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신교 대회합
* * *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숨길 수 없는 박력을 품고 있는 늙은 노인.
나에게 다가오는 이 남자는 천마신교의 대호법인 철마 마진한이다. 다물어진 입술과 굳은 표정을 볼 때 무언가 목적을 지니고 이곳에 온 것은 분명했다.
철마 마진한은 검후 사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과 내가 검후 설지연의 제자라는 걸 모른다. 천마 천미영이 믿을 수 있는 검마와 마뇌에게만 이러한 정보를 알린 탓이다.
그런 이유로 철마가 나에 관해 아는 건 제한적이다. 천마가 자신의 남편으로 삼으려고 데리고 왔다는 것 정도만 안다고 봐도 부방하다.
천마께서 다 죽어가는 위지 공자와 함께 신교에 돌아왔기에 교의 많은 무인들은 천마께서 혼인을 하지 않기 위해 죽어가는 이를 데리고 왔다고 여기고 있어요.
마뇌 유설아 선배가 했던 말도 함께 기억이 난다. 나는 철마 앞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이 철마 마진한은 신교 대호법의 자격으로 두 분의 대련을 잠시 방해하겠소이다.”
당당하게 말하는 철마 마진한.
죽더라도 할 말은 반드시 한다는 그의 기질이 느껴진다.
“반갑습니다. 대호법.”
나는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법께선 무슨 일로 오셨어요?”
“너에게 실망이다. 검마.”
“저에게요?”
“위지 공자가 깨어났으면 나에게 즉각 알렸어야지. 다른 자의 눈과 귀를 이용하여 듣게 되었었잖아.”
“미안해요. 마 숙부. 천마의 명이 있었어요.”
“천마께서?”
“위지 공자님은 천마의 낭군이 되실 분이에요. 신교의 다른 무인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해 이렇게 수련을 하고 있지요.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기는 하지.”
내가 깨어나 조용히 무공을 수련하는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하여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검마 한비연. 항상 무언가 엉뚱하고 맹한 그녀는 이런 상황에 능숙하게 잘 대처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마를 바라보는 내 평가가 달라지는 기분이다.
이래서 노강호의 연륜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하는구나!
“마 숙부는 어떤 일로 오셨어요?”
사적으로는 숙부와 질녀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검마 한비연과 철마 마진한이다. 검마 한비연은 그와 가까운 사이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고 있다.
“가능하면 천마의 발표를 기다리려 했으나 위지 공자가 신교를 떠나려 한다는 소리가 들려 이렇게 찾아왔다. // 위지 공자께서는 신교의 또 다른 하늘이 될 분인데 신교를 떠나려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중원으로 나가는 걸 단도직입으로 물어보는 철마 마진한이다. 나는 숨길 필요가 없기에 바로 응답했다.
“천마께서 선택하신 이상 위지 공자는 신교의 일원입니다. 그러니 신교의 율법을 따라야 합니다.”
“....”
나는 시선을 돌려 검마 한비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조금 올리며 철마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별거 아니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 별거 아니었으면 합니다.”
내 경험상 별거 아니라는 말이 진짜 별거 아닌 경우는 없었다.
“신교에서 자유로이 행동을 할 자격이 주어지는 건 십마의 반열에 오르는 것. 위지 공자는 십마의 일인과 싸워 스스로를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지?”
“그럼!”
나는 천마 천미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호법 철마 마진한은 신교를 대표하는 고수 중 하나인 십마의 일인을 제압해야만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하겠다고 알렸다. 나는 그의 말에 긍정을 표했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천마 천미영의 생각도 일치한다.
내가 중원에 나가서 하려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 십마가 대단한 고수인 건 분명하나 이들을 제압할 실력도 없다면 나가지 않는 게 옳았다.
“내 남편은 답하는 게 시원해서 좋아. 그렇지만 지금 실력으론 어림도 없다는 거 알지?”
“....어.”
“이제부터 검마와 나에게 집중적으로 무공을 배워. 자긴 할 수 있어.”
“....어.”
이미 극한의 수련을 하는 중인데 여기서 더 바빠져야 한다. 하지만 해야 한다. 이건 도전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일이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출정식에 앞서 신교 대회합이 열릴 거야. 이때 십마의 하나를 선택하고 싸워서 이기면 끝이야. 명예가 걸린 일이라 십마의 누구도 양보하지 않을 거야. 상대를 잘 택하길 바랄게.”
“알았어.”
파불이 야기한 세외의 혼란함을 제압하기 위한 출정식과 대회합. 여기서 내 실력을 과시하여 신교의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고 중원으로 나가야 한다.
사년을 병상에 누워있던 후기지수의 일인이던 내가 먹이사슬 최상단에 위치한 고수인 십마의 하나를 제압해야 한다.
방법은 오직 하나다.
천마 천미영이 만든 무영공. 이것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천마의 무공을 다듬어 만든 무영공은 신교의 고수들에게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거기다 나는 천마기를 품고 있기에 신교의 교인들을 제압하기 용이하다. 당장은 천리비도술이 아닌 무영공에 집중해야 한다.
“잘 봐. 이게 무영공이야.”
천마 천미영의 몸에서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다.
운무가 뿜어져 나오던 중 갑자기 천마가 사라졌다.
짐시 후 무언가가 내 몸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 들어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 나에게 세 번의 타격을 허용했어. 실전이었다면 천이 넌 그대로 즉사야.”
“....”
사실이라 할 말이 없다.
“햇볕 아래 있어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무공. 이게 무영공의 첫 번째 운무무영이야.”
싸우고 있는 상대의 눈을 피해 사라질 수 있는 무공 그것이 무영공 일단공 운무무영이다.
“이제 나에게 덤벼봐.”
“좋았어.”
나는 상대가 천마이기에 마음 편하게 전력을 다하여 검을 휘둘렀다.
가장 피하기 까다롭게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며 천마의 다음 공격을 대비한 간결한 공격을 펼친 것이다. 나를 공격할 생각이 없는 천미영은 뒤로 물러났고 나의 계산된 무정검의 검초에 의해 고작 두 수만에 위기에 처했다. 위험한 상황이지만 상대가 천마이기에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나의 목이 그녀의 목을 베어가려 할 때였다.
무영공으로 만든 운무가 나의 검에 들러붙는다. 나의 검은 그 연기에 의하여 힘을 잃었고, 점점 속도가 느려지다 결국 천마의 목 앞에서 멈추게 되었다. 그와 별개로 천마 천미영의 손은 내 심장 앞에 도달했다.
“무형의 운무를 유형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이게 무영공의 이단공 무형유형이야.”
무학의 이론을 외우기에 급급하여 운무를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짐작하지 못했다. 이 무영공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무공이다. 나는 이 놀라운 수단에 감동하여 몸이 떨렸다.
내가 놀라고 있을 때였다. 마뇌 유설아가 대전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미영에게 무언가 보고할 게 있는 모양이다.
“잘 왔어. 마뇌. 당장 내 공격을 막아 봐. // 천아. 이게 무영공의 세 번째 무결이야.”
운무를 만든 천마 천미영이 갑자기 마뇌 유설아에게 달려들었다.
양손으로 자색의 뇌기를 내뿜는 마뇌 유설아.
“이런 기습이라니! 아무리 제가 부하지만 너무 합니다.”
“시끄러워!”
뇌기에 둘러싸인 마뇌 유설아와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천마 천미영.
둘은 그대로 격돌을 했다. 하지만 어떠한 소리도 없었다. 그저 치밀하게 두 진기가 상대를 밀쳐내려고 부딪힐 따름이다.
결국, 천마 천미영의 손바닥이 마뇌 유설아의 심장을 부드럽게 밀쳤다.
뒤로 밀려나는 마뇌 유설아.
명백하게 승패가 갈린 상황이다.
“너의 자전마기는 완벽하지 않구나.”
“그 작은 틈을 파고들 줄 누가 알겠어요.”
무영공의 마지막 삼당공 무결은 시천마가 죽기 전에 남겨 놓은 수?의 묘리를 이용한다. 작은 틈이라도 있다면 어디든 파고드는 물은 넓게 펼쳐질 경우 빈틈이 없다는 특징마저 가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방어력과 작은 틈도 놓치지 않는 공격력. 무결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무영공의 마지막 삼단공이다.
나는 무영공이 얼마나 대단한 무공인지 새삼 느꼈다. 그래서 천마 천미영에게 더 고마움을 느낀다.
무영공은 시천마가 죽기 전에 남겨 놓은 무학의 이론을 천마 천미영이 재해석한 후 천마신공과 결합하며 마기를 숨긴 무공이다. 천미영은 창안이 아니라 변경에 불과하다 했으나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실로 놀랍다.
*****
나는 잠을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무공을 익혔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무공에 자질이 탁월하다는 걸 깨달았다. 쉽게 이해가 되는 다양한 무학의 이치와 그것을 몸으로 펼치는 건 어렵지 않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 여겼는데 주변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난리를 친다. 내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무공을 배운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 중이다.
“이제부터 천마신교의 대회합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거대한 단상의 앞으로 나간 철마 마진한이 크게 외쳤다.
와아아
아아아아
주변에 모인 무수한 신교의 교인들이 힘차게 소리를 치는 통에 여기저기에서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온다.
천마 천미영의 바로 옆에 앉은 나는 이것이 권력의 맛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내 밑으로 무수한 고수들이 즐비하고 있음에도 위축이 되지 않는 나. 마음 한구석에 다른 이들의 위에 서고 싶은 욕심도 있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화려하게 시작을 했으나 기본으로 진행이 되는 따분한 행사들이 이어진다.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십마를 하나씩 살폈다. 누구를 나와 싸울 상대로 선택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고민을 한다.
이들은 모두 강함을 추구하는 무인이고, 나는 신교 밖에서 온 자이다. 내가 천마의 남편이 될 자라 해도 다들 나에게 패하고 싶어 하지 않음이 느껴졌다.
창마, 빙마, 환마 등등 하나씩 십마를 살피던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여자 고수가 많지?
나는 소설의 작가가 여자 고수를 좋아하여 비정상적으로 여류 고수가 많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현재 중원을 대표하는 고수는 천마 천미영과 검후 설지연이다. 이들은 여인이다. 거기다 십마의 반을 차지하는 게 여인이다. 남자가 무공에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입장이라 이런 상황이 왜 생겼는지 궁금하다.
“고민이 많은 거 같네. 철마와 검마 둘을 제외하면 다 비슷하니까 적당히 골라.”
“그게 아니라 지금 시대에는 비정상적으로 여류 고수가 많은 거 같아서 신기하네.”
나는 중원의 역사에 대한 서적도 몇 권을 보았다. 이렇게 많은 여류 고수가 존재했던 세상은 없었다. 이건 분명 비정상적이다.
“너 누구를 지목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런 여유는 놀라운데?!”
“갑자기 궁금해졌을 뿐이야.”
“별거 아니야. 지금이 그런 시기일 뿐이거든.”
“그런 시기?”
“마뇌가 대신 설명을 해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천마 천미영은 바로 앞에 앉은 마뇌 유설아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위지 공자님. 이 세상에는 하늘의 기운을 받는 자들이 있답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아는 게 있다. 천살성인 천마 천미영의 경우 살기가 강해지면 그만큼 더 강한 전투력을 얻는다. 검후 설지연의 경우 언제나 가장 위에 서게 된다는 천강성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 기운을 받는 대상자들의 태반이 여자로 태어나는 시기가 육십갑자(3600년)에 한 번 발생하는데 그게 이번 시기에요.”
“아~! 그렇군요.”
나는 마뇌 유설아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