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천마가 오고 있다. 2
* * *
중원 사람들은 옥을 다듬고 꾸미는 걸 아주 좋아하여 잘 생긴 얼굴을 옥면이라 부르고는 한다. 이곳에서는 이런 부름이 자연스러우나 나에겐 상당히 구닥다리 느낌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옥면이라는 이상한 별호가 나에게 붙은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검룡은 아니다. 용이라는 글자의 별호는 재능이 아주 뛰어나 빼어난 성과를 보이는 후기지수에 한하여 붙여지는 별호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런 무거운 별호가 생겼지?’
나는 룡?이라는 글자가 생긴 게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옥면검룡이라는 별호에 관하여 제대로 알고 있을 거라 짐작되는 지다화 제갈상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치가 빠른 탓에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먼저 답을 해주었다.
“검후께서 맹의 회의에 참석하시거나 공적인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위지 공자님이 후기지수들 중 검에 대한 재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랑을 하도 많이 하여 검룡이라는 별호가 생겼습니다. 다들 검후께서 무공에 대해 얼마나 냉정한지 알기에 이견 없이 수긍하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게 아니잖아! 이견이 없으면 어떻게 해?!’
이름값이 좋으면 자연스레 도전자가 생기는 곳이 바로 강호다. 나를 눌러 내가 더 위라는 걸 과시하고 싶은 심리가 있기에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 사람들이 ‘니가 검룡이냐?’ 하면서 도전하면 어쩌나 싶어 머리가 어지럽다.
‘이건 아닌데... 사부가 그랬다니 검룡은 일단 넘어가자. 근데 옥면은 왜 생겼지?’
검후 사부가 제자의 무공을 칭찬하는 건 내가 제자니까 그렇다고 납득이 된다. 그런데 외모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천아. 때론 그 어떤 고수보다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넌 무공을 위해 얼굴을 가릴 필요도 있는 거 같아.
이런 말을 부쩍 자주하던 분이 사부이고, 내 얼굴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이다. 어떻게 봐도 옥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모르겠다.
“근데 그 이상한 옥면이라는 두 글자는 도대체 왜 생겼을까요?”
“흐흐. 놀라지 마세요. 제가 사람들에게 널리 퍼트렸답니다. 저 잘했죠?”
“예에?”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표정이 왜 그래요? 제가 없는 말을 지어서 했나요?”
“공자님 좋은 거 아닙니까?”
당당하게 자신이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제갈상아와 그게 뭐라고 당황한 표정을 보이냐는 듯 이상하게 보는 종노인.
‘여기서 뭐라 하면 그대로 소인배 각이잖아!’
이미 엎질러진 물. 학창 시절에 생기는 별명도 그렇지만 소문이 전파되면 막을 수 없다.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이름값이나 할 수 있게 노력하고 조심하자!’
나는 별호에 대한 궁금증을 다 채웠기에 화제를 돌렸다.
“나에게 볼 일이 있다고?”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종노인은 내가 제갈상아을 옆에 두고 묻자 지금 가져와도 상관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서찰로 보이는 종이를 가지고 와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숨겨야 할 일은 없기에 제갈상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서문미영
‘서문미영? 누구지?’
나는 위지천의 기억을 하나씩 돌이켜보았다.
‘뭔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질 않네. 바로 보자!’
[위지천! 잘 지냈어? 나야! 너의 옆집에 살던 서문미영. 내가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갑자기 이사를 떠나며 사라졌는데 너 많이 울었지? 내가 보고 싶어서 말이야. 나를 걱정하느라 잠도 자지 못할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더라. 이제 드디어 다시 정주로 가려는데 조만간에 다시 만나자. 날 기다리고 있어. 위지천! 너의 오랜 친구 서문미영]
편지를 읽고 있을 때 무언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지다화 제갈상아가 다른 곳으로 머리를 빠르게 돌리며 딴청을 피우고 있다.
‘설마 지다화 정도의 여인이 나의 편지나 훔쳐보고 할까?’
본거는 같은데 지다화의 우기기가 나오면 방어를 할 수가 없어 혹시 봤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제갈상아의 지금 입모양은 이상하게 서문미영을 반복하는 걸로 보였다. 마치 외워두겠다는 듯 보이는데 이건 내 착각일 거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서문미영! 반갑네.’
*****
터벅터벅.
두 여인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
“검마. 너는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그게. 칼을 좀 씁니다.”
“니가 정녕 죽고 싶은가 보구나.”
“...”
검마 한비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후우. 후우.”
긴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리는 천마 천미영. 그녀는 가능하면 검마를 보지 않으려 했다.
‘정말로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
천마는 천산을 내려올 때 지름길을 알려준다는 검마 한비연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저. 검마입니다. 검마. 천하십대고수의 하나라고요! 설마 저를 못 믿습니까?
너무도 자신감 넘치던 검마의 길안내에 천마는 덕을 베풀 듯 말했다.
앞장을 서거라.
그 결과 산을 길게 둘러서 내려오고 말았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정주로 가고 싶은 천마는 검마로 인하여 지연된 시간만큼이나 그녀를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러나.
‘검마는 맷집이 좋은 년. 죽일 게 아니면 시간 낭비야. 그냥 가자!’
천마 천미영은 험한 산길만 걸어가다 이제 정돈이 된 길을 걸으려니 마음이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내가 가고 있어. 위지천! 기다려.’
“누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딱 보니 남자군요.”
약간 놀리는 듯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서있는 검마 한비연.
“건방진!”
억누르고 있던 화마저 함께 폭발한 천마 천미영은 팔을 내밀어 검마 한비연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대로 몸이 위로 떠오른 검마 한비연.
“커억. 컥. 마..말로 해요. 말로. 이거 다 부하를 괴..괴롭히는 겁니다. 천마.”
검마 한비연은 천마 천미영의 팔을 가볍게 톡톡 치면서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검마! 어떻게 알았지?”
“제..제가 이렇게 근엄하게 보여도 눈치가 보통이 아닙니다. 특히 남과 여의 관계에 대한 상담은 저 스스로도 신교 최고라 자부합니다.”
“그으래?”
천마 천미영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검마 한비연을 내려놓았다.
“허억. 허억.”
목을 옥죄던 손이 사라지자 숨을 깊게 들이키는 검마 한비연.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천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진작 저에게 말을 하셨어야 합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제가 알아차린 게 어디입니까?!”
“갈!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검마. 여기서 죽고 싶으냐?”
양팔을 앞으로 내밀어 크게 휘두르는 검마.
“무공은 천마가 위일지 모르나 저는 남자의 마음을 휘어잡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 검마가 아니면 누가 천마에게 목숨을 걸고 이런 상담을 해준다 하겠습니까?”
“으음. 일리가 있긴 하구나.”
“저 검마. 지금까지 신용 하나로 살아온 마인입니다.”
천마 천미영은 검마 한비연의 말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녔다고 느껴졌다.
“본 천마가 그대 검마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나 확인은 해야 하겠지?!”
“어...어떤 걸 확인하시려고?”
“천마의 이름으로 묻겠다. 너는 남자를 얼마나 만나보았느냐?”
‘저렇게 자부심을 부릴 정도면 못해도 열은 되겠지?’
신교는 남과 여의 위치가 동등하여 중원을 기준으로 할 경우 상당히 문란하다. 여류 고수의 경우 성적인 말을 서슴없이 하는 자들도 많았다.
남자는 옷을 살짝 벗으면 이성이 마비되어 달려들어요.
좋으면 여자도 덮치는 거죠!
천마 천미영은 이런 신교 여인들의 정점이 검마 한비연이 아닐까 했다.
‘나를 제외하고 여자들 중 무공이 제일 강하니 남자도 제일 많이 아는 모양이야.’
기대심을 품고 바라보는 천마 천미영.
“그...그것이 말입니다.”
“본 천마는 말이다. 여인이 많은 남자를 만난다 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좌는 남자 하나면 충분하나 너에게 이걸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여라. 천마의 명이다.”
“그...그게 아니라.... 하아. 어.....없습니다.”
멍. 천미영은 순간 잘못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우우웅. 우우웅. 지지직. 지지직.
천마의 몸에서 강한 살의와 함께 뇌기를 머금은 강한 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 네 친히 너의 목숨을 거두겠다.”
너무 화가 난 천마 천미영은 오히려 감정을 자제하며 말을 했다.
“히익. 그게 아니라 제 말을 끝까지 들으셔야 합니다. 천마.”
검마는 그녀가 자랑하는 폭풍신법을 펼치며 멀리 도주했다.
“감히 신교의 제자가 천마에게서 도망을 가려하느냐?”
“저는 호법사자. 때론 천마의 명을 거역할 수도 있음을 알지 않습니까?”
“이건 그런 경우가 아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쉬잉. 그녀의 옆으로 강기가 날아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는 큰일이 발생한다. 빠르게 무언가를 해야 함을 느낀 검마 한비연.
“자고로 연애란 경험보다 이론입니다. 저는 그 이론만 평생 연구했고, 저에게 상담 받은 이들은 모두 결말이 좋습니다. 난잡한 신교에서 그나마 바른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들은 모두 저의 조언을 받아서 가능했습니다.”
“닥쳐라! 그건 십마의 최강 검마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이 아니냐!”
천마를 피해 도망 다니던 검마 한비연.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날아오는 강기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저는 스스로 절대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 검마! 한 평생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살아온 무인. 지금이 승부처다.’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듯 태연하게 눈을 감았다.
펑. 그녀의 바로 옆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졌다. 강기가 부딪히기 바로 직전 천마가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과연 검마! 목숨을 건 너의 충정을 믿어 상담을 받아보도록 하겠다.”
‘됐어! 성공이야!’
“탁월한 선택입니다. 천마. 이제 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이야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무림맹과 가까운 곳에 사는 어린 여아. 서문미영.
그녀는 항상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했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성이 아닌 엄마 서문혜의 성을 물려받았고 자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누구에요?
너의 아버지는 죽었단다. 그러니 더는 알려고 하지 마. 미영아!
연약한 엄마는 아버지에 대하여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착한 서문미영은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에 대하여 물을 수 없음을 느끼고는 방법을 바꿔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우리 모녀가 무림맹의 그늘로 도망을 왔다고 생각할 거야! .....진짜 그런가?’
그녀는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깨달았다. 엄마가 왜 이리도 무림맹을 가까이 두고 사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자신을 함부로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아마도 내 아버지는 잘못을 저지른 분인가 봐!’
당시 서문미영의 생각은 간단했다. 무림맹은 무조건 정의 그 외에는 나쁜 악당들 이게 끝이었다.
그런 생각이 자리 잡은 건 이곳이 무림맹 본단이 있는 정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만약 무림맹의 척을 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를 피해 여기 온 거라면 나도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는 게 옳은 거야.’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에 대한 궁금함을 버리자 어린 서문미영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