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후 사부와 소꿉친구 천마가 집착한다-27화 (27/46)

〈 27화 〉 천마가 왔다.

* * *

호남 장사 인근의 어느 야산.

천하삼제의 일인이자 현재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사황마제 패무강이 홀로 오연하게 서있었다.

그의 앞으로 흑발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아리따운 여인 하나.

“오년만이구나. 검후. 너는 그 사이 더 젊어진 것 같구나. 혹 연애라도 하는 것이냐?”

“후후. 맞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으음. 너의 성격을 감당할 남자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축하한다.”

“사황마제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진심으로 반가워요. 조금 전 축하의 말도 고마워요.”

“내 예상처럼 너는 상대가 가장 강할 때 이기고 싶었구나. 뼈 속까지 진정한 무인이야!”

“그거 칭찬인가요?”

“물론 칭찬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러워서 하는 말은 분명하지. 사파의 수장인 나는 그런 낭만을 가져본 적이 없거든.”

“어떻게 보면 멍청하고 어리석겠죠.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사부가 독보천하 하라고 했으니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야죠. 그게 새로운 검후에요.”

짝짝짝.

“참으로 부러운 인생이구나!”

“모든 걸 가졌고 원하는 걸 모조리 이룬 사황마제께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군요.”

“자~. 덤벼라! 너의 독보천하의 마지막에 선 자가 바로 나 사황마제 패무강. 이 나를 넘으면 너의 독보천하를 막을 자는 천하에 없을 터. 그러니 최선을 다하여라. 나는 패한 적이 없는 무인이다.”

“사황마제를 반드시 꺾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던 이 설지연. 이제는 저를 기다리는 그를 위해서 반드시 당신을 이길 겁니다.”

“보타신니 그 어린 것이 이런 위대한 무인을 만들다니. 좋구나 좋아! 이것이 강호야!”

사황마제가 팔을 뻗었다. 그러자 주변에 놓아두었던 그를 상징하는 무기가 허공섭물에 의하여 날아와 그의 팔에 장착되었다.

흑룡의 그림이 각인된 쇠로 된 커다란 장갑 두 개를 낀 사황마제. 그의 몸에서 천하를 호령할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것이 나를 무패의 고수로 만들어 준 패왕묵린갑. 검후여 나의 신화에 도전하여라.”

“언제나 그렇듯 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스르릉. 검후 설지연이 그녀의 애검인 불퇴를 꺼냈다. 이미 검이 필요 없는 단계에 이른 설지연이었으나 자신과 함께 험난한 강호행을 함께한 불퇴를 그녀는 믿었다.

‘이 검은 언제나 나의 승리를 상징한다.’

“너를 상대로 양보는 없다. 간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손을 위로 쭉 뻗은 사황마제. 패왕묵린갑을 낀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주변에 있던 커다란 나무와 돌들이 모두 공중으로 떠올랐다.

‘대결이 길어질수록 내가 불리하다. 시작부터 최선을 다한다. 받아라. 나의 천중역신공이다.’

하늘에서 누르는 힘을 거역하는 무공. 천중역신공은 사황마제의 독문무공. 그는 시작부터 가장 강력한 무공으로 검후와 승부를 보려했다.

슈웅 슈웅 슈웅 슈웅.

무수한 나무와 돌이 검후 설지연을 노리고 무섭게 날아갔다.

불퇴를 휘두르며 원을 만드는 검후. 그녀가 휘두른 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자 그녀를 보호하는 무정검의 벽. 무정철벽이 만들어졌다.

퍽. 퍽. 퍽. 퍽.

돌과 나무는 그녀가 만든 검벽을 뚫지 못했다.

이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사황마제 패무강은 양손의 깍지를 낀 상태로 높게 들었다.

그의 몸에서 핏줄이 터질 듯 튀어나오기 시작하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며 하나의 기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모든 공기를 빨아들일 듯 모여진 강력한 구체는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받아라. 이것을 막는다면 나에게 접근할 자격이 있다.’

깍지를 낀 두 손을 힘차게 아래로 내려찍는 사황마제 패무강.

그는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퍼엉. 주변 일대에 엄청나게 커다란 주먹 자국이 만들어졌고 그 주먹의 가장 중심에는 검후 설지연이 있었다.

쉬이익. 주변 일대에 피어오른 먼지가 사라진다. 그때. 작은 점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사황마제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나의 점은 점차 형상이 갖춰졌다. 사황마제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후 설지연의 검.

양손을 단전에 모아 회전을 시켜 강력한 기를 모으는 사황마제. 그는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후를 향해 모든 기운을 다 끌어 모았다.

‘몸에 남은 모든 기를 모조리 모았다. 이 한 수에 승부를 보겠다.’

이겨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을 쥐어짠 사황마제 패천강. 사파의 지존으로 군림했던 그의 모든 힘이 뭉쳐진 엄청난 강기가 검후를 향해 날아갔다.

오로지 앞으로만 날아오는 검후의 검. 그 검을 저지하기 위해 날아가는 사황마제의 천중역신공.

퍼어엉.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검후의 검은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 무정검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무정검이구나.’

사황마제가 죽인 전대 검후는 자신의 천중역신공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설지연의 검은 하늘도 이긴다는 자신의 천중역신공을 이겨내며 계속해서 앞으로 진격했다.

“나는! 사파의 지존! 사황마제다아앗!”

검후의 검이 가까워졌을 때 사황마제 패무강은 패왕묵린갑으로 양팔을 교차하며 검후의 검을 막으려 했다.

티이잉.

그녀의 검과 전설의 무기 중 하나로 유명한 패왕묵린갑이 부딪혔다.

퍼엉. 쑤욱.

검후의 검이 패왕묵린갑을 파괴시키고 그대로 밀고 들어와 사황마제의 심장을 찔렀다.

울컥. 사황마제의 입에서 뜨거운 선혈이 흘러내렸다.

“너의 승리다. 검후.”

“사황마제를 이기면 무척 즐거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군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황마제.

“정상은 언제나 고독한 법이지. 너의 천하를 즐겨라. 검후. 너는 새로운 천하...제...일인이...다.”

투욱. 사황마제의 고개가 꺾였다.

구시대를 지배했던 절대자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지배자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검후 설지지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게 아닌데....”

그녀는 전혀 고독하지 않았다.

‘빨리 천이를 만나러 가야지!’

*****

두 여인이 산길을 걷고 있다. 계속 이동하던 그녀들의 앞으로 커다란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마! 드디어 무림맹 놈들이 가득한 정주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구나. 본 천마의 긴 여정에 끝이 보이는 것이야.”

천마 천미영은 정주를 바라보자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며 자신을 버티게 만들어 준 존재인 위지천이 떠올랐다. 우울하고 따분하던 그녀에게 찾아온 한 줄기 빛. 그녀는 그를 생각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살피는 검마 한비연.

“천마께서는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

“첫사랑은 실패한다.”

부글부글. 이상하게 화가 나기 시작하는 천마 천미영. 그녀의 마음을 읽었는지 검마 한비연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려는 자들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행복한 결말을 얻지 못합니다.”

“갈! 지조도 없는 년과 놈들이구나! 사람이 어찌 한 번 연모했거늘 바뀔 수 있냔 말이다. 본 천마가 모조리 모가지를 따야 할 것들이니라!”

단호한 천마 천미영.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검마 한비연이 고개를 흔들며 검지를 펴 함께 흔들었다.

“이런 건방진 것!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천마의 몸에서 가공한 기가 터져 나왔으나 믿는 구석이 있는지 검마 한비연은 여전히 태연했다.

“저는 방금 깨달았습니다. 제가 천마의 중원행에 함께 하길 참으로 잘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닥쳐라! 너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이다.”

“후후. 지금까진 그랬을지 모르나 이제 저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느끼실 차례입니다.”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검마 한비연. 천마 천미영은 그녀가 무엇을 믿고 저리 자신감이 넘치는지 궁금했다.

“너의 가치? 그딴 것이 있겠느냐?!”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천마.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불완전한 기억과 풋풋했던 추억들을 어떻게든 좋게 미화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검마의 입에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 관심이 생기는 천마.

“계속 이야기하여라.”

“천마께선 혹신 역변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역..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제가 이럴 줄 알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이건 아주 중요하니 들으시면 반드시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검마! 너는 갈수록 혀가 길어지는구나. 본론만 말하여라.”

“어릴 때 아주 괜찮았던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외형이 형편없이 엉망이 된 걸 역변이라 부릅니다.”

“너의 그 말은?”

“그렇습니다. 지금 천마의 기억에 있는 자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천마께서는 그를 좋아한다 말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그럴 수가!”

“보십시오. 천하의 천마도 긴장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선 그가 천마께서 생각하는 그런 남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우선하여야 합니다.”

“...으음”

천미영이 생각에 잠기자 한비연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잔뜩 기대하고 만났는데 추남으로 변한 두꺼비 같은 자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당장 놈의 목을 치고 신교로 돌아가고 싶을 게 아닙니까? 그러니 일단 상대를 몰래 살펴야 합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구나.”

“이제부터 천마께서는 저 검마의 말만 믿으시면 됩니다. 저는 이런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연애를 공부했고 이렇게 천마의 곁에 있는 겁니다.”

“너는 오늘이 가장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구나.”

“앞으로 계속 그럴 겁니다.”

검마 한비연은 자신이 있었다. 연애를 모르는 천마 천미영을 자신의 풍부한 연애 이론으로 잘 이끌 수 있다고 말이다.

*****

정주에 도착한 천마 천미영과 검마 한비연은 그대로 위지천의 집으로 향했고 지금 그 앞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는 검마 한비연.

천마 천미영은 초조한 마음을 안고서 주변에 은닉하여 상황을 살폈다.

‘혹시 천이가 이사를 갔으면 어쩌지? 나는 또 그를 찾으려고 한참이나 움직여야 하잖아.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온갖 복잡한 생각이 밀려올 때 집의 내부에서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아 다행이다. 종노인이 나오는 걸 보니 여전히 천이는 여기 사는구나!’

여기에 위지천이 살지 않더라도 종노인을 통해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천미영의 마음은 조금 놓였다.

“이곳이 위지천 공자의 집이냐!”

“누구신지?”

안대를 찬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 말을 걸자 잔뜩 위축된 종노인.

“나는 서문미영님이 보낸 자다.”

“아아. 어릴 때 담을 넘어오셨던 아가씨 말이군요. 얼마 전에 서찰도 보내셨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한비연.

“위지천 공자는 안에 있느냐?”

“저희 위지 공자님은 무림맹에 계십니다.”

“무림맹? 그딴 허접한 곳에 왜 있지?”

“설마 모르십니까? 옥면검룡을 말입니다.”

“옥면검룡?! 검룡이라는 별호를 쓴다면 아직 애송이라는 뜻이 아니냐?”

종노인은 검룡이라는 영광스러운 별호를 폄하하는 검마 한비연으로 인하여 얼굴이 구겨졌다.

“잘 들으세요! 천 공자님은 무려 검후님의 제자입니다. 검후님의 유일한 제자라고요!”

“지금 거..검후라고 했느냐?”

검마 한비연이 크게 놀라며 종노인에게 따지듯 물었다.

‘검마는 검후라는 말에 왜 이렇게 놀라고 당황하지?’

천마 천미영은 검마 한비연의 이러한 반응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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