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2화 (2/100)

〈 2화 〉 유르덴의 공녀 테레제

* * *

테레제.

유르덴의 테레제. 테레제 레 알트 유르덴킬라이나.

내가 모실 아가씨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시설에서 끌고나온 첫날, 내게 ‘코넬리아’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아무리 들어도 여자 이름인데요.”

“그래? 옳게 들었네.”

“네?”

“넌 이제부터 여자가 되어야 하거든.”

테레제 아가씨는 시원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한 번 더 입을 열어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바로 몇 시간 전, 나는 시설에서 나와 유르덴 령으로 이송되던 도중 다시 한 번 탈출을 꾸민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손쉽게 탈출할 수 있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그리고 내가 왜 아직 잡혀있느냐면.

테레제 아가씨는 항상 굉장히 건장한 덩치의 기사를 하나나 둘 정도를 꼭 대동하고 다녔다.

그중에 단 한 명, 유난히도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기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굉장히 강했다.

얼마나 강하냐면, 쉽게 탈출해서 신나있던 나를 단번에 때려눕히고 제압해 아가씨의 발밑까지 이송해올 정도로.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이니 뭐니, 뭔가 실험을 많이 당한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내력이 정말 무색하게도 단번에 깨졌다. 와, 대다네.

“......윽.”

다시 돌아와서.

왜 입을 열려다 그만두었냐면, 바로 그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기사가 입을 열려던 나를 째릿 날카롭게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두들겨 맞은 데가 아직도 욱신욱신 울렸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난 내년부터 학교에 가야해.”

“아, 예.”

이 세계의 평균 첫 등교 연령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 사실 얼마 뒤부터 내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는 남녀구별이 뚜렷하단 말이야. 그래서 듀오토를 데려갈 수가 없어.”

“듀오토?”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기사가 고개를 작게 숙인다.

아마 그의 이름이 듀오토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네가 듀오토의 역할을 대신해야해.”

“제가 상식이 부족해서 그런데, 이게 평범한 일인 겁니까?”

앗.

정신을 차려보면, 땅을 구르고 있었다. 뱃속이 내장 깊은 곳까지 아팠다.

고통을 참으며 고개를 들어보면, 듀오토가 손을 털고 있었다.

아무래도 명치에다 주먹을 날린 모양이다. 어느새 저 거리를 지우고 다가온 건지.

“끄, 으윽.......”

“그러지 마, 듀오토.”

“하지만, 아가씨.”

“교육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어. 이해해.”

침대에서 일어서는 소리.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울리며, 테레제 아가씨가 다가온다.

그녀는 내 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꼴사납게 쓰러진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방금 말투는 마치 내게 ‘넌 비정상이야’라고 말하는 듯했어. 앞으로 고쳐줄 수 있겠지?”

“노력, 해보겠습니다.”

나는 테레제에게 고분고분하게 대답한다.

그녀에겐 거역할 수 없다. 몇 시간 전, 오토에게 붙잡혀 끌려왔을 때 이미 겪어봐서 안다.

나는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 즉 마법면역체질이지만, 스스로를 위한 회복마법마저 거절해버릴 정도로 융통성이 없었던 141번과는 달리, 개량이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이제는 마법면역체질이라기보다는, 마법저항체질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외부에서 날아드는 마법은 거의 다 파괴할 수 있었지만, 나의 내부에서 시작된 마법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테레제의 계약 마법에 종속된 상태였다.

하나. 테레제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하나. 테레제가 상처를 입게 되면, 나도 같은 부위에 똑같은 상처를 입는다.

하나. 테레제의 허가 없이 그녀에게 접촉하려할 경우, 나는 정지한다.

마치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굳어버린다.

당장 지금도 내가 접촉하려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레제가 무의식적으로 허가했을 입 말고는 손가락 하나조차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네가 싫진 않아. 그래서 딱히 폭력적인 수단도 쓰고 싶지 않고, 너의 자유를 억압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언제 뒤를 노릴지 모를 아군 같은 적보다는, 당장 앞에서는 으르렁거려도 뒤가 위험해지면 몸을 던져서 구해줄 적 같은 아군이 좋거든.”

테레제가 손을 떼었다.

멈춰있던 심장이 다시 뛴다. 나는 숨을 깊게 내어쉰다. 달콤했다.

“그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네.......”

“네가 상식을 잘 모른다고 하긴 했지만, 맞아. 굳이 남성을 여자로 만들어서 자기 기숙사에서 함께 살도록 하려 하는 학생은 없어. 평범한 여성인 메이드들조차 주인과는 각방을 쓰는걸.”

물론 그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테레제는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나는 굉장한 겁쟁이인걸. 우리 집에 얽힌 업보가 엄청나게 깊어서, 언제 누군가에게 살해당할지 몰라서, 무서워. 그러니까 네가 필요한 거야.”

해맑게 웃는 듯하지만, 목소리에선 자조의 빛을 지워내지 못했다.

뭔가 사정이 있는 걸까.

사실, 내가 있던 시설과 연줄이 있는 것부터가 이미 벌써 업이 깊었다.

어쩌면 시설의 주인일지도 모르고.

나는 테레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무래도 좋다 싶었다.

시설에서 고통 받으며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그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며 이미 포기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말만 들어보면, 폭력을 쓰기도 싫다, 자유를 억압하기도 싫다, 라고 하시니.

“이해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하지만, 어떻게 저를.......”

말이 다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테레제는 이해한 듯 배시시 웃었다.

“자를까?”

“거절해도 됩니까?”

“물론. 나는 남이 해주는 조언을 덮어놓고 거절하는 아이가 아니야.”

듀오토. 테레제가 기사의 이름을 불렀다.

듀오토는 기다렸다는 듯 상자 하나를 가져와 내게 주었다.

나는 그것을 열었다. 작은 팔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테레제의 얼굴을 보자, 테레제는 그것을 차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싸 보이는데.

나는 십자가 조각이 눈에 띄는 팔찌를 상자에서 꺼내어 팔목에 찼다.

나의 마력을 먹어치우고, 자동으로 마법을 발동한다. 나의 내부에서 시작한 것. 이런 마법은 내가 막을 수가 없다.

천천히, 육체가 변모한다.

키가 줄어들고, 어깨가 좁아진다. 시야 역시도 아주 살짝 낮아진다.

짧은 머리카락이 어느새 허리를 간질인다. 평평하던 누더기 옷이, 천천히 굴곡을 그린다.

“뭐, 뭐야. 이게.”

“제대로 작동되네. 다행이야, 코넬리아.”

“......와, 아아.”

목소리도 아주 조금 가늘어졌다.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나이였기에 변화는 극히 적었지만, 그럼에도 있었다.

놀란 나는 입을 벌린 채, 천천히 팔찌를 다시 벗었다.

다시, 원상태로.

신기하네.

“어지간해선 벗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익숙해지는 게 좋을 테니.”

“알겠, 습니다.”

순순히 팔찌를 착용한다.

아직까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앞으로 2살에서, 3살 정도 뒤엔, 어떻게 될지.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 풀어. 듀오토가 말하길, 여장이랑 다를 것 없대.”

“잠깐, 만요. 그럼 기사님이 이걸 차면 만사 해결이잖아요.”

“그렇다는데, 듀오토.”

듀오토는 치욕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어쩌지. 호위라면 네가 나보다 더 뛰어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건 명확해.

하지만 듀오토는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다시 무표정이 되었다.

“성인은 한 시간 이상 착용할 수 없습니다.”

야.

뭐라고?

야이, 씨. 솔직하게 말해.

그거 핑계지.

지금 그거 핑계지?

“너도 졸업할 때까지야. 그 다음엔 새 이름을 붙여주던가 할게. 내 입장에선 네가 여성으로 계속 남기를 선택하는 편이 더 좋기야 한데, 뭐. 나는 네 말을 존중할 테니까.”

아무래도 참말인 모양이었다.

대충 조합하면, 성인이 한 시간 이상 착용하고 있으면 성별이 아주 바뀌어버린다던가,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성별이 바뀐 뒤에 다시 한 시간 착용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게 아닐까.

문제가 있으니까 안 하려드는 것이겠지?

아니면 시험해볼 용기가 없다던가.

모르겠다. 깊게 생각해봐야 곤란할 뿐이다.

“......해볼게요.”

여기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근무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가 봐야 세간의 풍파를 맞이할 뿐이다.

적어도 여긴 부잣집처럼 보이니까, 먹고 자는 데엔 문제가 없지 않을까.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도 있고. 부잣집 개라면 더 낫겠지.

“좋아, 코넬리아. 앞으로 잘 부탁해.”

“감사합니다, 테레제 아가씨.”

“응. 듀오토. 코넬리아를 글로리아에게 보내서 메이드 수업을 받게 해.”

“따라와라.”

메이드, 수업.

나는 싫은 티를 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고분고분하게 굴자.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듀오토가 한눈 판 사이에 도망치면 그만이다.

목숨이 테레제에게 종속되어있긴 해도, 내가 도망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조항은 계약에 없었으니까.

테레제의 방에서 나온다. 복도는 들어올 때도 보았지만,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왕궁 같은 모양새다.

“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주먹이 날아들었다.

역시 피하지 못했다. 땅을 구른 뒤에야 얼굴을 가격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테레제 아가씨는 네게 폭력을 쓰기 싫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다.”

“너, 이 개자식­!”

“혓바닥이 더럽군.”

바로 일어나서 반격하려 했지만, 즉시 두들겨맞고 땅을 굴렀다.

검.

검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시설에도 체술도 나름 배웠지만, 기본기는 역시 검을 들고 싸우는 것이었다.

“이걸 바라나?”

내 시선을 보았는지, 듀오토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칼집을 풀어 내게 던졌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뛰어 칼을 뽑아내고­

다시 땅을 구르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뭐, 반응을 할 수 있어야 싸우던 말던 하지.

“확실히. 이대로 성장하면 어마무시하겠군.”

칼은 아직 뽑히지 않은 채.

나는 누운 채로 검을 뽑으려 들었지만, 반쯤 뽑힌 칼날과 함께 가슴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나와 글로리아는 너를 교육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네 반항심을 조금 도려낼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미쳤­”

턱을 걷어차인다. 혓바닥을 깨물었다.

혓바닥이 잘릴 것 같은 충격에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피가 입에 순식간에 차오른다. 절반쯤 잘린 거 아닐까 몰라.

“앞으로 나를 다른 호칭을 더하지 말고, 단지 듀오토라고만 부르면 된다.”

“으, 그긋.”

“그래, 잘 부탁한다. 코넬리아. 그 시설에서 견뎠으니, 쉽게 망가지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겠다.”

듀오토는 어떻게 보면 가학적으로 보일 법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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