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황금화 북리연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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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검후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제자가 될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황금화 북리연화. 나는 이 여인이 가진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검후 사부를 반드시 설득한다는 수단이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위지 사형! 이제부터 천 오빠는 저의 사형이 되는 거에요. 우린 이제 동문이에요.”
“근데 우리는 나이가 동갑 아닙니까?”
“무슨 소리에요! 제가 생일이 느리니 동생이에요.”
아무래도 생일이 빨랐다면 그냥 친구라고 했을 거 같은 북리연화. 그녀는 나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바로 사형이라 말하고, 오빠라고도 한다. 이곳 세상에 던져지고 검후 사부가 나를 찾아온 날 이후 가장 큰 충격이다.
‘설마! 이것보다 더 큰 충격은 없겠지?’
소설의 최종 보스로 인식되는 검후 사부가 찾아오고, 그런 검후 사부를 알지도 못하면서 제자가 될 거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북리연화. 이것보다 더 대단한 충격을 받으려면 뭐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천마가 나를 좋다고 난리를 치면 이게 가장 충격이려나?’
나는 소설 속 최강의 무인 중 하나인 천마가 여인이기에 그런 상상을 해봤다.
‘여긴 워낙 말도 안 되는 일만 일어나고 있잖아! 그래도 천마는 너무 나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사형!”
사형이라는 말이 입에 짝 붙은 북리연화. 누가 보면 검후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았고, 오랜 기간 함께 수련한 동문으로 오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그녀이다.
“연화 낭자가 저에게 사형이라 했으니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형!”
나는 제갈상아를 상대하면서 느꼈다. 까다로운 여자들과 대화를 할 때에는 말을 하기 편해야 함을. 편하게 말을 놓게 된 나는 바로 질문을 했다.
“연화야. 너 검후 사부를 어떻게 설득하려는 거야?”
“후후. 그건 비밀이니까 사형이 맞춰 봐요!”
“야! 그걸 내가 어떻게 맞춰?!”
나는 느꼈다. 빨리 말을 놓기를 잘했음을. 여기서 체면 차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치이~. 누가 진짜 맞추래요? 맞추려는 성의를 저에게 보여달라는 거죠.”
‘내가 왜 너에게 성의까지 보이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상대는 부자다. 그리고 내 사매가 될 여자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기에 구태여 싫어할 말은 피하기로 했다.
“내가 좀 둔해서 그래. 그냥 바로 이야기해줘!”
“으음. 궁금하시면 갈비가 아닌 다른 음식을 해준다고 약속하세요. 그럼 제가 알려드릴게요. 사~형!”
나에게 사형이라 할 때 계속 혀를 굴린다.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빙화가 호락호락한 여인이 아님을 알기에 멍하니 바라보지 않으며 냉정함을 유지했다.
“알았어. 약속할 테니까 어서 말을 해!”
“좋아요. 약속했으니 이야기할게요.”
나는 황금화 북리연화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남해에 위치한 여승들의 작은 보타암에서 검후의 전설이 시작되었죠. 사람들은 남해 보타암을 검각이라고도 불러요. 이런 검각의 각주라 불리우는 검후는 보타암의 은인들에게 보은전이라는 보답품을 주고는 했었죠. 보은전에 관하여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니. 처음 듣는 말이야.”
“보은전을 가지고 검각을 찾으면 보타암의 검후는 그 사람의 부탁을 들어줘요. 이게 남해 보타암 검각의 오랜 전통이에요. 현재 세상에 남은 검각이 뿌린 보은전은 총 4개가 있어요. 저는 그중 3개의 보은전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보은전으로 사부에게 제자로 받아달라고 할 거라는 거잖아. 내 말이 맞아?”
“네. 맞아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연화야. 태사부인 보타신니께서 검후 사부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이 관습과 규율에 얽매이지 말라는 거야. 그래서 남자인 내가 보타암의 제자도 될 수 있었어.”
“호호.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위지 사형. 저 3개의 보은전 중 하나는 검후께서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보은전이라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거절이 불가능한 보은전?”
“네. 오래 전 남해에 기근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 보타신니께서 저희 황금상단을 찾아 와 기부를 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신 적이 있어요. 당시 저희 황금상단도 기근으로 인하여 피해가 상당했으나 보타신니와의 인연을 위해 거액을 투자하여 굶어 죽어가는 이들을 구했어요. 이에 크게 감동한 보타신니께서 저희 황금상단에게 감사의 의미로 보은전을 주셨어요.”
“그..그러니까 태사부가 남긴 보은전을 황금상단이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럼요. 위지 사형. 보타신니를 그리워하는 검후께서 이 보은전만큼은 반드시 회수할 거라 믿어요.”
역시나이다. 황금화 북리연화 같은 여자가 자신감을 가지고 말을 할 때에는 충분한 근거가 반드시 있었다.
“이건 그냥 궁금한 건데 보은전을 왜 2개나 더 가지고 있어?”
“후후. 저희 황금상단은 무림의 유명 고수에 대한 판단을 아주 빨리 내려요. 검후께서 강호에 나온 걸 확인하고, 훗날 강호 최강의 고수가 될 거라 판단한 저희 아버지가 이제는 쓸모가 없다고 알려진 보은전을 웃돈을 주어가며 재빨리 확보했어요. 그리고 보은전을 구할 때마다 거액을 좋은 곳에 사용하기도 하여 검후와의 좋은 인연을 선점하셨답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황금상단은 두 가지 의미에서 대단하다. 아무것도 없는 보타신니의 요청을 들을 정도로 인정이 있고 통이 크다. 거기다 강호에 갓 출도한 검후의 가치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이들이 왜 중원 최고의 상단인지 다른 설명은 구태여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궁금한 건데 황금상단은 이번 사황마제와의 대결을 어떻게 보고 있어?”
“저희 황금상단은 검후께서 패한다는 가정을 애초에 한 적이 없어요.”
솔직히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꼼꼼한 준비였다.
‘넌 내 사매가 맞구나!’
아무리 검후 사부라도 황금화 북리연화를 만나지 않고 도주하는 방법을 택하는 게 아니라면 보은전의 회수를 위해 제자로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잠깐만!’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연화야. 너 구하지 못한 보은전 하나를 마저 구할 수 있어?”
“응. 지금 그것도 우리가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제자가 되더라도 사부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잖아!”
“그렇구나. 최대한 빨리 좀 구하면 좋겠다.”
“왜?”
“사부가 남해 보타암의 검후라는 압박에서 더 자유로우면 좋겠거든.”
“사형은 참 좋은 제자구나. 이런 사람이 내 사형이라 너무 좋아아앗!”
‘그게 아니라 사부가 홀가분해야 내가 강호를 떠나자고 말하기 용이하잖아. 니가 내 사매가 되면 다음 검후 후계도 마련되니까 두루 좋지!’
나는 북리연화가 나의 사매가 되면 많은 이유로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부자를 가까이 둬서 손해 볼 일은 없지.’
“반갑다. 사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저도요. 많은 것에서 잘 부탁할게요. 위지 사형.”
내 손을 잡은 북리연화. 차가울 것 같은 그녀인데 누구보다 뜨거운 손을 지닌 여자였다.
*****
즐거운 표정으로 검후전을 빠져나온 황금화 북리연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거처로 옮겨가고 있었다.
쉬잉. 턱.
무언가가 날아왔고, 북리연화는 그것을 부드럽게 손으로 잡았다.
손을 펼쳐보니 작은 돌이었다. 시선을 돌리자 돌을 날린 자로 보이는 이가 어딘가로 경공을 펼치며 나아갔다. 그 뒤를 추격하는 북리연화.
무림맹 외곽에 있는 인적이 없는 것에 도착하자 앞에 있던 자가 멈췄다.
“상아야!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당연하죠. 사저. 이거 굉장히 지저분한 행동인 거 몰라요?”
“지저분하다고? 나는 모르겠는데?”
미소를 지으며 능청맞게 대답하는 북리연화. 그녀는 제갈상아가 발끈하길 원했으나 그녀가 기대하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사저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게요. 거짓 없이 답을 하세요. 저 지금 폭발 직전이에요.”
“알았어. 사실만 이야기할 게.”
“오늘 사저는 선택을 하셨나요?”
“응. 했어.”
“그 선택은 저와 일전을 치르는 건가요?”
“미안해. 상아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야.”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지다화 제갈상아. 주변을 둘러보며 마음을 다스린 그녀는 북리연화에게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사저라면 어떻게든 알아낼 거라 여겨 진실하게 서찰을 보냈어요. 적어도 제가 먼저 신뢰를 깨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너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역시 사저군요.”
“너무 무섭게 말하지 마. 우린 이런 사이가 아니잖아.”
“전 그런 거 몰라요. 제가 아는 건 오직 이거 하나에요.”
“...?”
“여자의 우정은 쓸모가 없다. 이 지다화를 넘어서야 할 거에요. 사저.”
“호호. 이걸 명심해 상아야. 난 이미 천 오빠의 사매야. 우리 황금상단은 이미 검후님의 가치를 진즉에 알아보고 있었단다. 제자를 보는 눈까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으으으. 기억하세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에요. 흥!”
쉬잉. 반드시 해야 할 말을 남긴 지다화 제갈상아가 빠르게 떠나갔다.
홀로 남겨진 황금화 북리연화. 그녀는 지다화가 떠나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너와 나는 싸우게 될 운명이었어. 미안하다. 난 반드시 너를 이기고 싶어. 절대로 양보하고 싶지 않거든!”
북리연화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
저잣거리의 뒷골목.
바로 앞의 시끌벅적한 거리와 달리 인적이 거의 없어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사주를 봐드립니다. 천하제일의 역술인 천복자.
나무에 걸린 천이 쓸쓸하게 흩날리고 있었고, 사주를 봐준다는 노인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노인 천복자의 앞으로 중년의 남자가 지나가며 혀를 찾다.
“쯧쯧. 여기서 점을 봐준다고 앉아서 졸기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구만.”
중년의 남자가 노인을 지나갈 때였다.
“이 봐! 오래 살고 싶으면 거기로 가지 말고 왔던 길로 돌아가!”
노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 남자.
“지금 저에게 한 소리요?”
“여기에 자네 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그대 목숨의 값어치는 알아서 책정하여 주게나. 얼마를 쓰는지 인심을 보고 부적도 하나 써주겠네.”
“허어. 이 영감. 개소리를 꽤나 그럴싸하게 하는구려. 나는 점 같은 거 절대로 믿지 않으니 그딴 소리는 그만하쇼!”
“점을 믿지 않는다라.... 어디 가서 사기는 당하지 않겠군. 그렇지만 내 말은 사실일세. 그 길로 정녕 갈 건가?”
“내가 엉터리 점쟁이의 말을 믿고 돌아갈 남자로 보이시오?”
어쩔 수 없음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천복자.
“더 이상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시도하면 내가 위험한 법이지. 알겠네. 가기 전에 하나만 알려주게나. 자네의 이름이 뭔가?”
“장만수요. 됐소?”
“복채는 잘 받았네.”
“재수 없게 뭔가 아는 척은. 퉤 퉤 퉤.”
주변에 침을 뱉고 떠나가는 장만수. 그런 그를 천복자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만수가 보이지 않게 되자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천복자. 한참이나 잠을 자던 천복자는 밤이 되자 깨어났다.
저잣거리로 나간 그는 지나가던 젊은 청년을 잡고 물었다.
“장씨들이 모여 사는 곳이 어디 있는가?”
“장가촌은 위로 쭉 가시면 나옵니다.”
천복자는 장가촌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에 도착하자 곡소리가 들려왔다.
천복자는 자연스레 그곳으로 들어갔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려고 왔소이다.”
중원은 장례가 있을 경우 천복자와 같은 역술인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가 들어가자 장례를 치르는 가족들이 그에게 식사를 내어주었다.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잘 좀 부탁합니다.”
“그렇게 합시다.”
‘쯧쯧. 혈이 막혀 한계에 도달한 상태로 기가 뜨거워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니 죽을 수밖에는.’
천복자는 그의 명복을 빌어준 후 식사를 했다. 그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의 품에서 무언가가 떨리며 진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문성?文成과 천금성??成이 대립했다는 신호가 왔구나. 요년들 성질에 난리도 아니겠는데?’
급하게 식사를 마친 노인. 그는 빠르게 장례식장을 나왔다.
“이제 가십니까?”
“고인은 좋은 곳으로 떠났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천복자는 가족들의 환대를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어서 가자. 무림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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