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소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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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설이 시작되었다.
‘여인천하 영웅지로’의 주인공이 누군가의 몸에 빙의하여 깨어난 후 무공이 존재하는 세상에 왔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운 몇 년이 흐르는 전개는 고작 짧은 몇 줄의 글귀에 불과하다.
그 짧은 몇 줄의 시간적 흐름은 무려 4년이다. 내가 가짜 검후에 추격을 피하느라 부상을 당하여 생사를 헤매다 깨어난 시간도 4년.
이제 드디어 [여인천하 영웅지로]의 소설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나의 역할은 중원 제일의 신비인 천하 십대고수의 하나를 차지하는 무영비객이다.
소설의 내용을 비틀어볼까 했으나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결말까지 연재한 소설이라 내가 모르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몇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이건 결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개연성도 없는 신비한 인물로만 보였던 무영비객은 명확한 목표를 가진 캐릭터였던 거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아내에게 부상을 입히고, 영광스러운 검후의 자리를 더럽게 타락시킨 가짜 검후를 응징하는 것.
검후를 벌할 자격이 있는 자를 찾는 거라면 멀리 갈 거 없어. 내가 있잖아.
무영비객이 검후를 무찌르려는 다른 이에게 했던 대사의 하나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제 확실히 알겠다.
*****
나는 스스로를 쥐어짜며 괴롭힌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지옥이라 여겨질 정도로 극한의 수련을 감행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도 힘이 들기에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에 이 고통이 마냥 싫지가 않다.
매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 아픈 기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거기다 몸이 회복되면 될수록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깨어나면 모든 것이 다 정상이 되어 있을 거야!!!
이것은 나의 다짐이다. 나의 아내인 검후 설지연이 다시 깨어날 것을 믿으며 사부인 그녀의 명예를 회복하여 놓기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할 거다.
가짜 검후는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하게 강하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아는 자다.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기고 말 테다.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몸이 정직하다는 걸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몸은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
오늘도 거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자세로 근육을 자극하는 훈련을 했다. 드디어 긴 수련의 시간이 끝났을 때 안대를 착용한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위지 공자님! 저에게 부탁하실 게 있다고 들었어요.”
“검마 선배님을 뵙습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한비여을 향해 인사를 했다. 당분간 그녀는 나의 스승을 할 것이기에 더욱 예의가 필요하다.
“선배는 무슨! 편하게 ‘비연아’라고 부르세요.”
“그..그건 편해도 너무 편한 거 같습니다.”
“그게 좋은 거에요. 부탁은 실전 맞죠? 저 엄청 기대하고 왔어요.”
“맞습니다. 저에게 실전을 알려주시면 오래도록 감사히 여기겠습니다.”
나는 훈련이 끝난 저녁이면 천마 천미영에게 무공을 배운다. 내가 익히는 무공은 미영이가 나를 진짜 무영비객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창안한 무영공이다. 나는 이 무영공을 익혀 진정한 무영비객이 되고자 한다. 천뢰비협의 천뢰비도술과 천마의 무영공이 있어야만 진정한 무영비객이 될 수 있기에 이 무공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검후 사부의 무정검도 열심히 익히고 있으나 가짜 검후와 그녀의 부하들로 인하여 이 무공은 중원에서 함부로 펼칠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무영공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무영공의 기본적인 무리를 모두 외웠을 때 천마 천미영이 나에게 말했다.
실전은 나보다 검마에게 배우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가르치고 싶긴 한데 온갖 야비한 변칙과 초식의 변화는 검마가 신교 최고거든. 뭐든 최고에게 배우는 게 좋아.
그런 이유로 나는 검마 한비연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호호. 아주 탁월한 선택을 하셨어요. 위지 공자님.”
“그럼 승낙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이제 무르는 건 없어요.”
“예?”
퍽. 내가 그게 무슨 말인지를 물으려 할 때 갑자기 나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한 검마 한비연.
나는 얼마 전까지 환자였고 이제 겨우 몸을 회복한 단계인데 시작부터 이렇게 기습으로 무자비하게 때릴 줄은 몰랐다.
“커억. 켁.”
“위지 공자님. 이건 사심을 가지고 휘두른 주먹이에요.”
“사심이요?”
“저는 위지 공자가 이 험악한 강호에서 반드시 살아남길 원해요. 위험한 길을 떠나려 하시니 제가 먼저 강호의 무정함을 알려주게 되어 영광이에요.”
퍽. 따뜻한 말로 나를 위로한 검마 한비연은 웃으며 나의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음에도 워낙 빠르고 기습적인 공격에 그대로 안면 일격을 허용했다.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하지만 이 고통은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기쁘게 한다.
검마 한비연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나는 다양한 의미로 강해질 필요가 있다. 거기다 그녀의 말은 진심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런 공격을 당했다하여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쉬잉. 쉬잉. 퍽.
검마가 본 실력을 다 발휘하지 않아도 반격은 꿈도 꿀 수가 없는 것이 현재 나의 몸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두 번의 주먹질을 피했다. 하지만 세 번째 일격은 피하지 못하여 여지없이 내 복부에 한비연의 주먹이 닿았다.
“놀랍군요. 무려 두 번이나 저의 공격을 피했어요. 하지만 이제부턴 어림도 없을 거에요.”
퍽. 퍽. 퍽. 조금 전까지는 여유를 주고 때렸는데 지금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인다.
“위지 공자는 무학의 천재라는 게 저의 솔직한 평가에요.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다시는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아 보세요.”
퍽. 몸이 엉망임에도 주저하지 않고 나의 턱을 가격하는 검마 한비연.
“강호는 아프다고 봐주지 않아요.”
퍽. 나의 광대뼈를 발등으로 차 뒤로 넘어지게 만드는 검마 한비연.
“강호는 약점을 발견하면 그곳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물고 넘어진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런 와중에도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검마 한비연의 발은 보였다. 분명 피할 수 있으나 내 몸은 아직 저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 일격을 허용해야 함을 깨달았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심하세요. 이건 가장 중요한 거에요.”
“???”
“강호는 어떤 곳보다 비정합니다.”
팍. 나는 강호비정????을 머리에 깊게 각인하며 그대로 기절했다.
*****
분명 힘든 수련을 하고 난 이후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몸이 편안하고 나른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굳건한 의지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포근함이 나를 감싸고 있다.
이대로 더 쉬고 싶었으나 마음이 급한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내가 눈을 뜨자 붉은 입술을 가진 여인이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보냈다.
“깨어났어?”
나를 껴안고 몸을 주무르고 있는 천마 천미영.
그녀의 손이 지나가면 몸이 편안해진다. 미영이는 자신의 내가진기를 이용하여 부상당한 나의 몸을 추궁과혈로 풀어주는 중이다.
“얼마나 쓰러졌던 거야? 넌 얼마나 고생을 했고?!”
“고생은 무슨. 넌 내 남편이잖아.”
분명 골병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무지비한 공격을 당했음에도 몸에 상처가 없고 개운하다는 기분마저 든다. 미영이가 얼마나 많은 진기를 소모하며 나를 치료했는지 느껴졌다. 그녀가 나에게 준 천마기가 있기에 서서히 몸이 회복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친 나의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아팠나 보다.
거기다 나는 남편이라 말하는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검후 설지연이 깨어나면 그때 함께 혼례를 올리자.
나는 차마 설지연을 두고 혼자 행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세상에 없다면 몰라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그녀를 두고 혼례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천미영에게 많이 미안하다. 나를 위해 천마오관을 통과했고, 의식이 없는 4년을 정성으로 돌본 그녀다. 그런데 더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한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잔뜩 품고서 천미영을 껴안았다.
“너 차마 나를 때릴 수 없어서 검마 선배에게 부탁한 거지?”
“....어.”
“나도 참 멍청하다. 천하의 천마가 실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걸 그대로 믿었다니 말이야. 언제나 정점에 도달해야 직성이 풀리는 무인이 바로 천마인데 말이야.”
“난 천하에 우뚝 서기 위해 존재하는 천마이지만 그건 신교의 교주일 때에 한해서야. 우리 둘 사이에 그런 건 모두 부질없어.”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근데 검마 선배는 사람을 참 제대로 잘 때리더라.”
“너 이제 큰일 난 거야. 검마가 맞은 사람은 때린 자를 절대로 잊지 못한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어.”
나는 느꼈다. 가짜 검후의 추격보다 검마의 공격이 더 매서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
“쳇. 젠장. 너무 분해요.”
어떻게든 나를 때리려고 열심히 공격하는 검마 한비연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건 너무 하잖아!
그녀의 말을 아무것도 모르고 듣는 이가 있다면 내가 그녀의 공격을 얄밉게 다 피한 줄 알 거다. 매일 그녀에게 당하는 빈도가 줄고는 있으나 오늘도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았다. 다 피하지 못하기에 맞은 사람은 한비연이 아니라 바로 나다.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임에도 더 때리지 못하여 화를 내는 검마 한비연. 남들이 보면 내 원수라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헉. 헉. 이제 그만해요.”
“예. 선배!”
나는 그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때 갑자기 몸을 돌린 검마 한비연이 그대로 일권을 내질렀다.
일련의 동작은 얼마나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는지 섬전처럼 빨랐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치이. 남자답게 이런 건 맞아줘야죠!”
“하하. 이거 맞으면 숨을 쉬기가 곤란하여 밤에 잠을 자는 것도 힘듭니다.”
“위지 공자는 얄미운 무공 천재에요. 오늘도 결정적인 일격은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잖아요. 열심히 때린 거 같지만 소득은 너무 적어요.”
이봐요. 검마 선배! 우리 수련의 목적은 내 실전의 감각을 올리는 것이지 선배가 저를 두들겨 패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검마 한비연은 이런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이미 충분히 느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이후로도 검마는 몇 차례나 암습을 시도했고, 나는 그것을 모두 피했다.
“이러면 위지 공자가 나를 제대로 기억하기 어려운데 어쩌지?”
혼잣말을 하는 검마 한비연. 나는 왜 그렇게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려는지 궁금했다. 이미 독특한 용모와 성격으로 인하여 잊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하도 두들겨 맞았기에 같은 편임에도 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모양이다.
“선배! 왜 그렇게 본인을 기억하게 만들려는 겁니까?”
“이건 비밀인데...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 알려 줄 게요.”
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하여 집중을 했다.
“괴롭히던 사람이 갑자기 잘해주면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글을 봤어요.”
“예?!”
그러니까 나를 두들겨 팬 이후에 잘해주면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고 여기고 있다는 거잖아!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득 검마 한비연 선배가 이상한 잡서를 보고 그걸 무조건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던 마뇌 유설아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진짜였구나!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시작합시다. 선배!”
“젊어서 그런지 지치지도 않군요. 위지 공자.”
나는 다시 검마와 수련을 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무거운 공기가 우리가 수련을 하는 연무장을 찾아오고 있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강인한 기질을 자랑하는 노인이 나를 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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