덴 공작가는 아이렌킬라이나 주?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가문들 가운데 하나였었다.
아이렌킬라이나 유일의 왕국인 ‘이클리시아 왕국’의 가장 충실한 신하가문이자, 가문이 세워진 이래 줄곧 이클리시아 왕국의 국방을 맡고 있었다.
그 이름에 명예를 담아 이르기를, 이클리시아의 방패라고, 하던가.
제국을 통틀어도 가장 명예로운 가문 가운데 하나라는 건 분명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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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동진을 통한 이동은 꽤나 쾌적했다.
사실 쾌적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냥 마법진 위에 서서, 마법진에 빛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동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쾌적하지.
“그레나르데에 온 걸 환영해, 코넬리아.”
“그레나르데.......”
“그래. 그러니 여기서부턴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해.”
고개를 돌려 건축양식이 다른 창문의 바깥을 내다보았다.
출발할 때엔 정오 즈음이었는데, 여긴 아직 새벽인 듯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머나먼 서역 듀렌킬라이나에 위치한, 곰 수인들의 나라.
시간대가 이토록 차이 날 만큼, 유르덴 가문이 뿌리내린 아이렌킬라이나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곳이었다.
사실 나도 이 동네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제국 서역에 대해 기술한 책에서도 ‘많은 서역의 나라들 중, 그나마 괄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몇몇 나라 중 하나’라고만 적혀있었을 뿐이고.
“어서 오시오.”
목소리. 정면에 꽤나 늙어 보이는 듯한 곰 수인이 한 명.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좌우로, 무장한 곰 수인 몇몇이 서있었다.
곰 수인이라고 해도 인간과 크게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인간의 형태에 커다란 곰의 귀를 달고 있었고, 여성과 남성을 크게 가릴 것 없이 대체적으로 체모가 풍성한 근육질의 덩치들이었다.
반면에 이쪽은.
여자애 둘과 기생오라비 하나. 심지어 셋 다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다.
“오래간만이네요. 발드메란티노.”
“다시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테레제 양. 어서 가시지요. 저희의 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머. 밤에 주무시지 않으면 몸이 상해요?”
나는 놀라 듀오토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오히려 얼굴을 찌푸리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허둥지둥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왕이라니.
“가자, 코넬리아.”
“네, 네에. 아가씨.”
곰 수인의 무리를 따라 이동한다.
나도 따라서 움직이긴 했지만, 아직 머릿속은 어지러운 상태였다.
뭘까, 이거. 대체 무슨 상황일까.
그래도, 한 번. 으음. 몇 가지 가설을 떠올리자면.
테레제도 귀족 가문의 아가씨니까. 정략혼, 같은 것에 휘말렸다던가.
드라킬라이나 인류유일제국에 비인간을 천대하는 풍조가 가득 깔려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국의 왕이라고 하지 않나.
공작가의 아가씨가 시집을 오게 될 수도 있을......까?
그거 말고는 모르겠는걸.
“새 일행이로군요.”
“코넬리아. 앞으로 듀오토를 대신해 내 전속 기사가 될 아이야.”
“그렇습니까. 믿음직스럽군요.”
그런 말을 하는 노인은, 딱히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뭐. 이해는 해.
듀오토랑 비교하면 도대체 뭐가 믿음직스럽겠어.
건물을 나오자, 완전 촌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볼 때, 이미 주변에 시야를 가릴 만한 커다란 건물 하나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심각한 수준이었다.
가장 큰 건물이 이 역이 아닐까. 왕궁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 유르덴 성에서 나올 때처럼, 여기서 마차를 타고 다시 이동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무엇인가가 달려왔다.
으르렁대는 소리. 하지만, 고깃덩어리 울림통의 소리가 아닌, 강철의 포효.
무한궤도가 장착된 덩치 큰 마도 장갑차였다.
“잘 쓰고 계시나보네요.”
“전쟁터에서 쓰면 좋을 것을, 저 어린놈이 자가용으로 알아 문제입니다.”
“후후, 그런가요.”
장갑차 자체는 놀랄 모습이 아니었다.
중세 풍경을 하고 있어도 버젓이 총기와 자동차량이 나다니는 세계였다.
제국 수도로부터 기찻길이 깔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차는 격식 있는 운송수단일 뿐이다.
그때, 장갑차의 뒷문이 드르르 열렸다.
이거 완전 병력수송장갑차네. 텅 비어있었지만.
테레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모래먼지 가득한 장갑차에 올라탔다.
나는 듀오토의 눈치를 보다가, 그가 올라탈 때 같이 올라탔다.
“안녕, 파르마네이아. 즐거운 모양이네.”
“안녕! 인간 공주! 그런데 이게 진짜 대단하다고!!”
앞좌석, 운전대를 잡은 건 여성이었다.
공녀를 뭔가 착각한 건지 공주라고 부르며, 격식 없이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뭔가 위장 무늬가 들어간 현대식 군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허리에 상의를 허리띠처럼 묶고, 상반신은 탱크탑 한 장 차림이었다.
듀오토는 그런 그녀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공주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
나는 듀오토가 ‘공주님’이라는 단어를 꺼낸 순간으로부터 0.3초가 지나기 전에 뒤따라 허리를 숙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저게 공주라고? 도대체 왜. 나는 당황스러움을 도대체가 지울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애네.”
“마,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는 코, 코넬리아. 아가씨의 경호를 맡게 될 몸입니다!!”
“아앙? 뭐야. 듀오토도 그렇고, 인간은 홀쭉한 애들이 강한 거야?”
“그러게.”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뇌가, 지목되자마자 멋대로 자기소개를 해버렸다.
아까 전처럼 테레제가 소개를 하도록 두는 편이 나았을 텐데.
감히 아랫것이 멋대로 윗분들이 이야기하시는 데 끼어들어라며 화내면 곤란하다.
“됐고, 모두 안전벨트나 해! 엄청 밟을 거거든!”
“적당히 해주면 좋겠는데.”
“내 나라에서 내가 내 멋대로 하겠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럼 밟는다!!”
곰 왕녀가 외치는 것과 동시에, 천천히 거대한 장갑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달린다. 길 앞에 깔린 모래를 찢어발기며, 우렁차게 외친다.
그리고 속력이 붙기 전에, 핸들을 꺾어 작은 벽돌집 하나를 힘으로 밀어붙여 박살내었다.
쿠궁.
무너진 잔해가 장갑차 위를 두들기다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장갑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벽돌집을 완전히 꿰뚫고 지나쳐, 다시 도로로 진입했다.
“자, 잠깐. 방금”
“쉿.”
듀오토가 갑작스레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았다.
거기에 더해 맞은편의 테레제는 자기 검지를 뻗어 스스로의 입을 가리고 있었다.
조용히 하라는 소리다.
방금 이 장갑차가 무너트린 집에 사람이 살았더라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죽지 않아도 건물 잔해에 깔려서 못볼 꼴이 되었겠지.
도대체 뭐야. 무슨 상황인 건데.
이래서야 나는 무엇 하나 따라가지 못한 채, 그저 상황에 끌려 다니는 신세다.
“앞으로 네가 보게 될 것들은, 모두 유르덴 가문이 하고 있는 나쁜 일들에 관한 것들이야.”
테레제가 그렇게 말한다.
평소의 천사 같은 얼굴로, 어린아이처럼 ‘나쁜 일’을 언급한다.
“조금 충격적이라도 참아. 앞으로도 나를 모실 수 있게.”
쿵, 우득.
또다.
아무래도 장갑차가 또 무엇을 친 모양이었다.
우지직, 우드득. 무한궤도 아래 깔려 으스러지는 소리.
고개를 돌려보면, 곰 왕녀는 와이퍼를 켜서 전면 유리창에 튀긴 피를 닦고 있었다.
“에이 씨. 이런 새벽에 나와서 뭘 하는 거야?”
“가로등 관리인이 아닐까 싶어. 이 시간 즈음에 나와서 초를 갈며 고생하거든.”
“뭐? 가로등? 가로등이야 시간 되면 켜지는 거고, 시간 되면 꺼지는 거잖아? 됐어, 됐어.”
장갑차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작은 터널을 지나, 커다란 왕궁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르덴 가문의 성 만큼이나 거대한 왕궁이었다.
반면, 왕궁 주변의 마을은 도탄에 빠진 칙칙한 할렘가의 풍경 그 자체였다.
아니, 차라리 그 만큼이라도 되었더라면 다행일 것이다. 적어도 거긴 미국이니까.
아프리카. 문득 머릿속에 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군벌.
그 순간부터 저 왕궁이, 피와 눈물로 지어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되었다.
장갑차는 그 왕궁을 지나쳤다. 조금 더 달린다.
다시 한 번의 터널. 아예 도시 바깥을 지나 계속해서 달려간다.
“아, 맞아. 아버지는 지금 밖에 나가 계셔서, 조금 더 가야한다는 걸 말해주지 않았네.”
“괜찮아.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좋아. 더 밟을까.”
장갑차는 한 시간 정도를 더 쉬지 않고 달렸다.
도착지는 어딘가의 언덕 위. 작은 마을이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언덕 위에, 곰 왕녀가 입은 것과 닮은 군복의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천천히, 장갑차가 멈춘다. 나는 테레제의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렸다.
어느새 해가 떠오를 무렵이었다.
“어서 오게. 테레제.”
“영웅왕 파르마토벨트를 뵙나이다.”
테레제가 군복을 입은 늙은 남자 앞에 나아가 인사를 한다.
무려 영웅왕이라는 자였지만, 그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스커트의 양쪽 끝단을 살짝 들어 올리는 인사일 뿐이다.
“본래라면 잠시 쉬며 여독을 풀었다가 아침 일찍 찾아뵈었을 참이지만요.”
“오늘따라 잠이 오질 않아서 말이야.”
“저 마을은?”
“뭘. 언제나처럼 반란군이지.”
“그런가요.”
테레제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허공에 손을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유르덴 성에서 출발할 적 마차에서 가면을 꺼냈었던 것처럼.
쿵, 쿠웅.
허공에서 상자들이 떨어져, 차곡차곡 쌓인다.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다가가 배척으로 그것을 하나하나 연다.
첫 번째로 상자를 연 병사가 상자 안에서 꺼낸 것은 수류탄이었다.
전세에서는 세계2차대전기에나 쓰였을 법한 막대형 수류탄.
그 다음으로는 라이플. 목제스톡의 볼트액션식 라이플들.
병사들은 하나씩 꺼내어 그것을 옆의 동료에게 나누어준다.
세 번째 상자에는 탄환이 가득 차있었다. 그것 역시 일사불란하게 분배된다.
나머지 상자들도 비슷한 것이 들어있었다. 모든 상자가 전쟁의 톱니바퀴로 가득했다.
“따로 주문하신 것이 있으셨죠?”
“그래. 그것이 기대가 되어 잠이 오질 않더군.”
주문했다, 고.
무기를 팔고 있다. 밀매인가? 아니라고 한들 관계없다.
하지만, 이렇게 어린 아가씨가.
나의 당혹감은 아무래도 좋은 듯, 테레제는 다시 공간을 열었다.
이번에 튀어나온 것은 강철 수레바퀴가 달린 중기관총.
전장이 2m는 더 되어 보이는 그것을 영웅왕이라는 자는 장난감을 보는 아이처럼 보았다.
그는 들뜬 표정이 되어 흉악하게 생긴 중기관총 앞으로 다가가 강철 수레바퀴와 방패가 달린 삼각대에서 본체를 힘으로 뜯어내었다.
“아직 대금을 주시지 않으셨는데요.”
“아아, 그랬지. 기다리게.”
영웅왕은 중기관총을 한 손으로 든 채 다른 한 손을 바삐 움직여, 품속에서 커다란 주머니를 꺼내어 우리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다이아몬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보석.
무엇이건 간에, 분명 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코넬리아. 받아오렴.”
테레제의 말을 들은 나는 반쯤 홀린 듯 움직였다.
예절을 지켰는지, 어땠는지는 모른다. 그저 다리가 풀릴 것 같은 것을 참으며 나아가, 커다란 곰 임금님으로부터 주머니를 받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테레제에게 건네었다.
테레제는 주머니를 열어 그 자리에서 안에 든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오른쪽 눈에 모노클을 닮은 마법진이 떠오르는 것은 동시였다.
“8알 모두 확실하게 A랭크 마석이네요. 거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테레제는 주머니를 다시 내게 넘겼다.
나는 주머니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어쩔 줄 몰라,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 군복의 병사들은 전부 테레제가 꺼낸 총으로 무장을 끝냈다.
해가 떠오른다.
언덕 아래 마을의 굴뚝에서 하나 둘 씩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짓는 아낙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병사들은 언덕을 내려간다. 탕, 탕.
지저귀는 새소리가 총소리에 묻혀간다. 뭘. 오래 걸리진 않았다.
더하여 장갑차가 집을 무너트리는 소리. 시끄러워서 이젠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반란군이 있는 마을이라는데, 이상하게도 저항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해.”
너무 오래 굳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업보가 너무 많이 쌓여서 무섭다, 고 말했던 어린 소녀가 내게 통보한다.
나는 고개를 돌려 테레제의 얼굴을 보았다.
천사, 라고 했었지. 여전하다. 언덕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듯.
생각해보면, 시설에서도 저런 표정이었다.
“왜.”
“너무 짧아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기 힘드네. 앞으로는 고쳐줘.”
입을 열어, 겨우 할 수 있었던 말이 고작 한 마디, 한 음절의 물음이었다.
존대조차 붙이지 못할 만큼.
나. 왜 이렇게나 흔들리고 있는 걸까.
배신감일까?
“그래도, 대충 이해는 했어.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묻는 거지? 잘날 만큼 잘나신 귀족 가문의 아가씨가 이런 만리타향까지 와서 고작 무기밀매나 하고 있다니. 당혹스럽기야 하겠지.”
테레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녀는 보라는 듯 학살의 현장을 가리켰다.
“제국은 이 혼란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어. 저기 고객들이 오랫동안 서로 치고 받으며 통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지. 나는, 나의 유르덴 가문은, 그 기대에 편승해서 애국할 겸 세수를 늘리고 있는 것뿐이고.”
“하지만. 저건, 학살, 이잖아요.”
“인간이 아니잖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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