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3화 (3/100)

〈 3화 〉 첫 여행

* * *

검을 들어 내달린다.

듀오토의 검이 수 십 갈래로 휘둘러진다.

피할 곳을 지우는, 면적을 제압하는 검무.

이 성의 저택에 몸을 의탁하게 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고, 이제는 보였다.

나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듀오토의 검을 하나하나 튕겨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한계.

연이어 이어지는 찌르기는 겨우 몸을 던져, 땅을 구르는 걸로 피해낸다.

물론 누워 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재빨리 일어나서, 다시 휘둘러져오는 검무를 맞이한다.

“칼날에만 눈을 파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을 텐데.”

검무 끝에 이어지는, 킥.

배를 걷어차여, 그대로 날아간다.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데굴 구른다. 체감 상으로는 스무 번도 넘게 더 굴렀다.

구르던 중에 검으로 땅을 찍어 멈춰, 벌떡 일어난다.

“어, 어라.”

추가공격이 없었다.

듀오토는 저 멀리서, 검을 칼집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도약해서, 아니. 날아와서, 검을 휘두르고 있을 참이었다.

“시각은 오감의 하나일 뿐이라고 몇 번씩이나 말했다. 오감을 전부 사용해서 사물의 움직임을 파악해라.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쯤은 진즉에 알아채었어야지.”

“으윽.”

나는 이를 갈았다.

그의 말에 틀린 점이 딱히 없는 것 같아, 순순히 받아들인다.

듀오토가 조금 폭력적이긴 해도, 적어도 시설의 교관보다는 몇 배는 나았다.

아니. 몇 배로 그칠까보냐. 그건 애초에 제대로 된 교사라고 할 만한 녀석도 아니었어­

“굉장해. 내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아직 멀었습니다, 아가씨. 이 빌어먹을 녀석은 제 주인님이 바로 뒤에 있다는 것조차 아직 알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아가씨?!”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등 뒤에 테레제가 있었다. 한껏 치장을 한 아가씨는 마치 꽃을 닮아 있었다.

“안녕, 코넬리아. 아침 일찍부터 열심이네.”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좋은 아침이에요.”

황금색의 머리카락은 서릿발에도 결코 지지 않는 화사한 메리골드의 색이었고, 마주한 사람의 눈동자 색깔을 그대로 담아내는 유리색 눈동자는 언제나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아직 젖살조차 다 빠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한 콧잔등과 미려한 턱의 선에 대해선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이대로 성장하기만 해도 절세의 미녀다.

경국지색의 꽃망울을 보았다. 한낱 시종인 내가 다 자랑스러울 정도다.

첫 만남에서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소개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눈부신 태양을 닮아 있었다.

이대로 계속 섬겨도 좋겠다 싶을 정도다.

“응. 좋은 아침. 이제 아침 훈련은 그만하고, 씻고 외출 준비해.”

“네?”

듀오토도 턱짓으로 내게 가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일어서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연무장을 뒤로 했다.

뒤늦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시설에서 실험체로 살며 ‘이거 하나만큼은 괜찮네.’하고 여겼던 것이 딱 하나 있었다.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욕도 아니고, 그냥 샤워일 뿐이다. 물론 실험체니까 청결해야겠지.

그래도 그게 좋았다.

이제와선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시설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전생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후, 그 사이에선 한 달에 한 번 씻으면 다행이다 싶었던 것 같으니까.

강에서 씻었나, 비오는 날에 비를 맞았었나.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엑.”

“사람을 보고 그런 소리를 내면 실례랍니다.”

방문을 열자, 내부가 보이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부터 들려왔다.

이쪽도 황금색. 어떻게 보면 테레제와 닮아 보이기도 하는 황금색 머리카락을 브레이디드 번 스타일로 정갈하게 묶고 있는 메이드복의 소녀가 있었다.

글로리아. 현 유르덴킬라이나 가문의 하우스키퍼. 다시 말해 메이드장.

소녀라고 말한 만큼, 짊어지고 있는 직책에 비해 몹시도 젊었다.

그게, 인간이 아니라 엘프였으니까.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다지 느낌이 좋진 않은걸.

“아, 안녕하세요.”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건네고는, 게걸음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재빨리 손을 뻗어 일과시간 되면 입으려 정리해둔 옷가지에 손을 뻗었다.

“그, 그게. 아가씨가 부르셔서 씻으러 가보겠습니다!”

짤랑. 글로리아가 허리춤에 매고 있던 열쇠고리가 흔들리는 소리.

옷가지 바로 몇 mm 앞에서 손목이 글로리아에게 붙잡혔다.

듀오토의 움직임을 꽤나 따라가게 된 나였지만, 아직도 글로리아의 움직임은 볼 수 없었다.

나를 붙잡은 글로리아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같이 갈 테니까요.”

“엑.”

“이상한 소리, 내지 말라니까요.”

글로리아가 후후 웃으며 정돈해두었던 옷가지를 먼저 집었다.

그리고 가져와서 하나하나 들추어 본다.

별 거 없다. 팬티. 캐미솔. 드로어즈. 검은 원피스. 앞치마. 헤드드레스.

아직 제대로 된 성장이 시작되지도 않았기에 브래지어는 없다.

......새삼, 여성복에 익숙해져버리고 말았다는 게 느껴졌다.

잘 때와 씻을 때는 최대한 팔찌를 빼두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빌어먹을.

“코넬리아는 뭐죠?”

“네?”

글로리아는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그저 웃는 표정이다. 그게 얼마나 큰 압박감을 주는지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잠시 짱구를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호위, 일까요? 레이디스 메이드?”

아무래도 역할을 묻는 것이겠지.

그래도 어느 하나라고 똑바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말해보긴 했지만, 사실상 레이디스 메이드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점이 굉장히 많았고.

“틀려요. 중점은 ‘호위’에 찍혀있겠지요? 그러니 메이드 역할은 오직 저택 내에서만 하세요. 대외활동을 해야 할 때마저 이 옷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에요. 물론 코넬리아가 굳이 ‘그래도 익숙한 옷이 편하다’고 말한다면야, 교육 방침을 일찍 바꿀 겸해서, 메이드 복을 입은 기사로 길러드릴게요.”

“아, 아뇨. 사양할게요.”

“그래도 메이드 복을 입고 싸우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긴 있으려나....... 하여튼.”

그러더니 글로리아는 다른 깨끗하게 정돈된 옷가지를 내게 넘겨주었다.

검은 정장에 소매가 넓고 아랫단이 파니에를 따로 넣은 것처럼 펑퍼짐하게 퍼지는 코트.

검은 코르셋. 역시 검은 스커트와 레깅스. 귀여운 구두.

색조가 대체적으로 검어서 그렇지, 굉장히 화려한 옷이었다.

“스, 스커트보다 바지가 몸을 움직이기에 편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괜찮아요. 그냥 보여주기 용이거든요.”

“으윽.”

“깔끔하게 씻고 예쁘게 단장해서 아가씨에게 어울리는 배경이 되어야하지 않겠어요?”

“배경이네요.”

“그럼요. 아가씨가 워낙 태양 같으셔서 비교되니까 눈치 채지 못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우리 코넬리아도 조목조목 따져보면 꽤 귀엽거든요? 배경으로 딱이에요.”

“으.”

새까만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였었다.

시설에서 약 먹고 주사 놓아지고 하는 동안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른 아이들도 전부 비슷하게 망가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맥 빠지는 하얀 머리카락에, 혈색이 부족한 얼굴이다. 누가 흡혈귀 같다고 놀려도 할 말 없다.

“고마워요.”

“아무렴요.”

그래도 칭찬에는 똑바로 감사인사를 할 것.

아무리 텅 빈 칭찬이더라도.

그리고 욕탕에 들이밀어졌다.

씻는 법을 가르친다던가, 글로리아 역시 사전에 선언했던 대로 함께 욕탕에 들어왔다.

......글로리아는 굉장했다.

엘프답게 빈약한 흉부였지만, 실루엣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상부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물론 넋놓고 빤히 바라보다 혼났다.

아가씨도 그런 눈으로 볼 거냐고 하던데, 곤란하기만 하다.

/

마차를 타고 성의 저택에서 나온다. 몇 달 만의 외출이었다.

듀오토도 함께였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안심이 되었다.

“마치 까마귀 같네.”

테레제가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칭찬인 걸까. 칭찬이겠지. 나는 얌전히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라는 것도, 지어야할 때 곧바로 못 지으면, 글로리아에게 혼난다.

글로리아에 의해 꽉꽉 매듭지어진 코르셋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웃어 보일 마음이 아니라고 한들, 반드시 웃을 수 있어야만 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역시, 잘 준비했어,”

테레제가 허공을 열었다.

공간마법이다.

전생의 기억을 잠시 끌어와서 설명하자면, 흔한 RPG 게임의 아이템창과 같은 느낌이다.

자세한 걸 물어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보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테레제가 꺼낸 것은 새하얀 새부리 가면이었다.

“오늘 하루는 저택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 이걸 쓰고 있도록 해.”

“네, 아가씨.”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그것을, 나는 얌전히 얼굴에 썼다.

천천히 마차가 멈춘다.

성채에선 나왔지만, 아직 성곽 내부였다. 성의 아랫마을이다.

아직 감을 잡지 못한 사이, 듀오토가 마차에서 내렸다. 늦었다.

“오늘 하루는 듀오토를 보면서 잘 배우도록 해.”

“죄송합니다, 아가씨.”

“괜찮아. 처음에는 다 서투른 법이야.”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마법으로 목줄까지 매였지만, 시설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듀오토나 글로리아 같은 악마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다름없다.

목줄이고 자시고 그냥 이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게 정신세뇌가 아니라면 좋을 텐데.

“오늘 일어난 일은 모두 글로리아에게 알리겠다.”

“......윽.”

“뭐하나. 내리지 않고.”

“비켜야 내리죠.”

“나는 기사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기사도에 따라, 여성과 약자를 존중하고 지킨다. 그러니 어서 내려라. 성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에스코트해주마.”

“진심?”

어차피 배워야겠지. 나는 마차에서 내렸다.

듀오토는 정말로 나를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에스코트해주었다. 미치겠네.

내린 곳은 어딘가의 건물 앞이었다.

역?. 나는 독서를 통해 이 역이라는 곳이 전세의 역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간이동진이 깔린 곳이다.

열차와 철도의 보급이 제국 수도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지만, 아직은 이 공간이동진을 사용해 이동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라고.

“멀리 가나보네요.”

“아. 내가 아직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았구나.”

“어디로 가나요?”

“제국 바깥이야. 수인?人들을 만날 필요가 있어서.”

수인?

나는 머릿속에 지도를 펼쳐보았다.

켄타우로스부터 시작해서 머리에 짐승 귀가 자라난 반인반수까지. 짐승과 인간이 섞인 듯한 외모를 한 그들은, 대륙의 서쪽에 무수히 많은 작은 나라들을 세우고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인간과 달리, 베이스가 되는 짐승에 따라 수많은 부족이 있어서, 도대체가 통합되지 못한 채 매일같이 치고받고 싸우는 게 일상이라는 듯했다.

즉 위험지대다.

거리상으로도 굉장히 떨어져있지만, 이건 큰 문제가 아니리라.

공간이동진으로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

멀면 멀수록 값비싸진다고 하지만, 부잣집이 그걸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테고.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긴 한데, 오늘은 아마 괜찮아.”

“하지만, 왜.......”

“이유는 가서 알려줄게.”

이제 더 말할 건 없다.

뒤를 따를 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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