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후 사부와 소꿉친구 천마가 집착한다-26화 (26/46)

〈 26화 〉 신비인 천복자

* * *

나는 하오문의 정주 지부로 왔다. 얼마 전에 의뢰한 무당파에서 발생한 일에 관한 자료를 받기 위함이다.

“여기 있습니다. 사소한 거 하나 놓치지 않고 모았습니다. 위지 공자님.”

보기도 전에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두툼한 자료들을 내미는 하오문의 정주 지부장. 나는 이제부터 이것들을 전부 파악하여 무당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돈 값은 확실히 하는구나!’

의뢰비가 과한감이 있다고 여겼는데 자료를 보니 합리적이라는 생각으로 변했다. 얼마나 꼼꼼하게 조사를 했는지 인근에 사는 사냥꾼의 개가 언제 죽었다는 내용과 무당산을 방문하는 자들의 수에 관한 기록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다 좋은데 너무 많아!’

정보를 확인하고 취합하는 일이 상당히 피곤하다는 걸 몸으로 체험하며 그렇게 몇 시간을 소모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 나는 이것들 중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정보만 따로 뺐다.

­ 정확한 붕괴일은 알 수가 없으나 대략 석 달 정도로 추정이 된다.

­ 절벽 주변으로 무당파의 도사 2명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상주하고 있었다고 하며, 그곳은 무당파에서 정한 금지라고 한다.

­ 천하제일의 점성술 대가인 천복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다녀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확실하지는 않은 정보이다.

­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석 달 전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 날이 있었다고 한다. 워낙 신기했던 현상이라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간추려 놓은 정보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고민을 했다.

‘아무리 생각도 뭔가 찝찝한 일이 발생한 느낌이야. 근데 천복자가 누구지?’

정보들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천복자라는 인물이었다. 나는 이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부장님. 천복자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저희 하오문도 천복자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게 없습니다. 그가 천하제일의 점성술 대가라는 것과 믿어지지 않는 예지력을 보유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소문이 무성하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자입니다.”

“천하의 하오문도 모르는 자가 있군요.”

“허허허. 천복자는 개방도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하오문의 정보력을 살짝 도발하는 말을 했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정주 지부장.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천복자는 명성이 높아 그를 사칭하는 자가 너무도 많습니다. 저희가 천복자로 보이는 인물이라 적은 사연도 이번에 방문한 자가 그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저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유추만 했을 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위지 공자님도 필히 명심하세요! 길을 가다 점쟁이를 만나면 반은 자기가 천복자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니 누가 점을 봐준다 할 때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천복자인지 확인을 하세요. 만약 천복자가 맞다면 그는 사기꾼일 확률이 십에 최소 구 이상입니다.”

‘대륙은 사기꾼으로 가득하다고 하더니 무공이 존재하는 중원도 똑같구나!’

결국 천복자를 사칭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 그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다. 명성이 너무 높아 이런 일도 발생함을 알게 되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런 걸 알려드려야 저희 하오문을 또 찾아주실 거 아닙니까! 저희는 옥면검룡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천복자라는 인물은 글에서 언급조차 되었던 적 없는 인물이다. 하나의 분야에서 천하제일로 인정을 받는 자가 글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건 조금 의아했다.

‘점쟁이라 중요하지 않거나 이 무렵에 죽어서 나오질 않나 보다.’

나는 하오문에서 얻은 정보를 모두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무림맹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소설의 내용에서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기에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하며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다잡지만 매일 흔들리고 긴장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나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이봐 자네! 걱정이 많아 보이는군!”

길가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노인이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노인의 옆에 놓인 기다란 나무 작대기와 거기에 매달린 천에 눈길이 갔다.

­ 사주를 봐드립니다. 천하제일의 역술인 천복자.

‘천복자? 지부장에게 들었던 사기꾼의 하나인가 보네.’

나는 이렇게 당당하게 천복자라 내걸어 놓을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면 이렇게 뻔뻔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납득은 되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점을 보지 않습니다.”

“허허. 나는 말이야! 자네에게 공짜로 점을 봐주기 위해 천리가 넘는 길을 쉬지도 않고 달려왔다네.”

“예에?”

‘뻥을 세게 치니까 더 사기꾼으로 보이는구나.’

나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장이 너무 심하다. 구태여 말을 섞고 싶지 않기에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이보게. 돈을 받지 않겠다 하지 않았는가? 어서 내 앞에 와서 앉도록 하게.”

“저는 공짜라 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일단 공짜로 봐주고 뒤에 복채를 달라고 성질을 부리겠지? 내가 거기에 속을 리 없지!’

나는 노인을 무시하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투욱.

묵직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내 앞에 떨어졌다.

시선을 내리니 은으로 된 네모난 작은 명패가 있었다.

그 명패에는

?文 ?? 천문 천금

이렇게 네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주변에는 복잡한 도형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자네의 사주를 보게 해 준다면 그것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러니까 점을 보고 돈을 내라는 게 아니라 점을 보게 해 주면 이걸 주겠다는 거지요?”

“바로 그걸세! 은으로 된 물건이니 가격이 상당히 나갈 터. 물론 지니고 있으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파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네.”

“싫습니다.”

나는 물건에 당첨이 되었다고 축하한다고 말하여 사람을 현혹한 후 상품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며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현대의 사기꾼들이 떠올랐다. 저것이 진짜 은인지 알 수도 없기에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무림맹으로 향하려고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억만금을 가지고 오거늘.... 최근에 만난 이들은 나를 너무 무시하는 군! 자네는 반드시 사주를 봐줘야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지.”

무언가 그럴싸한 말을 하며 나를 자극하는 자칭 천복자.

그는 빠르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 노인이 점을 보지 않으면 자네를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닐 수도 있다네. 내 이렇게 부탁함세. 제발 한 번만 사주를 봐주게나! 내가 이리 간곡히 부탁하네!”

너무도 간절한 노인의 눈빛.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이런 처량한 노인에게 얼마 정도는 사기를 당해도 괜찮지 않을까?!’

“좋습니다. 봐주세요!”

나는 결국 그에게 사주를 보기로 했다.

“여기로 와서 내 앞에 앉게나. 여기 이 자리만이 수와 불 그리고 목의 기운이 모이는 자리라 제대로 된 확인이 가능하다네.”

뭔가 그럴싸하게 말을 하는 자칭 천복자. 나는 그가 다시금 사기꾼이라 확신했다.

‘참자! 속아주기로 했잖아!’

나는 군말 없이 그의 앞에 앉았다.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젊은 새끼가 더럽게 까다롭고 피곤하게 구네.”

“방금 저에게 한 말입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

요즘 왜 이렇게 말을 하고서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는 자들을 자주 만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일에 내성이 조금 생겨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다시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자칭 천복자.

“얼굴에 도화살이 가득하여 기가 센 특별한 여인들을 다 빨아드리는구나. 여자로 인해 크게 고생할 얼굴이야.”

‘뭐라고 말을 하지?’

내가 겸손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리고 무림에 있는 지금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나는 잘 생긴 편이다.

어느 점쟁이라도 내 얼굴을 보면 여자 문제로 골머리가 아프다고 할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다.

‘너무 빤한 말이라 벌써부터 실망이야.’

“자네 혹시 여난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내가 방법을 하나 알려주겠네.”

“여난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이라고요?”

이건 솔직히 기대가 되는 말이었다.

진지하게 나를 보던 천복자는 품에서 예리한 비수를 하나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이걸로 얼굴에 낙서를 좀 하게나. 그럼 여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걸세.”

“저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천복자.”

“장난처럼 내밀었으나 이 비수는 기운을 파괴하는 성질을 가진 것. 나는 분명 솔직하게 말을 했던 게 사실이라네. 자네가 지금처럼 살아가려면 커다란 일에 휘말리게 될 걸세.”

“커다란 일이요?”

고개를 끄덕이는 천복자. 갑자기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의 눈은 굉장히 진지하고 위엄이 넘쳤다.

“자네는 조만간에 죽음을 맞이할 걸세. 그리고 자네가 사랑하는 이도 함께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네.”

“주...죽음이라고요?”

매우 진지한 어투로 말하는 천복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내 앞의 이 노인은 정말로 내가 조만간에 죽게 됨을 예지했음이 느껴진다.

“그렇다네. 이것은 그대의 운명이야. 뿌리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자네를 찾아오고 있다네.”

“혹시 그 위험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까?”

지금 나는 내 앞의 노인이 진짜 천복자로 느껴졌다. 사실 그가 진짜건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에게 내 운명을 탈출할 무언가를 얻고 싶었다.

“자네가 이제라도 진지하게 나를 믿어주니 진심으로 고맙다네. 이 천복자가 자네를 위해 나에게 주어진 힘을 사용하도록 하겠네.”

눈을 감은 천복자. 그는 무언가 알아듣기 힘든 술법으로 보이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두 손으로 나의 머리를 잡았다.

“가만히 있게나! 그대의 앞에 펼쳐질 미래를 피할 방도를 찾는 거라네.”

한참이나 나의 얼굴을 잡고서 집중을 하는 천복자.

잠시 후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렸다.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무엇인가 확률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은 그가 옆에 있던 봇짐에서 쌀을 꺼내더니 바닥에 뿌렸다. 그리고 거기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적었다.

뿌려진 쌀 위에 쓰인 글자.

?會必五 재회필오

다시 눈을 뜬 천복자.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적힌 그대로 일세. 자네가 죽음을 피하려면 다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을 최소 다섯 번은 만나야 한다는 걸세. 필히 명심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다섯 번은 만나야 함을 절대로 잊지 말게나. 그것이 그대가 살고 그대가 사랑하는 이가 살며 이 세상도 사는 길일세.”

나는 천복자가 한 말을 잊지 않으려고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깊은 고심에 빠졌다.

“다시 만나는 소중한 인연은 어떤 겁니까?”

어라? 내가 잠깐 고민에 빠졌던 사이에 바로 앞에 있던 천복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바닥에 뿌려둔 쌀알에는 새로운 글자가 적혀 있었다.

선물

나에게 주는 물건이라는 듯 조금 전에 던졌던 천문과 천금이 적힌 명패가 놓여 있었다.

선물로 준 명패와 쌀이 아니라면 내가 혼자서 착각을 했던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다.

‘다섯 번의 만남이라.... 도저히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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