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천마가 오고 있다.
* * *
탕. 탕. 탕.
대장간 주변으로 다가가자 쇠를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방문과 달리 사부는 최대한 인기척을 죽이며 조용히 대장간의 내부로 들어갔다. 진중한 검후 사부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차분하게 행동했다.
‘한참 예민한 장인은 건드리면 곤란하지!’
쇠를 두드리며 다스리느라 여념이 없는 철기룡 장인의 모습이 보인다.
‘와아. 아무리 봐도 드워프잖아!’
유난히 작은 키와 넓은 어깨.
앞뒤로 크게 튀어나온 상체.
마지막으로 사기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미친 팔뚝.
저런 몸으로 쇠를 다루는 게 서툴다면 그건 사기가 분명하다.
외모에 어울리는 놀라운 집중력을 지닌 철기룡은 장인의 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 제련에 여념이 없었다.
검이 완성되는 제련의 마지막 순간에 검의 주인이 함께 있을 것. 이게 철가가 검을 만드는 방식이야. 내일은 하루 종일 그의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기다려줘야 진정한 너의 검이 나올 거야!
당연히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마지막 작업에 여념이 없는 철기룡. 나는 장인의 손에서 차츰 완성되어가는 나만의 검을 지켜보았다.
치이익. 또다시 검을 식힌다. 이제 모든 작업이 끝나가고 있다.
“검주는 와서 잡아 봐!”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을 품고 철기룡 장인의 옆으로 가 오직 나를 위한 검을 움켜잡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대충 살피는 듯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팔과 몸에 만들어진 근육까지 고려한 맞춤형 검이라는 걸 잡는 순간 대번에 느꼈다.
“이제 눈을 감고 너의 검은 무엇인지 생각해!”
쇠를 만드는 장인에게서 이런 엄숙한 말이 나올 거라 예상하지 못하여 조금 놀랐다.
나는 눈을 감고서 내가 생각하는 검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았다.
부끄럽게도 검을 배우고만 있을 뿐 이것에 관하여 따로 고민했던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계속 고민했다. 그러자 생각나는 건 오로지 사부인 검후 설지연뿐이었다.
나에게 검은 검후 하나라는 걸 느끼며 눈을 떴다.
“무엇이 떠올랐지?”
“사부가 떠올랐습니다.”
“너도 참~.”
“아무래도 너의 제자는 청출어람을 꿈꾸고 있나 보군. 대단해!”
사부는 철기룡의 말이 틀렸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철기룡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검명은 사부를 능가하고 싶은 제자의 마음을 담아 진천?? 어때? 하늘에 도달해야만 검후를 능가할 수 있으니 진천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아!”
검후 사부는 내가 어떤 검명을 원하는지 무척 궁금한 모양이다.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사부를 능가하고 싶지만 조금 전 검을 떠올렸을 때 그리고 지금 검을 잡고 있는 내 마음을 생각한다면 진천은 아니야!’
나는 조금 더 깊게 고민하고 난 후에 정리된 내 생각을 전했다.
“저는 검애??로 하겠습니다.”
“검을 사랑한다라... 검수가 지녀야 할 좋은 자세군.”
“천이 넌 진짜 못 말린다니까~”
뜨거운 용강로 탓에 다들 얼굴이 붉어진 상황임에도 사부의 얼굴은 유독 붉게 보였다.
“그럼 검애로 하자!”
철기룡 장인이 검명을 결정하고 사부를 바라보자 사부는 나의 손에 쥐어진 검을 가졌다.
사부가 검지를 들자 손가락이 붉게 변했다.
손가락으로 날의 중간에 내공으로 글자를 새기는 사부.
검애??
“천아! 이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마!”
“물론입니다. 사부!”
짝짝짝.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이야. 내가 잠도 못 자고 만든 보람이 느껴져. 공짜라 부인에게 눈치가 보이지만 말이야.”
나는 얼마라도 그에게 내가 가진 걸 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런 장인에게 함부로 비용을 주는 건 실례라 여겨져서다.
가죽 손잡이와 가벼운 검집 거기에 더해 어깨끈까지 꼼꼼하게 만들어 준 철기룡. 그에게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서야 사부와 함께 무림맹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아침 일찍 대장간에 왔는데 달을 보며 사부와 함께 돌아가는 중이다.
“달이 참 밝습니다. 사부.”
“그러게... 당분간 너와 떨어지려니 마음이 너무 아파!”
“저는 사부가 꼭 돌아오실 걸 믿고 있습니다.”
“당연하지! 오늘 너의 사랑도 확인했는데 어떻게든 무사히 돌아와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부의 검명은 뭐에요?”
나는 사부의 진검을 본 적이 없다. 검이 필요 없는 단계에 이른 사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검을 꺼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궁금해?”
“네!”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사부가 허공을 향해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밝은 보름달을 종이 삼아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불퇴不?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남해 보타암의 마지막 제자 설지연이 강호로 나가면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담긴 검명이다.
*****
검후전이 다시 지어진 다음날.
사부는 사황마제 패무강과의 대결을 위해 무림맹을 떠났다.
매일 함께 지내던 사부가 떠난 자리가 무척 크다는 것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수련을 감독하는 사람도 없고, 차려서 먹일 사람도 없어서, 몸은 편하고 여유로운데 이상하게 갑갑하고 따분하다.
사부는 나에게 남해 보타암의 모든 무공을 알려주고 떠나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겨도 문파의 비전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부는 괜히 심란한 말을 하고 갔잖아! 마음도 복잡한데 검이나 휘두르자!’
나는 쉬려던 마음을 접었다. 몸을 분주히 움직이면 잡념이 사라질 거 같아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직 공격에 대한 부분은 투로만 알기에 전18검의 방어를 집요하게 연습했다. 전18검을 하나로 만들면 무정검벽을 만들어 대부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나에겐 감도 잡을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무공에 재능이 없나?’
내가 부족하다 여겨져 기분이 나빠질 때였다.
짝짝짝.
“위지 공자의 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군요. 정말 너무도 대단해요!”
움찔. 갑작스레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지다화 제갈상아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제..제갈 낭자가 어떻게 여기에?”
검후전에 사부가 설치한 진은 풍진팔괘진. 사부가 도성의 혼원대공을 얻을 때 함께 습득한 진법이다.
“진법하면 제갈 세가 아닙니까?! 이 진은 도가의 향이 느껴지는데 푸느라 상당히 고생했어요.”
‘누가 고생한 걸 물었어? 이걸 왜 풀었는지를 알려줘야지!’
남의 거처를 무단으로 침입한 제갈상아는 당당함을 넘어 진을 푼 것에 대하여 칭찬을 바라는 모습으로 보였다.
“대..대단하기는 대단합니다. 근데 어쩐 일로?”
“위지 공자님! 우리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만나는 사이인가요?”
밝은 표정. 그리고 환하게 웃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
거절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 사이가 맞...”
“당연히 일이 있어서 왔어요.”
내가 우리는 그런 사이라고 하려고 할 때 절묘하게 나의 말을 끊는 지다화 제갈상아.
“저하고 관련한 겁니까?”
“그럼요.”
“저에게 일은 없을 거 같아서 더 궁금합니다. 제갈 낭자!”
“공자님 댁의 하인이 찾아와 집에 잠깐 들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공자께서 봐야 할 것이 있다고 하던데요?”
나는 하인이 나를 찾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고민하느니 집에 갔다 오는 게 좋겠다.’
“위지 공자님. 지금 집에 가실 건가요?”
눈치가 빠른 지다화 제갈상아.
‘깊숙한 검후전을 빠져나갈 건데, 제갈 낭자 모르게 나가는 건 애초에 무리야!’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떳떳하게 말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숨길 수도 없었다.
“당장 할 일도 없으니 지금 다녀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어마나! 너무 잘됐어요. 저랑 함께 가요.”
“예에?”
“공자님은 현재 무림맹에서 가장 중요한 분인 검후님의 제자. 안전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내가 너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말이 생략된 지다화 제갈상의 말.
‘아무래도 이런 호의는 받는 게 좋겠지?’
사부는 다른 이들에게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거기다 미친 미모의 소유자라 사부를 동경하는 남자들이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인 내가 제자가 되었다. 아무래도 나를 시기하는 무리는 상당할 거라 짐작된다. 안전을 위해 제갈상아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귀찮은 일인데 도와주신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 찾아온 거에요. 저 잘 왔죠?”
“...아. 네. 저야 감사하죠.”
그렇게 하여 지다화 제갈상아와 함께 무림맹을 인근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하하. 이히히. 너무 재미있어요. 위지 공자님. 저 너무 즐거워요.”
‘뭐지?’
나는 정말로 별다른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소소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별거 아닌 이야기에 제갈상아는 너무 재미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과장된 웃음과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기 충분했다.
위지천은 몰라도 제갈상아를 아는 자들은 부지기수인 무림맹이다. 그녀와 웃으며 지나가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설마?! 나랑 가까운 사이라는 걸 소문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여겨졌으나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어 난감했다.
무림맹의 정문을 통과하자 지다화 제갈상아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했다.
북경에 가면 오리가 그렇게 맛있어요.
사천에 가면 매콤한 면이 그렇게 중독성 있다고 하는데 꼭 가보고 싶어요.
주로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고 여기저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함이 느껴졌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은 사람인가?’
“위지 공자님은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 제일 맛있는 음식이 뭔지 아세요?”
“모릅니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모르니까 단칼에 모른다고 말했다.
“쳇. 재미없어!”
“예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나는 탈태환골을 하여 청력이 아주 좋아졌다. 거기다 방금 전의 말은 탈태환골을 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냥 그만 있자!’
여자의 변죽에 대응하는 우를 범하기 싫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살짝 토라진 느낌을 물씬 풍기는 제갈상아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위지 공자님 댁이군요. 저 기억했어요.”
“...아. 네”
어차피 알려고 하면 여길 찾는 것이 일도 아닌 제갈상아. 그러려니 하면서 내부로 들어갔다.
“공자님 오셨군요!”
“오랜만이야. 사부에게 무공을 배우느라 좀 바빴어.”
집안의 오랜 하인 종노인이 반갑게 나를 맞았다.
“다 이해합니다. 공자님은 천하의 옥면검룡 아닙니까?!”
옥면검룡이라 말하는 종노인의 표정에서 나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옥면검룡? 내가?”
“원래 자기 별호는 자기가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된다는 말이 있어요. 위지 공자님!”
* * *