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의 칼끝에는 나비가 머물렀다-1화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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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72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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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고아를 주워와, 암살자로 키워낸다.

값싸고, 세뇌하기 쉽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애초에 ‘암살자’라는 단어를 ‘소년병’으로 바꾸고, ‘키워내다’라는 단어를 ‘써먹다’로 치환하기만 해도 지구 어디인가에선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않나.

“느려! 느려빠졌다! 조금 더 빨리 휘둘러라!”

그런데 나는,

이름 없는 1725번 훈련병은.

차에 치여 죽고 지구를 떠나와, 이상한 별의 암살자로 길러지고 있었다.

일어나 구보를 하고, 맛없는 식사를 하고, 정체모를 약을 투여 받고, 진검을 휘두르는 훈련을 받고, 다시 맛없는 식사를 하고, 또다시 이상할 정도로 수상한 약을 투여 받는다.

거부하려 해도, 마법이라는 거에 괴롭힘 당하고 나면 반항할 수도 없다.

애초에 아직 10살도 채 되지 않았는걸.

아. 이젠 10살이던가. 아닌가. 더 먹었나.

시설에 끌려온 지 몇 년 되었더라.

"이래서야 '온갖 마법을 깨트릴 칼날'이 될 수나 있겠느냐!"

매일매일 약 먹고 약 맞다 보면 사람이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우헤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이상해지냐면, 정신적으로는 미약한 기억상실증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정신질환들이 몰려오고, 육체적으로는 아직 10살 전후의 꼬맹이가 자기 손으로 사과를 하늘 높게 던진 뒤에 칼을 뽑아서, 사과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두 번은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해진다.

사람 맞느냐고? 10살배기 어린애가 맞느냐고?

약 먹은 애새끼랍니다. 그리고 그걸 손짓 하나로 제압하는 마법 갱장해.

“딴 생각하다가는 다칠 거야.”

끼기긱. 코등이싸움을 걸어온 맞은편의 소녀가 충고해온다.

141번 훈련병.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나보다는 아직 어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년인지 소녀인지는 모른다.

머리는 짧게 깎았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다.

힘을 주어 밀어낸다.

맞은편의 141번도 지루한 대치가 싫었는지 기꺼이 밀려나주었고, 둘 사이에 간격이 생겨난 그 한순간에 몇 번이나 되는 검극이 얽혔다가 떨어진다.

생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의 몸놀림인데, 이젠 익숙해져서 실감도 안 난다.

익숙해졌다고 말하기보단, 생전의 기억이나 여기 들어오기 전의 기억이나 약 때문에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해야 할까.

애초에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1725번 같은 웃긴 이름 말고.

분명 이름이 2개나 있었을 텐데.

“앗.”

캉. 크게 불똥 튀는 소리.

맞은편의 141번이 세게 휘두른 일격에 검이 부러졌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 동네 애들은 다 초인이란 말이야.

벌써 몇 번째야. 좀 단단한 검을 준비해주면 안 될까?

검이 부러져도 계속 해야지. 쉬고 있으면 혼내거든.

“자, 잠깐. 너 괜찮아?!”

“응?”

맞은편의 141번이 큰 목소리로 뭐라 그러고 있었다.

양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놓고, 다른 한 손으로 나의 오른쪽 어깨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을 따라 내려다보니 어깨살이 뭉텅이로 베여나가서 뼈가 보일 정도였다.

아.

어쩐지 팔이 잘 안 올라가더라.

뒤늦게 왼손으로 막아보려 했는데 치솟기 시작한 피를 어린아이의 손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뭐냐! 다쳤나!”

“죄, 죄송합니다! 제가 힘 조절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받아치지 못해서!!”

양쪽에서 동시에 고개를 숙인다.

교관은 우리 둘을 지이이 노려보다가, 말했다.

“검이 부러졌다면 어쩔 수 없지. 141번이 1725번을 데리고 양호실로 가라.”

“아, 알겠습니다! 어서 가자!”

“크흠.”

교관은 걸어가 나의 베인 살점을 주워들어 몇 번 탈탈 턴 뒤에,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첫 만남 때에 ‘나는 어린아이의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교관이었다.

처음에는 교관이 겁을 주려고 그런 줄로만 알았지만, 진짜였다.

첫번째로 고기를 먹는 걸 보았을 때, 그러니까 저게 1222번인가 1444번인가 했었던 훈련병의 잘린 손가락을 주워 오독오독 씹어 먹을 때엔 혐오스러워 미칠 뻔 했었지.

물론 이젠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익숙하다.

그냥. 저거 주머니가 젖지 않으려나.

그런 느낌.

“괜찮아? 안 아파?”

“아파.”

“그러니까 딴 생각 하지 말랬잖아!!”

여기서 남 생각 해주는 아이들은 별로 없는데.

처음에야 착한 아이들이 좀 있지, 입소한 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걸러지고 또 걸러지고 나면 어느새 다 짐승새끼들이라니까.

100번 대면 아주 오래있었을 텐데. 4년? 6년? 하여간에.

아. 본래 미친 애라서, 약 먹다보니 역으로 착해졌나.

그럴싸하다.

“선생님! 부상자에요!”

양호실의 선생님은 착한 어른이었다.

치료마법으로 금방 낫게 해줄 뿐만 아니라, 상처와 치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면서 의무실에 오래 가두어놓곤 했는데, 빡빡한 스케줄로부터 도망쳐 나와 잠시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갇혀있는 동안 약을 많이 많이 투여받기는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 영 대화를 하려들지 않아서.

“아, 알겠습니다.”

어느새 유령처럼 다가온 선생님이 손을 휘적휘적 저어 141번에게 나가라고 명령한다.

141번은 꼭 붙잡고 있던 내 왼손을 놓고, 호닥닥 도망치듯 사라졌다.

선생님은 소매 속에서 지팡이를 꺼내더니, 깔끔한 손놀림으로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었다.

보통 기도문을 외운다고 하는데, 어지간히도 애들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어깨는 순식간에 나았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3번 침대로 보내졌다.

수액이 꽂히고, 새파란 약물이 투여된다. 나는 약기운보다 지쳐서 잠들었다.

/

“안녕!”

“......누구?”

“내가 널 다치게 했잖아!”

자랑이다.

상처를 입고 신나게 입원해서 할 일 없이 천장의 자국을 세고 있던 와중에 141번이 찾아왔다.

보통 병문안을 오는 아이들은 없다.

정말 친한 아이들이나 가끔 병문안을 다니곤 한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좌절해서 더욱 망가져버리고, 어이없이 죽어버리곤 하지.심장마비라던가. 보통 의문사다.

“안녕.”

“그래. 드디어 인사를 받아주네.”

“뭐 하러 온 거야?”

“병문안.”

“그러니까 병문안을 왜 온거야?”

“네가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 보러?”

왜 네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건데.

아이들은 가끔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하곤 한다.

이 아이도 그러리라.

“아. 오늘 특식으로 과자가 나왔었어. 그걸 네게 주러 온 거야.”

“정말? 고마워.”

“근데 들고 오다가 맛나보여서 먹어버렸어. 네 과자 쩔더라.”

과자라 그래도, 사실 별 대단한 것이 아니다.

튀긴 밀가루다. 한 번 꼬아서 설탕을 뿌리면 꽈배기가 되는 그걸 과자랍시고 준다.

설탕이라도 뿌려서 주던가, 하고 불평은 하지만, 특식은 특식이다.

없으면 슬프지.

“너 그만 돌아가라.”

“사실은 오늘 그 사과를 하러 온 거야.”

“애초에 그 말을 하지도 않았으면 사과를 할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미안! 근데 네 과자는 정말 맛있었어!”

이거.

아무래도 곱게 미친 게 아닌 모양이다.

하여간에 141번은 자주 찾아왔다.

이틀에 한 번. 아니, 사흘에 두 번 꼴로 찾아왔다.

입원기간이 2주 정도 되었으니, 자주 찾아온 셈이다.

나는 다시 나가서 검을 휘둘렀고, 약을 맞았고, 검을 휘둘렀고, 약을 먹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나.

아니면 세 달에서 네 달 정도 지났던가.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러던 중의 어느 날이었다.

“......안 낫는대.”

양호실의 3번 침대에 입원한 아이가 있었다.

며칠 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눈에 붕대를 둘둘 말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말하길, 3109번과 대련을 하다 또 검을 부러트렸는데, 그 부러진 칼날이 튀어 양 눈을 다 베였다고 한다.

“왜 안 낫는데?”

“내가 약이랑 상성이 안 좋나봐.”

“틀려. 너무 좋은 거란다.”

선생이 커튼을 걷고 들어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양호실 선생이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었다.

“넌 단지 내가 건 치유마법이 통하지 않을 만큼 마법 저항력이 뛰어난 거야. 지금으로선 무척 아쉽지만, 우리가 생각하던 완성작에 가장 가까웠던 거지.”

“......온갖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

언젠가 교관이 그런 말을 했었지.

물론 선생은 내 말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선생은 아무래도 완성작과 불량품을 나눠서 구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네 폐기처분은 미뤄질 거야. 어쩌면 오래오래 살 수 있을 지도 모르지. 협력을 대충 거부하면, 10년 정도는 살 수 있을지도?”

“그 10년동안 실험체가 많이 죽겠죠?”

“어머, 똑똑해라. 그래. 네가 협력하면, 글쎄. 1년 안에 이 실험을 끝마치고 훌륭한 칼날들을 양성해낼 수 있어. 그러고 나면 두 번 다시 이런 짓 안 하겠지?”

그 날 이후, 나는 매일매일 양호실에 갔던 것 같다.

141번의 양팔에 꽂힌 주삿바늘이 4개를 넘어서고, 수액 팩의 개수가 9개가 된 즈음부터, 나는 141번의 핏줄 속에 흐르는 것이 혈액인지 아니면 약액인지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 오늘 특식으로 과자가 나왔었어. 그걸 네게 주려고.”

“정말? 고마워.”

“근데 들고 오다가 맛나보여서 먹어버렸어. 네 과자 쩔더라.”

“근데 그거 알아?”

“뭐.”

“양호실 실험체는 삼시세끼가 일반 실험체의 특식보다 맛난 게 나온다?”

“이 기만자!”

그렇게 1년 정도 지났나.

아니면 세 달에서 네 달 정도 지났던가.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러던 중의 어느 날이었다.

1000번 대의 아이들 중에서 완성작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날, 대련 도중에 맞은 편 아이의 검을 깨트린 뒤, 다가온 교관을 베었다.

적의를 갖고 막아서는 병사나 아이들은 모조리 베어 넘기고 양호실로 향했다.

그리고 3번 침대에서 141번을 끌어내어서 도망쳤다.

의외로 탈출은 쉬웠다.

노력하니까 1000번 대의 1725번 실험체가 온갖 마법을 깨트리는 칼날이 되더라고.

온갖, 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에 구속마법 정도는 깨트릴 수 있었다.

“교관이 놀란 표정으로 죽는 걸 네가 봤어야만 했는데.”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널 구하려고.”

“그러니까 왜 날 구하려고 한 건데!”

“이렇게 하면 네가 아프지 않을 것 같아서?”

“왜 확신도 없이 그런 짓을 하는 건데.......”

시끄러. 나도 탈출하는 겸에 구하는 거야.

너와 내가 유일한 성공작이니까, 이제 우리가 도망가면 이 연구소는 쪽박이다, 이겁니다.

그 다음부턴 말없이 꿋꿋이 도망쳤다.

엄청 두꺼운 철문은 단박에 베어가르고, 산을 내려간다.

산 아래에 마을이 보이기에 갔더니,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켜고 사방을 뒤지고 있었다.

우릴 찾나보네. 곤란하네.

그런 와중에 뒤에서도 소리가 났다. 대충 총소리도 났다.

눈떠보니 엎어지고 있었다.

“도망쳐.”

사실, 이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141번은 펑펑 울고 있었다. 희생이니 뭐니 해도 역시 어린애다.

나는 141번에게 외쳤다.

“여기서 너도 잡히면 여기까지 널 끌고 나온 내 희생이 의미 없어지잖아.”

이미 141번의 다년간의, 어쩌면 몇 개월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든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그래도 141번은 그 희생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러니 통할 것이다. 그리고 통했다.

141번은 뒤를 몇 번 바라보면서도 숲의 어두움 너머로 훌쩍 도망쳤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잘만 도망쳤다.

/

“네가 1725번이야? 시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던?”

기절했다 눈을 뜨니 소녀가 있었다.

굉장히 귀족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귀족 맞으리라.

뒤에 집사 같은 것도 서있고, 선생이고 여러 시설 관리인들도 빳빳하게 차려자세니까.

“대답해주지 않을래?”

“네. 1725번입니다.”

“그래?”

소녀는 뒤를 보더니 말한다.

“얘. 내가 가져갈게. 괜찮지?”

“자, 잠깐만요, 아가씨! 그 녀석은 완성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걸 그렇게­”

“이봐. 마릴린.”

아가씨는 양호실 선생에게 다가가 말한다.

키 차이가 나서 아가씨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상황인데도, 양호실 선생은 덜덜 떨었다.

“완성품이라고?”

“그, 그렇습니다!”

“그럼 내일까지 완성시켜서 가져와. 네 입장에선 완성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양호실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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