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황금화 북리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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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은 개방의 소방주인 용걸개 소천광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었다.
‘상당히 재미있는 친구네!’
소천광은 장난기가 상당하나 천성이 낙천적이고 분위기가 밝아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흥겹다는 기분이 절로 든다.
‘무영비객이나 남궁세가에 관해 넌지시 물어보는 건 오버겠지?’
소설에서 보았던 흐름으로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렇지만 어설픈 행동은 화를 부른다. 침착하게 상황 파악부터 하고 할 수 있는 대비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검후께서 이번 사황마제와의 일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시면 부맹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그저 사부가 승리할 거라 믿으며 안전하게 돌아오기만 바랄 뿐입니다.”
현재 무림맹 부맹주의 자리는 공석이다. 얼마 전 무당파의 청수진인이 급하게 무당산으로 돌아간 탓이다.
‘사부가 부맹주에 오르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자!’
검후 설지연은 부맹주 자리에 있다가 주인공이 무공을 익히며 성장하는 시점에서 맹주에 오른다. 사부가 돌아오고 부맹주의 자리를 거절하면 소설의 내용이 달라지는 거다.
이게 무슨 결과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다짐했다.
‘뭐가 되었건 하나라도 바꾸고 보자!’
“소 오빠! 부맹주께서 급하게 복귀할 정도의 다급한 일이 무당파에 있어?”
“그...그게 말이야.”
소천광은 무언가를 알고 있으나 말을 하기 곤란하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에는 눈치가 빠른 후기지수들이 많다. 그의 이런 반응은 다른 이들의 궁금증을 더 키웠다.
“나 몰라! 묻지 마!”
모른다고 말하고 있으나 더욱 무언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용걸개 소천광.
“에~이! 개방이 정보가 뛰어나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이잖아.”
지다화 제갈상아가 소천광을 도발했다. 하지만 미소를 보이는 소천광. 그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지다화의 도발은 실패가 아닌 가 싶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도화선이었다.
“아무리 거지라도 남자가 매번 이렇게 속이 좁게 구니까 좋아? 남자답게 비밀이면 비밀이다 말하고 그게 아니면 동생들과 친구들에 좀 알려주면 되는 거야! 소 오빠는 항상 사람들 궁금증을 일으키려고 용을 쓰더라. 아무리 거지라도 마음을 좀 넓게 가져! 어떻게 그렇게 딱 거지스러운 포용력만 가졌냐!”
도광 팽수련이 제갈상아의 도발에 동참했다. 그녀는 용걸개 소천광이 호기심을 유발하여 궁금하게 만들고 정작 말은 하지 않는 행위에 짜증이 폭발한 모양이다.
“그래 맞아! 정보 좀 안다고 유세를 떠는 건 그렇다 치는데 적당히는 있어야지!”
“나도 천광이 저거 늘 이러는 거 너무 싫더라!”
팽수련의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용걸개 소천광을 자극하는 말들이 나왔다.
“그만! 이야기할 게. 하면 되는 거잖아! 대신 공부가주 하나 추가다.”
“언제부터 허락받고 시켰다고 그래?! 알아서 시키고 빨리 말이나 해.”
목적을 달성한 제갈상아는 대답을 촉구하며 팽수련을 바라보았다. 둘이 눈빛을 주고받는 걸 보니 오랜 친구와의 합작이 성공한 느낌이다.
“자세한 건 정확하게 모르고 내가 아는 사실은 이거 하나야. 무당산 깊숙한 곳에 있던 절벽이 무너졌어. 그날을 기점으로 무당파에서 유명한 도사들을 무당산으로 초빙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맹주인 청수진인께서 복귀를 했지. 이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 여부는 나도 몰라!”
이런 이야기는 소설에서 나온 적이 없다. 나는 전혀 모르는 내용을 듣게 되어 살짝 당황했다.
청수진인 정도의 고수가 부맹주의 자리를 포기할 정도로 커다란 사건인데 글에서 언급도 되지 않았다는 건 글의 초반부라 그렇게 놀랍지 않으나 이상하게 이 일이 무언가 커다란 사고를 암시하는 시발점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나 혼자 오버하는 거 아니야?!’
“이거 참~! 고작 무당산 절벽이 좀 깎인 이야기로 이렇게 거들먹거린 거야?”
“나는 또 뭐라고!”
흥미를 자극하는 대화의 주제가 아닌 도사와 관련한 이야기라 사람들은 금방 관심을 접었다.
기대하던 주제가 사라지자 대화가 잠깐 멈춰지며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그때. 누군가가 객잔으로 나타났다.
“여기 반가운 분들이 많이 계시군요!”
흠칫. 내 바로 뒤에서 다정하게 말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탈태환골에 성공하여 청각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여인이 접근하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어..언제 왔어..요?”
긴장한 표정으로 보이는 지다화 제갈상아. 그녀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내 머리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도대체 누가 왔는지를 살폈다.
화려한 비단옷에 세련되게 치장을 한 젊은 여인이 서있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여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부자라서 부유하게 입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여인이다.
“제가 오늘 복이 터지는 날이군요. 재신이라 불리는 황금화 북리연화 낭자를 뵙습니다.”
개방의 소방주답게 마당발인 소천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여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 여자가 북리연화라고?! 근데 왜 별호가.... 황금화지?’
“반가워요. 용걸개 소 소협. // 상아야! 오랜만에 언니를 만났는데 왜 그렇게 놀라? 내가 못 올 곳에 왔니?”
“언니가 오니까 뭔가 불안한데?”
“너 왜 그러니?! 누가 보면 내가 너의 걸 훔쳐가는 줄 알겠다.”
“그게 아니면 나야 다행이지. 뺏길 나도 아니지만 말이야.”
제갈상아와 북리연화. 친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건 아무리 봐도 나의 착각이 아니다.
황금화의 뒤로 시녀로 보이는 여자 둘이 다가왔다. 그녀들은 빈 의자 위에 미리 준비한 화려한 비단을 깔았다. 그러자 거기에 자연스럽게 착석하는 황금화 북리연화.
그녀는 이곳 진미객잔의 집기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을 다소곳하게 무릎 위에 올리고 있었다. 북리연화는 자신이 아주 도도한 여인이라는 걸 알리고 있다는 기분을 준다.
내 주변 자리에 앉은 북리연화. 그녀는 노골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쳐다보는 건 북리연화인데 왜 내가 부끄럽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오로지 나만 바라보는 그녀.
‘먼저 인사를 할까?’
그녀의 눈빛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북리연화가 먼저 말을 했다.
“반가워요. 위지 소협.”
한참을 쳐다보다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북리연화. 지그시 바라볼 때부터 나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사부의 이름값 때문에 나도 꽤 유명한가?’
“반갑습니다. 북리 낭자.”
나는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연화 언니는 무슨 일로 여기에 왔어?”
“이상하게 오고 싶어서 와 봤어. 그게 그렇게 궁금해?”
“나야 당연히 궁금해서 그러지. 지금은 분명히 올 시기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상인은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잖아.”
“신용? 때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둘만 아는 정보로 대화를 나누는 제갈상아와 북리연화.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했으나 물어도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묻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나를 바라만 보는 북리연화. 그녀의 뜨거운 눈빛을 보면서 나는 식사를 했다.
‘이 소설은 늘 느끼지만 소설에서 보여주는 묘사와 실제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황금화 북리연화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설에서 본 내가 아는 북리연화는 짙은 회색의 평범한 무복만 입으며 돈이 많아도 쓰질 않는 검소한 여자이다. 지금의 모습과 다르게 상당히 소탈한 그녀는 검소한 성격과 별개로 마음이 아주 차갑고 성격이 표독하며 손속이 잔인하여 무림에서는 그녀를 빙화라 부른다.
빙화 북리연화. 이 여자는 나의 사매가 될 사람이다.
*****
느낌. 무언가 느낌이 온다.
지금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거나 진행되고 있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옳을까?’
계속 고민하던 나는 정보를 더 얻어야 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대단한 정보가 아니니까 큰 비용이 들지도 않을 거고 알아본들 문제가 될 리도 없을 거야!’
얼마 전 서찰을 가지러 장원을 찾았을 때 종노인이 남아 있던 일부의 재산을 처분하여 나에게 주었다. 현재 비용으로 정보를 많이 살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 믿는다.
나는 아침 일찍 조용히 무림맹을 빠져나왔다. 마주친 사람이 얼마 없었기에 홀가분하게 무림맹을 빠져나온 나이다.
내 목적지는 하오문의 정주 지부. 찾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정주의 북문대로 가장 앞에 위치한 건물. 이곳이 하오문의 정주 지부라는 설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림인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지부라 특별히 대단한 정보가 아니다.
끼이익.
“계십니까?”
나는 문을 열고 하오문의 지부로 들어갔다. 1층에는 젊은 남자 하나가 책을 잔뜩 쌓아놓고서 무언가를 열심히 수기로 옮겨 적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몇 가지 얻고 싶은 정보가 있어서 왔습니다.”
“그렇군요. 작은 정보라도 판매를 하려면 지부장님이 계셔야 하는데 잠깐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금방 오실 겁니다.”
나는 젊은 남자의 앞에 있는 빈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 남자는 내가 자리에 앉자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가 쌓은 책을 보니 죄다 역사와 관련한 서적들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나 봅니다.”
“저는 역사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기이한 의뢰로 인하여 억지로 보고 있습니다.”
“기이한 의뢰요?”
하오문은 비밀을 잘 지켜주는 걸로 유명한데 이렇게 말을 해도 되나 의아했다.
“이건 중요한 의뢰가 아니고 비밀을 유지하여 달라는 조건도 없었기에 발설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이 남자를 강제로 역사 공부를 하게 만든 의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 복면을 쓴 자가 나타나 사부와 제자가 결혼한 사례를 전부 찾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번 의뢰 때문에 역사의 박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에? 사부와 제자가 결혼한 사례라고요? 허허. 참 재미있는 의뢰군요. 괴짜는 항상 존재하는 가 봅니다.”
“괴짜는 무슨 괴짭니까! 이런 사람들은 귀찮은 자료를 저희에게 모두 떠넘기고 자기는 이걸 바탕으로 책을 집필할 겁니다. 돈을 주기에 의뢰는 받았으나 저와 같은 밑에 문도들이 죽어나는 거죠. 낯에는 일을 하고 이렇게 짬짬이 조사까지 하려니 죽을 맛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는 사부와 제자가 결혼한 사례를 찾다가 눈이 퀭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이렇게 열심히 적고 있는 글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당대 최고의 여류 고수인 소수신녀는 어린 제자의 적극적인 구애를 이기지 못하여 그와 몰래 혼인을 하였다. 소수신녀는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으나 둘의 사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녀를 무척이나 축하해주었다.]
“소수신녀라는 분은 제자와 결혼해도 축하를 받았군요. 참 대단합니다.”
“소수신녀가 300년 전 천하제일을 다투던 여중제일의 고수인데 성질이 엄청 드셌다고 합니다. 진짜로 축하를 했는지 무서워서 축하한다고 말만 했는지 여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야사는 무서워서 그랬다고 하는데 이런 의뢰는 정사가 기본이라 그런 이야기들은 다 생략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내가 역사를 공부하느라 바쁜 하오문도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하오문의 지부장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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