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천마가 왔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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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면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천 당가는 다르다. 그들은 다른 명문가와 달리 본인들만의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천 당가는 그들이 자랑하는 독과 암기의 제조와 관리에 관한 비기가 외부로 유출되는 걸 막아야 했다. 그래서 다른 세력과 거리를 두고 활동하는 폐쇄성을 택했다. 사천 당가의 직계는 본가에서 방계는 본가를 둘러싼 마을인 당가촌에서 생활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자 사천 당가는 순수하게 당가의 성을 가진 자들로만 이뤄진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세력이 커지면 위와 아래가 자연스럽게 존재하기 마련. 그들은 혈족의 위치에 기인한 엄격한 서열을 지닌 가문이 되었다.
거기다 정도에 속한 가문이 독과 암기를 주로 사용하는 탓에 정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피도 눈물도 없는 단호함으로 대응한 사천 당가.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단호하고 집요한 가문인지 가훈을 통하여 세상에 알렸다.
당가의 복수는 반드시 열 배로 돌려주어야 한다.
이런 지독한 폐쇄성과 자기 방어가 오대 세가의 일원인 사천 당가를 만들었기에, 이 가문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사천 당가의 권위와 아집에 집착하는 소가주 일수독룡 당지독. 그는 지금 짜증으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저 꼴을 보고 있으려니 참기가 힘들다!’
일수독룡 당지독은 자신의 정신과 눈을 멀게 만들었던 여인이 옥면검룡 위지천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깊게 안겨드는 그녀의 모습은 당지독을 더욱더 화나게 만든다.
‘저런 어여쁜 여자는 나 같은 남자와 어울려야 한다!’
괜히 시비가 걸고 싶어진 그는 굳은 얼굴을 하고서 위지천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위지 공자! 맹의 장로이신 검후님의 제자가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이 무슨 추태를 보이는 짓입니까?”
“뭐 추태? 니가 정말 죽...”
천마 천미영은 일수독룡 당지독의 건방진 말에 친히 그를 벌하려 했으나 일단은 꾹 참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능적으로 나오려는 ‘죽고 싶구나.’를 겨우 삼킨 그녀.
‘이제부터는 천이의 입장을 고려해야 해! 난 현모양처가 될 여자라고!’
감히 천마에게 저딴 소리를 하는 자가 있다니. 당장 일장을 날려 천마의 위엄을 살리는 게 옳았으나 사랑하는 님을 생각하여 초인적인 인내력을 보이는 천미영. 그녀는 스스로가 참으로 대견하다 여겨졌다.
‘잘했어! 난 역시 남자를 위할 줄 아는 좋은 여자야!’
천하의 천마가 가만히 있는 모습을 지켜본 검마 한비연. 그녀는 자신이 나서지 말아야 함을 깨닫고는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옥면검룡 위지천이 일수독룡 당지독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해지는 그녀.
‘위지 공자는 당가의 소가주를 상대로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지독의 말에 천미영부터 바라본 위치천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천미영은 위지천과 눈을 맞추며 자신이 언제나 믿고 있음을 눈으로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워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군요.”
“지...지금 잘했다고 저를 그렇게 노려보는 겁니까?”
날카로운 톤으로 상대를 윽박지르듯 노려보는 일수독룡 당지독.
그의 짜증은 이제 화와 분노로 변해가고 있었다.
‘감히 당가의 소가주인 나에게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러면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저는 지금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습니다. 거기다 당지독 소가주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과 위치를 지니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떻게든 최소 다섯 번은 만나야 할 소중한 여자야! 너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지독!’
일수독룡은 당지독은 소설에서 상당히 오만한 인물로 등장하는 캐릭터로 시비를 거는 때가 더러 있다. 위지천은 글에서 보았던 당지독에 대한 인식이 있기에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답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먼저 시비를 걸어오자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너에게 당황하는 모습을 귀한 소꿉친구에게 보이고 싶진 않다!’
“위지 공자가 이 일수독룡 당지독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군요. 저는 상당히 불쾌합니다. 옥면검룡!”
“시비를 누가 거는지 모르는 분으로 보여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군요.”
“이~ 지금 저와 해보자는 겁니까?”
“못할 것도 없지요.”
당장이라도 덤벼들려는 듯 내기를 터트려 기세를 마음껏 발산하는 일수독룡 당지독.
위지천은 잠시 몸을 돌려 천미영의 귀에 입술을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걱정 안 해! 믿으니까.”
천마 천미영은 위지천이 위험할 경우 자신이 나서서 그를 구할 것이라 걱정이 전혀 없었다.
둘이 비무를 하게 된 상황이 발생하자 함께 구경하기 위해 천미영의 옆으로 다가온 한비연.
“결국 저로 인해 두 남자가 싸우는군요.”
“나 때문이니라!”
위지천을 찾아온 여인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보이고 싶은 당지독.
“자비로운 제가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어서 사과하세요.”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넘어갈 수도 있으나 이 몸은 사천 당가의 소가주. 사람들 앞에서 그대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남자입니다.”
“당 공자와 제가 정도라는 이름으로 맹에 함께 있으나 힘으로 해결하는 게 강호의 도리인 때도 많습니다. 무의미한 대화는 멈추고 각자의 의지는 실력으로 관철했으면 합니다.”
위지천은 당지독을 상대로 물러 설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나는 검후의 제자야. 독보천하를 꿈꾸는 사부의 명성을 내가 깎아 먹을 수는 없어!’
“위지 공자는 도광이 양보하여 조금 득세했다고 너무 오만한 거 같군요. 저의 손이 매정하다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넌 뒤졌다!’
당지독은 위지천과 싸울 환경이 만들어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맞습니다. 도광 팽 낭자의 위상을 생각해도 저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위지천은 도광 팽수련과의 비무를 통하여 실력이 더 증가하였고, 자신감도 얻었다. 그녀를 이겼기에 다른 이에 쉽게 지는 건 어떻게 보면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했다.
“검후님의 제자라 하여 위지 공자가 무슨 대단한 고수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 제가 하늘 위에 하늘. 천외천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드리겠습니다.”
“푸훗.”
“흐흐. 최근에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웃깁니다.”
“그러게. 히히.”
천마 천미영과 검마 한비연은 일수독룡 당지독의 천외천 발언에 웃음보가 터졌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웃음은 전파력이 있는지 주변에 있던 일부의 무사들도 옅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젊은 후기지수가 천외천을 운운하는 건 분명 꼴불견스러운 언행이기 때문이다.
‘이 새끼들! 사천 당가가 어떤 가문인지 내가 톡톡히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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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을 빠져나온 일남이녀는 정주의 대로변을 걸어가고 있었다.
“위지 공자님! 정말로 검을 배운 시기가 몇 달 밖에 안 돼요?”
“맞습니다. 저는 무공의 입문 시기가 많이 늦습니다.”
“.....믿기 어려워요!”
검마 한비연은 조금 전의 비무가 떠올랐다. 검후의 독문무공인 칠성풍운보를 사용하여 빠르게 일수독룡 당지독에게 접근하여 그가 암기나 독을 펼치기도 전에 제압한 위지천.
일수독룡 당지독을 제압하던 옥면검룡 위지천의 모습은 그녀가 평생 잊지 못할 멋진 광경이었다.
“검에 대한 재능이 이리도 뛰어나다니.... 부러울 지경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위지천은 당지독의 시비에 맞서 주도적으로 행동했고, 비무마저 승리하자 기분이 좋아졌으나 평점심을 유지하려 했다.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자와 싸운 경험이 없어 빠르게 승부를 봤을 뿐. 이 승리는 운이 대부분이니 절대로 자만하진 말자!’
일수독룡 당지독은 상대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상황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 그는 순식간에 패하고 말았다.
“천아. 운도 실력인데 넌 다시 싸워도 또 이길 거야! 내가 장담할 게.”
위지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오랜 친구인 미영이 그를 칭찬했다. 천마 천미영이 비무에 관련한 모든 걸 분석하였음을 전혀 모르는 위지천이다.
짝짝짝. 승리를 축하하며 힘주어 손뼉을 치는 한비연. 그녀가 위지천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요?”
“정주에 유명한 객잔 중 하나인 진미객잔으로 갑니다.”
“공자님은 계획이 다 있군요. 저는 너무 좋답니다.”
‘이~ 진짜 죽일까?’
자신이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먼저 나서서 위지천과 이야기를 나누는 검마 한비연. 천미영은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했다.
“하하. 비연아. 너 일이 있잖아! 객잔에 같이 가지 못해서 어떻게 해?!!”
“제가 무슨 일이 있다...”
[검마! 여기서 죽고 싶으냐? 알아서 빠져라. 그게 목숨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다.]
[천마! 밥은 함께 먹을 때 가장 맛있다고 말이 있습니다. 먹이고 쫓아내야 옳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당장 가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함께 오셨는데 식사 자리는 함께 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그..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이만 갑니다. 히이잉.”
눈가가 살짝 촉촉하게 젖은 검마 한비연이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떠났다. 실제 그녀는 몸을 은닉하여 둘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으나 위지천은 그것을 알아차릴 실력이 아직 없었다.
“오랜만에 미영이 너와 둘만 있으니까 참 좋다!”
“나도.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거든.”
“그렇구나. 정주로 잘 왔어!”
어린 위지천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혼자 목검을 휘두르며 노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기억들 중 유일하게 둘이 있는 때는 언제나 서문미영과 함께 있는 순간뿐. 미영은 그에게 반가운 인연이 분명했다.
“천이 넌 분명 어릴 때 보다 느낌이 더 좋아졌어. 근데 이유는 모르겠어.”
“그런가?! 좋은 거 맞지?”
“응! 지금이 훨씬 더 멋있어!”
위지천은 그녀의 칭찬에 어깨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객잔에 도착한 둘.
“귀한 손님과 함께 왔으니 내가 특실로 쏜다!”
“너가 돈이 어디 있다고.... 내가 낼 게.”
“어허! 오랜만에 만났고 찾아온 사람은 너잖아. 당연히 내가 사야지!”
“그럼 잘 먹을 게. 히이.”
위지천과 천미영은 객잔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으로 가 둘만의 공간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음식이 오가는 중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어릴 때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뭐야?”
“아..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했어.”
“....그렇구나.”
위지천은 표정이 밝지 않은 미영의 모습에 그녀를 배려하여 더는 묻지 않았다.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무공만 배웠어.”
천마 천미영은 너를 만나려고 목숨을 걸고 무공을 배웠다는 걸 말하고 싶었으나 너무 드센 여자로 보일까 우려하여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천이가 신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당분간은 조심하자!’
“우와! 너 무공이 엄청 강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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