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후 사부와 소꿉친구 천마가 집착한다-22화 (22/46)

〈 22화 〉 천마가 오고 있다. 6

* * *

“검마! 중원에 너의 얼굴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냐?”

“제가 중원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일 년도 되지 않고, 항상 복면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렇군.”

천마 천미영은 검마의 정체가 탄로나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되어 다시 확인을 했다.

“여기로 계속 나아가면 일곱 사자가 다스리는 숲. 사자림이 나옵니다.”

“길치 주제에 이제 아는 척을 하는 것이냐?”

“그..땐 단순한 착오입니다.”

“닥쳐라!”

“....예.”

계속하여 멈추지 않고 앞으로 가는 천마 천미영. 검마 한비연은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잠시 후. 그녀들은 거대한 숲 앞에 도착했다. 숲이 보이자 멈춰 선 천마 천미영.

“가져온 복면을 꺼내어 하나를 나에게 주고 너도 쓰도록 하여라.”

검마 한비연이 등에 멘 봇짐에서 천마가 미리 챙기라 명한 복면을 꺼내 천마 천미영에게 내밀었다.

복면을 받아 든 천마의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특. 특. 특.

서서히 남성의 체형으로 변하는 그녀. 어깨가 넓어지더니 키가 커졌고, 튀어나왔던 가슴이 들어가며 평평하게 변했다.

“천변만화공까지 써가며 체형을 바꾸는 연유가 있습니까?”

복면을 쓴 검마 한비연은 천마가 무엇을 하려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제부터 나는 무림 최고의 신비인 무영비객. 너는 나의 조수인 비연검화다.”

“천하의 이 검마가 검화. 꽃 화?라니... 이건 천마께서 시키니까 하는 겁니다. 이걸 꼭 기억해주셔야 합니다.”

천마 천미영은 검마 한비연의 투정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복면을 쓰고 체형을 바꾼 천미영은 한비연과 함께 정도에서 가장 성격이 급하다 알려진 열혈의 고수 일곱이 지배하는 땅인 사자림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무영비객의 이름이 천하를 뒤흔들면 천이가 얼마나 즐거워할까?! 이건 너에게 주는 내 선물이야. 남편!’

위지천과 천미영이 어렸을 때 영웅 놀이를 하며 만든 가상의 고수가 바로 무영비객과 그의 조수인 비연검화이다. 둘은 갑작스럽게 헤어지기 전 사자림의 일곱 사자 중 대형인 사자권왕 진상준에 관한 불쾌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복면을 쓴 신비의 고수 무영비객이 사자권왕을 혼내는 놀이를 지겹도록 했고 이때의 기억은 천미영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사자권왕을 물리친 무영비객. 천이가 늘 상상하던 현실이잖아. 내가 대신 이뤄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위지천! 내가 너를 진짜 무영비객으로 만들어 줄게. 나는 오늘을 오랫동안 준비했어!’

위지천이 무영비객의 소식을 듣고 감동할 모습을 상상하자 미소가 지어지는 천마 천미영. 그녀는 자신이 준비한 아주 멋진 선물을 생각하자 사자림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사자권왕 같은 파렴치한은 죽일까? 불구로 만들까?”

“저희 신교 입장에서 보면 파렴치한이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천마께서 이 가상의 인물로 무엇을 하려는지가 중하다 여깁니다.”

“그렇다면 불구로 만들도록 하겠다. 권왕이 권을 쓰지 못하게 두 팔의 근맥을 끊는 선에서 그를 처단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천마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군요.”

‘근데 사자권왕이 왜 파렴치한이지?’

검마 한비연은 궁금했다. 십대고수 중 성격이 가장 불같으나 정의를 위해 언제라도 목숨도 바치는 인물이 바로 사자권왕이다. 은퇴를 앞둔 노고수인 그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파렴치한이 되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너는 아는 게 뭐냐고 따질 천미영이라 차마 묻지 않기로 했다.

*****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형님과 강호를 누비던 게 얼마 전인데 우리도 이제 늙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가 함께 했던 흔적들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대인.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사자권왕 진상준이 팔순을 맞이하자 그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사자림을 방문했다.

그는 자신을 귀하게 여겨 찾아와 준 사람들을 보며 지금까지 삶아왔던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자권왕 진상준에게는 의협심이 강한 열두 명의 의형제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사자림을 만들었다. 사자림은 친한 의형제들이 모여 사는 곳일 뿐 세력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 각자가 지닌 무공이 고강하고 억울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형제가 나서다 보니 사람들은 사자림을 정도의 한축으로 보고는 했다.

지난 세월동안 의형제 여섯은 무인으로 살다 다른 무인의 손에 세상을 떠났다. 배교의 난이 일어났을 때 늘그막에 얻은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마저 잃어 친혈육은 귀한 손녀딸인 진여을 하나만 남은 그이다.

‘아쉽지 않다면 사람의 인생이 아니지. 허나 내가 멋지게 살았다 생각해야 먼저 떠난 나의 형제들과 현이 내외가 슬퍼하지 않을 거야!’

“할아버지 이걸 보세요.”

사춘기를 지난 진여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무공을 뽐내려 했다.

그녀가 펼치는 무공은 사자권왕 진상준을 상징하는 야수파멸권.

특별히 정해진 형이 없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야수파멸권은 진상준이 스스로 창안한 무공이었다.

쉬잉. 쉬잉. 쉬잉

펑. 펑. 펑.

주먹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자 폭발이 일어났다. 야수파멸권이 무서운 절학인 이유. 어떻게 기의 폭발을 일으킬지 펼치는 이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넋을 놓고 진여을의 권을 감상했다.

‘여을이는 무학에 관심도 없는데 벌써 저런 성취를 보이는구나. 저 아이가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 사자림 열셋의 모든 걸 이어받은 진정한 사자가 탄생할 거야.’

사자권왕 진상준은 손녀의 재능에 욕심이 생겼으나 무리하게 무공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떠난 아들을 생각하면 더 많이 어울려주지 않았던 지난날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가 뛰어남을 뽐내는 손녀를 흐뭇하게 바라볼 때였다.

­ 나는 무림 평화를 위해 힘쓰고 악의 무리를 응징하고 처단하는 무영비객

­ 나는 그런 무영비객을 돕는 하나뿐인 그의 조수 비연검화

­ 사자권왕 이 파렴치한 늙은이. 너를 벌하기 위해 천하제일의 신비인 무영비객이 왔다.

강력한 내공을 기반으로 펼쳐진 육합전성의 소리들이 사방에서 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허공에서 복면을 쓴 남자와 여자로 추정되는 두 인형이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놀라운 천상제의 수법이 분명했다.

[천마! 다시는 이런 걸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검마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습니다. 차리라 싸우고 싶습니다.]

[닥쳐라. 나라고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천마 천미영은 검마 한비연이 자신의 어린 시절 감정이 어떠했을지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공에서 내려오던 둘은 지면이 가까워지자 공중에 멈춘 상태로 사자권왕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모습을 보이자 주변의 많은 이들이 적개심을 보였다.

“이 오만방자한 것들아. 감히 사자권왕께 파렴치한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사자권왕은 양민을 괴롭히고 어린 여자를 탐하지 않았느냐?”

천마 천미영이 위지천에게 들었던 소문을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지며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이것들을 다 쓸어버려야 하나?’

천마 천미영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사자권왕.

“여을아! 물러나라.”

“하..하지만 이들은 할아버지를 모욕했어요.”

“이 할아버지가 해결할 문제다.”

“이이이. 알겠어요.”

할아버지가 나서는 일이라 뒤로 물러나는 진여을. 그녀는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추잡했던 거짓 소문을 꺼낸 무영비객. 너의 목적은 나를 도발하기 위함이겠지?”

[검마. 저자가 파렴치한이 아니란 것이냐?]

[저는 소문도 듣지 못했으나 사자권왕의 명성과 그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누구보다 바른 인물입니다.]

“도발이라...”

천미영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천마로 나타났다면 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현재 그녀는 무영비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다.

“나 사자권왕은 그 더러운 소문을 유포한 놈을 찾아 응징하기까지 일 년을 허비했다. 하지만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는 상황. 그것으로 나를 도발하려 했다면 그대의 승리다. 무영비객. 나와 싸우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여기 왔을 터. 너의 도전을 받아주겠다.”

[싸우는 게 목적이면 그건 달성한 거 같습니다. 천마! 뭐든 결과가 중요한 법. 저는 성공했으면 끝이라 봅니다.]

‘이 단순한 년.’

천마는 새삼 검마가 세상을 편하게 사는 여자라는 걸 느꼈다.

‘일단 이기고 생각하자!’

“좋다. 덤벼라. 사자권왕!”

­ 이 건방진 것.

­ 이 무뢰한 것들에게 사자권왕의 힘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사자권왕을 존경하는 이들. 그들의 눈은 불같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 분노에 화답하듯 사자권왕 진상준의 몸에서 박력 가득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사자권왕은 달리 야수권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자철력이라 불리는 가문의 외공을 극한으로 익힌 그는 오랜 실전 끝에 야수파멸권을 만들었다.

강력한 외공과 폭발적인 실전력. 그것이 그를 십대고수의 하나로 만들었다.

실전 격투의 최강자. 박투의 신. 이것이 사자권왕을 칭하는 다른 말이기도 했다.

“간다!”

펑.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고 알려진 사자권왕의 기질은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었다. 폭발적인 힘으로 진각을 밟은 그가 힘차게 뛰어오르며 순식간에 무영비객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순간을 위해 만든 나의 무영공을 너에게 보여주마. 사자권왕’

천마 천미영은 위지천을 신비의 고수 무영비객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이 아는 신교의 무공을 다듬어 농익은 살기를 없앤 후 무영공이란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다.

자유로운 고수 무영비객에 어울리기 위해 형과 틀에 얽매이지 않으나 부드럽고 강맹함을 품은 무영공. 그 놀라운 무공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순간이다.

펑. 펑. 펑.

무영공과 야수파멸권은 모두 자유로운 무공.

둘은 근접하여 치열하게 서로를 난타했다.

굉장히 치열하고 빠른 폭풍이 휩쓰는 패기와 웅후함이 없다면 개싸움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난타전이 이어졌다.

모두가 이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멍하니 있었다.

­ 천하의 사자권왕에게 박투로 승부를 보려는 자가 있다니.

­ 이건 믿을 수 없어!

격렬한 다툼이 계속 이어졌다. 무영비객은 여전히 멀쩡했으나 늙은 사자권왕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음이 고수들의 눈에는 보이기 시작했다.

“어딜 감히!”

무영비객의 조수라 스스로를 지칭한 비연검화가 손가락 열 개를 펼치며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 날카로운 기가 흘러나와 무영비객과 사자권왕이 다투는 연무장 일대를 둘러쌓다.

“무영비객과 사자권왕의 대결에 그 어떠한 개입도 있을 수 없다는 걸 비연검화가 알린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녀가 놀라운 경공을 보인 건 분명하나 조수라 칭했기 때문이다. 무영비객의 기운을 빌린 존재이거나 경공에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여인으로 보았는데, 손가락으로 검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그것도 십지 모두 가능한 고수.

펑. 펑. 펑. 펑.

그야말로 폭발하는 대결이다.

하지만 서서히 무영비객이 이겨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비연검화를 연기하는 검마 한비연.

‘천마는 진짜 타고나는 거구나!’

사자철력이 엄청난 외공인 것은 분명하나 천마는 천마벽과 불사진기를 가지고 있다.

‘얼핏 사자권왕의 주력으로 싸워주는 걸로 보일 뿐. 실상은 자신이 절대 유리한 공부로 싸움에 임한 거야!’

새롭게 창안하여 살기를 없앤 무공을 펼치며, 상대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승부로 임했다. 하지만 질 수 없는 싸움에 임한 천마 천미영.

검마는 천마의 벽을 다시금 느껴야 했다.

펑. 펑. 펑. 커억. 툭.

결국 무너져 내린 사자권왕. 그가 연속된 무영비객의 공격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졌다.”

사자권왕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무영비객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무영비객이 사자권왕을 해한다면 저들은 목숨을 걸고 무영비객과 비연검화를 향하여 달려들 거라는 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슈우웅.

슈우웅.

무영비객이 힘차게 허공으로 솟구치며 사라졌고, 그의 뒤를 따라 비연검화도 사라졌다.

이후 육합전성이 들려왔다.

­ 내가 운이 좋았군. 사자권왕. 오늘의 이 멋진 승부를 평생 잊지 않겠다. 너는 천하제일의 신비인 이 무영비객이 가장 먼저 인정한 고수! 자부심을 가져라.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나타났다 다시 그 하늘로 솟구치며 사라진 고수 무영비객.

둘의 치열했던 대결의 흔적이 없었다면 이게 사실인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할 때, 무영비객이 떠난 자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무영비객. 사자림의 후계자가 반드시 너를 찾아 무릎을 꿇릴 것이다.’

무공에 관심이 없었던 사자권왕의 손녀 진여을. 그녀는 다짐했다. 사자림을 농락하고 떠난 무영비객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