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운명의 날 3 (1부 완결)
* * *
“천마! 왜 이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느니라.”
“그랬군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천마 천미영은 경공을 이용하여 최대한 위지천과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이나 달려온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갈! 감히 천마에게 위로라니 가당치 않다.”
“죄송합니다. 천마께서는 이번을 계기로 더 위대한 분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다. 나는 신교로 돌아가 살기마저 의념으로 바꾸는 수련을 할 것이다. 추후 검후를 제압할 자신이 생길 때 다시 돌아와 내 남편을 반드시 찾을 거다. 그동안 잠시 맡겨두는 거에 불과하다.”
“이 검마가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너의 도움이 필요했다. 너는 신교의 두 번째가 아니냐.”
검마 한비연은 자신이 괜한 소리를 했음을 깨달았다.
‘나보고 죽어라 덤비라고 할 분위기잖아! 빨리 강호로 돌아오는 건 나도 싫지는 않지!’
검마 한비연은 오랜만에 나온 중원인데 너무 빨리 돌아감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천마의 심정을 알기에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천마다. 반드시 힘으로 검후 설지연을 누른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경공을 펼치며 나아가는 천마 천미영. 그녀는 울고 있었다.
한참이나 달려가던 천마 천미영. 그녀가 멈춰 섰다.
그녀의 분위기에서 무언가를 느낀 검마 한비연.
“왜 그러십니까? 천마!”
“가..가슴이 아프다. 이건.....”
“....?”
“천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거야.”
“천 공자께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그에게 천마기를 나눠주었다.”
“아... 잘하셨어요. 아무래도 검후가 위지 공자를 괴롭히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초대 천마인 시천마는 무공을 완성하고 난 이후 자신을 떠난 남해 보타암의 연인을 그리워했다. 그런 그가 말년에 만든 무공이 바로 천마기. 이 천마기는 남과 여가 나눠서 가질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걸 나눠 가질 경우 두 사람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느낄 수 있으며 서로의 마음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아니야. 그녀가 아니야. 본 천마와 검후는 위지천 앞에서 일개 여자에 불과하다. 이건 그녀와 나의 숙명이야. 검후 설지연을 만나고 나는 이 운명의 떨림을 확신했어.”
“그..그렇다면 위지 공자가 위기에 빠질 리 없는 거 아닙니까? 천하에 천마가 아닌 이상 도대체 누가 검후가 옆에 있는 위지 공자를 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도 몰라. 지금 나의 천마기가 천이가 아파한다는 신호만 전할 뿐이야. 시천마는 이걸 만들고 나눠본 적이 없어. 그래서 나도 이 천마기의 효력은 제대로 알지 못해.”
“어쨌든! 바로 위지 공자를 만나러 가요. 이렇게 있을 수 없어요.”
검마 한비연은 자신도 마음이 다급해져 천마 천미영을 재촉했다.
“현재 천마기를 운용하여 천이를 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다.”
“그렇다면?”
“검마! 광명안의 사용을 허락한다. 지금 즉시 천마기를 추격하여라.”
천마 천미영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마기를 주변으로 퍼트렸다. 이 기운을 광명안이 느끼면 유사한 기를 찾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 천마. 명을 따르겠습니다.”
검마 한비연이 안대를 풀었다. 그녀의 눈에서 푸른색의 빛이 나와 주변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지금 출발합니다.”
“서둘러라. 검마. 아무래도 불안하다. 우리에겐 여유가 없는 거 같구나!”
*****
치지지직. 치지지직.
무언가 달랐다. 지금 둘의 격돌로 인하여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파괴력의 문제가 아니다. 생과 사의 소멸 유무가 달린 격돌이었다.
퍼어엉
마지막에 다다르자 커다란 격돌이 일어났다.
나는 즉시 비도를 허공으로 날렸다.
‘처음부터 이 승부를 끝까지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검후가 승리하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런 것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격돌 이후의 상황이다. 지금은 최악을 대비해야 하고 저 가짜 검후는 진짜 검후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분명하기에 허공에 날려지길 바라며 비도천하를 날리는 것이다.
‘받아라! 검후 설지연을 위해 의숙께서 남긴 천뢰비도술의 비도천하다!’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펼칠 수 없는 비도천하인데 진천폭렬환의 힘이 있기에 나는 비도천하를 날릴 수 있었다. 허공을 향하여 높게 솟구친 비도들. 나는 저 비도를 그대로 가짜 검후가 있는 곳으로 날렸다.
쉬잉. 쉬잉. 쉬잉. 쉬잉.
서른여섯 개의 뇌기를 머금은 비도가 가짜 검후가 있을 것이라 여기지는 곳으로 날아간다. 점점 둘의 대결 이후의 흔적이 보였다.
검후 설지연은 서있는 것이 힘들 정도로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가짜 검후는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고 몸이 떨렸으나 검후 설지연보다는 상태가 나아 보였다.
‘비도천하를 날리길 잘했어. 지금이라면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야!’
“나의 본체에 타격을 주다니. 조금만 더 무공이 완성되었더라면 이 승부는 정말로 몰랐겠구나. 역시 이 무림은 참으로 재미있어. 이..이건 뭐지? 네놈이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냐?!”
서걱. 서걱. 쑤욱. 쑤욱.
“크아악!‘
나의 뇌기를 담은 비도들이 가짜 검후의 몸에 박혔다. 그는 조금 전의 격돌로 인하여 몹시 지쳤고 부상마저 당한 상태라 그대로 비도천하에 적중되었다.
나는 진천폭렬환의 힘으로 칠성풍운보를 평소보다 수배 이상 빠르게 펼치며 검후 설지연을 향해 다가갔다.
덥석. 나는 검후를 낚듯이 껴안고 뒤를 보지도 않고 그대로 내달렸다.
내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저 가짜 검후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 소설의 운명은 아직 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 우리는 살기 위해 도주해야 한다.
의식을 잃어가는 나의 아내 검후 설지연이 내 품에서 눈이 감겨가고 있다.
“내가 반드시 너를 살릴 테니까 제발 정신을 차려! 조금만 정신을 차리라고. 설지연!”
타다닥. 탁. 타다닥.
모든 기운을 두 다리에 집중하여 달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뇌기에 의한 충격에서 벗어날 걸로 추정되는 가짜 검후의 포효가 들려왔다.
“우아아아! 감히 나에게서 도주할 수 있다고 여겼느냐?”
그는 소리와는 달리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떤 존재인지 몰라도 검후 설지연의 마지막 무정일검이 그에게 커다란 부상을 입혔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나갔다. 뒤에서 나를 추격하는 가짜 검후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고 우리의 앞으로 절벽과 강이 나왔다.
‘이건 기회야!’
나는 이 강에 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그냥 곱게 보낼 것 같으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앞만 보면서 달리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짜 검후가 나와 검후 설지연을 향하여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날렸다. 우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공격.
나는 정신이 혼미한 검후 설지연의 몸을 앞으로 내밀어 옆으로 틀었다.
쑤욱. 퍽. 나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간 기. 다행스럽게도 설지연의 몸은 스치며 지나갔다.
풍덩.
절벽 아래의 강으로 그대로 뛰어든 나는 그렇게 사라졌다.
강으로 몸을 던진 위지천과 검후 설지연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 가짜 검후. 그녀는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저것들을 끝까지 추격하자니 몸 상태가 너무 나쁘구나! 강력한 무언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기도 하니 사혼기死??의 힘을 믿고 물러나자!”
가짜 검후는 검후와 그녀의 제자가 살아나기 힘든 부상을 당했다고 확신했다. 본체에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검후와 비슷한 강력한 기가 다가옴이 느껴진 가짜 검후는 이곳을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
비틀거리며 떠나가는 검후. 자세는 이상했으나 속도는 상당히 빨랐기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
후우웁. 크게 호읍을 들이켜 물에 뛰어든 나.
강 위에는 가짜 검후가 나와 검후를 추격하고 있을 터. 나는 어떻게든 물을 이용한 도주를 택했다. 정신을 잃은 검후 설지연. 그녀의 입술을 보니 파르르 한 것이 몹시 위험한 상황이 분명했다. 나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돌로 된 바닥에서 거북이가 나오는 걸 목격했다.
‘혹시 저곳에 수중동부라도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물에서 호흡을 참을 수는 없다. 거기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설지연을 방치할 수가 없었다. 도박을 건다는 마음으로 돌 아래로 들어갔다. 그리고 위로 올라갔다.
“푸아하!”
하늘이 아직은 우리 편인지 아주 작은 수중 동굴이 있었다.
나는 검후 설지연을 반듯하게 껴안고 그녀의 몸을 만졌다.
미약한 숨결과 떨리는 몸. 지금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가짜 검후가 보여준 마지막 천멸이라는 공격은 그만큼 엄청난 위력이 분명했다.
‘어..어떻게 하지?’
지금 내 앞에는 나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던 이제는 내 아내인 검후 설지연이 죽어가고 있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아서 미칠 것 같았다.
“쿠엑. 컥.”
몸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졌다. 마지막에 허용한 일격의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지금 진천폭렬환의 기운이 몸을 타고 돌기에 혼원대공을 사용하면 이 기운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나를 괴롭히는 기운이지만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기운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연이가 죽어!’
지금 내 몸이 나쁜 건 중요하지 않다. 검후 설지연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괴로워하고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냉동 인간!’
검후 설지연은 강하다. 지금은 몸의 상태가 나쁘지만 무언가가 그녀에게 생기를 넣어줄 때 그녀는 다시 일어날 힘이 있는 존재이다.
‘한빙진기! 연화가 준 한빙진기를 이용하자!’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진천폭렬환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내가 절대로 펼칠 수 없는 수준의 한빙진기를 사용해야 한다.
몸으로 빙기를 최대한 끌어올린 후 검후 설지연에게 주입했다. 그녀의 몸이 얼어가고 있다. 점점 얼음으로 둘러싸이는 그녀.
나는 어느샌가 진천폭렬환의 기운이 다 떨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아프고 죽을 것 같아도 이건 어쩔 수 없다. 검후를 살려야만 하는 것 이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쿠에엑. 컥. 쿠욱.”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으나 최대한 설지연을 얼려야 한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미영아. 어서 빨리 나와 검후를 구해줘!’
*****
“이곳 주변에서 엄청난 격돌이 있었습니다.”
“이런 충격이라면 아무리 검후라도 무사하다 장담하기란 어렵구나!”
“검후와 천마가 아닌데 이런 힘을 가진 존재가 있을 줄이야.... 미처 몰랐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분주하게 주변을 살피는 검마 한비연.
그녀는 이제 위지천이 떨어진 절벽까지 왔다.
“물로 인하여 천마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떠내려갔다면 기가 느껴질 것이 분명하니 아무래도 물속 어딘가에 위지 공자가 은닉하고 있을 겁니다.”
풍덩. 천마 천미영은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녀의 천마기가 조금 전부터 위지천이 죽어가는 상태라는 걸 계속해서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물로 뛰어들자 검마 한비연도 함께 물로 뛰어들었다.
‘제발! 무사히만 있어줘. 니가 어떤 상태로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좋으니까 제발 살아만 있어줘. 위지천!’
둘은 물 아래를 샅샅이 뒤졌다. 쉽게 보이지 않는 흔적. 이제 위지천의 숨이 끊겨가고 있음이 천미영의 천마기가 알려왔다.
그녀는 물속에 있었으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툭. 툭.
[찾았습니다. 천마. 이곳입니다.]
검마 한비연이 물속에 숨겨진 수중 동부의 위치를 찾았다.
천마와 검마는 빠르게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보았다. 검후를 얼리기 위해 피를 토하며 진기를 퍼붓는 위지천의 모습을.
검마 한비연이 검후의 뒤로 가 자신의 음기를 이용하여 빙의 기운을 만들며 검후의 몸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천마 천미영은 위지천의 손을 잡았다.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는 위지천.
희미하게 의식이 있는 위지천이 천마 천미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와..왔구나. 니가. 온다고...미..믿..었어. 니가 준 그 기운이 나를 치료하고 가까이 다가온다는 걸 느..끼게 했거든. 고..맙..고 너무 미..안.. 미영아. 나머지를 부탁할 게.”
위지천은 천마 천미영을 믿고 미소를 보이며 쓰러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